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이야기

칼빈에 대한 일반 - 펌 -

형람서원 2006. 4. 6. 10:19
728x90
반응형
  • 1. 칼빈의 생애  원문 : 개혁주의 인명사전 , 정성구 편저, 총신대학교 출판부, 2001/7/20
  •      칼빈 존,(Calvin, John : 1509-1564)
  •   스위스 제네바의 개혁자인 칼빈은 1509년 7월 10일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70마일 가량 떨어진 노용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본래 노동자였으나, 부지런함과 조직력을 인정받아 노용관구의 여러가지 업무를 보다가 최종적으로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는 일을 하였다. 12세 때 이미 칼빈은 그의 부친의 세심한 노력의 덕택으로 성직록을 부여받았으며, 1527년에도 또 다른 성직록을 수여받았다. 당시 이 성직록은 장학금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   한편 칼빈은 카페트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후 1513년에 파리로 간 그는 라 마르슈 학교에 입학하여 부친의 뜻에 따라 사제로서의 길을 준비하였다. 특히 그곳에서 그는 라틴어 문법교사인 마튀렝 꼬르디에를 만나 라틴어의 기초를 닦았다. 곧이어 몽테귀 대학으로 진학한 칼빈은 성경과 스콜라주의를 비롯한 엄격한 문학 교육을 받았으며, 1528년에 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그러나 그의 부친이 예기치 않게 노용 관구에서 곤란한 문제에 휩쓸려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그 결과 자신의 아들이 사제가 아니라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였다. 부친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한 칼빈은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오를레앙으로 옮겨갔다. 오를레앙 대학교로 진학한 그는 법학자인 피에르 드 레스트왈르 교수와 루터파이자 헬라어 전문가인 멜키오르 볼마르 교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듬해에 그는 부르쥬 대학교로 옮겨가 그곳에서 계속 법학 공부에 전념하였다.
  • 그 후 1531년 칼빈은 오를레앙 대학의 한 법학 교수의 학설에 관한 출판 문제로 파리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결국 그해 5월에 부친이 사망하였다. 이후로 칼빈은 법률학 공부를 포기하고 실질적으로 좋아하였던 고전 문학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파리로 되돌아온 칼빈은 1532년에 처녀작인 [세네카의 관용론에 관한 주석]을 출판하였는데, 곧 학계에 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이전의 결심과는 달리 오를레앙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한편 칼빈은 하나님의 은혜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갑작스러운 회심을 체험하였는데, 이후로 종교 개혁자가 되었다. 그러나 칼빈은 이러한 회심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심의 시기를 밝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1527년부터 1534년 사이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   그후 파리로 돌아온 칼빈은 한 사건에 연루되어 피신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사건은 1533년에 파리 대학교의 총장이자 칼빈의 친구인 니콜라스콥이 총장 취임연설에서 공식적으로 마르틴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를 지지한 사건이었다. 그 일로 콥은 피신해야 하였으며, 이 사건에 관련된 칼빈도 같은 운명이었다. 결국 칼빈은 1535년에 스위스의 바젤로 도피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인문주의자인 데지데리우스 에라스무스에게서 성경을 연구하는 방법을 비롯한 많은 것을 배웠다. 아울러 1536년에는 그의 대작인 [기독교 강요]의 초판을 라틴어로 출판하였는데, 그 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원래 그 책은 프랑스인들을 위한 신학 입문서로 계획된 것이었다. 그후에 프랑스 개신교에 박해가 일어나자, 칼빈은 프랑스 개신교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한 목적을 그 작품에 추가시켰다.
  •   초판의 기독교 강요는 전체 6장으로 구성된 소책자였다. 그러나 그 책은 1559년 최종판이 나올 때까지 계속 증보되었으며, 총 라틴어판 8판과 부러판 5판으로 출간되었다. 특히 최종판은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라 4권으로 구성되었다. 1권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대해서, 2권은 구세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관해서, 3권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축복과 효과들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4권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초대하는 외적인 수단들에 대해서 다루었다.
  •   같은 해에 칼빈은 집필 활동과 더불어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스트라스부르로 가서 정착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라나 노용에서 스트라스부르로 직통하던 길이 프란시스 1세과 독일황제 카알5세의 전쟁으로 통행이 차단되었기 때문에 우회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칼빈은 잠시 제네바를 경유하게 되었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의 물꼬를 튼 기욤 파렐이 이소식을 전해 듣고 칼빈을 찾아와 제네바 시의 종교개혁을 완성하는 것을 돕도록 간청하였다. 처음에 칼빈은 자신이 그 일에 부적합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연구를 위한 자신만의 계획이 있음을 밝히면서 파렐의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러자 파렐은 저주에 가까운 말로 칼빈을 위협하였는데, 결국 칼빈은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파렐의 간청을 수락하였다.
  •   한편 제네바에 칼빈은 성 베드로 성당에서 바울 서신을 강해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제네바는 텃세가 강한 도시였기 때문에 칼빈은 처음에 "저 프랑스인"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가 1536년 10월에 로잔에서 벌어진 성찬에 대한 논쟁 이후로 사정은 달라졌다. 당시 그는 그 논쟁에 참석하여 로마 카톨릭의 오류를 교부 신학을 인용하면서 하나 하나 반박하였는데, 결과적으로 그 논쟁은 개혁자들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로 인하여 그 이듬해에 칼빈은 비로소 정식으로 설교할 수 있게 되었다.
  •   그후 칼빈은 제네바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하여 파렐과 함께 [개혁문건]을 작성하여 시 의회에 제출하였다. 그 문건에는 성찬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매주 시행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만찬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감시인을 두어 사람들의 생활을 감독하게 하며 수찬 정지를 명할 권한이 교회에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시편 찬송의 사용과 교리 문답의 교육의 필요성까지 언급하고 있었다. 아울러 칼빈은 [개혁문건] 외에 어린이의 교육을 위한 교리 문답인 [제네바 교회에서 사용되는 교육과 신앙고백]을 작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21개 조항의 신앙 고백서를 마련하였다.
  •   그러나 [개혁문건]은 시 의회에 의해서 검토 과정을 거치면서 몇 가지 사항에서 수정되었다. 우선 시 의회는 성찬 조항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였다. 시 의회는 끝까지 성찬을 일년에 4차례만 거행할 것을 고집하였으며, 칼빈은 어쩔 수 없이 양보하였다. 또한 장로에 대한 임명권이 시 당국자들에게 주어졌다. 그 외에도 시 의회는 치리의 권한에 대하여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결국 칼빈과 파렐에 의해서 제시된 문서들이 시 의회를 통과하자, 곧 그들은 제네바 시민들에게 이 신앙 고백서에 서명 동의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그러자 칼빈과 파렐은 신앙 고백을 하지 않는자에게 성찬을 베풀기를 거부하였다. 반면에 시 의회는 누구에게나 성찬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시 의회는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칼빈의 예배 의식을 포기하고 베른의 예배의식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이로써 시당국자들은 세속 정부가 교회 생활을 지배할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였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조치에 불만을 품은 칼빈과 파렐은 1538년 부활절에 설교는 하였으나, 당연히 거행되어야 할 성찬을 시행하지 않았다. 성찬의 거룩성을 해친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결국 제네바 의회는 두 사람을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
  •   추방된 칼빈과 파렐은 파리로 갔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파렐은 뇌샤텔로 초빙되어 갔다. 반면에 칼빈은 그대로 머물면서 저술활동에 전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마르틴 부처를 비롯한 스트라스부르의 개혁자들의 끈질긴 초빙과 위협에 못이겨 결국 칼빈은 스트라스부르행을 결정하였다. 그곳에 도착한 칼빈은 곧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있던 프랑스 피난민 회중의 목사로 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성경을 강해하는 일에 전념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배에 새로운 것을 많이 도입하였다. 예배 시에 프랑스어로 된 시편 찬양을 도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일정한 형식이 없이 진행되던 재침례파의 예배를 반대하면서 새로운 예배의 절차를 만들었으며, 로마 카톨릭의 고해 성사 대신에 목사와의 개별적인 면담을 시행하였다.
  •   이러한 것들을 시행함에 있어서 칼빈은 부처에게 많은 빛을 졌다. 상당 부분이 부처에게서 배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칼빈이 훗날 제네바에서 실시하게 될 4중직과 예배절차 그리고 교리 문답의 구조 등이 그러하였다. 이미 조직 신학 분야에서 탁월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던 칼빈은 당시 부족하였던 실천신학 분야의 지식을 부처를 통해서 보충받았던 것이다.
  • 아울러 칼빈은 목회자로서의 활동 이외에 장 스튀름이 교장으로 있던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어 신약 성경을 가르쳤다. 교수로 활동하는 중에도 틈나는 대로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 그의 주요 저서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우선 그는 1539년에 [기독교 강요]의 수정 증보판을 발행하였으며, 1541년에는 불아판을 내놓았다. 그리고 1539년에는 최초의 주석서인 [로마서 주석]을 발표하였으며, 더불어 같은 해에 제네바인들에게 로마 카톨릭으로 되돌아 올 것을 권유하였던 추기경 사도레토를 반박하는 글인 [사돌레토에 대한 답변]이라는 서신을 작성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칼빈의 주도 하에 찬송집인 [노래로 된 시편들과 성시들]이 출간되었다.
  •   그 후 칼빈은 스트라스부르에서의 체류 기간 중 후반기를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간의 논쟁에 참여하는 일로 보내었다. 그러한 논쟁들은 프랑크푸르트, 하게나우, 보름스 그리고 레겐스부르크 등지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때마다 칼빈은 대표자의 자격으로 참석하여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당시 그는 논쟁에서 만난 필립 멜랑히톤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나아가 칼빈은 1541년에 성만찬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작품인 [주의 만찬에 대한 소고]를 발표하였다. 이 저서에서 그는 루터파와 쯔빙글리파의 양극단을 피하면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편재성을 근거로 실제적인 임재를 역설한 루터에 반대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심을 주장한 점에서 쯔빙글리를 지지하였다. 반면에, 성찬을 단지 상징으로서만 이해한 쯔빙글리를 반박하고 그리스도가 성찬에 임재하신다고 주장한 점에서 루터에 동의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칼빈은 성찬을 받을 때에 신자들이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신앙으로 받게 되는데, 그 신앙을 통하여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참 실체에 참여하게 된다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   한편 1540년 말에 제네바에서 파렐을 지지하는 기욤파가 권력을 잡게 되자, 그들은 칼빈을 그들의 도시로 다시 데려오고자 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스트라스부르에서 맛본 행복과 평안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 그들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이때 파렐이 나서서 이전과 비슷한 말로 칼빈을 설득하였다. 곧 두려움에 사로잡힌 칼빈은 제네바로 되돌아 가기로 결정하였다. 1541년에 제네바에 도착한 칼빈은 이전에 중단되었던 곳에서부터 성경을 강해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그는 [교회법령]을 작성하였는데, 시의회의 재가를 얻어 곧 시행에 들어갔다. 그 법령은 부처의 영향을 받아 작성된 것으로 목사, 교사 장로 그리고 집사의 4가지 직분을 설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에 대한 종교 교육의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1537년에 작성된 것과는 달리, 부처가 작성한 교리 문답의 구조에 따라 [교리문답]을 새로 작성하였다. 또한 그는 [교회의 기도와 찬송의 형식]이라는 예배 모범을 만들었다.
  •   이러한 일련의 개혁과 더불어 칼빈은 목사단과 12명의 장로들로 구성된 감독법원을 조직하였다. 감독법원은 신자들을 감독하고 훈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수찬정지나 출교를 가할 수 있는 치리의 권한을 부여하였다. 사실 칼빈은 주의 성찬을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그것은 "주님의 성찬을 부끄럽게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기를 결정하겠다."는 칼빈의 고백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한 성찬의 거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치리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치리는 단순히 억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자들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 당국자들은 치리의 권한이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조치를 극구 반대하였다. 이미 시 정부는 장로를 임명하는 권한을 자신들의 권한으로 확보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치리의 권한까지도 자신들이 독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몇몇 시민들마저 그러한 조치를 종교적인 규율로써 자신들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서 비판하고 나섰다. 이 문제에 얽힌 갈등과 논쟁은 칼빈이 사망한 1564년 까지 지속되었다. 사실 칼빈이 신자들에 대한 치리권을 교회의 권한으로 규정한 것은 교회의 권력과 정부의 권력이 철저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강한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한 확식에 따라 칼빈은 정부가 교회의 권한에 간섭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였던 것이다.
  • 한편 칼빈은 성경의 진리를 보호하고 수호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다. 먽 1534년에 그는 애가서의 영감성을 거부하고 자신의 사도신경의 해석을 비판한 세바스티앙 카스텔리용과 심각한 논쟁을 벌였는데, 결국 카스텔리용은 추방당하였다. 그후 1551년에 파리 출신의 의사였던 제롬 볼섹이 칼빈의 예정론을 반대하자, 곧 칼빈은 반격에 나섰다. 그 사건은 재판으로 이어졌으나,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칼빈이 일련의 강의를 준비하여 볼섹의 견해를 철저하게 반박하였는데, 이 후로 볼섹은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논쟁은 1553년에 스페인 출신의 의사였던 미카엘 세르베투스와의 논쟁이었다. 그는 그릇된 삼위일체의 교리를 유포하였기 때문에 칼빈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그는 제네바 시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어 화형을 당하였다.
  •   비록 많은 힘을 소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논쟁에서 승리한 칼빈은 제네바에 새로운 대학을 설립할 계획을 추진하였다. 때마침 베른 정부와 로잔 아카데미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 테오도르 베자를 비롯한 로잔 아카데미의 여러 교수들이 해임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곧 제네바로 이주하였는데, 이것은 칼빈에게 자신의 계획을 성사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결국 그들의 도움으로 1559년에 제네바 아카데미가 설립되었으며, 베자는 그 아카데미의 초대 학장에 임명되었다. 명실공히 이후로 베자는 칼빈의 후계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후 칼빈은 베자와 함께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신학 교육을 담당하면서 틈나는 대로 다양한 사람들과 서신 교환을 하였다. 그러나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이, 평소 병약하였던 그는 1558년부터 더욱 악화된 건강 때문에 고통과 어려움을 겪다가 1564년 5월 27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중세의 성자 숭배의 가능성 때문에 공동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묘비가 세워지지 않았다. 

  •  2. 기독교강요  원문 : 개혁주의 인명사전 , 정성구 편저, 총신대학교 출판부, 2001/7/20

  • 대체적으로 칼빈의 신학은 너무도 방대하여 몇 가지 중요한 자료들을 연구해야 파악이 가능할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자료는 [기독교 강요]이다. 그러나 [기독교 강요]는 성경연구를 위한 안내서로서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책으로 칼빈의 주석서들이 있는데, 칼빈은 그 주석서들을 [기독교 강요]를 보충해주는 책이라고 언급하였다. 그 외에 칼빈의 사상적인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수많은 소론들과 논문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설교집들이 있다. 특히 칼빈이 종교 개혁 작업에 착수할 때 설교를 주된 방법으로 사용하였음을 주목한다면, 그의 설교를 연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자료는 다양한 사람들과 주고받은 서신들인데, 이것들은 칼빈이 종교적 문제들에 대해서 쏟은 관심만큼이나 그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인 흐름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명하였음을 입증해 준다.
  • 칼빈의 신학은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주로 그의 대표작인 [기독교 강요]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제 1권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존재보다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관심을 두고서 다루었는데, 이것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구속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다. 이 두 가지 지식 중에서 칼빈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우선적으로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인간과 우주 속에 스며들어 있다고 하였다. 먼저 그는 인간의 정신 속에 하나님에 대한 직관, 즉 종교의 씨앗이 있다고 역설하였는데, 이것은 인간이 종교적인 존재임을 잘 보여준다. 다음으로 그는 하나님이 손수 창조하신 우주를 "눈부신 극장"이라고 비유하면서 우주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솜씨와 같은 증거들과 흔적들이 드러나 있음을 강조하였다.
  • 그러나 칼빈은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함으로써 인간의 종교성이 흐려졌으며, 그로 인하여 인간이 자신과 자연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았다. 단지 인간이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관계는 인간의 구원에 대하여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국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에 맞게 자신에 관한 계시를 주시기로 결정하셨다. 그 계시, 곧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육신의 형태로, 그리고 성경이라는 기록된 형태로 주어졌다.
  • 한편 칼빈은 성경을 안경에 비유하였다. 즉, 시력이 약한 사람이 안경의 도움으로 책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듯이, 성경은 인가의 어리석음을 넘어서서 참되신 하나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성경이 성령을 통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고 강조하였다. 나아가 그는 성경이 성령의 내적인 증거에 의해서 파악되고 해석된다고 봄으로써 성경의 자증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성령과 성경의 관계는 성경을 "성령의 학교"이라고 언급한 칼빈의 말에서 가장 잘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 다음으로 칼빈은 삼위 일체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기를, 하나의 본질이신 하나님이 세 위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비록 그가 보기에 이러한 용어들이 성경적인 용어는 아니었으나, 세르베투스와 같은 이단들의 오류를 비판하기 위해서 발표한 것임을 인정하였다. 무엇보다도 칼빈에게 있어서 특이한 점은 여러 종교회의의 신조들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이러한 삼위일체성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음으로써 그 교리의 진리됨을 증명하고자 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이것은 칼빈이 어떠한 종교개혁자들보다도 "오직 성경"의 원칙을 더 충실히 지켰음을 잘 보여 준다.
  • 계속하여 칼빈은 삼위 일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 사역에 관하여 진술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위하여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보았다. 나아가 칼빈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영원한 통치자이실 뿐 아니라 보존자이시라고 언급하였다. 즉,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신론의 주장처럼 만물을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만물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책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님을 단호하게 지적하였다. 도리어 칼빈은 인간의 신중함을 예를 들어 인간의 책임이 유효함을 입증하였다. 그러나 섭리와 관련하여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악의 문제인데, 칼빈은 그 문제가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의 무지함으로 인하여 이해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더 이상 알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 [기독교 강요]의 제 2권은 구속주로서의 하나님의 지식을 다루고 잇다. 칼빈은 인간의 원죄를 정의하기를, 인류의 대표인 아담에게서 유전되는 인간 본성의 부패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 앞에서 심판 아래에 있는 죄인들인 것이다. 그런데 칼빈은 인간이 죄인임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율법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특히 그는 루터가 주장한 율법의 두 가지 용도, 즉 고발적인 기능으로서의 "신학적인 용도"와 인류 공동체를 위한 "정치적인 용도"만을 주장하지 않고, 율법의 제3의 용도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뜻으로서의 율법의 용도까지 주장하였다. 여기서 성화에 대한 칼빈의 강조점을 엿볼 수 있다.
  • 다음으로 칼빈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먼저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해서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말하였다. 또한 칼빈은 선지자와 왕 그리고 제사장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언급하였다. 이러한 직책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일구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구속을 확보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칼빈이 이해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단지 십자가와 부활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성령을 통하여 통치하시는 것과 재림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다.
  • 한편 [기독교 강요] 제 3권은 그리스도가 이룩한 은혜로운 구속 사역이 성령을 통하여 어떻게 신자들에게 적용되는지를 주로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칼빈은 성령의 사역과 역할을 가장 중요시 하였는데, 그 이유는 신자들이 성부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만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령의 활동을 전제한 가운데서 칼빈은 신앙, 중생과 회개, 칭의, 성화, 부활 등과 같은 구원에 관한 교리를 제시하였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신앙이 다른 교리들보다 가장 먼저 먼저 언급되는 점이고 또한 그 신앙이 하나의 지식으로 정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중생과 회개는 동전의 양면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칭의와 성화는 그리스도의 연합으로부터 비롯되는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은혜들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 특히 3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들 중 하나는 칼빈의 예정 교리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특이한 점은 예정 교리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언급되기 보다는 도리어 구속의 관점에서 이야기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복음의 적용과 관련된 칼빈의 목회적인 관심을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다. 한편 칼빈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영원 전에 몇몇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선택하신 반면, 다른 사람들을 멸망하기로 결정하셨다는 이중 예정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택과 유기라는 이중 예정론이 인간의 복음 전파의 노력을 무효화 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것은 선택과 유기의 여부가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주권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칼빈의 예정론이 그리스도 중심적인 특성을 소유하고 있음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점이다.
  • 마지막 제 4권에서 칼빈은 은혜의 외적인 수단들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여기서는 교회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칼빈은 어거스틴의 교회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우선 그는 교회를 "가시적인 교회"와 "불가시적인 교회"로 구분하여 정의하였다. 가시적인 교회란 선택된 자들로 구성된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본 반면, 불가시적인 교회란 순수하게 설교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당하게 시행되는 성례전 그리고 치리와 같은 교회의 외적인 표지들을 소유하고 있으나, 외형만 신자인 위선자들도 포함하고 있는 교회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실제로 신자들이 관여해야 할 교회가 바로 가시적인 교회라고 보았는데, 이 가시적인 교회를 어머니로서의 교회라고 비유하였다. 아울러 가시적인 교회에 대한 그의 강조는 루터의 관점과는 달리, 교직제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칼빈이 제시한 4중직이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 다음으로 칼빈은 성례전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그가 이해한 성례전이란 언약의 표증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신빙성을 입증하고 확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칼빈은 세례와 성찬만을 인정하였다. 그에 따르면, 세례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음을 보여주는 표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표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만찬 교리에 대해서 칼빈은 루터와 쯔빙글리의 중간 입장을 취하였다. 성만찬 교회는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 마지막으로 칼빈은 시민 정부에 관하여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였다. 그는 국가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이중적인 정부를 제시하였는데, 그 하나는 영혼의 삶과 관련된 영적인 정부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삶과 연관된 정치적인 정부를 분명히 하였다. 특히 칼빈은 성경에 기초하여 적극적인 국가관을 피력하였는데, 즉 하나님의 통치자가 하나님의 대행자인 공직자들과 법의 제정 그리고 공평한 판결을 통하여 실현된다고 하였다.
  • 결과적으로 칼빈의 신학은 다음과 같은 강조점을 갖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의 신학은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 하에서 모든 교리의 근거와 기초를 성경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둘째, 칼빈은 루터와는 달리 자신의 신학으로써 창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크게 강조하고자 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칼빈의 신학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관련된 성화라는 주제를 대단히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 3. 칼빈의 성경론 원문 : http://www.happychapel.or.kr/divinity/divinity04.htm 
  • 칼빈의 성경론
  • 1. 서 론
    2. 본 론
    1) 객관적 계시로서의 성경
    2) 성령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성경
    가) 유기적 영감
    나) 완전 축자 영감
    3) 최종 유일의 권위인 성경
    3. 결 론
  • 서 론
  • 성경관은 신학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대한 관점은 그의 사상과 믿음과 삶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성경 이해의 주관주의에 치우치는 자유주의와 신비주의에 대항하여 우리는 옳바른 성경관을 갖도록 함이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여 칼빈주의 성경관을 연구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와 칼빈주의 신학자들의 성경에 대한 논의를 살펴 보면서 칼빈주의 성경관을 밝히고자 한다.
  • 본 론
  • 1) 객관적 계시(객관적 계시)로서의 성경
    현대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의 성경에 대한 근본적 태도는 동일한 부분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는 성경에 대한 무오성(무오성)을 부정하는 것과 계시의 주관성(주관성)만을 강조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바르트는 단순히 책으로서의 성경과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구별짓는 요소는 인간의 반응이라고 하였다 . 따라서 바르트와 부룬너는 완성되어 이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계시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강조하기를, "계시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며 동시에 창조적으로 사람에게서 소원된 응답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 또한, "계시의 말씀은 옛적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전해졌으며 또한 여전히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지속적(continuos) 혹은 아마도 더욱 낫게는 반복(frequentative)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다. 계시는 결코 완성되지 않으며 결코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객체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 계시의 객관적 존재를 부인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계시자체와 계시의 증거를 구분 짓는다. 그러나 16세기의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성경에서 영구적인 형태로 주어졌다고 하였다 . 그리하여 칼빈주의 교회는 성경의 객관성과 성령의 조명에 의한 주관적 요소를 동시에 강조해 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성경"의 제 1절은 성경의 객관성을 그 성경의 "기록 됨"을 통해 고백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여러 때에 여러모양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후에는 진리를 더욱 잘 보존하시고, 전파하시며 육신의 부패와 사탄과 이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교회가 더욱 공고히 서고 더욱 더 위로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그와같은 것들을 온전하게 기록하시기를 기뻐하시었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의 기록을 가장 필요하게 만들었으며..."라고 하였다. 그리고 같은 장 제5절에는 성경의 권위와 신적 온전성에 대한 수납과 확신의 주관적인 면을 고백하고 있다.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신적권위에 대한 우리의 온전한 납득과 확신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그 말씀에 의하여 그리고 그 말씀으로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 달려 있는 것이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
  • 이렇게 개혁 교회는 성경의 객관성과 성령의 조명에 의한 주관성을 동시에 주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더우기 성경의 객관성은 오늘날 더욱 강조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새로운 신적 계시를 받았다는 주장과 함께 자유주의적 주관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탈 성경적 행태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의 객관성의 강조는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방패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성경을 떠나 직접 계시를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 광란에 사로잡힌 자들이라고 비난하여 말하기를 "...왜냐하면 최근에 경솔한 사람들이 더러 생겨서, 아주 거만하게 마치 성령의 가르침을 직접 받는 것처럼 자랑하면서 성경 읽는 것을 전적으로 멸시하는 한편, 그들의 표현대로 죽은 그리고 죽이는 문자를 아직도 따르는 사람들의 그 단순성을 비웃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교리를 감히 유치하고 천한 것이라고 멸시 할 만큼 그들을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그 영이란 도대체 어떤 영인가라고 나는 묻고 싶다" 고 반문하며 성경의 객관적 계시를 떠나 주관주의의 환상에 빠져있는 자들을 공박하고 있는 것이다.
  • 기독교 전래 2세기를 바라보는 한국교회는 사실에 있어서 이와 같은 신학적 문제와 관련하여 깊은 혼돈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로 하여금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 말씀을 외면하고 성령의 역사만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경향과, 또한 다른 편에 배타적인 강조점을 두면서 성령의 역사를 간과하는 지성(지성) 정통주의적인 합리주의 경향을 목도하면서 올바른 방향설정에 대한 상황적 요청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자계시(자계시)는 본질상 말씀계시이다.
  • 그러나 그의 행동 역시 계시에 속한다. 왜냐하면 객관적 계시에는 '말씀계시'뿐만 아니라 '사건계시'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일반계시나 특별계시는 양자가 다 객관적 계시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닌다. 그러나 전자와는 달리 후자에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선지자적 영감과 사도적인 영감이 포함된다는 사실에서 상이점이 발견된다. 특별계시가 종결된 이후, 우리에게 있어서는 성경이 곧 객관적인 특별 계시요, 성경 외에 더 이상 다른 특별 계시를 발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객관적 계시에 대해 헤르만 바빙크는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하고 수납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나타난) 객관적 계시로서는 충분치 않다. 거기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동반해야만 한다."고 하여 객관적 계시외에 성령의 조명, 또는 성령의 내적 증거를 '주관적 계시(주관적 계시)'라 칭했으나, 그가 말한 의도는 객관적 특별계시의 내용의 불충족성(불충족성)을 말함이 아니다 .
  • 바빙크는 그의 책 '신학의 방법과 원리'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다루고 있다. "계시의 목적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로 지어, 천국을 땅 위에 세우며, 세상을 죄의 권세로부터 구속하고, 이 모든 것 가운데,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더우기, 아무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서 객관적인 특별계시가 주어져도, 타락한 인간이 이러한 계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이로써 아들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는, 성령의 사역이 계속 있어야만 한다. 학문을 연구할 객관적인 세계를 관찰하고, 이해하며, 정죄하고, 판단하는 주관이 있어야 한다. 객관적인 종교에 주관적 종교가 서로 응하는 것처럼, 기독교의 객관적인 계시는 그것을 받는 주체 안에 "내면적 계시"를 요청한다.
  • 오늘날에는 많은 신학자들이 이러한 내면적 계시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은 바로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것이 객관적 계시와 연관을 가질 때에만, 바로 정립된다. 이로부터 벗어나가든지, 혹은 그것 위로 넘어서서 스스로 높은 체 하게 되면, 주관적인 계시는 그 표준을 상실하게 되고, 이로써 각양의 미혹과 미신에 이르는 문을 열게 된다. 그러므로 주관적 계시에 관한 해석은 오직 객관적인 계시에 의하여 바로 잡아져야 한다. 객관적 계시는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것은 다 계시되었으므로, 어떠한 부분만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아니했다. 만약 객관적 계시가 다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신인(신인)의 합일(합일)에 관한 의식(의식)을 밝히고, 이것을 강화하는데 그친다든지, 혹은 다만 경건한 감정을 되살아나게 한다든가, 혹은 다만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의식을 높여, 천국건설에 함께 참여케하는 것으로만 본다면, 성령을 통한 내면적 조명의 필요성을 깊이 깨닫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특별한 은혜"(gratia specialis)로 말미암아 세상과는 구별된다. 이렇게 특별히 구별된 성령의 사역,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주관적인 성령의 사역을 "넓은 의미에서" 계시(openbaring)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이미 주어진 객관적 계시에 첨부한다는 의미에서 "계시"라고 하지 않는다. 이 주관적 계시는 다만 신자로 하여금 객관적 계시를 알게 하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도록 한다. 하나님의 객관적 계시에 대하여, 인간은 성령의 주관적 계시의 역사에 의하여 종교적인 응답을 하며 하나님을 섬긴다. 이러한 바빙크의 견해는 비록 그의 용어가 혼란을 일으킬 요소도 없지 않으나 개혁파 전통과 차이가 없음을 알수 있다.
  • "성령의 내적 조명"이라 하든 '주관적 계시'라 부르든 이 성령의 주관적 사역은 객관적 계시에 동반되어야만 한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개관적 계시에 새로운 요소를 덧붙인다는 의미의 '계시'로는 결코 볼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계시를 방편으로 죄인들을 그들의 존재(실유)와 의식에서 계속적으로 갱신(갱신시키신다. 객관적 계시인 성경은 교회의 확장과 지도,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를 세우는 일을 위한 성령의 중요한 도구이다 . 이렇게 칼빈주의 성경관은 객관적 계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2) 성령의 영감(영감)에 의해 기록된 성경
    객관적 계시로서의 성경은 성령의 영감(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 영감(영감)의 교리가 의미하는 바는 성경이 중대한 사실(사실)의 기록(기록)일 뿐아니라, 그 기록은 진리(진리)이며 그의 저자들은 그들 자신의 사고와 표현의 습관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류로부터 보호되었으므로 그들의 소산인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무오(무오)한 표준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영감(영감)에 대한 확신은 메이첸의 말과 같이 성경의 진실성과 진리성, 무오성, 권위성과 연결되어 있다.
  • 그러므로 성경의 영감성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칼빈주의 교회의 전통은 신앙고백서에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신앙고백의 처음엔 항상 "성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성경의 영감과 그에 따른 권위를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칼빈주의 성경관에서 핵심적 사실이라 할 수 있는 영감의 성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가) 성경의 유기적 영감(영감)
    루이스 뻘콥은 "유기적(유기적)이라는 용어는 하나님께서 성경 기자들은 마치 기자가 펜을 사용하는 것처럼 기계적인 방식으로 사용하셨거나 그가 그들에게 쓰기를 원하신 말씀들을 그들의귀에 속삭이지 않으셨으며 다만 그들 자신의 내면적 존재(실유)의 법칙과 조화되는 유기적 방식으로 작용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쓰이고 있다" 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또한 그들이 단어들을 선택하고 자신의 사상들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유기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지도하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견해에 대해 평하기를 "이 견해는 분명히 성경의 표현과 잘 조화가 된다. 그것은 성경의 기자들이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 어떤 경우에 그들은 미리 그들이 기록한 일들을 조사하였다(눅1:1-4).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기서의 저자들은 반복하여 그들의 근거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예언자들의 멧시지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환경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으며 또한 신약의 서신들도 우연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시편 기자들은 종종 그들 자신의 경험들과 죄, 용서에 대해 (시32:과 51:), 둘러싸인 위험들과 은혜스러운 구출(시48:과 116:)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시인들과 선지자들의 숭고한 시와 시적인 언어와 병행하여 우리는 역사가들의 일반적인 산문을, 그리고 이사야의 순수한 히브리어와 병행하여 다니엘의 아람어적인 색채를 가진 히브리어를, 바울의 통용적(방언적)인 체제와 병행하여 요한의 단순한 언어를 찾아볼 수 있다.
  • 이와같이 성경 그 자체는 그것이 기계적으로 영감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성령은 기자들을 그들의 인격(personality)를 억압함이 없이 그 자신이 그들을 각기 임무를 위해 조성하신대로 사용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자격을 부여하셨고 지도하셨으며 그리하여 성경책들을 유기적으로 영감하셨다" 하였다. 성경의 영감에 대한 칼빈의 입장은 "영감을 주다", 혹은 "영감"이라는 용어를 통하여 표현될뿐만 아니라, 성경의 신적 기원을 나타내 주는 다른 표현 양식들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 예를 들면 "주님의 입", "성령의 학교",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경속에서 말씀하신다"는 표현 양식이 그것이다. 칼빈은 인간 기자들이 성령의 영감에 너무 압도 당해서 그들은 성령의 확실하고 성실한 서기로서 봉사하여 "성령이 부르는 대로" 성경을 기록했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칼빈은 디모데 후서 3장 16절에 대하여 주석하기를 "성경에서 유익을 얻고자 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실한 원리로써 받아들여야만 한다. 곧 율법과 예언서들은 인간의 쾌락을 위하여 전수된 것도 아니며, 그 근원이 인간의 정신에서 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성령에 의하여 구술되어진 것이다." 칼빈은 구술이란 용어를 그의 주석 전반에 걸쳐, 특히 예레미야와 바룩에 대한 토론에서 사용한다 .
  •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이 구술에 대해 언급할 때 , 여기에서 칼빈은 하나님이 성경안에서 주시는 교리나 가르침이란 배경하에서 이 "구술"이란 개념을 이해하였다 . 그러므로 칼빈이 구술에 대하여 말할 때마다 칼빈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단어와 사고에 따라, 그리고 자기 자신의 독특한 상황 안에서 신의 가르침, 혹은 복음의 메시지를 설명하였다는 사실을 크게 강조하였다.
  •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계시로써 인간들에게 주어진다.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기자들은 그들이 독자의 능력과 특별한 상황에 맞추어 전할 낱말을 선택하고 그들 자신의 생각을 청중들의 수준에 맞추었다. 신의 메시지는 인간의 언어와 사고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된다. 따라서 칼빈이 영감을 "구술"로써 이야기한 것은 이러한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워필드는 성경론의 해설로 유명하다. 그는 한 평생 성경의 완전영감과 무오를 변증했으며 당대에서 가장 잘 변호할 수 있었던 변증가였다. 그는 딤후 3:15-16을 해석하면서 15절에 '성경'이란 말이 한번 나오지만 이는 성경의 신적기원을 가진 것이라 강조했다. 또 16절의 '하나님의 감동'을 풀이하기를 이는 하나님의 기름부우심을 의미하며, '모든성경'은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라 했다. 또 벧후1:19-21말씀 역시 성경의 신적 권위를 가리킨다고 했다. '성령의 감동 하심을 입은'이란 본래 '운반'이라 뜻이란 뜻인데, 이는 마치 물건이 운반자로 말미암아 운반되어 목적지로 옮겨지듯 성령의 감동을 받은자는 자기 마음대로 전연 말할 수 없고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끌려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기계적 영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의 각 책은...철두철미하게 신약성경의 기록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책으로 인식되는데, 매 곳에서 하나님의 사상을 나타내고 있고, 사람이라는 그들의 본성으로 왜곡시키지 않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을 통해 주어진, 매 곳에서 인간 저자의 시상을 나타내고 있는 그런 책으로 인식되었다"인간 저자들은 구애받지 않고 기록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임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에게 그들의 임무를 위해 필요한 한도까지 계시하셨다. 그 결과로 저자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신 바를 정확하게 기록했던 것이다. 헤르만 바빙크는 유기적 영감의 증거를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
  • 첫째, 성령이 선지자와 사도들 속에 들어가 그들을 사로잡고, 인도하사 그들 자신이 생각하며, 말하며, 또한 기록케 하신다. 성령의 강한 역사로 감동되었지만, 말하는 이는 역시 그들 자신이다(벧후 1:20). 신약이 구약을 인용할 때에, "제일저자"의 이름으로 한 것이 많지만(눅1:70, 행1:16 등), 제2 저자, 예 컨대, 모세, 다윗, 이사야의 이름으로 인용된 곳도 적지 않다(마13:14,22:43,요 1:23,46, 5:46,12:38 등).
  • 둘째, 소위 성령에 의한 <기록에의 충동(충동)>이 유기적 영감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의 직무가 반드시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고,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글을 썼다는 자체가 성령의 특별한 인도하심과 감동하심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 셋째,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기록의 단계로 넘어갈 때, 온전한 정신으로 자신을 보며, 계시를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는 여유가 있었다. 시편에는 경건한 찬송이 담겨졌지만 탄식과 기쁨과 간구와 감사가 뒤섞여 있다. 저자들의 소망과 두려움, 믿음과 신뢰, 비참과 탄식이 그려져 있다.
  • 네째, 성경기자들의 문체가 다 각각 특색이 있고, 서로 다르다는 점이 유기적 영감을 지지한다. 요컨대, 성경기자들의 교양과 지식, 정서와 경험 등, 그들의 인격 전체가 유기적으로 사용되면서도, 성령이 제일저자가 되어, 그들을 감동하셨기 때문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기록되었다.
  • 나) 완전 축자 영감(완전 축자 영감)
    따라서 이러한 성령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성경의 성경의 영감은 "완전 축자 영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완전 축자 영감은 성경의 무오성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헤르만 바빙크는 유기적 영감설은 축자 영감을 배제하지 않는 다는 말로 이 사실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경을 기록할 때의 성령의 사역은 미리 양육한 성경저자들의 의식 속에 역사하여, 하나님의 뜻이 모든 계금의 사람들에게 가장 알맞게 좋은 방법으로 알려지도록, 저자들의 사상과 문체와 단어 선택까지 주관하셨다. 사상속에 문장이, 문장 속에 단어가, 단어 속에 자음과 모음이 서로 얽혔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었기 때문에, 어느 하나에 고집하여, 서로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성경의 각 단어나, 일점일획이 개별적으로 무한한 뜻을 가진 것이 아니다. 한 문장 속의 적당한 위치에서 그 깊은 의미를 발휘한다. 성경을 원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개체와 부분이 서로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을 잊으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 유대 서기관들처럼 우매한 성경해석을 낳기 쉽고, 성경을 존대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게 욕을 돌린다.
  • 요컨대, 성경은 유기적으로 영감되었다. 이것은 물론 축자영감을 배제하지 않는다. 축자를 고집하는 나머지, 그 문장 전체나 사상을 무시하거나, 사상을 고집하는 나머지, 문자나 단어를 무시함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단어나 사상 뿐만 아니라, 저자의 경험, 재능, 인격 전체를 성령이 주관하사, 성경을 기록할 때,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표현되도록 감동하셨다. 또한, 워필드는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된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면서 동시에 영감된 인간 저자들의 개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인간의 책이라고 했다.
  • 그러나 그는, 성령과 인간 저자들의 관계를 성당의 색유리창을 통과하는 빛의 비유로 설명함으로써 인간 저자들의 오류가 불가피하게 성경 속에 들어 있다는 자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성당 창문의 색유리를 통과하는 빛이 하늘로부터 오는 빛이지만 그것이 통과하는 유리의 색조에 물들여지는 것처럼, 인간의 심혼을 통과하는 하나님의 어떠한 말씀도 그것이 주어지는 통로인 인간의 개성에 채색되어 나오는 것이 분명하며 바로 그 정도만큼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건축가에의해 색유리창의 색깔이 성당 속으로 밀려 들어가는 빛에 본래의 색조와 색질을 정확하게 주기 위한 분명한 목적으로 고안되었다면 어쩌겠는가?" 워필드는 이렇게 색유리 비유를 통한 성경유오 주장을 배격한 후, 성령과 인간 저자들의 '동류적'(concursive, confluent) 작용이 오류를 절대 불용(불용)하며 오히려 "그 작품에 인간의 힘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신적 성질을 제공한다"고 했다. 이러한 성경의 영감이 성경전체와 단어 선택에까지 미쳤기 때문에 성경은 무오 하다는 것이다 . 이처럼 성경이 동류적 작용을 통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때, 워필드는 어디까지나 성경의 원본을 두고 한 것이다. 워필드는 정확 무오성은 성경이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경 원본(원본)의 정확 무오성(정확 무오성)은 또한 성령의 내증(내증)에 의해 신자의 마음속에 확인된다. 워필드는 성령의 내증이 없이는 "성경이 우리 앞에 무기력하게 놓여 있고 우리의 가슴과 머리에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그것이 있으면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뿐 아니라 우리의 신지식의 활력있는 출처가 된다" 고 하였다. 그리고 존 머레이는 1960년경 기독학생회(I.V.F)에서 행한 연설에서 "성경의 영감은 축자 영감이다. 만약 성경의 영감이 단어들의 영감을 수반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결코 영감일 수 없다. 단어들은 교통(교통)의 수단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2:13에서 확언하는 것은 축자 영감과 다름없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앞 구절들이 보여 주고 있듯이, 바울은 성령에 의해 가르치신 진리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단어들'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우선 문법적이고 구문론적인 관계 속에 있는 단어들, 다음으로 더 넓은 문맥(문맥)과의 관계 속에 있는 단어들, 마지막으로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계시의 내용과 구조와 관련을 맺고 있는 단어들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성경의 견지에서 해석되어, 성경이 결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다. 그것들은 성령에 의해서 의도 되었다는 의미에서 성령에 의해 영감된 단어들이다. 이것은 성경의 의미와 내용은 성경이며, 우리가 임의로 성경에 부과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고하여 성경 영감의 축자성을 증거하였다.그리고 이러한 축자 영감은 성경이 완전 축자 영감되었다는 것은 물론이고 성경의 무오성의 근거이기도 한것이다.
  • 3) 최종 유일의 권위인 성경
    성경의 완전 축자 영감에 대한 고백은 당연히 그 성경의 권위에 대한 고백으로 인도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8절-10절은 성경의 권위를 성경의 영감성에 두어 고백하고 있다. "(옛날에 하나님의 백성의 자국어 였던)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신약이 기록될 때에 많은 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졌던) 희랍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직접 받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살피심과 섭리에 의해서 만대에 순수성이 보존되어질 권위가 있으므로 교회는 모든 논쟁에서 궁극적으로 신구약 성경에 호소를 해야 된다..정확 무오한 성경의 법칙은 성경 그 자체이다...신앙에 관한 모든 분쟁들은 최고의 심판자에 의해서 결정이 되어야 하고 제반 회의의 모든 신조, 고대 신학자들의 의견나들, 사람들의 학설과 개인의 영혼들도 그 심판자에 의해서 주관되어야한다. 그리고 그의 판결에는 전적으로 복종을 해야 되며,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외에는 어느 누구도 최고의 심판자가 될 수 없다 "고 하여 성경의 유일 최종의 권위를 고백한다.
  • 따라서 성경의 영감은 성경 권위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존 머레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진술들은 분명히 한편으로는 전통과 교회의 의견을 전거로 삼는 로마 가톨릭,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적인 내적 조명을 통한 특별계시에 대한 광신적인 주장을 겨냥한 것이다...이표현에서 한 구절이 종종 오해되고 잘못 적용되고 있다. 그것은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라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우리 마음에 말씀에 의해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는 성령'의 내적 조명을 가리키지 않는다. 우리에게 성경은 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의 살아 있고 영속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 개혁자들은 살아 있는 음성이 교회의 신앙과 지도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로마가톨릭의 주장을 상쇄하기 위해, 또한 신자의 내부에서의 성령의 음성을 중시하는 신비주의자들의 동일한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이러한 성령의 특질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10절에서는 상호 연관된 특질인 성경의 궁극성이 고찰되고 있는데, 총회의 성직자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매우 적절한 표현으로 신조화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 수많은 신학적 저작들, 가장 주목할 만하다고 하는 저작들을 읽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이 저작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성경 자체로 설명해 나가려 한다든가 성경 자체로 자신의 사고를 규제하려고 한다든가 하는 시도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 이것은 종교개혁, 특히 대표적 개혁자들의 규제 원리가 포기되었으며, 이와 함께 필연적으로 성경의 궁극성도 포기되었기 때문이다 "고하여 현대의 탈 성경주의적 경향을 비판하고 있다. 존 머레이는 계속하여 '성경의 유일 무이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 신앙의 모든 교리, 우리의 마음을 조명하는 구속의 모든 빛, 시간과 영원의 문제들에 대한 소망의 모든 빛에 있어서 성경의 메시지에 의존한다. 성경 없는 현재의 기독교는 상상할 수 없다" . "물론, 성경은 하나님이 아니며, 성경에 하나님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우상 숭배가 될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는 기독교이고, 주와 구원자 되시는 그리스도와 구원의 관계를 갖는 것은 길 잃은 자들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러나, 성경의 완전한 유일 무이성(유일무이성)은 손상되지 않는다.
  • 성경이 하나님의 지위, 그리스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한 성경의 관계 때문에 성경은 유일 무이하다. 성경은 우리가 은혜의 구속의 계시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구속주로서의 유일 무이성을 갖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지식, 믿음, 체험, 소망의 범위 안에 들어 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에, 성경은 유일 무이하다. 우리는 구원하고 구속하는 은혜에 관한 한, 성경 없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의지의 유일한 계시다. 이것이 성경의 유일 무이성이다" 고 하였다. 헤르만 바빙크도 성경의 권위에 대해 "성경의 권위는 모든 다른 권위를 훨씬 초월하여, 하늘 같이 높기 때문에,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순종해야 한다. 성경 이 권위는 절대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의 법황이나, 세상 정권이나, 총칼에 호소하지 않고, 오직 신적방법 곧 성령의 역사로써 자신의 권위를 행사한다 고 하였다. 그런데, 칼빈은 이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인식과 확신은 오직 성령께서 신자들의 마음 속에 불어넣어 주실 때 뿐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도날드 맥킴은 그의 논문 "칼빈의 성경관"에서 이렇게 말했다. "칼빈의 견해에 따르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임을 확신하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나 추측 이상에 있는것, 즉 성령의 은밀한 증거에 의해 이에 대한 확신을 얻는다." "성경에 대한 존경은 하나님께서 성경 속에서 인격적으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에서 나온다."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그들이 말할 때 인간적인 수단들을 결코 의존하여 증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들이 신에 관하여 말한 것에 대해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대신에 성령의 증거가 모든 이성보다 우월하며, 성경은 성령의 내적 증거로써 증명되기 전에는 그 말씀은 인간의 마음에 결코 수용되지 못 할 것"임을 칼빈은 말했다.
  •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로 그 영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신실하게 선포해야 함을 칼빈은 믿었다(기강1.7.4) . 성경의 자기 확증적 권위에 대한 칼빈의 이러한 강조는 "성경의 권위를 증거나 논리에다 굴복시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칼빈으로 하여금 생각나게 했다. 칼빈이 기록하길 "성경 안에서 유일하고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들 각자가 스스로 경험하는 것이다"(기강1.7.5). 따라서, 칼빈이 가장 강하게 강조한 바는 신자들의 마음 속에서 성경의 신적 권위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는 성령의 사역에 있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고 증거하여 주는 인간적 증거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성경이 독특한 장엄성, 강한 인상, 최고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기강1.8.1-4).; 기억들과 예언(제5-10부); 단순성, 천상적 성격, 그리고 신약의 권위(제 11부); 교회의 우주적 일치성, 순교자들의 믿음(제 12-13부), 그러나 칼빈에게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이러한 주장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불충분(헛된)한 것이었다. 이런 외적인 주장들이나 "인간의 증거들"은 적합하지 않다고 칼빈은 말했다.
  • 단지 이런 것들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간접적인 도움으로써" 유용하다(기강1.8.13).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 성경의 권위를 이미 받아 들인 신자들에게 이러한 증거들은 유용하다. 외적인 증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확실해지고, 성령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하도록 한 후에야 비로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끔 더 도와주게 된다. 그러나 그것들 자체로써는 결코 믿음을 세울 수 없다. 칼빈이 말했듯이 "성경의 확실성이 성령의 내적 설득 위에 기초할 때에만 비로소 성경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지식을 충분히 보여줄 것이다"(기강1.8.13) . 따라서 칼빈주의 성경관은 성령의 사역과 불가분리(불가분리)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최종적이며 유일한 권위는 성경의 영감과 그것에 대한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칼빈주의 성경관의 주요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 자체로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이다.
  • 3. 결 론
  • 칼빈주의 성경관은 성경을 단순한 역사적 사건의 수집물이나 인간의 종교적 체험의 기록물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성경의 고등한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기록된 객관적 계시로서 스스로의 권위를 갖고있다. 그러나 이 개관적 계시인 성경이 개인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의 조명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성경관은 성경에 대한 확신과 이해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감동과 성령의 조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초자연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 따라서 오늘날 성경에 대한 파괴적 비평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성령의 조명과 성령의 확신케 하시는 초자연적 경험을 갖지 못한 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관은 신학과 설교, 그리고 그리스도 인의 삶에 지극히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바른 성경관의 정립은 매우 중요하다.
  • 오늘날 비평주의와 신정통주의 신학의 발현으로 성경에 대한 개념이 저급한 단계로 내려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 속에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칼빈주의 성경관의 확립과 교육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이 말씀의 권위 아래 교회의 일과 우리 모두의 삶을 순복해야 할 것이다.
  • 참 고 서 적
  • 1. 칼빈 존, 기독교 강요(상), 한철하외 3인 공역, 생명의 말씀사, 1989.
  • 2. 권성수, 성경 해석학1, 총신대학 출판부, 1991.
  • 3. 최홍석, 말씀과 성령, 신학지남 '90 겨울호 226, 신학지남사, 1990.
  • 4. 송종섭외 2인공역, 영한대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망사, 1982.
  • 5. 도날드 K.맥킴, 한국칼빈주의연구원 편역, 칼빈의 성경관, 기독교문화협회, 1986.
  • 6. 뻘콥 루이스, 고영민 역, 조직신학 서론, 기독교문사, 1985.
  • 7. 존 머레이, 박문제 옮김, 성경의 무오성, 존머레이 선집 조직신학1,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1.
  • 8,________, 박문제 옮김, 성경의 궁극성과 충족성, 존 머레이 선집 조직 신학1,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1.
  • 9. 헤르만 바빙크, 차영배편저, 신학의 방법과 원리, 총신대학출판부, 1985.
  • 10. 그레샴 메이첸, 조동진 역, CHRISTIANTY AND LIBERALISM (메이첸의 신학), 크리스챤헤럴드사, 1980.
  • 11. 간하배, 현대신학해설, 성광문화사, 1982.
  • 12. 정성구, 칼빈주의 사상과 삶, 기독교문서선교회, 1989.
  • 13. 토니 레인, 김응국 역, 기독교사상사, 나침판사, 1988.
  • 원문 : http://www.happychapel.or.kr/divinity/divinity04.htm 

  •  4. 칼빈의 교회론 원문 : http://www.happychapel.or.kr/divinity/divinity05.htm 
  • 칼빈의 교회론
  • A. 서 론
  • 이글은 칼빈의 교회론의 본질과 의미를 확정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교회론과 신앙과의 관계를 찾으면서 진행될 것이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 제4권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안으로 초대하시고 그곳에 머무르도록 하시기위한 외적인 수단 또는 도움으로서의 교회에 관하여 진술하고있는데 사실상 기독교강요의 제일 마지막부분인 이 4권은 두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첫째부분은 1장에서 19장까지로서 교회론을 다루고있으며 두번째부분은 마지막장인 20장으로서 국가론을 다루고있다. 교회론에 관한 첫번째 부분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부분은 1장-13장까지로서 교회와 말씀의 사역에 관한 부분이고 두번째부분은 14장-19장까지의 부분으로서 교회와 성례전의 사역을 다루고 있다.이전 체계구성 중에서 제1장,제2장,제3장제20장을 다루고자한다. 여기에 앞서서 신구약성서에서의 교회의 의미와 칼빈의 교회론의 배경이되가는 로마교회의 교회론, 루터의 교회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칼빈의 교회론은 로마 카톨릭교회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과 루터의 성도의 교제(communio santorum)에서 더 발전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칼빈은 결국 말씀으로 기울어지므로 그의 교회관에 대한 설명은 언제나 말씀과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사항을 염두해두고 칼빈의 교회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B장에서는 칼빈 교회론의 형성 배경을 살펴보고, C장에서는 기독교 강요 제4권에 나타난 교회론 중에서 (제1장,제2장,제3장.그리고 제20장)일부를 다루고자 한다.D장에서는 교회의 본질을 연구하면서 신자의 어머니라고 하는 이론과 그리스도의 몸 및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를 다루면서 현재 지상에 있는 외형적 교회를 중시하며 또는 불가시적 교회를 중시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E장에서는 칼빈이 참 교회의 지표로서 제시한 말씀과 성례전을 분석하고 교회의 실제적인 유지에 필요한 권징과 교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결론을 맺으면서 본 논믄을 마감하게 되는데 이 연구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주 자료로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같은 칼빈의 교회론을 조망하면서 신앙을세 우는 것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 B.칼빈 교회론의 형성배경
  • 가. 예비적 고찰
  • 1. 교회와 교회론
  • 교회는 헬라어(주님에 속한,주님의 것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일차적인 의미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께로 부름받은 예배의 모임을 뜻한다. 그러나 헬라 문화권에서는 가 본래적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신앙고백은 최초에 신앙규칙(REGULA FIDEI)으로 출발했는데 대표적인 신앙고백인 사도신경등은 전부 이 신앙 규칙에 근거하고 있다. 신앙 규칙에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인 4가지 속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교회는 325년의 니케아 신조와 381년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로 신앙이 표현되면서 단일성(UNAM ECCLESIAM),거룩성(SANCTAM ECCLESIAM), 보편성( CATHOLICAM ECCLESIAM), 사도성(APOSTOLICAM ECCLESIAM)을 교회속성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 2. 성서적 배경
    구약은 교회를 표현하기 위하여 "부르다"를 의미하는 어근에서 비롯된 과 "시정하다", "지정된 장소에서 모이다,만나다"를 의미하는 에서 비롯된 를 사용한다. 신약에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사용된 칭호가 그대로 교회에 사용되고 있음을 보게 되는데 "택함 받은 족속" , "왕같은 제사장" , " 거룩산 국민" , "하나님아듸 소유가 된 백성" 드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관계를 몸과 머리의 관계로 비유한다. (롬12.5 ,고전11.3 , 골1.18) 또 그리스도와 교회의 곤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고후11.2 , 엡5.22-23)동시에 교회는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이다. 결국 교회는 증인으로서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칼빈의 교회론의 성서적인 토대는 성경을 근거로 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 나. 로마 카톨릭의 교회론
  • 로마 카톨릭 교회는 마16.18절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교회의 신젓 설립을 주장한다. 교회는 사제직에 의해 지도,감독되는데 이들 사제들은 베드로의 사도직을 계승한 지상으리 대리자 교황과 그의 위탁을 받은 성별된 사람들이다. 교회는 죄의 용서와 구원의 비의를 간직하고 취급하는 기관이다. 사제는 교회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구가 한을 가지고 신-인간의 중보자이다. 로마 교회는 세상과 인류의 중심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강조하는 카톨릭은 교회의 제도적 구성과 순종을 강조하는 교회론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 다. 마틴 루터의 교회론
  •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로마교회에 대항하여 교직제도 보다는 만인 제사장 설,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한 부분을 차지했던 성도들 자신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성도의 교제등을 중시했다. 루터는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행해지는 곳을 교회로 보았다. 교회는 그 본질 상 COMMUNI SANTORUM이지만 그 선택된 자는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감추어져있고 불가시적>이다.
  • C. 기독교강요 제4권
  • 가. 제1장에 나타난 교회론
  • 하나님께서 이 교회의 품속으로 자녀들을 모으시기를 기뻐하셨는데 이는 그들이 유아와 어린아이일때 교회의 도움과 봉사로 양육받을 뿐 아니라 어머니같은 교회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 성인이 되고 드디어는 믿음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려는 것이다.이 문장에서 믿음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다는 것과 믿음을 키우는 주체는 교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나. 제2장에 나타난 교회론
  • 교회의 기초는 예언자와 사도들의 교훈이며 그들은 또 구원은 그리스도에게만 맡기라고 신자들에게 명령하느데 이 교훈을 제거한 후에 교회가 어떻게 서 있을 수 있겠는가 ? 칼빈은 여기에서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여 로마교회가 주장하는 교회론은 거짓 교회론이라고 주장한다.
  • 다. 제3장에 나타난 교회론
  • 계속해서 칼빈은 성서가 주장하는 교회제도에 대해서 논한다.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이 하나님만이 교회를 지배하시며 교회안에서 전위 또는 우월한 지위를 가지셔야 한다. 고 말하면서 제3장에 나타난 교직물에서 하나님의 지위를 교직을 가진 성직자들에게 돌려주며 자기도 이런 성직에 복무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직과 교회의 관계는 성직이 교회에게 봉사하고 교인의 구원을 담보하는 동시유발이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 라. 제20장에 나타난 교회론
  • 굳세게 서서 "종의 멍애"르 메지말고 우리에게 명령하는 사도가 다른 곳에서는 종들에 대해서 그 처지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니 이것은 국민생활에서 노예상태와 영적 자유가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여기서 칼빈은 극가 통치와 영적 통치의 공존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주종관계를 신자에게 동시에 존재함을 말하면서 폭군까지도 국가의 존립하는 범위에서 수용하라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구조는 이중적인 구조이다. 즉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교회를 중심적으로 삼고서 국가를 보고있다는 것이다.
  • D. 교회의 본질에 대한 칼빈의 이론들
  • 가. 구원받은 총수로서의 불가시적 교회
  • 루터에게서 칭의론이 그의 교회론의 기초가 되듯이 칼빈에게서도 그의 예정론이 기초가 된다. 즉 칼빈에게서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로서 이 공동체는 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가지고 서로 굳게 연결되어 있는 모든 세대에 있어서 구원받은 자의 총수이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동시에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불가시적인 교회가 있다. 보이지 않는 교회의 성원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그분만이 아시는 예정받은 사람들이다.
  • 나. 신자의 어머니로서의 가시적인 교회
  • 칼빈에게서 교회는 또한 신자의 어머니( MATER FIDELUM)이다. 교회응 외적인 수단이요 도움이다. 이를 근거로하여 교회를 신자들의 어머니로 이해하였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사람에게는 교회가 어머니가 되어야한다. 이는 불가시적 교회가 아니라 가시적 교회이다. 칼빈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제도적 입장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 말씀과 성령이 역사하는 기관으로서의 교회를 말하고있는 것이다.
  • 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 칼빈은 성서의 가르침( 엡4.4 , 5.23-30) 을 확대하여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한 의미는 교회가 그 머리인 그리스도 중심의 본질성과 그리스도와 성도의 불가분의 연합성과 함께 교회의 단일성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칼빈은 사도신경의 <성도의 교제>라는 표현에서 교회의 성격다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됨으로서 그는 교회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신다.
  • 라.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와의 관계
  • 칼빈은 자신의 교회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를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사람의 징표로서 인식할 수 있는 교회는 언제나 가시적이고 제도적인 교회이다. 여기에 속하는 모든 사람이 구원 얻은 것은 아니다. 불가시적 교회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사람들의 집단이다. 이는 하나님께만 달려있다. 이 불가시적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영으로 부르심을 입은 선택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것이다. 한편 칼빈에게 있어서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는 플라톤적 이원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즉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 이데아의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의 불가시적인 교회가 아니라 예정 교리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눈에만 보일 뿐 우리는 알 수 없다는 뜻에서 불가시적이다. 이러한 구분은 두 교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하나님만이 교회의 궁극적이며 본래적인 판단 기준이다.
  • E. 참 교회의 지표
  • 가. 말씀
  •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전파되고 성례전이 그리스도의 제도에 따라 집행되는 것을 우리가 보면 거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칼빈을 이것을 통해 침된 교회와 거짓되가 교회를 식별하는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한다. 또한 말씀의 선포를 위임받은 설교자의 중요성은 그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데 있다. 설교말씀은 또한 세계 내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 수단이기도 하다. 칼빈은 "성령의 내적 증거"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신앙으로 "성령의 내적 조명 "은 말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지도하여 깨우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성령의 조명이 없는 성경 그대로의 말씀은 아무 의미가 없다.
  • 나. 성례전
  • 설교 말씀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듯이 성례전의 본체 역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1) 세례
    세례란 "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에 가입되는 입문의 표징"으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베푸시는 것이다.세례는 죄사함과 믿음으로 그의 부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믿게 된다는 신앙의 유익을 가져온다. 칼빈은 믿음과 세레의 관계를 믿음을 세례를 하나의 증표로서 필요하며 양자는 긴밀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또한 칼빈은 유아세례를 인정하면서 집례자와는 무관하게 성례전의 효력을 인정하였음으로 (EX OPERE OPERATO)당연히 재세례를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 2) 성찬
    칼빈은 그의 성찬 교리를 십자가에 단번에 돌아가신 것과 관련시킨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의 떡" 이므로 성찬은 바로 이 생명의 공급과 양육을 확증하는 표시이다. 그리스도는 영으로서 그의 수로를 따라서 우리에게 전달된다.
  • 3) 권징과 교직
    칼빈은 그의 권징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참된 교회의 표지로 삼지는 않았다. 즉 권징은 교회의 본질로서가 아니라 실제적 유지를 위한 일이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수단이다. 칼빈은 엡4.11과 롬12.7-8에 근거하여 4가지 직분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칼빈이 계층적 구조(HEIRARCHY)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즉 교회의 직분은 상.하 구조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들이 맡고 있는 일의 차이를 나타낼 뿐이다.
  • F.결론
  • 칼빈의 하나님 주권 사상은 교회론 에서 선택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선택에 따르는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외적인 도움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강요>제 4권에 수록된 그의 교회론의 제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인도하시며 우리를 그안에 있게하시려는 외적인 은혜의 수단"이다. 그에게 있어서 교회란 신자의 어머니로서의 교회일 뿐만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의 공동체였다.
  • 따라서 교회는 카톨릭처럼 제도적인 성격으로서의 성격을 가질 뿐 아니라,루터가 보았듯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공동체적 성격도 가진다. 그러나 이 두가지 성격이 나뉘어지기 보다는 합쳐져서 교회를 통해 신앙을 세우는 것이 그의 주 목표였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주시는 은혜 중에서 특히 말씀과 성례전으로 강조되어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칼빈은 강조하였다. 동시에 칼빈은 하나님의 선택에 기초를 두고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를 나누었다. 그에게서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의 관계는 중심을 같이 하면서 중첩하는 두개의 동심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칼빈은 " 참된 교회란 참 신자만으로 구성된 교회가 아니라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정당하게 집행되는 교회"라고 말한다.그리고 교회의 표지인 "말씀"이 올바로 선포된다면 교회의 사명인 사회봉사와 선교등을 통해 사회와의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불신자 및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신앙을 나누어주시는 하나님의은혜를 찬양하며 신앙을 보존하기 위하여 교회를 주셨다는 칼빈의 교회론을 항상 생각할 필요가 있다.
  • 원문 : http://www.happychapel.or.kr/divinity/divinity04.htm 

  •  5. 칼빈의 설교론 원문 : http://www.happychapel.or.kr/divinity/divinity06.htm 
  •       칼빈의 설교론
  •       1. 서 론
  •  종교개혁의 원동력과 그 지속적 능력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선포되는(설교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이었다는 주장은 결코 과장된 것 일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재발견과 선포라 할 수 있는 사건이 다름 아닌 종교개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에 의해 종교개혁은 일어났고, 말씀의 선포에 의해 종교개혁은 성취되어갔다. 개혁자들은 이 말씀에 사로잡혀 그들의 소명을 이루어 갔던 것이다. 진실로 말씀의 선포가 없는 종교개혁, 열정과 확신 가운데 말씀이 설교되어지지 않는 종교개혁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입은 하나님의 입이었고 그들의 입술은 하나님의 도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이 가능했던 그 중심 이유는 그들이 인식한 설교에 대한 신학이었다. 우리는 개혁주의 성경관, 구원관, 교회관, 세계관(철학관)등은 이야기 하면서 정작 실천신학의 꽃이라 하는 설교관에 대해선 무시하고 있는 실태임을 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종교개혁자들 중에 스스로를 '말씀의 사역자'로 불리 우길 원했던 요한 칼빈의 설교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시대에 다시금 개혁자의 후예인 우리들을 통해 선포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자신의 입과 입술을 친히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       2. 본 론
  •     (1)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설교
  •  칼빈은 설교할 때 스스로를 하나님의 대사로 여겼다. 그러므로 설교는 단순히 예배의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든가 교회의 임무들 가운데 하나 정도가 아니라, 그것은 일종의 하나님의 현현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복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될때,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고 선언했다.그리고 그는 부언하여 말하기를 "말은 내가 하지만 교육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도 내가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만일 저 높은 곳으로 부터 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모든 사람들 (=복음을 듣고도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않는 이들)에게와 마찬가지로 나를 유익되게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목소리는 허공에 사라지는 소리에 불과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선택교의" 라는 설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 하나님의 은혜가 전파되어질 때마다, 이것은 마치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열리어 하나님이 자기 손을 내밀면서 생명이 가까왔으니 너희가 이 하늘나라 상속에 참여케 하마고 확실하게 말씀하시는 거나 같습니다. ...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마다 우리 앞에 생명과 불멸을 펼쳐 보이는 것을 보는 우리로서 고의적으로 못 본체 하지 맙시다" 칼빈은 성경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임을 확신했으며 또한 인간을 통해 전달 되어지고 말씀되어졌음을 믿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천둥소리로 그의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시고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다는 사실에 주목하였었다.
  •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때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말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임을 말씀하심으로써 그의 말씀을 드러내셨고 이로써, 인간의 입에서 나온 말이 그것을 듣고자 하는 자들에게 전파됨으로써, 마침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사야 주석 55:11에서 "어느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말씀은 인간의 입을 통하여 나온 말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직접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이아니라 인간을 그 도구로써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말씀 안에서 빛나고 하나님이 그의 종들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마다 하나님과 가까이 마주 대한 것처럼, 말씀으로 무한한 감화를 받아야 한다고 결론 지을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의 거룩성과 권위를 주장했던 것이다.그러므로 말씀의 증거자는 중보자되신 예수님께서 복음이 전파된 곳에 오시리라는 대망을 들려주어야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목회자의 목소리를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도록 인도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  칼빈은 1549년 8월 16일에 행한 예레미야 강해 설교 제 25번째에서 자신을 가혹하다고 비난 하는자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에게 던져지는 훈계의 말씀을 거역하여 일어나는 모든자들, 그들은 하나님께 맞서 그에게 반역하는 자들입니다. 내 혀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해서 내 혀를 탓할 수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날 사용하셔서 당신의 말씀을 전달하시고자 할 때 사람들이 내 인격에 맞서서는 안됩니다. 만일 내게 맞선다면 악인들은 하나님이 이 문제에 대해 보증이 되시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라고 했고, 다니엘서 21번째 설교에서는 "만약 내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아니라고 그들이 주장한다면,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가 선포한 것과 동일한 말씀을 전달하고 있고, 뿐만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영으로 내게 주신 분량에 따라 그를 신실하게 섬겼음을 그 분 앞에서 주장할 수 있읍니다.
  •  그리고 이것을 헐뜯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여 불경한 짓을 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할 것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드러내시고자 하는 그것은 드러나고야 말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 후 에스겔서 5번째 설교에서도 "오늘날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하는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 선지자라고 자처하는 저 칼빈을 보라! 그는 스스로 그것을원한다. 그러면 그가 선지자 인가?'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선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교설인 까닭에 나는 이런 어투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 에스겔에서 우리가 듣고 있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까닭에 나는 이 선지자가 말한것을 변형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  왜냐하면 이 말씀이 선포되었을때 그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 선포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선포되기도 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칼빈은 자신의 사명의 중대성을 확신하고 또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었다. 이러한 칼빈에게 있어서 그의 사역을 수행케 했던 제일의 주된 확신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에 대한 확신이었다.그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것이었다.그는 "내가 율법을 모세가 쓴 것으로, 시편을 다윗과 다른 선지자들의 것으로 여기며, 이런 식으로 모든 성경에 담겨진 것을 파악한다면, 이사역은 어떻게 될까요? 나는 말씀의 사역이 유지되어야 한다, 또는 유지되어서는 안된다는 식의 토론을 벌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나는 죽을 운명의 사역자들에 대해 반박하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율법과, 그리고 성경에 들어있는 모든 교리에 권위를 부여하신다면 이러한 핑계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계신다는 말이 교회에서 흔히 쓰여지는 용어라 하여 결코 공연한 소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이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청할 것을 강요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자 한다면 이보다 더 오만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 . 나는 새로운 법률이나 신조등을 만들어내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라고 하여 성경의 권위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말하며 그의 설교가 그것을 바탕으로 선포되기 때문에 동등한 권위가 있음을 말했던 것이다.

  •   그러므로 그는 성경해석과 강해에 주력했고 본문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기록된 말씀에 대한 진실되고 순수한 주해" 와 연결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의 생활에 적용시키려" 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자들의 할 일 임을 강조했던 것이다 .
  •  이러한 칼빈의 설교관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강단의 행태와 얼마나 상치되고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개혁자의 설교자와 설교에 대한 임무에 대한 깨우침에 귀기울여 실천해야 할 것이다. 칼빈은 시편 119편 설교를 시작하며 "나는 하나님께서 취하신 방법에 맞춰 본문의 진정한 흐름을 그대로 따르려 할 것입니다. 나는 권면을 지루하게 고집하지 않고 다만 다윗의 시 (흔히 말하는 대로)를 사람들이 소화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것으로 만족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각 8절을 한편의 설교로 완성시킬 생각을 했었고, 또 가장 배우지 못한 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만 본문의 단순한 핵심을 밝히는 것으로 그치려 했습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구. 신약 성경은 주님이 자신의 뜻을 표명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는 그의 설교를 이용해 자기 고유의 사상을 표현할 권리란 없다는 것을 믿었다. 칼빈은 그의 설교집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적으로 말하였다. "그로 하여 금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도록 하자. 즉 경솔하게 그 자신을 신뢰하거나 자기 자신의 업적을 미봉책으로 적당히 얼버무리지 말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진리에 붙들리도록 하라. 그는 마땅히 그의 교리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하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는 설교자는 그의 설교에 있어서 성경본문의 지배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칼빈은 말하기를 "성경을 읽는 사람이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어리석은 사색을 구한다든지 그들이 자기 힘으로 스스로 개조해 보려고 교회로 나온다면 그들은 복음을 더럽히는 꼴이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  칼빈은 확신과 겸손을 진실히 갖고 성경 본문에 접근했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이 우리 마음 속에 말하여질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귀담아 들으려했고, 들은 바를 그대로 전달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성경 본문 해석에는 언제나 인간을 통하여 그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을 절대로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그의 성경관이 그의 설교에 반영되어 그의 설교는 언제나 무겁고, 심각하고 열정적이었던 것이다.
  •   (2)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으로서의 설교
  •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라는 칼빈의 설교관은 설교가 또한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임을 보여준다. 칼빈의 설교에서 특기할 만한 것 세가지 정도를 지적 할 수 있는데, 첫째로, 인간이 하나님과 만날수 있는 장소는 바로 성경의 말씀이 설교되어지는 곳이라는 것으로 이것은 설교와 함께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친다고 볼 수 있다.
  •  둘째로, 칼빈은 설교에서 청중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엄선된 수사학적도구를 채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의 의도는 설교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의 것을 인식한 것이 아니겠는가? 셋째로, 칼빈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책임을 가지고 그의 청중의 편에 서서 계속 일깨워 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의 설교의 특징은 그의 설교를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의 행위임을 의식한 것임을 보여준다. 칼빈은 설교자의 입을 주저함없이 "하나님의 입" 이라는 칭호로 불렀는데 이것은"사자" 라는 칭호보다 더 우월할 것이다. 이는 설교자가 강단에 섰을 때 바로 하나님 자신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의 말씀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에 의해 설교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닌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실, 강단에서 외치는 이는 한 인간이고 우리는 그 가르침이 요구하는 정도의 감동을 받지 못한다. 그곳에는 하늘의 위엄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우둔하고 어리석어서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여 청중은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면전에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  이러한 칼빈의 설교에 대한 인식에서 설교란 신적행위인 것이었다. "설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시며",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으시고 가까이 오신다." "우리에게 선포되는 말씀을 우리가 소유함과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와 일반적이고도 평범한 방법으로 대화하신다... 이렇게 복음의 설교는 하나님께서 하강하셔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과 같다."그러므로 로마서 10:17에 " ...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함과 같이 만약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가장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만남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되는 곳에서 인 것이다. 이렇게 설교자들에 의한 말씀의 설교는 인간이 직접 볼 수 없는 하나님만의 베일에 싸인 채 인간에게 다가오는 은총의 형태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그의 입과 같이 그들의 입도 사용되고, 또 그의 입술과 같이 그들의 입술도 사용되기를 원하시는 태도로 그들 중에 행하시는 것이다."그리스도는 계시의 역사적 사역 안에서 (자신의) 존재와 은헤의 징표를 사용하심으로써, 동일한 많은 방법에 있어서 계시와 자기 교통의 수단으로서 말씀 선포를 사용하신다. 이 때문에 칼빈은 설교를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징표로서 혹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 하나님의 징표로서 언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의 선포로 오시며 때로는 다양하게 베푸시는 갖가지 은사로서도 오신다." 어떻든," 설교는 그리스도와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주님의 선물이며, 그 자체는 죽어야 할 인간의 목소리 가 영생을 얻도록 교통할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하심이라"는 것이다.
  •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진 성경이 설교자에 의해 설교되어질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이 되며 하나님을 만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칼빈의 눈에 비친 설교란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현현, 혹은 하나님의 현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 목사가 복음을 전파할 때 하나님은 실재로 임하시고, 임재하시되 성례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임재하신다.그러므로 설교자는 그의 설교에서 먼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주고 그 후에 그 교훈이 사람의 심령에 생생하게 접촉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설교자는 셩령이 그 설교자 자신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도구가 되도록 기도로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칼빈은 인간은 말씀안에서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다고 명백히 가르쳤던 것이다.
  •   (3)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으로서의 설교
  •  설교는 무엇보다도 성도들의 마음속에 심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이다. 설교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인 것은 그리스도의 통치수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 설교자가 설교할때는, 비록 그가 우리와 동일하게 보이고, 대단한 존경을 받거나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하더라도, 어쨋든 예수그리스 도는 여전히 이곳(=설교)에 계시고 그의 왕적 보좌를 그 곳에 두시기" 때문이다.
  •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탄이 우리의 주인이니 타락과 비참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변형 시킴으로 우리는 복된 왕국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왕국은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다. 복음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반역자에서 시민으로 바꿔 놓으셨다. 말하자면 복음은 그것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복음이 우리에게 설교되는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지배의 세력아래에 두기 위함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라 불려 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서 복음이 설교 되든지 그것은 그 땅위에 그가 주되심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치하셔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음의 설교를 통해 통치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왕실은 바로 복음이요." "복음의 교리가 아닌 것은 어떤 것도 그의 통치 수단이 될 수 없다." 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통치 수단인 성경에 주어진 내용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  첫째는 단순하게라는 부사를 통해 설교란 "청중들의 이해력에 부응하여" 각 신자가 그 설교에서 "자신의 몫과 분깃을"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고, 둘째는 간결하게 "평이한 간결성과 결코 애매모호함이 없도록 하여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야 한다" 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용기있게, 하나님께 반항하는 악한 인간성에 대해 공격해야 한다. 말씀의 사역자는 "우물우물" 말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주님께서 그의 교회가 알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가차없이 혹은 꾸밈없이"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교자의 자세는 말씀의 선포를 통해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뜻을 확실히 전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당시에 설교는 번창할 수 있었다. 교회와 강단 설교자들은 "너희 말을 듣는 자는 내 말을 듣는 것" 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강단은 교회 내에서와 세속적인 사회내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설교란 그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왕권일 뿐만 아니라 교회를 통치하고 나라들을 심판하기 위해 교회 그 자체에도 비밀이 알려지지 않은 교회의 장중에 있는 검인 것이다. 교회중의 그 검은 적들을 쳐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칠 것이냐, 혹은 회개하지 않는 무리들을 또 다시 영원히 파멸시켜 버릴 것이냐 하는 택일성의 문제를 지닌 채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엡 6:7)."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에 따르지 아니한다면 하나님께는 패역이요, 우리 또한 어떠한 종류의 은사도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복종하지 않으려한 "여러 사람의 반역"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사역을 옹호하였다. "아무것도 아닌 이 버릇없는 인간들은 자기네들이 잘못을 범했을 때 그 사실을 자기들에게 분명하게 지적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아 주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곧 '당신들이 우리에게 명령할 순 없어!'라고. 그렇다면 하나님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임하신 때문입니다..." "누구든, 이렇게되어야 한다. 이쪽으로 가야한다는 식으로 명령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전념해 가르치기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한 분 주님이 있고 그분은 사람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을 결코 허락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이름으로 여기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무엇도 나를 통해 전진 시키기 원치 않으며, 내 자신으로부터 아무것도 가져올 생각도 없으며 오직 내가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모든 반박하는 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복종해야 하며, 모든 거만한 것들이 꺽여야만하고 또 큰자나 작은 자나 할것없이 자신이 복종해야 할 이에게 대항하여 주둥이를 내밀거나 눈을 치켜 뜨는 피조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라고 하여 설교를 통해 다스리시고 명령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항 해서는 안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에 어느 누구든지 복종해야 할 것을 말한 성경관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는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그리하여 설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곳 어디에나 크고 넓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그리스도의 통치수단인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