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건 교수가 서철원 교수가 칼 바르트에게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바르트에게 삼위일체가 있다고 변호하는 영상입니다. 바르트에게 삼위일체가 있을까요? 이신건 교수는 바르트가 삼위일체 신학위에 굳건하게 서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 주장은 서철원 박사 논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 서철원 박사의 『기독론』에서는 바르트가 정통 삼위일체론을 이신론(二神論, duotheism)으로 주장하며 배격한다고 제시했습니다(『기독론』, 21이며, KD., IV/1, 69에 근거해서 비판함). 개혁신학에 있는 구원협약을 바르트가 이신론(二神論, duotheism)으로 규정하며 우상숭배라고 배격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신건 교수는 바르트에게 삼위일체가 있다고 분명하게 제언합니다. 재해석했다고는 볼 수 있지만 삼위일체를 부인하지 않았다(11분). 자유주의 신학을 붕괴시키고 삼위일체 신학을 세운 거장이다(11:18). 삼위일체 교리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서철원 교수의 주장은 바르트에 대한 오해요 날조 왜곡이다. 삼위일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신건 교수는 1:56에서 서철원 교수의 교의신학 인간론 부분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견해를 도출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적당한 지적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바르트 신학의 기본 비평은 신론과 기독론에서 도출시켜야 좀 더 합당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자기 운동"은 바르트가 쓰지 않는 용어이다(3:20).
하나님의 형상과 ... 초기 바르트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후기에 인간에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마다 사건, 은총이다.
바르트에 대한 심각한 오독은 삼위일체에 관한 것으로, 삼위일체를 부인했기 때문에 자유주의신학이다. 오토 베버의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에서 있는 삼위일체에 대한 부분을 설명한다.
존재방식(Seinsweisen)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칼빈도 사용했다고 했다는 것이다.(7:33). 김용준은 존재방식에 대한 논문에서 토랜스가 존재방식(존재양태)가 갑바도기아 신학자들과 연결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콜린스의 비판적 이해를 제시했다. 즉 정통신학의 신학에서 존재방식(존재양태)이라는 변형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김용준, 칼바르트의신적위격개념 ‘Seinsweise’에대한개혁주의적비평, (개혁논총), 2012년). 바르트의 존재방식과 정통신학의 위격(person)은 유사개념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오토 베버가 존재방식이 칼빈에게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것은 칼빈에 대한 오독이고 바르트에 대한 부당한 연결이 될 것이다. Seinsweisen과 subsistentia(위격)은 유사한 개념이 되지 않는다. Seinsweisen은 존재방식보다 존재양태 혹은 존재양식으로 번역해야 한다. 그것은 존재방식은 일반적 어휘이기 때문에 정통신학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고, Seinsweisen는 바르트가 새롭게 창안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면밀한 사용이 필요하다. * 참고로 바르트는 칼빈을 반삼위일체자로 고소했던 까롤리의 견해를 인용한다. 즉 칼빈과 바르트를 연결시키려는 행동은 적합하지 않다.
8:09. 이신건은 바르트가 창조자를 성부 하나님, 화해자를 성자 하나님, 구원자를 성령 하나님으로 연결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문제 의식이 없이 반복했다. 정통신학에서 구원자는 성자 하나님이시다. 바르트 신학에 가장 많이 반복되지만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 부분이다. 당신의 구주 하나님은 누구인가? 성자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나는 성경과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주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다.
8:10 이신건은 푈만의 요약을 제시한다. 삼위일체론의 뿌리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가치를 깍아내렸다고 푈만은 평가했다. 그것을 이신건도 반복한다. 삼위일체를 깎아내리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거룩성은 절대로 훼손, 폄훼할 수 없다.
계시의 삼중성은 그 계시 안에서 활동하는 신을 지시하는 것이다. 전통적 삼위일체는 계시 안에 활동하는 신이 아니라, 계시를 시여하는 절대자이시다.
계시자, 계시, 계시현실(번역이 어려움) '계시자(Offenbarer)'와 '계시(Offenbarung)'와 '계시됨(Offenbarsein, 계시현재)'
계시의 삼중성을 신의 세 존재방식(Seinsweisen, modes of being)을 주장하는 것인데, 삼중성(threefold)은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명백하게 부정한다. 칼 바르트는 삼위일체(trinitatis)를 거부하고, 삼중일신(Gottes Dreieinigkeit)을 확립하는 역사 이해 구도를 제시했다(고경태). 더 나아가서 어떤 이는 삼중으로 된 하나님(triplicem Deum, a threefold God)을 공상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한 본질이 삼위로 나뉘었다고(putet tribus personis nacerari simplicem Dei essentiam)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간단하고 명료한 정의(brevis et facilis definitio)를 찾아 모든 오류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해야 한다. 기독교강요, 1, 13. 2. threefold mode of being, three Seinsweisen (modes of being) of God 은 정통신학의 신학을 약간 폄훼한 수준이 아니라 전적으로 변경한 수준이다.
person과 존재방식은 병행할 수 없는 것은 바르트의 주장이다. 바르트는 세 인격 혹은 두 인격을 우상숭배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 서철원 박사의 『기독론』에서는 바르트가 정통 삼위일체론을 이신론(二神論, duotheism)으로 주장하며 배격한다고 제시했습니다(『기독론』, 21이며, KD., IV/1, 69에 근거해서 비판함). 개혁신학에 있는 구원협약을 바르트가 이신론(二神論, duotheism)으로 규정하며 우상숭배라고 배격했다는 내용입니다.
바르트가 개방시킨 신 이해를 정통신학의 삼위일체 논의가 아니라, 현대적 신관의 이해를 논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현대적 신관은 인간 예수 이해의 기초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정통신학의 삼위일체를 세울 수 없다.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붕괴시켰다고 하는데, 바르트가 언제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한 적이 있는가? 바르트는 1차 대전에 서명한 정치적 윤리적 가치 때문에 자유주의를 거부했다.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한 흔적은 볼 수 없고, 오히려 사회주의적 정치관(헤겔주의)과 슐라이어마허의 우산 아래에 있는 사유가이다.
인간 예수를 견지하는 신학 자유주의와 현대신학, 칼 바르트의 신학에서는 삼위일체를 구성할 수 없다. 이신건 교수가 삼위일체론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르트를 오독한 것이다. 바르트는 자기를 오독하면서 자기를 존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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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생은 박형룡 박사, 서철원 박사, 최덕성 박사입니다. 서철원 박사(믿음고백)와 최덕성 박사(복음전함)을 묶어 “주 예수를 믿어 힘써 복음을 전하자”가 형람의 구호입니다.
운영. 플레모스 카흐발트 최정호 목사, 라은태 목사, 임무광 목사
연구원. 김만옥 목사, 김미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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