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교회교의학

바르트는 부활을 부인하는가?

형람서원 2024. 11. 2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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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건은 "안녕하십쇼".. 로 시작합니다. 이번 영상 리뷰는 "바르트는 부활을 부인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신건 교수는 2022. 6. 17.에 영상(19분 정도)을 제작했고, ""기독교이단검증센터"와 "갓소리개혁신앙"이라는 유튜브 방송이 칼 바르트가 예수의 부활을 부인한 이단이라고 허황하게 주장하는 동영상을 본 후, 그들이 바르트를 얼마나 심하게 왜곡하는지를 알리는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신건 교수는 서철원 박사, 정태홍 박사 등의 비판도 인정하지 않고, 바르트가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인정했다"는 것으로 영상을 담았습니다.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부정하면 이단"이 되겠지요.

잘못된 유투버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며 시정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제언했습니다. 현대신학자들을 비평하는데, 악의적인 방법의 비판을 경계시켰습니다. 서철원, 삼위일체를 부인했다... 현대신학자들이 신을 부인했다는 것에 대해서... 바르트에 대한 비판이 잘못되었다. 삼위일체를 회복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 영상을 만들었고,,, 정태홍 목사.. 칼 바르트가 해체되는 기독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바르트를 잡으려는 선무당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바르트를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두 유투버에 대한 비평이 주효한 것 같습니다.... "기독교이단검증센터"와 "갓소리개혁신앙"

 

갓소리, "부활은 역사 안에서 일어난 어떤 일이다. 그러나 부활이 역사상의 사건은 아니다" 칼 바르트의 로마서 중에서, Van Til 박사는 바르트를 higher humanism이라고 비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중에서...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다....

기독교이단검증센터에서는 CD IV/1., 335에서 위의 문장이 있다고 동일반복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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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건은 CD가 아니라 KD라고 자료 인용 출처는 밝혔다.

이신건은 칼 바르트가 현대신학자 중에서 유일하게 동정녀 탄생을 변호한다고 합니다.

이신건이 찾아본 KD IV/1., 335

KD IV/1., 335 Gewiss haben wir es in der Auferstehung Jesu Christi mit einer nicht nur in der menschlichen Geschichte, sondern zuerst in Gott selbst sich ereignenden Bewegung und Handlung zu ten

Gewiss(분명히, 확실히) haben wir es in der Auferstehung(부활) Jesu Christi mit einer nicht nur in der menschlichen Geschichte(인간의 게쉬히테), sondern zuerst in Gott selbst sich ereignenden Bewegung und Handlung(운동과 행동) zu ten.. 분명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단지 인간의 역사(게쉬히테) 안에서만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운동과 행동을 본다... * 화해론에서 성육신....

이신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사실이 명백하다"라는 문장이 바르트에게 없는 문장으로 결론했다. 그런데 영어 문장 There is no proof, and there obviously cannot and ought history as it takes place and not to be any proof, for the fact that this history did take place (proof, that is, according to the terminology of modern historical scholarship) 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CD IV/1., 335.

KD IV/1., 370에 있다. Es ist nicht zu verkennen, daß das Neue Testament selbst die Eigen-art - die alle allgemeinen Vorstellungen von einer im Raum und in der Zeit geschehcnen und als geschehen feststelbaren Geschichte sprengende Eigenart dieser Geschichte nicht zu verhüllen wußte und offenbar auch nicht verhüllen wollte. Ein (im Sinne heutiger historischer Wissenschaft so zu nennender) Beweis für das Geschehensein dieser Geschichte wird nicht geführt, konnte und sollte offenbar nicht geführt werden ... 이 문장에 대한 영어 번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 IV/1 권을 확보하지 못해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Beweis für das Geschehensein dieser Geschichte(게쉬히테적인 사건들) wird nicht geführt" Geschehensein은 바르트가 계시의 발생(Geschehensein)에서 사용한 어휘입니다. 부활은 발생 사건이 아니라 실재 사건(historic fact)입니다. 영어 번역이 the fact that this history 로 한 것은 독자에게 매우 혼동을 주는 번역입니다. das Geschehensein dieser Geschichte(게쉬히테의 발생) 번역이 어려우면 번역자는 원문을 제공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 이신건이 바르트의 책에서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것은, 그의 능력의 문제였습니다. 무지에 근거한 판단, 그래서 반틸 박사의 왜곡의 주장을 반복했다는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지에 더한 지식이기 때문에, 무지의 무지를 더 한 것입니다. 바르트 전문가이고 푈말의 교의학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의 허무한 주장이 아쉽습니다. 이신건이 밝히지 못했다면 바르트에게 부활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일단 이신건이 분석한 것, 바르트의 글에 그러한 문장이 없다는 것은 그 문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한글 번역을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섹션 59(항), 하나님 아들의 순종, 3번째 진술 부분에 있음).

교회 교의학 4/1저자칼 바르트출판대한기독교서회발매2017.06.30.

형람서원 고경태

연락, ktyhbg@hanmail.net

 

Man kann und darf die Unterschiede zwischen diesem und jenem Geschehen nicht übersehen. Sie unterscheiden sich ja eben sachlich wie Gottes Recht und Gottes Rechtfertigung wie Abschluß und Neuanfang, wie Werk und Offenbarung. Sie unterscheiden sich auch als Tat des gehorsamen Sohnes und des gnädigen Vaters. Sie unterscheiden sich aber auch formal in der Art, in der sie im Menschlichen Raum und in der menslcichen Zeit geschehen und also als Geschichte zu vertehen 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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