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훈
칼 바르트의 신학의 목표
자존하신 하나님 부정
칼 바르트는 자존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단지 행동하는 존재로만 인식한다. 행동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존재를 멈춘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존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사건이 나타날 때 하나님이 발생한다.
죄인이 아닌 인간
또한 칼 바르트는 인간의 죄에 대한 생각도 개혁주의 신학과 다르다. 칼 바르트 자신이 개혁신학의 원죄론을 비판하였다. 칼 바르트에게 인간은 성경에서 말하는 진짜 죄인이 아니다. 칼 바르트는 창세기의 역사를 실제로 있는 역사적인 일로 보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사건일 뿐이다. 역사상 일어났던 일로서의 인간의 타락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경의 축자영감 부정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부활도 역사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단지 신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부활로 본다. 칼 바르트가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부인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칼 바르트에게 성경은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지만, 내용적인 영감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 이유가 이것이다. 칼 바르트에게 인간의 타락,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이 역사적 사실이어서는 안된다. 단지 내용적인 의미가 있을 뿐인 것이다.
속죄주 부정
그러므로 칼 바르트에게 속죄주가 필요가 없다. 칼 바르트가 인간을 죄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인간에게 속죄주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칼 바르트에게 그리스도는 단지 화해자일 뿐이다. 이 화해자로서 그리스도는 인간의 원죄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죄라고 여기는 3대 죄악인 오만(Hochmut, 傲慢), 태만(Träheit, 怠慢), 기만’(Lüe, 欺瞞)을 심판할 뿐이다. 죄인의 속죄주가 아니라, 죄악 자체를 심판하는 화해자일 뿐이다. 칼 바르트에게 그리스도는 죄인의 죄의 형벌을 담당한 존재가 아니라,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원죄나 자범죄가 아니라, 칼 바르트 자신이 정의한 3대 죄악인 오만(Hochmut, 傲慢), 태만(Träheit, 怠慢), 기만’(Lüe, 欺瞞)을 심판하는 존재요, 화해자일 뿐이다. 이렇게 칼 바르트는 자존하신 하나님을 부정하며, 인간을 원죄와 자범죄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대속을 부정한다.
만인선택론과 만인구원론
또한 칼 바르트는 예정론을 부정하며, 지옥에 가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즉 칼 바르트는 만인선택론과 만인구원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말씀선포를 강조하는 이유
이러한 칼 바르트가 말씀선포를 중요시 한다. 그러면 왜 칼 바르트는 이러한 개혁 신학을 부정하면서, 말씀 선포를 중요시할까? 그 이유는 말씀이 선포될 때 하나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은 너무나 무한하신 분이시며, 인간은 지극한 피조물일 뿐이다. 그런데, 말씀이 선포될 때, 정반합적으로 하나님이 발생하는 것이다. 너무나 무한하신 분(정)을 너무나 유한한 존재인 인간(반)이 받아들일 수 없는데, 말씀이 선포될 때, 하나님과 만나는 사건(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간이 말씀을 선포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행동하지 않으시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칼 바르트에게 하나님은 자존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말씀을 선포할 때만 발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에게 말씀 선포는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은혜의 방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을 발생하는 도구일 뿐이다.
인간이 하나님이라는 것!
실제로 칼 바르트의 말씀 선포의 목표는 복음이 선포될 때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일어나고 실제로 인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라는 것, 더 이상 죄나, 어떠한 속박에도 매이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 내가 구원받고, 내가 자유자이며, 지옥은 존재하지 않으며, 천국은 내 마음에 실존하며, 하나님이 내가 되고, 내가 하나님이 되는 사건, 내가 너요, 너가 나라는 것을 아는 것, 우리가 모두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것, 그래서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 그래서 칼바르트에게 그리스도는 화해자인 것이다. 자유주의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부정했다면, 오히려 칼바르튼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 안에 끌어들여서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라는 것을 말씀선포를 통하여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화해된 인간들!
그래서 칼 바르트는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화해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적이 아니며, 모두가 하나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상관없이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 특히 칼 바르트의 신학이 유명한 이유는 서로 심각한 신학논쟁이나, 정치적으로 심각한 전쟁상황에 있는 나라와 민족과 사람들 사이에서 화해의 신학자로 나타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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