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19장. 진정한 명예심과 권력욕에는 차이가 있다. 권력욕은 사람들이 칭찬하면 만족하고, 명예심은 칭찬하는 사람들을 불쾌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 명예를 얻는 방법은 선한 방법과 선한 척해서 얻는 방법이 있다. 덕을 소유한 사람은 명예를 포기하며 하나님을 높이려고 한다. 사람들은 더 큰 명예를 얻기 위한 행동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생각을 고칠 수는 없다. 또한 칭찬하는 사람을 멸시하거나 의심하는 것도 성질이 급한 것과 멸시하는 행동이다. 진정으로 선한 사람은 구원을 소중히 여기며, 원수를 사랑하며 그들이 하늘의 도성의 동일한 시민이 되기를 소망한다. 명예를 멸시하고 지배만을 탐하는 사람은 악덕이 짐승을 능가한다. 이러한 첫 번째 예는 네로황제이다. 하나님의 자비에 의하여 참된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이 통치하는 기술을 갖추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인간사에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현생의 큰 덕성에 대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며, 완전한 의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자신의 부족을 통감한다. 진정한 경건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소망을 두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20장. 덕(德,virtue)을 쾌락과 관계시키는 철학자들과 최고의 선을 덕으로 선정한 철학자들이 있다. 쾌락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학파와 그것을 반대하는 스토아학파의 대립이 있다. 덕과 정의(正義,justice). 쾌락이 목적인 곳에서 덕과 정의는 인내와 신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스토아학파에게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진정한 경건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에게 소망을 두는 것이며, 진리를 기뻐하며 자신 안에서 불쾌한 것에 대해서 관심을 기우린다. 그리고 자신이 기쁨이 타인의 불쾌가 되지 않도록 염려하며 하나님의 자비로 치유와 감사 그리고 기도한다.
21장. 하나님께서 로마에게 국가를 허락하셨다. 콘스탄티누스에게도 율리아누스에게도 권력을 주셨다. 주피터에게 굴복당하는 것 등 모두가 포함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한 분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통치되고 인도한다는 것이다. 동기는 숨겨졌으나 부당하지는 않다.
22장. 전쟁이 정의로운 심판이지 자비인지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의 결정에 있다. 로마의 전쟁은 속전속결도 있었지만, 50년이나 되는 삼니움 전쟁도 있었다. 전쟁에 대해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말할 수 없도록 했다. 로마인들은 기독교인 때문에 전쟁이 장기화된다는 비난을 하는데 무례한 공격이다.
23장. 하나님의 진정한 자비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것이다. 로마는 야만인 동고크족의 라다가이수스의(405년) 강력한 군대는 로마를 정복하여 날마다 제사를 한다고 위협했다. 로마를 정결케 하려는 하나님의 자비로 고토족을 놀랍게도 방어했다. 다음에 서고트족에 의해서 로마가 점령되었는데(410년), 그들은 기독교를 존중하고 보호했다.(참고. [로마제국쇠망사] 3권 30장)
24장. 로마는 기독교 황제가 통치해서 행복하고 평화롭지는 않았다. 자기의 마음을 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5장. 콘스탄티누스에게 특별히 베풀어진 성공과 그것을 목표로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황제들을 빨리 제거시켰다. 26장. 데오도시우스는 겸손한 마음과 기도하며 행동했고, 모든 사람들이 칭송했다. 데오도시우스의 선행은 자비는 넓고 공평했다. 역사에서 백성은 현세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영생을 봐야 한다.
고경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