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
19장. 철학자들이 하나님의 지식으로도 무한한 것을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숫자는 물리적이지만 무한하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숫자가 무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도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상상은 무지의 소산이다. 그
무한한 숫자를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지혜서 11:20, 사 40:26, 시 145:5). 인간이 유한한 지식으로 이해하는 무한한 수준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규정한다면 결국 유한한 하나님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그 한계에
갇힌 존재인 것을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이해할 수 없는 이해로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이해이다(tam inconprehensibili conprehensione omnia inconprehensibilia
conprehendit). 그래서 모든 사건들은 어떤 이유가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영원한 하나님의 예지(aeterna praescientia)를
선한 것으로 굳게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
20장.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하나님은 질서 정연하게 모든
세대에 운행하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세무궁토록 변함없이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경륜에서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개념은 잘못이다. ‘세대들의 세대’는
반복이 아니고 질서정연하게 연속되는 시간이다.
21장. 철학자들은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개념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섭리로 연속하고
있다. 섭리는 창조의 연속이다.
인간의 생활은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이 현재 행복에 만족하고 내세의 불행을
모를 수 있다. 행복한 미래를 결정하면서도 불행을 두려워하고
있다. 현재 지상에 불행이 있고 미래의 행복을 믿는 것도
불행이다. 진정한 행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와 구주로 모시면서 허무한
순환설에 끌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반복한다는 견해는 플로톤 학파의
포르피리가 있다.
주기설은 시간에서 반복하는
개념이다. 인류는 시간과 함께
존재하였다. 시간 안에서 형성된 주기적 반복 개념은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방식은 아니다.
22장. 창조주 하나님께서 한 사람(아담)을
창조하셨다. 동물들은 쌍으로 창조하였지만 인간은 단독자로
창조하셨다. 창조된 인간은 창조주께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만 만든 것은 사람이 홀로
살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여자를
만드셨다(창
2:22). 그래서 인류 전체가 완전히 한 사람에게서 유래한
것을 알게하였다.
23장.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이 죄를 지으라는 것을
예지하셨다. 그리고 은혜로 생명의 길도
예지하였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알게하신 것은 한 사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24장.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형상은 이성과 총명을 갖춘
영혼이다. 숨을 불어넣을 때에 영혼을 창조하신
것이다.
25장. 플라톤은 최고신과 저급한 신이 창조한 것으로
말하지만, 성경은 오직 창조주께서만 창조한 것으로
말씀한다. 천사는 창조에 참여하지 않는
피조물이다.
26장. 모든 자연은 한 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다스리신다.
27장. 플라톤은 신이 천사를 천사는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는데, 잘못된 이해이다.
28장. 한
사람에서 인류를 조성하였다. 첫
사람에서 두 도시, 두
사회가 시작하였다. 한
도시는 악한 천사와 벌을 받을 것이고, 다른 도시는 선한 천사와 함께 상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