칼 바르트 교회교의학

칼 바르트에게 '성육신', 있을까? 없을까?

형람서원 2024. 11. 2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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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는 이단! 자유주의를 배격하라 - 개혁주의"(2021.07.11), "갓소리 개혁신학_이단분별소"에서 작성한 영상에서, 칼 바르트가 창조, 성육신, 부활, 재림을 부정하기 때문에 이단으로 규정하는 영상입니다. "형람서원"에서 그 부분에서 칼 바르트에게 성육신이 없음에 대한 부분을 간략하게 조사해서 정리했습니다.

성육신이 있으면,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부활이 있으면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이상웅는 "바르트가 역사적 개혁주의와 일치하는 면들도 긍정했으나(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나 역사적 부활에 대한 긍정 등), 바르트의 신학적인 문제점 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비평하였다."로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바르트 신학의 공과를 역사적 개혁주의의 관점에서 바르게 평가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제시하며, 바르트의 공과를 평가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 참고, 이상웅, "루이스 벌코프의 칼 바르트 신학에 대한 평가", <개혁논총> 25권, 2013.- 즉 바르트에 대해 중간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벌코프의 분석이 부당하다는 주장은 없습니다.

바르트의 성육신, 동정녀 탄생 이해(Understanding of the Virgin Birth of Jesus Christ)는 뜨거운 감자(hot potato)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권호덕은 「칼빈과 바르트의 동정녀 탄생 이해 비교」(『한국개혁신학』, 41권, 2014)를 발표했습니다. 논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취하신 몸이 타락 후 아담의 몸인가? 타락 이전의 몸이었는가?’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칼빈은 두 가지 의견을 모두 갖고 있지만, 바르트는 타락 후 아담의 몸을 가지고 성육신함을 암시한다고 제시했습니다. 권호독은 칼빈보다 바르트의 의견을 더 명료하는 것인데, 바르트가 타락 후 아담의 몸으로 성육신했다는 개념이 정통 신학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바르트는 그보다 더 과격하게 예수는 일반 인간과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인간 예수"가 구세주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르트 신학의 독특성이고 논리의 비약입니다. - 형람서원 고경태 -

진리는 전체를 알아도 진리이고, 부분을 알아도 진리입니다(고경태). 진리는 순환논리이지만 순환오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고경태). 순환오류의 맹점은 시작점에서 문제이며, 진리의 순환은 시작과 마지막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바르트는 동정녀 탄생, 성령의 잉태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술은 정통신앙의 개념과 같지 않습니다. 정통신앙의 가장 첨예하고 탁월한 변증서는 메이천(1881~1937) 박사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입니다. <바울 종교의 기원>(The Origin of Paul‘s Religlon, 1921년), <기독교와 자유주의>(Christianity & Liberalism, 1923년),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The Virgin of Christ, 1930년)은 메이천의 대표 저술입니다.

교회교의학 4권 동정녀 탄생

한편 동정녀 탄생은 일반 역사적 사건이라고 바르트는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들으면 바르트 역시 동정녀 탄생을 우리 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믿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바르트는 동시에 동정녀 탄생은 '직접적 계시'가 아니라 주장한다. 그 이유는 동정녀 탄생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동일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정녀 탄생은 단지 초역사적 실재(reality)의 지표(sign)에 불과하다고 한다. 바르트가 동정녀 탄생을 일반 역사로 보는 것은 그것이 실재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동정녀 탄생을 구속적 의미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부활 역시 동정녀 탄생과 같이 일반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빈 부덤은 전설적인 것이며 부활의 지표(sign)는 될 수 있다고 한다.

정승원 교수 현대신학 배경(7) 강의 내용 중에서

고경태 박사는 교회교의학 I/2권 섹션 15에서 진술한 성육신, 동정녀 탄생에 대한 글에서 바르트 사유를 분석하면서, 바르트에게 성육신, 동정녀 탄생이 있는데, 정통 신앙의 동정녀 탄생 믿음 혹은 개념과 전혀 다른 구도에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칼 바르트 비평적 읽기 I/2, §. 15저자고경태출판우리시대발매2022.12.05.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저자존 그레샴 메이천출판CLC(기독교문서선교회)발매2018.09.20.
 

(1) “동정녀출생은 거리낌을 주니,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바르트는 성경에 거리낌이 되는 곳이 많지만, 동정녀출생이 가장 큰 거리낌을 주는 장소라고 하였다. 수강생들도 거리낌이 되는 다른 것을 수강하는 동안에는, 초조한 마음이기는 하나 비교적 잘 따라왔지만, 이 동정녀출생의 항목에 이르러서는 무언 정지하여, 목석처럼 말문이 닫혀버릴 것이라고 염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여 안심시켰다.

바르트가 주장하기를, 성경에는 거리낌이 되는 곳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동정녀탄생은 가장 큰 거리낌을 주는 곳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르트가 주장하기를, 동정녀탄생을 납득하여 믿으려는 것이 아니고, 동정녀탄생이 가르쳐 줄 진리(교훈)에 접근하려 한다고 하였다. 바르트는 이 글에서,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주장하였으니, 동정녀탄생을 “납득하여 수용하는 것”은 부정하였고, 동정녀탄생이 주는 “진리(교훈)에 접근하는 것”은 긍정하였다. 결국 바르트는 기적 사건으로서의 성령수태와 동정녀탄생은 화제에서 삭제하였고, 성령수태와 동정녀탄생이 주는 교훈(진리)을 수용하자고 주장하였으니, 바르트는 자기 신학에서 기적은 불신하여 폐기한 것이다.

(2) “동정녀출생은 마리아의 배가 아니라, 마리아의 귀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예수가 마리아의 (belly)에서 출생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ear)에서 출생했다고 하였다. 애기가 (ear)에서 출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여하튼 바르트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바르트가 답변한 내막은 이렇다. 여인이 아직 남자를 접한 일이 없는 동정녀라 하니, (belly)로 애기를 출산한 일은 없을 것이므로, 동정녀가 애기를 잉태하고 출산했다는 것은, 마리아가 천사에게서 로 들었던 설화(geschichte, 고대소설)에서의 잉태와 출산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즉 동정녀의 출산은 고대소설(성서)이 말하는 출산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바르트는 천사가 전했던 예수의 잉태와 출산을, 동정녀가 실제로 잉태하고 출산한 기적으로 믿지 않았다. 천사가 전했던 동정녀의 잉태와 출산을 설화(고대소설)로 돌려서, 설화에서 출산한 것으로 해설하고, 설화에서 교훈을 끌어냈다.

(3) 성령수태 설화(geschichte)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수태하고 동정녀에게서 나셨다는 설화(geschichte)에 접근하여, 바르트가 얻어낸 숨은 뜻(mystery)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설화에서 해석해낸 교훈은 무엇인가? 성령수태과 동정녀출생의 설화에 접근하여 교훈을 해석해내기에 앞서, 인용문에 등장한 특수한 용어들에 주목해야 한다. 즉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라”는 비의(mystery),

“성부와 성자”가 “하나가 되어짐,”

“인간의 실존,” “예수의 실존의 시작,”

“기원 제 1 년의 시작.”

이 용어들을 구심점으로 하고, 문장을 다시 구성해 본다.

ⓐ 성령수태의 교훈은, 「성부와 성자가」 하나 되어진 것을 뜻하며,

ⓑ 「성부가 성자가」 하나가 되어진 것은, 예수가 「참 하나님, 참 사람임」을 뜻하며,

ⓒ 예수가 「참 하나님, 참 사람이」되신 것은, 곧 「예수가 실존의 시작임」을 뜻함으로,

ⓓ 이 「인간 실존」을 「기원 제 1년」으로 삼자고 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다시 정리해본다. 이 바르트의 주장은 다 신비로운 표현들(mystery)이고, 특히 인간의 실존은 더욱 어려운 표현이다. 인간의 실존은 실존주의 철학과 실존주의 신학의 핵심개념이다. 앞에서 이미 해설한 대로, 실존주의 철학과 실존주의 신학에서는 “인간의 실존”은 타락과 부패를 벗어난 「참 인간」을 뜻하고,32 하나님처럼 변화된 「참 인간」을 뜻한다.

바르트가 성령수태와 동정녀출생을 불신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肉身)으로는 요셉의 혈통을 받은 요셉의 아들이지만, 그가 살고 간 생애와 교훈과 죽음은, 인류의 역사상 단 한 번만 있었던 위대한 사건으로서, 이것이 「참 인간의 출현」을 뜻하고, 이것이 참 「인간 실존의 출현」을 뜻한다는 것이 바르트의 주장이고, 현대주의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주장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나타났던 이 위대한 「인간의 실존」을 「紀元 제 1년」으로 삼자는 것은, 예수의 인격을 모델로 하는 「전 인류의 새 紀元」을 열어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자님이나 석가님도 훌륭하셨던 분들이지만, 예수님의 행적과 교훈이 더욱 훌륭하므로, 예수님의 생애에 나타났던 「인간의 실존」을 모델로 하여, 전 인류의 「새 紀元과, 새 세상을 열어보자」는 것이다.

한종희 박사의 글

바르트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동정녀 탄생)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에게 오며, 우리를 위한 화해의 역사도 이루어진다. 주)박윤선 [바르트의 교의학에 나타난 신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광주:장로교 호남 신학교편 1983), p. 89-90.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사건을 믿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야 된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된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은 '하나님의 신성과 인성이 환전히 통일된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트가 말하는 동정녀 출생은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수직선으로 세상에 내려와서 참된 인간이 되셨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주)이성주 현대신학 제1권 [서울 : 문서선교 성지원 1994], p. 402.

그러나 바르트에 의하면 그 사건이 어디서 어떻게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 다만 하나님께서 홀로 행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즉 예수의 출생은 신비 영역에 속한 것이고 또한 이것은 사실로써 받아 들이되 하나님이 다만 인간에게 명령해서 출생의 사실을 알게 함으로 우리는 그 명령에 따라 아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주)이성주 현대신학 제1권 [서울 : 문서선교 성지원 1994], p.40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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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 배경(7)

정승원 교수

칼 바르트 (Karl Barth, 1886-1968)

이번 호로 시작하여 여러 호를 거쳐 바르트 신학을 다루고자 한다. 그 이유는 바르트 신학이 기독교에 끼친 영향이 매우 컸기 때문이요, 무엇보다도 보수 신학에 끼친 부정적 영향 때문이다. 그의 신학의 까다로움과 애매함으로 인해 많은 복음 주의자들은 그를 자기 진영으로 생각해 왔다. 아마도 슐라이어막허와 리츨로 시작되었던 구자유주(oldliberalism)가 정통적 보수 신학에서 너무도 벗어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바르트 신학을 복음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그는 그의 대작 『교회 교의학』(Church Dogmatics)을 비롯한 자신의 저서에서 전통적으로 쓰였던 신학적 용어를 똑같이 쓰고 여러 개혁주의 보수 신학자들을 인용도 하고 성경적 개념들을 똑같이 도입하기 때문에 그를 복음주의자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을 신정통주의(neo-orthodoxy)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신학은 결코 보수-정통적 신학과 맥을 같이 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독소적 요소가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바르트 신학은 비성격적 신학이며 칸트, 헤겔,키에르케고르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 등을 기초로 나름대로 발전시킨 것이다. 물론 당시 바르트가 처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어떤 동정적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너무도 인본주의적이었던 당시 자유 신학에 대항하여 기독교적 신앙 회복, 성경을 근거로 한 설교의 가능성과 필요성, 초월적 하나님의 위치,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성 등을 확립하고자 했던 그의 학문적 업적은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바른 신학은 인간이 처한 상황에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 줘야 하는 것도 아니요, 학문적 성취를 위한 것도 아니다. 바른 신학이란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성경 자체에서 시작했다기 보다는 초월적 기독교를 회복하고픈 마음에 철학적 조명 아래에서 나름대로의 '계시' 개념을 가지고 시작했던 것이다.바르트의 출현을 흔히들 '신학자들이 놀고 있던 놀이터에 폭탄을 터트렸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바르트는 당시 구 자유주의적 신학자들에게 큰 타격을 가했던 것이다. 명예 박사 학위만 있었던 바르트는 원래 한 작은 마을의 목회자였다. 이 당시 그는 교인들에게 설교함에 있어서 자유주의 신학이 전혀 쓸모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그는 성경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고 자유주의의 철학적 내용이 아니라 성경안에 있는 초월적 말씀의 개념을 가지고서야 교인들을 위한 적절한 설교를 하게 되었다. 이때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을 쓰기 시작했고 그의 자유주의 비판이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는 복음이란 인간들과 상관없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신학을 인간의 보편적 경험이나 이성을 가지고 발전시킬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런데 바로 구자유주의 신학이 이런 식으로 복음을 인간 이성과 문화의 전유물로 추락시켰다고 바르트는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구 자유주의 신학을 '아래로부터 위로'의 신학이라 한다면 바르트의 신학은 '위로부터 아래로'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 복음, 영원, 구원 등은 바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오는 것이며 인간은 순종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신학을 흔히들 '말씀의 신학,' '변증법적 신학' 혹은 '위기의 신학'이라고 한다. 이러한 것은 다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적 철학의 특징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전적 초월성 사이의 무한한 차이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생각을 합리적으로 종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역설적 진리인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유한한 인간에게 오로지 신앙의 도약(leap)을 통해서만 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시간과 영원 사이 혹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qualitatively infinite difference)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바르트는 여러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던 중, 1930년에 본(Bonn) 대학에서 봉직하면서 작은 신학적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에 대한 거부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지난 10년 동안 천명하였던 '아니오'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예'를 더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흔히들 생각하듯 그의 신학이 그리스도 중심적인 보수신학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의 신학의 변증법적(dialectical) 특징이 더 강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르트는 처음에 조직신학에 관해 저술하기를 꺼려했다. 그 이유는 어떤 인간적 사상 체계에도 의존하지 않는, 절대적으로 신학적이고 그러므로 전적으로 성경적인 신학을 창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욱이 인간이

가지는 신앙의 주관성보다는 하나님의 계시의 객관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기독교 신학은 객관적이고 냉정한 과학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객관적 자기 계시를 은혜와 믿음에 의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는 범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는 이러한 신념들을 가지고 미완성으로 끝났지만『교회 교의학』(Church Dogmatics)이라는 조직 신학서를 쓰기 시작했고 196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권까지 썼다.

(1) 바르트의 계시관

먼저 바르트의 계시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대작 「교회 교의학」(Church Dogmatics)은 크게 4권으로 (세밀하게 나누면 13권이 된다)되어 있는데 (원래 제 5권까지 쓰기로 했으나 그의 생전에 완성하지 못했다) 그 중 첫 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교리'이다. 그의 신학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말씀의 신학' 혹은 '계시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말씀' 혹은 '계시'의 초월적 개념으로 '신학'의 가능성을 다시 확립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 전 구자유주의(old liberalism)는 '신학'이 아니라 '문화적 인간학'에 불과하다고 믿었던 바르트에게는 계시야말로 하나님의 초월성을 유지하며 '신학'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사실 그의 계시관은 단지 성경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계시관이 바로 신론이요 기독론이요 성령론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트 신학의 핵심은 바로 그의 계시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바르트가 말하는 계시란 무엇인가? 우리가 믿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고 그의 뜻을 알려주시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물론 '계시'라는 말의 의미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뜻하기 때문에 이런 형식적인 의미로는 바르트가 말하는 계시라는 단어와 보통 우리가 말하는 계시라는 단어는 같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의 계시관은 우리의 계시관과 다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바르트의 계시는 '초월적 하나님'의 '전적으로 나타나심'(wholly reveal ed)을 의미한다. 바르트에게는 인간과 질적으로 영원한 차이를 가지신 하나님이 어떤 역사적인(달력의 의미로) 사건이나 인간의 언어 속에 나타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다시금 신학을 인간학으로 만드는 일로 바르트는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신성이 그의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든지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로(성경으로) 자신을 계시했다고 믿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초월성을 잃지 않고 '사건' (event)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건의 의미는 역사적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계시의 행위'를 의미한다. 마치 키에르케고르가 주장했듯이 영원한 진리가 인간에 다가온 어떤 역설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 초월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순간적 나타나심(사건 혹은 행위)으로 하나님이 계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것이 바로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 방법인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계시는 언어와 동일시 할 수 없고 믿음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제한적이고 오류가 있는 인간의 언어가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면 왜 바르트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사건으로서의 계시는 어떤 역사적 형태 혹은 방편을 동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계시의 세 가지 방편으로 '그리스도,' '성경' 그리고 '설교'를 말한다. 계시가 단지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은 마치 바르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고 설교를 하나님 말씀 선포로 정의하며 그 위상을 높였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에게는 계시란 역사적이지만 역사적인 것이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계시가 역사적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동의할 수 있지만 역사적인 것이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계시가 역사적 성경에 나타났다고 해서 우리와 같은 성경관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바르트에게는 역사적 기록인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더 핵심적인 것이다. 또한 바르트가 계시의 세 가지 방편 중 하나로 '설교'를 말할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설교를 '하나님 말씀 선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초월적 계시가 주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성경과 설교를 액면 그대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설교의 권위를 세운 것이 아니라 성경을 설교 정도로 추락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트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주장할 때 그'이다'는 우리가 믿는 식의 '이다'가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오히려 그 말은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순간적으로 된다(becomes)'로 이해해야 한다. 바르트는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죽은 말씀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초월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성경과 계시를 '동일화' 함에 있어서 그것은 직접적 동일이 아니라 간접적 동일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것도 직접적 동일이 아니라 간접적 동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바르트도 성경의 영감

(inspiration)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영감은 전통적 기독교가 믿는 그러한 영감이 아니라 초월적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함에 있어서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셨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다'라는 바르트의 주장을 듣고 그의 성경관이 복음주의적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성경관은 다른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성경관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것이다.

 

(2) 바르트의 계시관 및 신관

먼저 지난호에 언급한 바르트의 계시관에 대해 다시 요약 설명하자면 그의 '계시'는 한마디로 그의 '초월적 하나님'이 어떤 인간적인 요소(언어, 시간적 역사를 포함하여)를 통하지 않고 역사속에 바로 나타나는 방편인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계시를 "위에서부터 바로 내려지는"(Senkrecht von Oben)것으로 설명한다. 또한 그래서 계시를 하나님의 '전적' 나타남'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어떤 인간의 언어나 사상같은 매개체가 중간에 개입되기 때문인 것이다. 자신안에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따로 인간에게 계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전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계시 사건과 동일시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믿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의 권위와 그의 계시의 권위가 동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계시와 하나님의 존재가 동일시 되는 것이다. 즉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의 방편인 것이다.

또 지적할 것은 바르트의 계시는 실존적 의미에서 받는 자의 믿음의 반응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너무 주관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바르트는 슐라이어막허나 리츨의 신학을 주관적이라 혹은 인간적이라 비판했지만 이러한 비판이 바르트 자신에게도 해당된다고 하겠다. 어쩌면 그에 눈에는 정통주의자들이 성경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것을 해석하고 논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을 어떤 인간 연구의 객체적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능력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이 인간 저자들을 통하여 그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게 하신 능력은 왜 인정할 수 없겠는가? 하나님 자신외에 다른 무엇으로 될 수도 있는 자유가 그의 속성이라면, 왜 시간속에서 인간 언어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실 자유는 없는 것일까? 아무튼 우리는 이러한 바르트의 계시관을 알고나면 그의 계시관은 정통 신학이 아님을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혹 성경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에게는 이러한 바르트의 계시관이 그럴 듯 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의 계시관은 그 계시 개념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까지 연결되는 개념이다. 우리가 믿는 인격적이시며 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이냐 아니면 바르트의 전적 타자(wholly other)로서 추상적 개념적 하나님이냐의 선택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면 바르트의 신관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바르트는 하나님을 '전적 타자,' '감추어진 자,' '자유' 등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그의 '자유'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자유는 하나님의 근본적 성품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유하시다는 것은 하나님은 자신이 아닌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자유도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적으로 감추어진 하나님이 전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하나님을 "자유를 사랑하는 자"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의 자유는 그의 감추어짐을 말하지만 그의 사랑은 그의 계시, 구원, 은혜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감추임과 계시가 동시에 가능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자유란 그 자신외의 무엇이 될 자유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내재하실 자유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자유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즉 초월적 하나님이 동시에 내재적이라고 해서 불변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의 속성인 자유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그의 영원성은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향한 자유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겠다).

지난호에 살펴보았듯이 바르트가 하나님을 그의 계시와 동일시 할 때는 어떤 간접적 동일을 의미한다. 즉 계시가 역사적 형태를 취할 수 있어도, 역사적인 어떠한 것이 계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어떤 면에서는 계시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계시와 동일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계시의 간접성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은 언제나 그 계시속에서도 감추어지신 분이라는 것이다. 즉 계시안에서도 자유하시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이러한 간접성 개념은 변증법적 방법으로 하나님이 동시에 감추어지고 동시에 나타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식으로 하나님을 계시와 동일시 하는 것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도대체 인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계시란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는 매개체(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면 우리가 계시를 받을 순간(계시 사건) 그 계시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계시를 받는 순간에 우리가 하나님이 된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그 순간에 하나님이 인간이 된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계시란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보편적 실재(realty)로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범신론적으로) 그 무엇인가? 실로 '간접적 동일'이라는 개념은 단지 변증법적 추론일 뿐 사실이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다. 오히려 바르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감추임 혹은 초월성만을 강조해서 하나님을 헬라 철학에서 말하는 "알 수 없는 신"으로 정의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굳이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말하고 싶으면 우리가 믿는 것처럼 인격적 하나님이 그의 초월적 능력으로 인간(역사적 매개체)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셨고 시간적 역사속에 나타나셨다

고 하면 될 것이다.

이것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기야 하나님이 자신의 초월성을 끝까지 잃지 않고 역사속에 나타나는 방법이 변증법적 방법말고 없는 것으로 "믿는" 바르트에게는 우리가 가진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3) 바르트의 역사관

바르트의 계시 개념과 더불어 그의 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꼭 알아야 할 것이 바로 그의 역사 개념이다. 바르트가 '역사'라고 할 때는 단지 우리가 갖고 있는 역사 개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그는 두가지 역사 개념을 말하기 때문이다. 즉 일반 역사(Historie)와 초-역사(Geschichte)이다. 이 두 개 다른 독일어는 똑같이 '역사'라고 번역이 된다. 그러므로 영어로 'history,' 한글로 '역사'라고 할 때 바르트에게는 어떤 '역사'를 의미하는 지를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일반 역사(Historie)는 보통 달력에서 발생되는 사건, 즉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역사를 말한다. 보통 역사가나 과학자들이 탐구하고 분석하는 사건들이다. 그러나 이 일반 역사는 어떤 의미가 결여된 역사라는 것이다. 반면에 초역사(Geschichte)는 특별한 의미의 역사이다. 믿음을 위한 의미가 들어있는 사건을 말한다. 과학적 혹은 역사적 관점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해되는 것이고, 멀리서 조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초역사의 중요성은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를 망라하여 적용된다고 한다. 초역사란 하나님이 나타나시며 믿음을 불러 일으키는 순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인격 혹은 그리스도와 동일시 되는 구속의 역사가 바로 초역사인 것이다. 이러한 초역사의 사건은 과학적 관망이 아니라 실존적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르트가 역사를 두 종류로 구분하는 데는 신학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계시가 역사속에 들어 올 때, 단지 우리가 가진 일반 역사적 범주에서만 이해할 경우, 그 계시는 초월성을 상실함으로 인간의 소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가 일반 역사속에 (전적으로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두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바르트에게는 진정한 역사적 의미 혹은 신학적 의미는 초역사에 나타난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두 역사의 구분을 변증법적 구분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칸트적 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우리가 이미 살펴 본대로 두 종류의 세계를 추론했다. 본체론적(noumenal) 세계와 현상적(phenomenal)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바르트의 초역사는 바로 칸트의 본체론적 세계에 속한 것이요, 일반 역사는 칸트의 현상적 세계에 속한 것이다. 초역사속에 감추어진 진정한 의미의 계시가 일반 역사 속에 '마치 있는 것처럼'(as if) 나타난다는 것이다. 칸트 철학을 빌려 표현하자면 어떤 '실천적 당위성'을 따라 일반 역사속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진짜 의미는 초역사속에 발견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알 수 없는 초월성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두 종류의 역사가 어떻게 바르트의 신학에 적용되는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바르트는 구속 역사를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본다. (물론 바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개념은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중심적' 개념과 다르다. 이것은 나중에 논하도록 하겠다.) 바르트 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로 인한 구속 역사는 일반 역사가 아니라 초역사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창조' 조차 일반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반 역사라 한다면 초역사인 그리스도안에서의 구속과 상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 타락 역시 일반 역사의 사건이 아니라고 한다. 같은 이유다. 일반 역사라하면 그 타락의 사건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르트는 창조, 타락, 구속 모든 것을 초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이 말은 곧 이 사건들은 우리가 아는 식의 역사속에 발생된 사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동정녀 탄생은 일반 역사적 사건이라고 바르트는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들으면 바르트 역시 동정녀 탄생을 우리 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믿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바르트는 동시에 동정녀 탄생은 '직접적 계시'가 아니라 주장한다. 그 이유는 동정녀 탄생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동일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정녀 탄생은 단지 초역사적 실재(reality)의 지표(sign)에 불과하다고 한다. 바르트가 동정녀 탄생을 일반 역사로 보는 것은 그것이 실재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동정녀 탄생을 구속적 의미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부활 역시 동정녀 탄생과 같이 일반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빈 부덤은 전설적인 것이며 부활의 지표(sign)는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부활의 본 실재(reality)는 초역사적이라고 한다. 육체적, 일반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부활은 오직 지표 일 뿐이며, 참 사건(초역사적 사건)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고 한다. 참 사건은 오직 믿음으로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직접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활은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자, 역사가들이 살피며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초역사로서의 부활은 참으로 일어났고 제자들이 참으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한다. 이것은 참 사건이기 때문에 달력적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임재요 오늘날 우리에게도 보여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바르트는 두 종류의 역사를 말한다. '일반 역사'(Historie)와 '초 역사'(Geschichte)이다. 후자가 바로 진정한 의미의 역사라고 한다. 즉 창조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등 성경의 사건들이 우리 구원과 관련되는 진정한 믿음의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는 식의 역사가 아니라 초역사에서 발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성이 결여된 사건은 우리에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바르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직접적 일반 역사가 아니라 간접적 개념인 '초 역사'를 도입한 것이다. 직접적 개념의 일반 역사로 보자니 하나님의 초월성이 상실될 것이고, 어떤 추상적 개념으로만 한정하자니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부여될 어떤 힘이(예를 들어 신앙, 결단, 종교성 등을 불러 일으키는 힘이) 결여될 것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초역사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관과 관련하여 바르트는 두 종류의 이야기를 구분한다. 신화(myth)와 사화(Saga)이다. 신화란 실재적으로 발생되지 않았던 것이지만 우리에게 뭔가를 남기는 이야기를 말하고, 반면에 사화란 어떤 역사적-과학적 진단을 초월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이 사화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발생되었을 수'도 있는 것으로 깊은 차원에서 진리에 다다르게 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주장하기를 성경에는 신화는 없지만 사화는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 1-2장과 부활 이야기는 사화라고 한다. 이 Saga도 마찬가지로 간접성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신화처럼 상상적인 것도 아니요, 실재로 발생된 역사적 사건도 아니다. 단지 '발생되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바르트가 '발생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건이 일반 역사에서 발생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발생 되었다' 혹은 '발생 되지 않았다'는 것은 Saga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발생되었냐,' '발생되지 않았냐'가 아니라 그것이 믿음의 대상이 되는 초역사적 의미를 지녔느냐는 것이다.

 

바르트의 종말론 역시 그의 역사관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종말은 달력의 시간에 나타날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미 지적했듯이 그렇게 되면 그 종말은 진정한 의미가 결여되고 우리 구원과 상관이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예수의 재림은 이미 부활과 오순절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에게 재림이란 어떤 '심판'을 의미한다. "마지막 때가 가까왔다" 라는 말은 모든 삶이 신적 심판아래 있기 때문에 항상 '위기'(crisis) 아래 있다는 말이라고 한다. 바르트의 신학을 '위기의 신학'이라고 말할 때는 바로 '신적 심판'이 그의 신학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어떤 심판인가? 바로 '전적 타자'인 하나님이 인간 세계에 들어오는 (간접적으로 혹은 초역사적으로) 그 자체가 심판인 것이다. 물론 이 심판이라는 개념은 성경에서 말하는 '선악간의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역설'(paradox)과 같은 것이다. 키에케고르는 인간과 영원한 질적 차이를 지니신 하나님이 인간 세계에 들어오는 그 자체를 역설로 보았다고 하면 바르트는 그것을 심판 혹은 위기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에게 종말이란 현 삶의 궁극적 차원을 보여주는 어떤 은유(metaphor)와 같은 것이다. 한편 우리가 종말적인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어떻게 받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간접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바르트의 역사관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먼저 우리는 왜 의미있는 사건은 우리가 아는 식의 역사에, 즉 달력의 시간에 발생되지 않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의미있는 사건은 어떤 면에서 초월성을 가지고 있다. 시간을 초월해서 현재나 미래에 의미를 부여한다

(5) 바르트의 구원론

바르트 신학에 관한 글은 이 번 호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바르트는 그의 『교회 교의학』제5권에서 구속론에 관해 따로 집필하려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대로 바르트 신학의 초점은 기독론에 있다. 그의 계시관, 신관, 역사관, 모두가 바로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다룬 내용 역시 구원론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바르트에게는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진리를 아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라는 말이 아니다. 그가 의미하는 바는 전적으로 자유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즉 인간과의 사랑의 교제 사건)에서 비로서 자신을 나타나도록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바르트는 말로는 성경에 나온대로 '화목'이니 '중보'니 '구속'이니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의미하는 바는 성경과 다르다. 어떤 '사랑의 행위 혹은 사건'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의 신학에서(특히 아퀴나스 신학의 전통에서) 주장해 왔던 '존재 유비'(analogy of being)를 반박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서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을 추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에 바르트는 '믿음의 유비'(analogy of faith)를 주장한다. 즉 그리스도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나타나심인데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알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하나님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알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가 말하는 화목이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 '선택하시는 하나님'(electing God)과 '선택받은 인간 (elect ed man)이 동시에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죄 없으신 참 하나님이 참 인간이 되셔서 우리 대신 죽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과의 사랑의 교제를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에서 하나님 자신이 나타나셨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되시기로 스스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오직 그리스도안에서만 선택(election)과 유기(reprobate)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선택받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유기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역시 유기된 인간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예'가 있고 '아니오'가 없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저주는 마치 사랑하는 아들을 더 이상 크게 혼낼 수 없을 정도로 혼냄으로 인해 아버지의 사랑을 최대한으로 보여주는 역설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안에서의 유기는 바로 선택을 확정짓는 행위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진 '사랑의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나타나심이요 인간과의 교제라 한다면, 구원이라는 것은 보편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이런 보편적 구원의 방편으로서의 믿음이란 일종의 그리스도안의 '참여 (participation)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참여' 사상은 사실 이미 플라톤 철학에서 나타난 사상이다. 참 인간은 신과의 참여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참여(혹은 교제) 개념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바르트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인간을 만나는 것(참여)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말한 것이다.

한편 바르트는 역사적 인물로 나사렛 예수의 삶을 '초역사'가 아닌 일반 역사로 본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 역사는 오직 간접적인 계시라고 주장한다. 예수가 죄가 없다는 것은 그가 죄없음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요, 그런 기준은 일반 역사속에서 발견될 수 없다고 한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동일시 한다. 즉 일종의 행위 혹은 사건을 존재의 방편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죄없음을 그의 대속과 동일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며 동시에 참 인간이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인격과는 상관없이 십자가 사건 자체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바르트의 구원관은 성경적이기는 커녕 오히려 반기독교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구원을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보지 않고, 어떤 無의 위협에서의 해방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사건' 혹은 '행위'를 유일한 실재(reality)로 보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확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을 보편화시키고 또한 하나님의 실재적 구원의 섭리를 추상화시켰다고 하겠다. 또한 이렇게 구원론에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유지하려고 한 바르트는 오히려 하나님을 범신론화 내지는 단일론화(예를 들어 구원에 있어서 인간과 하나님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드는 것)시켰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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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희 목사

1. 바르트는 누구인가?




칼 바르트(1886-1968)는 스위스 바젤 태생이고, 바젤에서 생을 마감했다. 목사요 신학교 교수였던 아버지는 보수신앙을 바르트에게 심어주려고 노력했지만, 바르트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았고, 1908년 22살 때에, 말북 대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자 헤르만의 제자가 되었다. 헤르만은 자유주의 신학자 니출의 제자였고, 당대에 대표적인 교의학 교수였다. 바르트는 1909년 23세에 쥬네부 개혁파 교회 목사가 되었고, 쉬라이엘마허의 책을 읽었다. 스위스 자펜빌에서 목회하면서(25-35세, 1911-21), 이웃에서 목회하던 친구 투르나이젠과 300여통의 편지로 교제하였다. 여기서 바르트는 교인인 노동자들 편에 서서 노동자조합을 조직하여 임금인상 운동을 폈으며, 스트라이크에 가담하였고, 29세(1915)에는 사회민주노동당원이 되었다. 자펜빌에서, 33세(1919)에는 그 유명한 로마서 강해서를 발표하여, 선풍적인 인기로 유럽을 진동시켰다.


자펜빌 목회를 마감하고, 괴팅겐 대학 명예교수가 되고(1921), 39세에 뮌스터 대학교 교수가 되고(1925), 5년간 교리사를 가르치면서 교의학 신학자의 기반을 닦았다. 44세 나던 1930년에 본 대학으로 옮긴 후에, 여기서 교회교의학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47세나던 1933년에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신구교가 정부를 지지하게 되자, 바르트가 투르나이젠과 함께 1933년에 발간한 잡지, “오늘의 신학의 실존”으로 결집된 고백교회가 형성되어, 바르트가 작성한 바르멘 선언을 공포하고 나치당과 맞섰다. 49세나던 1935년에 바르트는 추방령을 받고, 스위스 바젤에 정착, 세계를 향하여 메시지를 보내면서, 여기서 82세에 생을 마감했다.




1) 바르트는 실존주의 신학자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을 복음주의 신학으로 호칭했지만, 사람들은 바르트의 신학을 곡해하여, 신 정통주의 신학으로 호칭하였고, 이것이 끝내 수정되지 않았지만, 바르트신학의 진정한 명칭은 실존주의 신학이다. 실존은 참 인간을 뜻하니, 참 인간을 추구하는 것이 실존주의 신학이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성령으로 수태하게 하시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여,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셨고, 하나님이 선지와 사도를 시켜 성서를 기록하고, 편집하게 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주셨고, 이 성경대로 신학을 구성한 것이 정통신학이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자, 성서를 불신하고, 기독교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신학운동이 독일에서 일어났는데, 이것이 계몽주의를 수용한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 자유주의 신학은 성서를 전설과 신화로 보아 불신하고, 기독교를 배반하였으며, 이 배교사상이 19세기 유럽에 창궐하였고, 19세기 말에는 영국과 미국에 퍼져나갔다. 일본과 한국에도 1930년대를 전후하여 침식하기 시작하였다.


이 자유주의 신학이 인간을 선하게 보았고, 반드시 지상낙원이 올 것이라고 믿고 외쳤는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여, 전 유럽은 경악하였고,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낙관론과 지상낙원의 꿈이 산산조각이 났다. 전쟁은 불과 4년으로 끝났지만, 사망자가 850만 명에 달하였고, 부상자가 2,000만 명에 달하였다.1 수천 년 구축해온 문화와 건물이 파괴되거나 불에 타 없어졌다. 지각 있는 사람들은 야수로 변한 현대인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1914-1918), 젊은 청년 바르트가 33세(1919)에 로마서주석을 발표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야 살 길이 있다고 외치자, 그 외침이 전 유럽을 휩쓸었다. 한 젊은 청년의 글이 이토록 엄청난 반응을 일으킬 줄은 글을 쓴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다른 30대 젊은 청년들도(Bultmann, Brunner, Tillich,2 Niebuhr 형제) Barth를 따라 서서히 외치며 궐기하였다.


전 세계와 특히 절망에 빠져 있던 유럽인들에게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살 길이 있다”는 이 젊은 청년들의 외침이 너무나도 큰 희망으로 들렸다. John MacKay가 프린스턴 신학교 교장으로 재직당시 1949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 11월 3일 서울 정동교회 신학생 모임에서, “현대신학의 동향”이란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바르트의 로마서주석 출판을 다음과 같이 극찬하였다.




이 글에서 말한 상대주의와 현대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을 가리킨다. 바르트가 쓴 로마서 주석이 유럽인들에게는 다시없는 복음으로 비쳐졌으며, 자유주의 신학을 폭파한 폭탄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공격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같은 강도로 정통신학도 공격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바르트가 무엇을 말하는지,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면, 바르트가 정통주의 신학으로 돌아왔는가? 아니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이 불신했던 성경무오와, 하나님의 물질창조와, 그리스도 신성과, 내세와 영생을 끝까지 불신하였으며, 별세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인류를 전쟁과 파멸에서 구하고자 혼신을 다했으며, 인간에게서 실존(참 인간)을 회복하려고, 성서를 교재로 하여 노력한 실존주의 신학자였다.




2)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공격한 이유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공격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공격한 것은, 자유주의 신학의 교리(진화론과 유물론)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일원론적(一元論的)인 우주관, 인간관, 구원관을 공격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선하게 보아온 인간낙관론을 공격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간의 야수성이 들어났으므로, 바르트의 스승들(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했던 인간의 성선설낙관론을 공격한 것이다. 바르트가 젊은 청년에 불과했으나, 갑자기 위대한 신학자로 각광을 받은 것은, 인간의 낙관론을 공격하고, 타락한 인성을 회복하여 윤리와 도덕을 회복하자고 외친 첫 번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1918년에 끝나고, 1919년에 로마서가 출판되었으니, 이 책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중병을 앓은 현대문명에 내려진 첫 번째 처방전이었기 때문에, 온 세계는 바르트가 쓴 로마서 주석을 현대문명의 치유책으로 대환영하였고, 바르트는 일시에 유럽과 세계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면, 바르트가 인간의 성악설(性惡說)을 받아드렸는가? 바르트가 신의 물질창조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불신하였음으로, 더 이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게 되었음으로, 인간에게서 구원의 실마리를 찾아내야 함으로, 인간의 완전타락(성악설)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Barth가 자유주의 신학이 외치던 인간낙관론을 공격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보여준 인간타락상을 외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완전타락을 주장하면, 핵폭탄 앞에서 자멸을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르트가 구원의 가능성을 인간 안에서 찾아내기 위하여, 어정쩡하게 주장하기를, “인간은 타락했지만,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인간 안에 남아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드리고, 그리스도의 정신과 행적을 본받아, 이웃과 화해하고 사랑하면, 반듯이 지상에 평화로운 천국이 올 것이라고 하였다.


바르트가 인간을 전쟁과 파멸에서 구해내고, 지상낙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인간론(人間論)을 새로 썼을 뿐만 아니라, 신론(神論)도 새로 썼는데, 하나님의 성품에는 공의와 형벌은 없고, 오직 사랑만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4 만일 정의와 형벌을 하나님 개념에 넣는다면, 인류는 계속하여 정의와 공의를 세우고자, 악한 상대를 형벌하기 위해서 핵전쟁으로 돌입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개념에 공의와 형벌을 넣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하나님도 재구성하는 것이 바르트신학이다.




3) 바르트의 계시론
바르트가 1919년에 로마서 주석을 쓸 때에는 성서의 기적들을 옛설화(urgeschichte)로 표현하였고, 1932년에 교회교의학을 쓸 때에는 설화(geschichte)로 표현하였으나, 설화 5 는 본래 전설과 신화를 엮어서 쓴 고대소설을 뜻하기 때문에, 옛설화나 설화는 뜻이 동일하다. 바르트가 성서의 기적들을, 신화와 전설을 섞어서 쓴 고대소설로 보고, 고대소설(설화)에서 교훈을 받아, 로마서 주석을 썼고, 9,000쪽에 달하는 교회교의학(Church Dogmatics)을 썼기 때문에, 설화에서 역사성은 문제 삼을 필요가 없었고, 다만 설화에서 교훈을 받는 것으로 그쳤다. 즉 바르트가 성서를 설화로 취급한 이유는, 성서에서 교훈은 받되, 기적은 배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계몽사상을 수용한 신학자들은 기적을 믿지 않기 때문에, 기적을 역사(historie)로 취급하지 않고, 설화(geschichte)로 취급해왔으나, 교회교의학 영역에서 설화역사로 번역한 것은 곡해였다.
① Hegel, 설화의 정신, Vernunft in der Geschichte, 1826-1827
② Overbeck. “고대교회의 설화연구”(Studien zur Geschichte der alten Kirche, 1875).
③ Schweitzer. 예수생애설화 연구, Die Geschichte der Leben-Jesu Forschung, 1906.
④ Barth, “로마서주석”(1919)에서 옛설화(Urgeschichte를 인용함 6
⑤ Bultmann, 공관복음의 전승설화, 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1921
⑥ Pannenberk, 설화로서의 계시, Offenbarung als Geschichte, 1961
이 독일인 신학자들이 구상했던 새 프로그램을 살펴본다.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을 낙관하고 인류의 장래를 낙관했지만, 20세기 초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야수로 변한 인간에게서 낙관론은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에, 독일 신학자들이 인간의 비참한 현실의 타결 책으로, 성서를 다시 따르자고 외쳤다. 그러나 진화론과 유물론을 목숨처럼 지키는 계몽사상과 자유주의 신학의 후예들로서, 기적으로 가득 찬 성서를 그대로는 사용할 수가 없으므로, 제1차 세계대전 전에, 신학자들(Hegel, Overbeck, Schweitzer)이 기적에 적용했던 설화(geschichte)를,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설화(geschichte)를 기적에 적용하는 신학자들(Barth, Bultmann, Pannenberk . .)이 속출하였다.




4) 바르트는 정통신학을 저주하였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서 신학교육을 받아, 계몽사상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에, 성경을 신화집으로 보았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물질창조와, 예수님의 신성과, 영혼의 불멸, 내세의 영생 등은 불신하여 배격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교리를 믿는 정통주의 신학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7 다음은 정통신학을 저주한 바르트의 주장이다.
짓지 못하는 개(46쪽),
저주를 받을 자(48쪽),
믿지 않는 불신자(49쪽),
묘지에 처넣기 위해 밀쳐진 시체. (49쪽)



2. 바르트의 신론


바르트는 하나님의 물질창조를 문자대로 믿는 정통신학을 저주하였고, 다음에 다루어질 창조 론에서는 신의 물질창조를 불신하고 거부하였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성장하였고, 계몽사상을 수용한 사상가였다. 이러한 바르트가 긍정(肯定)과 부정(否定)을 수 없이 반복하여(대화, 정반합, 변증법), 하나님의 본질을 해설하였다. 특히 否定을 수 없이 반복한 이 작업방법은, 마치 조각가가 돌에 사람의 모습을 새기는 작업을 닮았다. 조각가가 처음에는 울퉁불퉁한 돌덩어리 원석에서 수없이 정질을 반복하여 쪼아서 버리고나면, 차차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습을 돌에 새기려면, 큰 돌 덩어리에서 먼저 대부분의 돌을 쪼아 버려야 하듯이, 바르트가 신을 조각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정통신학이란 원석(原石)에서 많은 부분을 否定이라는 정으로 쪼아서 버리고, 남은 부분이 바르트가 肯定하는 신의 모습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글은, 바르트가 신학생으로 시작하여, 신학교 교수로 은퇴하기까지 57년간의 총결산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8 바르트가 다음 인용구에서 조각해낸 하나님은, 자기가 믿는 「최종적인 견해」로서의 하나님의 모습이다. 다음 인용문에서, 바르트가 반복한 否定을 모아 정리하면, 이것이 정통신학의 하나님의 모습이고, 肯定을 모아 정리하면, 이것이 바르트가 믿는 복음신학의 하나님의 모습이다.




1) 다음은 신의 조각에서, 바르트가 부정의 정으로 쪼아서 버린 부분들이다
바르트가 주장하기를, 복음주의 신학의 하나님의 본질은,
ⓐ 자신을 폐쇄하고 있는 고독한 하나님이 아니며,
ⓑ 절대적인 하나님이 아니고,
ⓒ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 인간 위에 군림하는 하나님도 아니고,
ⓔ 인간보다 고상하기만 하고, 먼 거리에 있으며, 인간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어서 자비를 베풀지 못하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였다.
바르트가 否定의 정으로 쪼아낸 정통주의 신학의 하나님은, 아주 고약한 하나님이라 하여, 서슴지 않고 다음과 같이 비방하였다.
ⓐ 인간에게 좋은 소식 대신에 나뿐 소식을 가져오며,
ⓑ 또한 인간을 격멸하며, 심판하며, 죽음을 가져오며,
ⓒ 고상하기만 하여 비인간적이고, 초인간적이기 때문에,
ⓓ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꺼리며,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 이러한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알려고도 하지 않고,
ⓕ 이러한 비인간적인 신에게는 복음신학이 헌신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바르트가 否定하고, 비방한 것은 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공의와, 심판 부분에 해당하며, 성경이 교훈하는 하나님 본질이며, 교회가 2,000년간 고백해온 사도신경이다. 그런데 바르트가 왜 정통신학의 하나님을 부정하고, 비방하는가? 바로 앞에서 필자가 지적했듯이, 바르트는 정통신학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불신하고 배격하기 때문에, 저주도 불사하는 처지이니, 바르트가 정통신학을 부정하고 비방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2) 다음은 신의 조각에서, 바르트가 긍정하여 남겨 둔 신의 모습이다
바르트가 조각에서 긍정하여 남겨둔 부분이 바르트가 구상하는 신의 본질이다. 다음은 바르트가 새롭게 조각해낸 신의 본질이다. 즉 복음주의 신학의 하나님은,
ⓐ 인자한 아버지 같고, 형님 같고, 친구 같아서,
ⓑ 인간 안에 있고, 인간과 더불어 있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위해주시는 분이라고, 하였다.
ⓒ 오직 인자한 아버지가 되고, 친구가 되고, 형님이 되어,
ⓓ 옆에서 돕고, 치유하고, 바로 잡고, 평화와 기쁨을 주시며,
ⓔ 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롭기만 하기 때문에,
ⓕ 율법주의의 하나님처럼 거역 자에게 no(審判)를 발하는 일은 없고,
ⓖ 또한 니체가 말한 것처럼, “너는 반드시 정복당해야할 자이다.”라는 절망적인 선고도 하지 아니하며,
ⓗ 도리어 “너는 나에 의하여 정복당하도록 확정된 존재일 뿐이다.”라고 하여 구원의 희망을 주실 뿐이라고 하였다.
이상으로서 바르트가 조각 작업을 통해서, 새로 각색한 「신의 본질」이 자세히 들어났다. 바르트가 否定의 정으로 하나님의 절대 권력과 공의와 심판을 쪼아서 버렸고, 肯定의 정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애로움을 조각하여, 「이것이 복음주의 신학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바르트가 부정한 부분과 긍정한 부분, 양면을 다 겸전하신 인격이시다. 못난 인간의 성품도 양면을 지녔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본질을 반쪽만으로 조각하였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이것은 마치 사람의 몸을 정면에서 수직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둘로 쪼개어 놓고, 반쪽을 가리켜,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야할 현대인의 참 모습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는가!


그리고 사랑과 공의 중에서 공의는 없고 사랑만을 지닌 인간이 있다고 하면, 그 인간은 선악을 분간할 수 있는 인격이 아니고, 시계바늘처럼 한쪽으로만 가는 기계일 뿐이다. 기계는 이것과 저것 중에서 선택하고 결단하는 일이 없다. 바르트는 하나님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조각하되, 기계로 조각하였다. 바르트가 사랑만 할 줄 아는 반쪽 신을 조각해 놓고, 이 신을 섬기자고 했지만, 인간보다 훨씬 못한 반쪽만의 신을 누가 따르겠는가? 그 누구도 정신이 멀쩡한 사람치고는, 이러한 반쪽(half body) 신을 신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바르트가 이런 무모한 주장을 하였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짓인가? 바르트뿐인가? 현대주의 신학자들 대부분이 바르트가 걸어간 길을 걷고 있다.






3) 바르트가 반쪽 신을 복음주의 신학의 하나님으로 조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20세기 전반세기에 발생했던 제1,2차 세계전쟁의 참화가 그렇게 만들었다. 두 전쟁에서 죽은 사람만 2천 5백 24만 명이었다.11 바르트가 제1,2차 세계전쟁을 겪으면서 확실하게 본 것은, 인류와 문명이 일시에 망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었다. 특히 미국이 1945년에 일본에 원폭을 2회 투하함으로서 발생한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바르트가 새로운 신을 조각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절박한 위기에서, 선과 악을 가리는 신을 모신다면, 전쟁은 피해갈 수 없고, 인류와 문명은 멸망할 것이기에, 정사(right and wrong)를 가리는 행위를 접기 위해서는, 사랑만의 신을 모셔서, 정의와 공의와 심판은 접고, 사랑만으로 엮어진 국제법을 제정하자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서, 또 다시 히틀러, 동조, 스탈린 같은 인물이 나타날지언정, 원폭으로 자멸하는 것 보다는 낳으니, 손쓰지 말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탈이고, 손을 써도 탈이니, 이 바르트의 구상은 해결책이 아니다.


바르트의 생각에 정의로운 하나님, 죄악을 심판하는 하나님은 정사를 가리라 할 것이므로, 이러한 신은 전쟁을 유발하여 인류종말을 재촉하는 신이 되어질 것이라 생각하여, 원석에서 쪼아 폐기하였고,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켜줄 신은 오직 사랑하고 용서하는 신이라 하여, 사랑만 하는 신을「현대인의 신」으로 조각하였지만, 바르트가 조각한 신은 실재(reality)의 신이 아니고, 이름뿐인 명목상의 신이라, 악한 자에게 형벌을 내리지 못하고, 선한 자에게 상을 주지 못하니, 스탈린이나 히틀러나 동조와 같은 자들의 무한욕망과 포악을 제어하지 못한다. 결국 허수아비 신 앞에 서 있는 현대인은 여전히 야생마일 수밖에 없다.


바르트가 「인격의 신」이 아닌 반신(half body)의 신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두었을까? 바르트가 반신의 신에게 부여한 가치는,「최고치」(the highest value) 혹은 「표준치」(the standard value) 정도였다. 바르트가 제창한 이 최고치와 표준치를 좇아서, 국제사회는 오직 사랑과 용서와 화해만을 외치면서 1960년대부터 전쟁을 반대하는 데모가 일어났고, 서서히 사형폐지법을 실시하기 시작하였고, 형무소도 교도소로 명칭을 고쳤다.


그러나 반신구상(the conception of half body)을 따라 사형법을 폐지하고 보니, 한 국가나 국제사회가 더욱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 반신구상(the conception of half body)은 국제법과 국내법에서 해결책이 아닌 것이 들어났다. 결국 테러에도 양론이 있고, 9.11 테러에도 미국의 국론이 갈라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랑을 세우자니, 핵탄으로 대항해오고, 정의를 세우자니 핵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으므로, 양쪽 다 자멸로 가는 길이라, 이것이 현대인이 안고 있는 “dilemma”다. 그런데 마침 성서는 이러한 인류의 종말을 2천 년 전에 예고하였는데, 이 종말예고가 핵무기미사일의 출현으로 우리 앞에 현실이 되어 있다. 더 이상 핵무기를 개발하지 말자고 협약을 맺었지만, 북한과 이란이 핵무기 제조에 열을 올리고 있어, 시끄럽다.




4) 인용문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Yes 안에는 부득이 No가 포함된다고 하였다




바르트가 인용문에서 「인간에 대한 이 하나님의 yes 속에는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부득이한 하나님의 no 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바르트가 이 말로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yes는 하나님의 교훈을 말하고, no는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복음신학의 하나님에게는 본래 심판(no)이 없지만, 이 하나님의 교훈(yes) 안에는 부득이 심판(no)이 내포된다고 하였으니, 그 해답은 다음과 같다. 심판(no)은 복음신학의 하나님이 직접 내리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의 교훈(yes)을 거부했을 때에, 이 거부한 결과로 심판(no)을 자초(自招)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바르트가 현대인을 위해서 사랑만으로 조각한 반쪽의 신에게, 바르트가 바랄 수 있었던 것은, 신과의 상봉(相逢)과 대화(對話)에서, 인간이 사랑의 교훈을 선택하면, 이 선택이 인간에게 길과 생명(yes)이 되어지지만, 반대로 신과의 상봉과 대화에서, 인간이 율법과 계명을 거부하면, 이 거부의 결과로 심판(no) 즉 멸망이 오기 때문에, 심판(no)은 하나님이 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자초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바르트가 인용문에서 심판(no)은 독자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교훈(yes) 안에 부득이 포함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신학의 프로그램인 “상봉과 대화”에 대해서는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대화자로서의 하나님은 반드시 절대자가 아님을 전제한다. 왜냐하면, 어느 쪽이든 한쪽이 절대자이면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절대자이신 정통신학의 하나님을 보자.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선포하시고, 거부하며, 심판을 내리신다. 결코 대화에 응하시는 일이 없다. 입법자로서 법을 집행하시며, 상벌도 반드시 챙기시며, 인간이 대화하자면, 진노하고 심판하신다. 그러나 바르트만 아니라, 현대신학은 이러한 절대자의 실재(reality)를 믿지도 않지만, 절대자의 심판과 재앙은 더욱 싫어하기 때문에, 바르트나 현대신학이 상봉과 대화에 초대한 신은 심판과 재앙을 내리시는 절대자가 아니다. 단지 동등한 처지에서 대화에만 응해주는 신이다. 대화는 상대에게 강압적이거나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고 법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와 현대신학이 신을 대화자로 초청하는 것은, 없는 신을 초청하는 것이니, 마치 무당이 신을 부르는 살풀이와 같다.12


그러므로 현대신학이 추구하는 상봉과 대화는 허구이다. 모든 일반적인 법률이나 규칙도 반드시 강제성을 띨 때에만, 법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시비를 가리는 사법기관을 두지 않는다면, 법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사랑만 할 줄 알고, 대화만을 원칙으로 하는 바르트와 현대인의 신에게는 현대인을 구제할 방법이 없다. 확실히 바르트와 현대인은 진퇴양난(dilemma)에 빠져 있다.


5) 인류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한 인류에게는 희망만 있다고 하였다




인류의 앞날에 결코 불행은 없으리라는 것이, 바르트신학이 추구하는 희망적 구원관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적극적인 희망을 앞의 인용문장 끝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 바르트의 생각에, 니체가 말했던 것처럼,「인간을 정복당해야할 존재」로 본다는 것은, 곧 「인간을 전적 타락자」로 보아 「마땅히 멸망당해야할 존재」로 보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어지고, 절망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가 니체의 말을 빌려,「인간을 정복당해야 할 전적타락자로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에 의하여 정복당할 것이 확정 된 존재」로 보자고 하였다. 이 바르트의 주장 중에서 후반부가, 바르트가 현대문명의 구제책으로 외친 주장이므로, 확실한 주석이 요청된다. 다음은 후반부에 대한 필자의 주석이다.


ⓑ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정복당할 것으로 확정된 존재이다.」라는 후반부의 외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스스로는 안 되지만, 인간이 하나님에게 정복당하여, 사랑의 교훈을 받아드린다면, 인류는 반드시 전쟁을 막고 화해를 이룰 것이라는 절대희망(확정된 존재)을 표현한 말이다. 이것은 바르트가 새로 구상해낸 화해의 복음이다. 미국연합장로교회(UPCUSA)가 이 바르트의 화해의 복음을 받아드려, “화해의 복음”(1967년 신앙고백)을 공표했었다. 이 사실은 한신대 조직신학 교수인 박봉랑도 인정하여 주장하였다.13


그러나 바르트가 하나님 안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한 절대희망론은 허구이다. 왜냐하면, 대화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인간이 악을 행하여도 형벌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대과학이 만들어내는 풍요와 향락과 욕망을 인간에게서 억제시킬 수 없으므로, 하나님 안에서 가능하다는 바르트의 절대희망론은 허구이다. 스탈린, 히틀러, 동조가 품었던 무한대의 욕망을 막지 못했던 불행(세계대전)이, 바르트와 현대신학이 추구하는 하나님의 허구성을 말해준다.




Note


1. The World Book Encyclopedia, The World War I, (1914-1918)
2. P. Tillich(1886-1965), 1933년에 독일에서 Nazi에 밀려 미국으로 이민, 유니온 신학교(1933-1955)와 하버드대학(1955-
1962)와 시카고 대학(1962-1965)에서 교수하였다.
3. MacKay, John, 현대신학의 동향, pp. 41-44, 대한기독교서회, 1950. MacKay(1889-1983)의 약력, 스카트랜드가 파송한
페루주재 선교사(1916-1925), 후에는 Uruguay, Mexico에서 선교활동하고,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 및 교장(1936-1959).
WCC의 중앙위원 역임(1948-1954), PCUSA 총회장 역임(1953). 에큐메니칼 신학자
4. 본서, "15. 칼 바르트의 신학" 중에서 "(2) 바르트의 신론"을 참조할 것.
5. 설화: 한 민족에게 전승되어 온 신화, 전설: 민담을 통틀어 이르는 말, 동아새국어사전, 2005
6. 로마서 주석에서는 Urgeschichte를 사용했으나, Church Dogmatics에서는 geschichte를 사용했음.
7. 칼 바르트, "바르트 교의학개요", pp. 46-49, 전경연 번역, 대한기독교서회, 1986
8. 칼 바르트, 복음주의 신학 입문, p. 23, 이형기 번역,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 1990 (K. Barth, Evangelical Theology:
An Introduction, Holt, Rinehart and Winston of Canada, 1963)
9. Ibid., 한역, pp. 31-32
10. Ibid., 한역, pp.32-33, 영역, pp. 11-12
11. The World Book, Encyclopedia, World War 1, 2, Dead-25,240,000. Wonded-38,200,000
12. 흉살을 피하려고 하는 굿-무당이 노래하고 춤추며 귀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의식, 동아새국어사전
13. 박봉랑, 1970년대의 신앙고백, 사상계 1966년 4월호,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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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르트의 창조론


1) 바르트는 창시자(originator)로서의 신개념을 부정하였다




인간과 만물이 발생(發生)한 기원(紀元)을 신의 창조에 두느냐, 진화설이나 빅뱅설(Big Bang)에 두느냐에 따라서, 유신론(有神論)과 무신론(無神論)이 갈라진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나님을 말하여도, 하나님을 인간과 만물의 창시자(originator)로 믿지 아니하면, 무신론자가 되어진다. 기독교는 2,000년간 창세기 1, 2 장을, 천지만물의 기원(the origin)을 말해주는 역사문서(歷史文書)로 받아왔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천지와 만물의 창시자(originator)로 고백한다. 그러나 바르트는 창시자로서의 신개념을 거부하였다. 만일 바르트가 신개념을 창시자로 받아드렸다면, 바르트는 기독교를 믿은 신학자로 남았을 것이다. 다음 인용문을 읽어보자.


인용문에서 세 번째의 부분은 벨카워의 글이다. 바르트의 글에 벨카워의 글을 덧붙여도 무방한 것은, 인용한 벨카워의 책은 바르트를 잘 이해한 글로, 바르트 자신이 환영하였기 때문이다.17 실제로 두 사람의 글 내 용이 마치 한 손의 손등, 손바닥과 같아서, 글 뜻이 더욱 선명해졌다. 이 글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주로는 믿으나, 하나님을 만물의 창시자로는 믿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만물의 창시자로 보는 것은, 도리어 어리석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하였다. Berkouwer도 이 바르트의 견해를 동조하여 말하기를, 「창조를 세계의 존재원인으로 보는 것은, 기독교에서는 전혀 무의미한 짓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러한 글을 접하면서 당혹스러워할 것이다. 즉 창조주와 만물창조는 한 사건으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 창조주를 믿으면 만물창조도 믿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바르트는 이 두 용어를 전혀 별개의 뜻으로 하여, 창조주는 받아드렸으나 만물창조는 배격하였으니, 바르트의 글을 읽을 때에는 창조주와 만물창조를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바르트는 창조를 세계의 존재원인으로 보거나, 하나님을 세계의 창시자로 보는 것은 바벨론 신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니, 하나님을 세계의 존재원인으로 보거나, 세계의 창시자로 보지 말라고 하였다. 만일 하나님을 세계의 존재원인으로 보거나, 세계의 창시자로 본다면, 창세기와 하나님을 바벨론 신화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세기를 어떻게 보자는 것인가? 다음에서 주장하기를, 창세기를 설화(고대소설)로 보고, 고대소설을 해석하여 교훈을 받자고 하였다.


2) 바르트는 창세기 1, 2 장은, 설화(고대소설)라고 주장하였다


바르트가 앞에서는 하나님이 만물의 창시자(originator)임을 불신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창조기사를 어떻게 취급했을까?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설화 즉 고대소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글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바르트는 창조기사를, 생성소멸, 즉 만물창조의 기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바르트는 창조기사는, 전설(sage)의 범주에 들고, 사건을 설화(고대소설)로 말한다고 하였다.
바르트는 창조설화는, 창조가 목표가 아니고, 언약이 목표라고 하였다.


ⓐ 바르트는 창조기사를 생성과 소멸의 기록, 즉 만물창조의 기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 인용구는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해설한 것이다. 창조기사 해설에는 세 가지의 유형이 있다.


창조는 실화(nonfiction)이다. 이것은 정통주의 신학이 2천 년간 지켜온 해설방식이다.
창조는 꾸며낸 신화(myth)이다. 이것은 자유주의 신학이 주장했던 해설방식이다.
창조는 꾸며낸 설화(geschichte)이다. 이것은 신정통신학과 신복음주의 신학이 주장해온 해설방식이다.


바르트는 창세기의 창조를 바벨론 신화에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바르트는 생성과 소멸에 대한 기사는 바벨론 신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생성과 소멸에 관한 기록으로 보는 것은,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바벨론 신화와 동일한 신화로 취급하는 것임으로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통신학은 지난 2천 년간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생성과 소멸에 관한 기록으로 믿어왔다. 바르트가 창세기의 창조 기사가 “생성과 소멸”에 관한 것임을 부정한 것은 곧 하나님이 만물의 창시자(originator)임을 부정한 것이다.


기독교는 2천 년간 창세기 1, 2 장을 생성과 소멸에 관한 실화(nonfiction)로 믿어왔고, 때문에 하나님을 세계의 창시자로 믿고, 창조를 세계의 존재원인으로 믿어왔는데, 바르트는 이러한 정통신학의 창조교리를 바벨론 신화와 동급으로 취급하여 배격하였으니, 바르트의 신개념에는 세계의 창시자의 뜻은 없다. 자유주의 신학이 하나님이 만물을 생성하고 소멸하는 자임을 거부하고, 진화론을 주장하였듯이, 바르트도 하나님이 만물을 생성하고 소멸하는 자이심을 거부한 진화론자임이 들어났다. 바르트가 비록 자유주의 신학처럼 하나님을 창시자로는 믿지 아니하였으나, 성서를 신화로 보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성서를 바벨론 신화처럼 취급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창조기사를 어떻게 취급하자는 것인가? 신화가 아니라, 설화로 취급하자고 하였다.


ⓑ 창조기사는, 전설(sage)의 범주에 들며, 사건을 설화(geschichte)로 말한다고 하였다


인용문은 창세기 1, 2장에 대한 해설이다. 창세기 1, 2 장은 설화(geschichte)이며, 전설(sage)의 범주에 든다고 하였다. 이어서 말하기를 “설화”이며, “전설”의 범주에 드는 창세기 1, 2 장은 “역사적 지식 밖의 사건”이라고 하였으니, “설화”와 “전설”은 “역사적 지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하고자 한다. 첫째는 geschichte와 sage의 뜻이고, 둘째는 창세기 1,2장은 “역사적 지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첫째로 geschichte와 sage의 뜻


독일어 geschichte는 한국어로는 설화이다. 이 geschichte가 영어로는 narrative(설화) 혹은 story(설화)에 해당한다.19 설화는 신화와 전설을 내포한 고대소설이나, 옛이야기를 뜻한다. Barth가 geschichte를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신화와 전설이 섞여 쓰인 고대소설이나 옛이야기의 뜻으로만 사용하였으므로,20 geschichte를 영어 narrative나 story로 번역했을 때에는 그 뜻을 반듯이 설화로 한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영역(英譯) 시에 geschichte를 narratvie로 번역하지 않고, history로 번역한 것은 큰 실수였다. 독일어 sage21 는 고대어에서나 현대어에서 동일하게 “전설” 혹은 “전설적인” 의미로만 사용한다.22 그러나 영어 saga가 고대어에서는23 “전설,” 혹은 “전설적인” 의미로 사용하였으나, 현대어에서는 “이야기”로만 사용한다. 지금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영어 saga는 독일어를 번역한 것임으로, saga는 독일어 원문(sage)의 뜻대로 “전설”로 번역해야 한다.


둘째로, 바르트가 창세기 1,2장을 “역사적 지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


바르트가 창세기 1, 2장을 왜 “역사적 지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창시자(originator)임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 뿐인가? Barth는 예수님의 성령수태와, 동정녀탄생과, 몸의 부활 일체를 믿지 않았다.


바르트가 창세기 1, 2 장을 실화(nonfiction)로 보지 않고,「전설이나 신화」로 보았기 때문에, 「전설적인 옛이야기」에서 교훈을 끌어내, 복음으로 선포하였으며, 사람들은 그 교훈에 감탄하였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TV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웃으며 교훈을 받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신정통주의 신학이나 신복음주의 신학이, 성서를 역사(정통신학)나 신화(자유주의 신학)로 취급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성서를 설화(옛이야기, 고대소설)로 취급하여, 설화에서 교훈을 받아내, 이 교훈을 복음으로 선포하고 가르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창세기 1, 2장만 이렇게 본 것이 아니다. 모든 기적을 이렇게 보았다. 즉 바르트는 신구약의 모든 기적을 전설과 고대소설로 보아, 기적들을 실화나 역사로는 믿지 않지만, 신비로운 기적의 속뜻을 풀어내,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 혹은 구원의 복음으로 선포하였다. UN과 WCC가 그의 지도를 받았고, 지금도 현대신학을 따르는 신학교와 교회들은, 바르트의 신비로운 교훈에 귀를 기우려 경청한다.


설화(geschichte)는 전설과 신화가 섞여 쓰인 고대소설을 뜻하지만, 바르트의「교회교의학」24 영역(英譯)에서는 설화(geschichte)를 역사(history)로 오역(誤譯)하였고, 이 誤譯이 세계에 소개되어, 바르트신학을 미궁에 빠뜨렸다. 필자가 英譯으로 교회교의학을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아서, 독일어 원본을 대조하여 보니, 바르트는 역사는 반드시 historie로 말하였고, 기적은 반드시 geschichte로 말한 것을 알게 되었다.25 Van Til, Klooster, Clark 세 교수가 1961년에 Christianity Today 잡지를 통하여 바르트에게 질문할 때에, geschichte의 뜻도 물었으나, Barth는 끝내 답하지 않고 죽었다고,26 Van Til 교수가 필자에게 말해 주었다(1985).


3) 바르트는 창조설화는, 창조가 목표가 아니고, 언약이 목표라고 하였다


바르트는, 성서의 창조설화가 목적하는 바는, 창조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구약성서의 주제인 “언약”을 설명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즉 창세기 1장은, 안식일 제도에서, 구약성서의 주제인 “언약”이 창조사역의 목표임을 말하고, 창세기 2장은, 구약성서의 주제인 “언약”이 창조사역의 계속임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바르트가 앞에서는 창조설화는 “역사”로 취급해서는 안 되고, “설화”(고대소설)로 취급할 것을 주장하더니, 여기서는 창세기 1, 2 장의 목표가 “창조”가 아니고 “언약”이라고 하여, 창세기에서 물질창조를 아주 폐기해버렸다.


바르트가 창세기 1, 2장을 전설(sage)의 범주에 넣어, 실화(nonfiction)가 아닌 설화(고대소설)로취급하고, 창세기 1, 2장의 창조설화(Schofungsgeschichte)가 목적하는 바는, 창조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구약성서의 주제인 “언약”을 설명하려는데 있다고 말하여, 성서에서 유일하게 만물의 창조를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1, 2장에서 물질창조와 창시자를 삭제해버린 것이다.


바르트가 하나님의 만물창조를 불신하여 성서에서 폐기하였지만, 바르트가 언약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바르트의 신학이 여전히 기독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기독교에서 언약의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창세기 1, 2장을 고대소설로 규정한 바르트가 고대소설에서 끌어낸 언약이, 기독교가 믿어온 언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말하는 언약은 이교도(異敎徒)의 언약일 뿐이다. 다음은 바르트가 주장한 언약의 해설이다.


4) 바르트가 말하는 언약의 의미
바르트가 말하는 언약의 뜻은 무엇인가? 다음 “바르트의 언약주해”는 박봉랑 교수와 이종성 교수의 해설에 의존하여 준비한 것이다.27 두 교수는 현대신학 해설에 있어서 대가이다.


바르트는 창세기 1:26-27에 나오는 「하나님의 형상」을 언약으로 보았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형상」을 해석하여, 「하나님의 형상」은 본래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의 관계를 말하는 「나와 너의 관계」였는데, 하나님이 인간을 남녀로 창조하여,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인 「나와 너의 관계」를 허락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남녀가 갖는 「나와 너의 관계」를 하나님의 형상과 동질성(類比, analogia)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형상은 본래 「성부와 성자」의 관계였고, 이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인간피조 시에 하나님이 인간에게도「남자와 여자」의 관계로 주셨고, 이것을 다시 율법과 계명으로 이루어지는 「신과 인간」의 관계와.「이웃과 이웃」의 관계로 주셨다고 보았으며, 바르트는 이 “관계성”을 가리켜 신이 인간과 맺은 “언약”이며, 이 언약이 곧 복음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바르트가 말하는 창조는 언약이며, 이 언약이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이루어지는 「나와 너의」 관계성이며, 이 관계성이 복음이라 하니, 이 관계성의 복음은 대속의 언약이나 복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바르트의 주장대로라면, 인간이 이웃끼리 갖는「나와 너의」의 관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사랑하라고 주신 율법과 계명을 지킬 때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은 이 율법언약을 저버리는 것이요, 구원은 이 율법언약을 회복하는 것이 되어진다. 즉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에 들어가 계명을 받아드려서, 이웃끼리「나와 너의」관계 즉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여, 지상에서 화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바르트의 말을 듣고 있자면, 마치 바르트가 영생하시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르트가 말하는 언약은, 창세기를 고대소설로 보고, 고대소설에서 말하는 언약이므로, 바르트신학이 말하는 화해의 구원에는 그리스도의 대속이 없고, 내세도 영혼도 없고, 현세뿐이고, 죽으면 끝이다. 바르트가, 인간의 생존을 현세에 한정하였기 때문에, 바르트신학에는 영혼도 없고, 부활도, 내세도, 영생도 없다. 필자의 해설이 믿어지지 않으면, 바르트의 교회교의학(Karl Barth, Church Dogmatic, III/4, p. 568, 579)을 읽어보라.


사람들이 바르트신학을 가리켜,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monism)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그리스도 일원론」은, 성경 전체를 신구약성서의 주제인 그리스도의 “언약”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웃과 이웃」이, 「종교와 종교」가, 「나라와 나라」가 「나와 너의」 관계를 회복하여,「사랑을 주고받는 화해」를 이루도록, 모든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 일원론」이다. 이것이 바르트신학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바르트는 창세기 1, 2장을 생성과 소멸을 기록한 역사로 취급하지 못하게 하였고, 대신 창세기 1, 2 장을 창조설화(schofungeschichte)로 취급하여, 언약이 창조설화의 목표라고 해설하고, 언약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해설한 후에, 「하나님의 형상」에서 다시 「너와 나의」 관계라는 화해의 도식(the diagram of reconciliation)을 끌어냈다.


바르트는 「그리스도 일원론」이라는 억지 성경 해석법을 끌어다가 창세기 주석에 적용하여, 창조(創造)를「나와 너의」 관계라는 언약(言約)으로 바꾼 후에, 창세기 1, 2장에서 만물창조와 만물의 창시자(originator)를 삭제하였으니, 바르트의 성서에는 만물창조나, 만물의 창시자가 없다. 그렇다면 바르트의 우주론은 무엇인가? 이 질문의 해답은, 빅뱅과 진화론에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와, 사범학교를 거치던 시절(1940-1950년대)에는 국어 교과서에서조차 창조나, 조물주라는 용어를 접하였으나, 지금은 현대신학에서조차 “만물창조”나 “창시자”라는 용어를 전혀 볼 수가 없다.


4. 바르트의 기독론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에게서 출생하였고, 장사 후에는 육체가 살아났고, 승천하심으로 신인양성(神人兩性)을 겸전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가르쳐왔다. 그러나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불신하였고, 인성(人性)뿐인 단성으로 보았다. 그는 사도신경 주석, 「탄생의 신비(mystery)와 기적」28 이란 글에서, 자신의 불신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1) “동정녀출생은 거리낌을 주니,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바르트는 성경에 거리낌이 되는 곳이 많지만, 동정녀출생이 가장 큰 거리낌을 주는 장소라고 하였다. 수강생들도 거리낌이 되는 다른 것을 수강하는 동안에는, 초조한 마음이기는 하나 비교적 잘 따라왔지만, 이 동정녀출생의 항목에 이르러서는 무언 정지하여, 목석처럼 말문이 닫혀버릴 것이라고 염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여 안심시켰다.




바르트가 주장하기를, 성경에는 거리낌이 되는 곳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동정녀탄생은 가장 큰 거리낌을 주는 곳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르트가 주장하기를, 동정녀탄생을 납득하여 믿으려는 것이 아니고, 동정녀탄생이 가르쳐 줄 진리(교훈)에 접근하려 한다고 하였다. 바르트는 이 글에서,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주장하였으니, 동정녀탄생을 “납득하여 수용하는 것”은 부정하였고, 동정녀탄생이 주는 “진리(교훈)에 접근하는 것”은 긍정하였다. 결국 바르트는 기적 사건으로서의 성령수태와 동정녀탄생은 화제에서 삭제하였고, 성령수태와 동정녀탄생이 주는 교훈(진리)을 수용하자고 주장하였으니, 바르트는 자기 신학에서 기적은 불신하여 폐기한 것이다.


(2) “동정녀출생은 마리아의 배가 아니라, 마리아의 귀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예수가 마리아의 (belly)에서 출생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ear)에서 출생했다고 하였다. 애기가 (ear)에서 출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여하튼 바르트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바르트가 답변한 내막은 이렇다. 여인이 아직 남자를 접한 일이 없는 동정녀라 하니, (belly)로 애기를 출산한 일은 없을 것이므로, 동정녀가 애기를 잉태하고 출산했다는 것은, 마리아가 천사에게서 로 들었던 설화(geschichte, 고대소설)에서의 잉태와 출산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즉 동정녀의 출산은 고대소설(성서)이 말하는 출산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바르트는 천사가 전했던 예수의 잉태와 출산을, 동정녀가 실제로 잉태하고 출산한 기적으로 믿지 않았다. 천사가 전했던 동정녀의 잉태와 출산을 설화(고대소설)로 돌려서, 설화에서 출산한 것으로 해설하고, 설화에서 교훈을 끌어냈다.


(3) 성령수태 설화(geschichte)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수태하고 동정녀에게서 나셨다는 설화(geschichte)에 접근하여, 바르트가 얻어낸 숨은 뜻(mystery)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설화에서 해석해낸 교훈은 무엇인가? 성령수태과 동정녀출생의 설화에 접근하여 교훈을 해석해내기에 앞서, 인용문에 등장한 특수한 용어들에 주목해야 한다. 즉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라”는 비의(mystery),
“성부와 성자”가 “하나가 되어짐,”
“인간의 실존,” “예수의 실존의 시작,”
“기원 제 1 년의 시작.”
이 용어들을 구심점으로 하고, 문장을 다시 구성해 본다.
ⓐ 성령수태의 교훈은, 「성부와 성자가」 하나 되어진 것을 뜻하며,
ⓑ 「성부가 성자가」 하나가 되어진 것은, 예수가 「참 하나님, 참 사람임」을 뜻하며,
ⓒ 예수가 「참 하나님, 참 사람이」되신 것은, 곧 「예수가 실존의 시작임」을 뜻함으로,
ⓓ 이 「인간 실존」을 「기원 제 1년」으로 삼자고 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다시 정리해본다. 이 바르트의 주장은 다 신비로운 표현들(mystery)이고, 특히 인간의 실존은 더욱 어려운 표현이다. 인간의 실존은 실존주의 철학과 실존주의 신학의 핵심개념이다. 앞에서 이미 해설한 대로, 실존주의 철학과 실존주의 신학에서는 “인간의 실존”은 타락과 부패를 벗어난 「참 인간」을 뜻하고,32 하나님처럼 변화된 「참 인간」을 뜻한다.


바르트가 성령수태와 동정녀출생을 불신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肉身)으로는 요셉의 혈통을 받은 요셉의 아들이지만, 그가 살고 간 생애와 교훈과 죽음은, 인류의 역사상 단 한 번만 있었던 위대한 사건으로서, 이것이 「참 인간의 출현」을 뜻하고, 이것이 참 「인간 실존의 출현」을 뜻한다는 것이 바르트의 주장이고, 현대주의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주장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나타났던 이 위대한 「인간의 실존」을 「紀元 제 1년」으로 삼자는 것은, 예수의 인격을 모델로 하는 「전 인류의 새 紀元」을 열어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자님이나 석가님도 훌륭하셨던 분들이지만, 예수님의 행적과 교훈이 더욱 훌륭하므로, 예수님의 생애에 나타났던 「인간의 실존」을 모델로 하여, 전 인류의 「새 紀元과, 새 세상을 열어보자」는 것이다.


이 바르트의 구원론에서 꼭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바르트가 말한 그리스도의 구원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구원교리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바르트가 믿은 그리스도는 요셉의 혈통을 받은 보통 인간이었기 때문에, 예수가 준다는 구원도 제자가 스승의 인격을 본받아서, 고매한 인격을 갖추어 가는 것이 구원이고, 또한 인류가 지상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르트가 비록 31권의 방대한 「교회교의학」을 썼지만, 이 책에는 최후심판과 내세의 영생 등은 항목에도 들어 있지 않다.



Note


14. 전경연 번역, 칼 바르트, 바르트교의학 개요, p. 71 (1975 개정판), Karl Barth, Dogmatics In Outline, tr.
by G. T. Thomson, p. 50
15. Ibid., Korean version, p. 76,; Ibid., English version, p. 53
16. G. C. Berkouwer, 칼 바르트 신학, 조동진 번역, p. 47 (1975)
17. Karl Barth, Letters, 1961-1968, tr. by Bromeley, p. 7 (Eerdmans, 1981) "I sincerely respect the seriousness with
which a man like Berkouwer studies me and then makes his criticisms."
18. Karl Barth, Dogmatik Im Grundriss, p. 59 (Germany, 1947); 전경연 번역, 칼 바르트, 바르트 교의학개요,
p. 73 (성문학사, 1986) Karl Barth, Dogmatics in Outline, tr, by G. T. Thomson, p. 51
19. 독일인들은 geschichte를 신화와 전설을 섞어 쓴 고대소설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미국에서 바르트의
"교회교의학(Church Dogmatics)" 번역 시에, geschichte를 history로 번역한 것은 오역이었다. 1950년대 이후에
영국의 J.I. Packer와 J. Stott가 geschichte를 story나 narrative로 번역하였고, 1980년대에 Yale 대학교 교수들이,
Hans Frei 교수가 중심이 되어 narrative로 번역하였으며, 한국어 번역 설화는 신화와 전설을 내포하기 때문에,
적중한 번역이다.
20. 한종희,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신학" pp. 162-178, 제5장, 12 "geschichte의 의미"
21. 한종희,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신학" pp. 179-189, 제5장, 12 "sage의 의미"
22. Webster's 3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1981. The World Book Dictionary, 1978
23. 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Fourth Edition, 2000
24. 바르트가 쓴 "교회교의학", 독일어 원본은 31권의 9,000 페이지 책이다.
25. Karl Barth, KD III/1, p. 87; CD III/1, p. 80; 한종희,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 신학", pp. 168-170
26. 한종희,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 신학", pp. 18-24 (총회출판)
27. 박봉랑, 하나님의 형상, 칼 바르트의 신앙, (기독교사상, 1961년 5월호)
박봉랑, 하나님의 형상, 교의학 방법론, pp. 213-214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이종성, 창세기 1:26-27의 해석문제, 신학적 인간학, P. 51 (대한기독교출판사, 1979)
28. 전경연 번역, 칼 바르트, 바르트 교의학 개요, p. 143 (성문학사, 1986)
K. Barth, Dogmatics in Outline, p. 98-99, tr. by G. T. Thomson, (Harper & Row, 1959)
29. Ibid., Korean verson, p. 137; Ibid., English version, p. 95
30. Ibid., Korean verson, p. 144; Ibid., English version, p. 99; "And it has well said that this procreation was
realized rather by the way of the ear of Mary, which heard the Word of God."
31. Ibid., Korean verson, p. 143; Ibid., English version, p. 98-99
32. 안병욱, 현대사상, pp. 242-243 (삼육출판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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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바르트의 종말론
기독교는 인류와 역사의 종말과, 내세 천국의 영생을 믿기 때문에, 종말론을 중요하게 다루지만, 바르트는 인류와 역사의 종말과, 내세 천국의 영생을 불신하기 때문에, 그의 「교회교의학」에서 종말론을 쓰지 않았다. 정통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는 역사의 종말을 믿기 때문에, 종말을 말하는 것이 추상적이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고, 아주 구체적이며 실제적이지만, 바르트는 역사의 연장만을 말하고, 인류와 역사의 종말은 결코 말하지 않았다.


지옥에 대하여


바르트는 지옥의 존재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을 때에 답하기를, 「지옥은 내세에서 겪을 불행한 상태가 아니고, 다만 현세에서 겪는 불행한 상태이다」라고 말하여, 내세의 지옥을 불신하고 버렸다. 다음은 지옥에 대한 학생의 질문과 바르트의 답변이다.


지옥은 무엇인가? "존재의 지속성을 정지함이 없이”는 죽지 않고 살아있는 현세의 삶을 가리킨다. 즉 지옥의 이야기가 내세(來世)가 아니고, 현세(現世)의 삶을 가리킨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함이 없이”는, 인간이 비록 타락했다고 하나, 완전히 구제불능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인간의 실존)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용문의 끝에서 “파괴되지 아니한 우리 존재의 모순”이라고 말한 것이다. 인간은 비록 모순덩이의 존재이지만, 파괴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형상(인간의 실존)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지옥을 지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존재의 모순으로 말한 곳이 없다. 성경은 내세를 말하고, 내세를 지옥과 천국으로 갈라서 말한다. 이처럼 바르트의 주장은 성경과는 무관하므로, 기독교와는 무관한 바르트 개인의 철학일 뿐이다.


이 글 초두에서 바르트가 「내가 생각하기에는」이라고 한 말은, 지옥의 해설이 바르트 자신의 생각이라는 말이다. 바르트는 성경이 말하는 내세를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옥뿐만 아니라 교의학에서 열거한 모든 항목에서 바르트는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물론 바르트가 전통적인 신학용어들을 다 사용하였고, 전통적인 교의학의 항목들을 다 말하니까, 바르트가 정통주의 신학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정통주의 신학의 내용은 철저히 버렸고, 오직 자신의 생각으로 신학을 구성하였다. 만일 바르트가 자기의 생각을 직선적으로 표현했다면, 바르트신학을 사람들이 “신 정통신학”으로 곡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가 성경을 빗대어 말하고, 정통주의 신학의 용어와 그 구성 원리를 적용하여 말하니, 사람들이 곡해하여, “신 정통주의 신학”으로 호칭하였고, 이 곡해한 명칭이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바르트 자신은 성서를 고대소설로 보았으며, 정통이라는 용어를 지극히 싫어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신학을 “신 정통주의 신학”으로 호칭한 적이 없다.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호칭으로 복음주의를 선호하였다.


6. 바르트의 부활론




바르트 교수님은 영생을 믿으십니까? 이 질문은 Rugg라는 사람이 바르트에게 서신으로 물었던 질문이다. 그러나 바르트의 답변이 동문서답이 되었기 때문에, 질문자는 두 번째 다시 편지를 띠워 물었다. 「 교수님 제가 처음에 물었던 질문내용은 교수님이 답하신 그런 내용이 아니고, 사람이 죽은 후에도 살아가는 영생을 믿으시냐고 물었습니다.」 다음은 바르트가 두 번째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이 바르트의 답변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다. 바르트는 현재의 삶을 영생으로 보았다. 이로서 바르트의 내세불신이 확실하게 들어났다. 바르트의 서간문집이 독일에서 발간된 것이 1971년이었고, 영역 출판이 1981년인데, 필자가 수중에 넣은 것이 1982년이었다. 그 때까지 Van Til이나 박형룡 교수까지도 바르트가 이적과 내세를 믿는지의 여부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이므로, 필자가 고심하던 중이라, 서간문 책을 접하고 바르트신학의 성격을 확정짓게 되었고, 1985년에 비로소 「바르트의 성경관」이란 논문을 신학지남에 게재할 수 있었고, 바르트에 대한 연구 속도가 빨라졌다. 정통신학이 바르트신학에 대하여 두 가지 문제로 고심하였다.
바르트가 내세를 믿는가?
바르트가 geschichte를 무슨 뜻으로 사용하는가?”
필자는 Rugg의 질문과 바르트의 답변에서 첫째 문제를 해결하였고(1982), geschichte의 분석은 1998년에 완성하여, 같은 해에 목회에서 은퇴하고, 3년간 책 집필에 전념하여, 2002년에,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신학」을 출판할 수 있었다(합동측 총회출판, 2002).



1) 사후의 생을 바라는 자는 이방인이다




이 말은 바르트가「사도신경 강해」에서 한 말이다. 바르트는 1946년 독일 본 대학교에 가서 사도신경을 한 학기 동안 강의한 일이 있었으며, 그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할 때에 이름을 「교의학개요」(Dogmatik im Grundriss-Dogmatics in Outline)라 하였다. 바르트 자신이 서문에서 말한 대로, 이 책은 그가 쓴 방대한 9,000페이지의「교회교의학」(Die Kirchliche Dogmatik-Church Domatics)을 200페이지 분량으로 주려서 쓴 것이다. 또한 이「사도신경 강해」의 1946년 판은 세 번째의 개정판이므로, 내용과 문장이 아주 잘 정선된 글이며, 신학의 모든 항목이 골고루 다루어진 바르트신학의 종합판이기 때문에, 이 작은 책 한 권은, 바르트신학을 정확하게, 빠르게,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다. 바르트는 이 책 마지막 부분 24장, “육의 부활과 영생”이란 항목에서, 영생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 바르트는 이 글에서 분명히 주장하였다.




바르트가 또 주장하기를, 「 부활은 살아 있는 이 “생명의 연속”을 의미하지 않고, 이 “생명의 완성”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부활이 “이 생명의 연속”(the continuation of this life)을 의미하지 않는다 함은, 시간적인 영생의 부정이니, 내세의 영생을 부정한 것이고, 대신에 부활이 “이 생명의 완성”(this life's completion)을 의미한다 함은, 인간이 이승에서 성취할 인격적 완성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바르트가 「사후의 생을 바라는 것은 이방인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하였으니, 바르트가 사후의 생을 믿는 기독교 신자들을 이방인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이방인이라는 표현에서, 바르트가 몸의 부활과 사후의 영생을 얼마나 강하게 거부하며, 또 사후의 영생을 믿는 정통신학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 강도를 알 수 있다. 같은 책에서 바르트는 사후의 생을 바라는 정통신학을 향하여 가진 독설을 다 퍼부었다.




짓지 못하는 개요(48쪽),
저주를 받을 자요(같은 책, 48쪽),
믿지 않는 불신자요(49쪽),
묘지에 처넣기 위해 밀쳐진 자라고(49쪽) 하였다.36


⒞ 바르트가 시신의 부활을 받아드릴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을 유한한 자로 보았고, 영혼 없는 물질로만 본 유물론자였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인간이 유한하여 죽음으로 끝나고, 죽음 후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 바르트는 예수의 부활을 어떠한 뜻으로 받았는가? 바르트는 사도행전 1:1-14을 주석하여, 성경의 부활설화는 “기적의 부활”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다만 그 기록이 “기적의 성격”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하여, 성경의 부활기록에서 기적을 배제하였고,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정신이 살아서, 살아난 예수의 정신이 제자들의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이 글의 핵심은 두 가지의 비교에서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취한데 있다. 즉 행1:1-14의 부활에 대한 기록이 진정한 기적의 부활기록이냐? 혹은 부활에 대한 기록이 이적의 성격으로 기록된 것이냐? 바르트는 성서가 말하고자 한 것은, 전자가 아니고 후자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행1:1-14의 부활기록이, 기적의 부활을 말한 것이 아니고, 다만 부활의 기록기적의 성격을 띠었다는 것이고, 동시에 부활기록이 사실(nonfiction)의 기록이 아니고, 설화(geschichte)39의기록 즉 “옛날소설”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바르트는 앞의 인용구절에 연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르트는 주장하기를, 제자들이 부활을 말한 것은, 기적에 관한 믿음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하였다. 이 부정은 그리스도의 시신부활을 부정한 주장이다. 반대로 제자들이 부활을 말한 것은, 단지 예수님이 죽어 있는 제자들을 깨어 일어나게 하여준 신비로운 사실을 입증하려 했을 뿐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장사 후 3일째 되는 날 새벽에, 제자들이 돌변했던 사건은, 예수의 시신이 부활한 것과는 무관하며, 다만 제자들이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다시 구주로 인정하게 되어진, 제자들의 심적 변화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살아있는 주님의 임재를 입증하려 하였다.”는 말은, 예수님의 교훈과 정신이 제자들의 마음에 다시 살아나, 함께 있다는 뜻이다.



2) 다음은 바르트의 부활주석(행1:1-14) 이다




① 「제자들이 기록한 기록의 기적적인 성격보다, 기록 자체에 강조점을 둘 하등의 이유가 없다. . . 제자들이 묘사하기를 원했던 것은, 부활사건 자체의 기적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바르트는, 죽은 자가 살아나고, 걸어 다니고, 제자들 앞에 나타나고, 먹고 마시다가, 하늘로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참으로 희한하고, 놀라운 기적의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제자들이 원했던 것은, 부활 자체기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 기록기적의 성격으로 기록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Barth가 이렇게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시체가 무덤에서 살아나온 기적의 부활로 말하지만, 제자들이 기적의 부활을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적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제자들이 실제적인 부활장면에 대해서는 언급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그리스도가 살아났다고 진술한 것은, 실제의 부활을 말한 것이 아니고, 단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 있는 것암시할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무덤이 비었다는 것도 역시 실제의 부활을 말한 것이 아니고, 단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있는 것암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기록이 실제의 부활을 말한 것이 아니고, 단지 그 기록이 부활의 성격을 띤 것이지만, 그리스도가 살아있다암시에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주장을 추상적으로 말해서, 그 추상적인 부활을 주장하거나, 내버리거나, 비신화화 할 수는 있겠지만, 추상적인 부활을 주장하는 것은, 아무데도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하였다.




3) 바르트는 다음 인용문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덤에서 살아나온 몸의 부활이 아니라,
새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바르트는 몸의 부활을 불신하였으나, 부활절이 주는 메시지는 크게 부각시켜서 주장하였다. 바르트가 주장한 부활절 메시지는 무엇인가? 인용문을 다시 정리해 본다.


부활절이 주는 메시지는 ‘새로운 한 인간의 이야기’가 셋째 날에 시작되어짐을 뜻한다고 하였다. 즉 ‘새로운 예수의 생’이 셋째 날에 시작되었음을 뜻한다고 하였으니, 예수가 제자들을 통해서 역사무대에 다시 등장했음을 말한다. 여기서 바르트가 부활절이 주는 메시지라고 주장한 것은, 정통신학이 말하는 부활절 메시지와는 정 반대되는 개념이다. 정통신학은 부활절 메시지를 육체부활로 받아드린다. 사도들이 본 것이 육체부활이었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부활이 육체부활이었고, 교부들이 계승하여 고백한 사도신경이 육체부활이었다. 오늘까지 내려온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역시 육체부활이었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것을 뒤 엎어버린 것이다. 바르트는 부활해석에서 그리스도의 육체부활을 배제하였고, 그 대신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 시대의 시작을 뜻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바르트가 주장하기를, 예수의 죽음에서 옛 세계가 물러가고, 셋째 날에 새 시대(a new Aeon), 곧 새 형태의 세계가 시작된다고 하였다. 초대교회는 이 변화한 예수의 실존(existence)에서 새 시대의 시작, 새로운 세계의 시작도 보았다고 하였다.


이 글의 핵심은 다음 용어들이다. ‘새 시대,’‘새 형태의 세계,’‘예수의 실존,’‘새 시대의 시작,’‘새로운 세계의 시작.’ 바르트가 이 용어들로 무엇을 말했을까? 이 책의 실존주의 철학에서 밝혀진 대로, 바르트가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사랑과 정의를 실천한 예수를 가리켜, 예수의 실존이라 하였고, 동시에 십자가를 지고 사랑과 정의를 실천한 이 예수는 옛 세계를 벗은 인간상이요, 동시에 새 시대의 시작새 세계의 시작을 연 인간상이라는 주장이다.


바르트는, 예수의 육체가 부활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교훈과 모범된 생활이 셋째 날에 제자들의 가슴 속에 되살아난 것을 부활로 보았다. 그리스도의 교훈과 정신이 제자들에게 살아나서(부활하여), 비로소 제자들이 새 시대새 세계를 열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 제자들로 시작된 새 시대새 세계가 전 인류에게 확산되는 날에는, 반드시 지상에서 죽음(죄악, 갈등, 전쟁)이 물러가고, 화해와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릴 것을 희망하여 말한 것이다.




4) 바르트가 이 글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보여준 낙관론 . . .


바르트가 이 글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보여준 낙관론은, 바르트 이전의 그 어떤 사상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매우 적극적이고 강력하다. 칼 막스 역시 자신의 사회주의 이론과 실천이 반듯이 지상에서 불평등을 몰아내고, 공산화(共産化)로 지상낙원을 이룰 것을 확신했으나 무산자(프롤레타리아)의 무한 폭력으로, 소련과 중국이 자기 동족을 재판도 없이 수천만 명씩 학살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제1, 2차 세계대전으로 인류에게 재앙이 덮쳐 전혀 희망이 없었다.
바로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Barth가 그의 나이 불과 33세 되던 1919년에 로마서 주석을 들고 혜성처럼 나타나, 강력한 낙관론을 펴서, 세계 평화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외쳤다. Bultmann, Brunner, Tillich 등 당시 30대의 젊은 청년들도 바르트의 뒤를 따라 인류에게 희망을 주려고 낙관론을 펼쳤다. 사람들은 이 학자들을 신정통주의라고 불렀다. 유럽의 신학자들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신학자들도 가세하여 희망의 신학을 외쳤으며, 영국 신학자들(C. S. Lewis, John Stott, James I. Packer)은 이러한 신학을 “복음주의”라 칭하였고, 미국 신학자들(Billy Graham, Harold J. Ockenga, E. Carnell, Carl Henry)은 “신복음주의”라고 칭하였다.


5)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육체부활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을 다음과 같이 폈다.


여기서 바르트는, 마치 봄, 여름, 가을이 주기적으로 변하듯이, “사람이 태어나서, 죽었다가, 무덤에서 몸이 살아나오는 변화”를 부활로 보는 것부질없는 짓이라 하여, 육체부활을 버렸고,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다만 부활절 아침에 단번에 성취된, 새 변화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부활절 아침에 단번에 성취되었다는 새 변화는, 십자가 앞에서 좌절했던 제자들이, 셋째 날 아침에 불현듯 일어나, 불길 같은 힘으로 방방곡곡에 다니면서, 사랑과 정의구현을 전파한 사실을 말하였다. 결국 바르트가 그라스도의 부활을 육체부활로는 거부하였으나,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놀라운 심적인 새 변화를 부활로 보았다.


사실 부활절 새벽에 제자들의 마음에 일어났던 심적인 변화는, 인류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하나의 큰 사건임은 분명하다. 로마 정부와 헤롯왕이 합세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 형틀에 못 박아 죽였으나, 예수가 무덤에서 부활하였다는 전도의 불길이 순식간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소아시아와 그리고 로마에 이르기까지 퍼져나가, 결국 로마 정부를 정복하였고, 유럽 전체를 정복한 사건은, 사망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살아 나온 강렬한 육체부활이 아니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Karl Barth는 이러한 위대한 변화를 일으킨 강렬한 힘을, 무덤에서 살아난 육체부활에서 찾지 않고, 예수의 사랑과 정의구현에서 찾았다.


바르트의 부활론에 대한 평가
당시의 노예제도하에서는 힘없고, 미개한 민중이 자기의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도 정부를 대항하여, 궐기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하물며 자기의 목숨과 전혀 관계가 없는 추상적인 사랑과 정의구현을 위해, 민중이 궐기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자의 밥으로 던져지며, 온갖 고문을 다 당해냈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교회역사도 육체부활과 내세를 믿는 성도들만이 순교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육체부활을 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육체부활과 내세를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순교하지 않는다.


오늘날 마호메트교가 왜 선교에서 무섭게 성장세를 보이는가?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내세의 지옥과 천국을 믿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자살폭탄 속에서 장렬히 죽어 가는가? 하나님의 심판과 내세의 지옥과 천국을 믿기 때문이다. 과거나 현재나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력한 힘은 오직 육체부활과 내세와 영생을 믿는데서 왔고, 또 오고 있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주장은 당시의 상황에 맞지 않는다. 성서에 의하면, 제자들이 사자의 밥으로 던져져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셨음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르트의 주장대로라면, 예수의 부활이 몸의 부활이 아니고, 정신적인 부활이니, 결국 제자들이 거짓 부활(육체부활)을 주장하면서 스스로 사형장으로 끌려간 것이 된다. 인간이란 참 말을 주장하다가도, 그 참 말 때문에 죽음이 오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죽음을 피해가는 것이 상식인데, 거짓을 주장하면서 스스로 사형장으로 가는 일이 가능한가?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만일 제자들이 미쳤기 때문에, 없었던 몸의 부활을 거짓으로 주장하면서 사형장으로 갔다고 쳐도, 어떻게 12사도가 한꺼번에 다 미쳤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또한 500여 형제들이 목격했던 부활체의 승천장면은, 또 무엇이라고 괴변을 말한 것인가!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지상에서 누리는 승리와 구원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 인용문의 주제가 무엇인가? 이 인용문의 주제는, 부활절이 주는 메시지인데, 부활이 주는 메시지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승리가 “예수의 인격에서 쟁취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을 위한 승리가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쟁취되었다’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교훈과 모범생활에서 쟁취되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해온 교리이다. 바르트는 여기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인간이 소망하는 승리도, 십자가 대속에서 성취된 지옥의 형벌과 하나님의 진노에서의 해방이 아니고, 다만 “예수가 승리자라는 것”과, “옛 것은 다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음”을 뜻한다고 하였다.


이 긴 인용구절은 세계 평화가 아직은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곧 완성될 것이 확실하니, 믿자고 하였다. 아직은 뒤에서는 총소리가 들리고 불이 타고 있어도,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되고, 비통한 얼굴도 하지 말 것이며, 소망 없는 자처럼 우울한 생활을 해서도 안 되고, 앞에 있는 소망을 바라보면서 감사하고, 어둠을 벗어나 기쁨으로 살자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르트가 부르짖은 신학은 절대적인 희망이었다. 이 절대적인 희망은 20세기의 모든 신정통주의 신학자들과 신복음주의 신학들이 외쳐온 복음이다. Moltmann이 “희망의 부활”(Resurrection as Hope)에서 말한 희망과, Pannenberg가 설화의 계시(Offenbarung as Geschichte)에서 말한 희망은 같은 맥락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가 부르짖은 희망은 하나의 부르짖음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제1,2차 세계대전이 보여준 대로, 인류는 전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보통 인간 예수로는 인성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옥과 천국을 가지신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할 때에만 비로소 인성회복이 가능해진다.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속죄의 복음을 받아드려 구원받았을 때에, 율법과 계명에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을 감심으로 받아드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복종하여, 순교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에게서는 윤리가 살아나고 인성이 회복되어진다.


지옥에 갈 인간이 구원받아 새 인간으로 탄생하여 인격혁명이 일어난 다음에는, 제일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여 이웃을 해치는 일이 없고, 사랑하여 이롭게 한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사는 사람에게서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먼저 양보하고, 용서하고, 인자하고, 겸손하고, 사랑하여 악한 상대도 용납함으로 악한 자와도 관계가 끊어지지 아니하며, 비로소 평화가 정착되어진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명하셨기 때문에 순종에서 성취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 사이의 화목과, 집단 사이의 평화의 정착은 두 당사자를 동시에 복종시키는 하나님을 모실 때에 가능해진다. 참 인간의 회복은 살아계신 만물의 창시자(originator) 하나님, 속죄와 구원의 하나님, 죄를 심판하여 영원히 형벌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이 하나님에게 순종할 때에, 가능해지는 진리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는 명백성 있는 진리이다.




Note


33. 칼 바르트, 학생의 질문과 신학자의 대답, 기독교사상, 1962년 1월호, p. 70
34. Karl Barth, Letters(1961-1968), p. 9 tr. by Geoffrey W. Bromiley, Eerdmans.
35. Karl Barth, Dogmatics in Outline, p. 154, Happer and Row
36. Karl Barth, 바르트 교의신학 개요, 전경연 번역, 대한기독교서회, 1986
37.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II/4, p. 569, T and T Clark
38.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V/2, p. 148 ; Die Kirchliche Dogmatik, IV/2, p. 165
39. 설화(geschichte)는 신화와 전설이 섞여 쓰인 "옛 이야기-고대소설"을 뜻한다.
40. K. Barth, Church Dogmatics, IV/2, p. 148
41. K. Barth, Church Dogmatics, IV/2, pp. 148-149; Die Kirchliche Dogmatik, IV/2, pp. 165-166
42. 칼 바르트, 바르트 교의학 개요, 전경연 번역, 성문학사, 1986, p. 174
43. 영역에서 원문의 geschichte를 history로 번역한 것은 오역이다. 바르트는 역사(history)만을 historie로 표기하였고,
설화(narrative)는 반드시 geschiche로 표기하였다. 필자가 저술한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 dptj,
"Geschichte의 의미"를 참조할 것.
44. K. Barth, Dogmatik Im Grundriss (German version), p. 143 ; Ibid., Korean version, p. 176; Ibid., English version,
p. 122
45. K. Barth, Dogmatik Im Grundriss (German version), 한국어 번역판, 바르트 교의학 개요, p. 76; 영어번역판,
Dogmatics in Outline, p. 122
46. Ibid., 한국어번역판, pp. 176-177; 영어번역판, pp. 122-123


출처 : http://www.voamonline.com/ref-1/010_KarlBarth/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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