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이야기

칼빈의 기도 본문 해석에 대한 평가

형람서원 2006. 4. 2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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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기도 본문 해석에 대한 평가



과 목 명 : 기도본문 연구
교 수 명 : 장 해 경 교수
제 출 자 : 권 동 희 (Th.M)






목 차


Ⅰ. 서 론 ------------------------------- 3


Ⅱ. 칼빈의 기도본문 해석에 대한 평가----------- 4

1. 롬 8:26 ----------------------------- 4

2. 엡6:18, 살전5:17 ---------------------- 6

3. 롬10:14-17 -------------------------- 7

4. 마 6: 5-7 --------------------------- 9


Ⅳ. 결 론 ------------------------------ 10

<참고 도서> ---------------------------- 11
Ⅰ.서 론

얀 밀리치 로호만(Jan Milic Lochman, 1992-1982)은 그의 저서 주기도문 강해의 서문에서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과 신학활동에서 절대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및 교회봉사와 모든 신학활동의 중심이요, 생명이며, 호흡이다. 매순간 숨을 쉬지 않으면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것같이 기도가 끊긴다면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약해지며 모든 사역의 열매도 빈약해 질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절대필수 불가결한 것으로써 시대의 구분없이 계속되어져야만 하는 신앙생활의 기초인 것이다.
위대한 종교 개혁자 칼빈은 누구보다도 이러한 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저작물인 「기독교 강요 3권 20장」전장에 걸쳐 아주 심도있게 자신의 기도론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는 기도를 "하늘의 보고(寶庫)를 여는 열쇠"와 "하나님과 우리와의 교섭의 통로"로 정의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야 할 주요한 훈련은 "기도하는 것"이며, 이것은 "신앙의 참된 증거"가 된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기도는 신앙의 살아있는 표현이며, 신앙의 호흡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여 칼빈은 기도에 원칙과 형식이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기도론을 52절로 나누어 길게 논하며 설명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도의 성격과 가치, 기도의 원칙, 불완전한 기도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중보, 성자(聖者)의 중보에 대한 반박, 기도의 종류, 찬송과 언어의 사용, 주기도문 설명Ⅰ.Ⅱ.Ⅲ, 끈기있는 기도등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그는 이와같은 자신의 기도론을 펼치면서 그 근거를 다름아닌 성경에 두고있다. 그리하여 그는 각 장에서 성경의 많은 기도본문들을 인용, 주해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본고는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기도론을 서술해 나가면서,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기도본문의 인용과 주해에 대해 필자의 입장에서 비교,검토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그가 인용하고 주해한 모든 성경구절들을 모두 비교, 검토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지면상(紙面上) 한계가 있으므로 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며,필자의 견해와 비교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롬8:26, 엡6:18 ;살전5:17, 롬10:14-17, 마6:5-7등을 선택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Ⅱ.칼빈의 기도본문 해석에 대한 평가

1.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 )

칼빈은 그의 기도론을 전개함에 있어 롬8:26을 3번 인용, 주해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그 분은 우리 마음에 복음의 증거를 인치시며(롬8:16), 우리의 영혼을 부추기셔서 감히 우리의 원하는 바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게 하시며 말할 수 없이 탄식하게 하시고(롬8:26) 아바 아버지라 담대히 부르짖게 하신다 " (「기독교 강요」 3. 20. 1. 1. "기도의 성격과 가치-신앙과 기도" )

" ...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 성령을 기도의 스승으로 주셔서 옳은 바를 말씀해 주시며 우리 감정을 조절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는 말씀은 성령께서 실제로 기도하거나 탄식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생래적(生來的) 능력으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확신과 소원과 탄식함을 유발시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신자들이 이렇게 탄식하는 것을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참으로 기도의 훈련이 되어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어쩔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서 무슨 말을 하여야 할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 강요」 3. 20. 2. 1. "기도의 원칙-경외심" )

" 이 이교도(플라톤)는 정말 지혜롭게도 우리 욕심을 따라 주님께 구한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인가를 깨닫고 있으며, 뿐만아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올바른 기도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히 입을 열 수 없는 우리의 불행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롬8:26)"
(「기독교 강요」 3. 20. 8. 1. "주기도문 설명Ⅰ-주기도는 우리를 돕기 위한 것이다" )

칼빈은 롬8:26을 해석함에 있어 기도에 대한 성령의 역활에 그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에 의하면 양자의 영이신 성령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하시며,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식과 확신으로 우리로 하여금 아바 아버자라고 부르게 하시며 우리의 소원을 아뢰게 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시다. 특히 우리가 세속과 육욕에 사로잡혀 기도하지 못할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마땅히 빌 바를 도와주신다. 이것은 성령께서 직접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타고난 본성이나 우리의 후천적 능력으로는 이룰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소원하게 하고, 그러한 뜻에 확신을 가지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에서 우리의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고, 거기에 바로 성령의 도우심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성령은 우리에게 올바른 기도법을 가르치는 분이라고 이해한다. 만일 성령께서 지도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입을 열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칼빈이 롬8:26을 주해하면서,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며 우리의 소원을 아뢰게 하시고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으로 보는 것과, 또한 기도에 있어 성령의 역활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 견해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롬8:26을 주해함에 있어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주체를 성령이 아닌 성도로 보는 견해에 대하여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주체를 성도로 보기 보다는 성령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본문의 전후 문맥을 보면, 탄식이 동심원적으로 압축해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① 19-22절: 피조물의 탄식
② 23-25절: 신자들의 탄식
③ 26-27절: 성령의 탄식
전체구조는 고통하는 것인데 여기에 피조물과 신자와 성령까지도 고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17절의 함께한 후사요, 함께 고난을 받는다, 함께 영광을 받는다는 말이 나오고, 이것은 다시 22절의 함께 탄식하며,함께 고통하는 이야기로 전개되고 성령께서 함께 중보기도에 참여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에서 신자가 주어로 되어 있는데(23-25절), 또 신자가 주어가 되기가 문맥상 어렵다. 그러므로 26-27절에서는 성령께서 주어가 되는 것이 문맥상이나 문법적으로도 맞는다. 따라서 탄식의 주체를 성령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러면 어떻게 완전하신 성령께서 탄식할 수 있는가? 성령께서는 인격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탄식할 수도, 근심할 수도 있으시다(엡4:30). 본문은 신인동형동성적으로 표현을 한 것이고, 근심하시는 성령께서는 성도와 함께 탄식도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않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의 중보기도가 있는 것이다.

2. 엡6:18, 살전5:17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 And pray in the Spirit on all occasions with all kinds of prayers and requests. With this in mind, be alert and always keep on praying for all the saints )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 pray continually )

칼빈은 「기독교 강요」 기도론에서 엡6:18과 살전5:17을 3번 인용, 주해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편 항상기도해야 한다(엡6:18; 살전5:17)고 한 바울의 말도 그에 못지 않게 진리이다. 왜냐하면 매사가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도처에 좋은 일이 깔렸다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풍성한 때는 없기 때문이다. ... 그러나 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5:17)고 권면함으로써 우리의 나태함을 꾸짖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며 기도를 계속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일인가를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강요」 3. 20. 2. 2. "기도의 원칙-자신의 궁핍함을 절실히 느끼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바울의 권면하는 순서도 이와같다. 즉 신자들에게 신중하고 참을성 있게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엡6:18)고 권하기 전에 먼저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6,17)고 명하고 있다." (「기독교 강요」 3. 20. 2. 4. "기도의 원칙-확신을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에 대한 반박")

"바울이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고 감사하라고 명한(살전5:17,18, 참조. 딤전2:1,8)이유는 물론 모든 사람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어떤 면에서든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기대를 가지고 자기들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며,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찬양과 감사의 조건들을 끊임없이 제공하시기 때문이다" (「기독교 강요」 3. 20. 4. 1. "기도의 종류-개인기도")

칼빈은 엡6:18과 살전5:17을 기도의 지속성에 촛점을 맞추고 해석한다. 그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먼저 소극적인 동기로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안전과 부요를 노리는 위험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도 기도해야 할 필요성이 없는 순간은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적극적인 동기로서, 그것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열망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마음과 주위에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는데, 그 소원은 언제나 기도로 나타나며, 따라서 언제든지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엡6:16-17과 연결시켜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기도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것을 주장한다.

필자는 칼빈이 엡6:18과 살전5:17을 주해하며,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두가지의 설명에 대해서 동의한다. 또한 엡6:16-17과 연결시켜 기도하는 자들은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런데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쉬지않는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일상생활의 모든 일을 중지하고 형식을 갖추고 기도만 하라는 말의 의미는 아니다. 실제적으로 쉬지 않고 기도만 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여러책임들도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살전1:2에서 자신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했는데, 그도 역시 이 말을 문자적으로만 지킨 것은 아니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2가지로 나누어진다. ① 언제나 기도하는 정신으로 사는 것(JOWETT) ② 실지의 기도를 습관적으로 하는 것(ALFORD, MOFFAT). ①은 물론 기본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사용된 "기도"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실제적으로 기도하는 행동을 포함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다 ②의 습관적이고, 규칙적인 기도를 합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규칙적인 기도생활과 아울러 항상 기도의 정신으로 모든 일을 행할 것을 명령하는 말인 것이다.

3. 롬10:14-17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How, then, can they call on the one they have not believed in? And how can they believe in the one of whom they have not heard? And how can they hear without someone preaching to them? And how can they preach unless they are sent? As it is written, "How beautiful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But not all the Israelites accepted the good news. For Isaiah says, "Lord, who has believed our message?"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

칼빈은 롬10:14-17을 기독교 강요 기도론에서 4번 인용, 주해하였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참신앙이란 하나님을 부르는 것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리를 주장한다. 즉 복음에서 신앙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은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도록 자극하는 것이다(롬10:14-17)" (「기독교 강요」 3. 20. 1."신앙과 기도")

"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10:14)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즉 바울은 기도의 시작을 신앙에서부터 차근차근 끌어내면서 복음이 전해져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온유하심을 절실하게 깨달은 자 아니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 ( 「기독교 강요」 3. 20. 2. 4. "기도의 원칙-확실한 소망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즉 복음으로부터 하나님의 긍휼을 깨달아 알고(롬10:14) 그것이 자기들을 위해 예비되었음을 확신하는 자가 아니면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 강요」 3. 20. 2. 4. "기도의 원칙-확신을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에 대한 반박")

"즉 기도는 신앙에서 바로 시작되며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시작된다.(롬10:14,17) 여기에는 중보에 대해 꾸며낸 이야기가 전혀 없다." (기독교 강요 3. 20. 5. 7. "성자의 중보에 대한 반박-성자의 중보 교리에 대한 결정적인 반박")

칼빈은 롬10:14-17을 참된 믿음은 기도를 하는 것이며, 또한 기도를 발생케 하는 것이라는 내용으로 주해하고 있다. 칼빈은 17절은 들음에서 믿음이 생기고 들음은 말씀(복음)이라고 했다고 하면서 따라서 다음과 같은 논리적 과정을 생각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말씀전파-들음-믿음생김. 그러나 이것은 14절에서 한단계 더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앞의 순서의 역순이라는 것이다. 부름-믿음-들음-전파. 즉 우리의 믿음은 결국 하나님을 부르는 것으로 꽃이 피는 것이므로 따라서 참된 믿음은 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근거해서 그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부인하는 자들에게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음을 경고하며, 기도하는 데에는 예수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보가 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참된 믿음은 기도하는 것이며, 기도를 발생케 한다는 칼빈의 견해는 타당하다. 믿음은 그러기에 기도의 기초요 전제가 되는 것이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되며, 기도를 통해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되는 것이다.

4. 마6:5-7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 And when you pray, do not be like the hypocrites, for they love to pray standing in the synagogues and on the street corners to be seen by men. I tell you the truth, they have received their reward in full. But when you pray, go into your room, close the door and pray to your Father, who is unseen. Then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And when you pray, do not keep on babbling like pagans, for they think they will be heard because of their many words.)

칼빈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주해한다.

"그런데 쉬지 말고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는 원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금지하셨던 중언부언(마7:6)과는 다르다. ... 이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요소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것 또한 그리스도의 책망을 받고 있다. 즉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증인들이 많이 있는 것을 좋아하며,세상의 칭찬을 잃지 않으려고 시장 같은 곳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바리새인이다.(마6:5).
...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이 말씀(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을 하심으로써 거룩한 교사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을 하나로 모으며 마음 깊숙한 곳에 이르게 해 주는 은신처를 찾으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 그렇다고 다른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는 기도란 은밀한 것으로 본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잡다한 염려에서 벗어나 평정을 요하는 것임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다."(기독교 강요 3. 20. 6. 2."기도의 종류- 공중기도의 필요성과 공중기도의 위험성")
본문을 공중기도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의 말씀으로 보며, 예수님 당시 이방인들의 중언부언의 기도와,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기도에 주의할 것을 주장하는 칼빈의 견해는 받아들일 만하다. 또한 "골방"을 장소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내적인 은밀성과 하나님께만 오직 집중하는 기도의 자세라는 해석은 옳다. 칼빈은 결코 길게 기도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문제는 믿음없이 기도의 내용을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것이며, 기도를 자신의 의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Ⅲ.결 론

이제까지 필자가 살펴본 바와 같이 칼빈은 기도의 성격과 그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면서, 기도를 신앙의 주요활동(the chief exercise of fath)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그는 「기독교 강요 3권 20장」전체를 통해서 자신의 기도론을 심도있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의 모든 주장의 근거를 철저하게 성경에 두고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 강요 3권 20장 기도론」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성경구절들을 인용, 주해하고 있는지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본고에서는 칼빈이 그의 기도론에서 인용, 주해한 기도본문 중 롬8:26, 엡6:18;살전5:17, 롬10:14-17, 마6:5-7등의 구절들을 선택하여, 그가 그 구절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필자의 입장에서 비교, 검토하였다. 칼빈은 롬8:26절의 주해를 통해,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의 역활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엡6:18과살전5:17절을 통해서는 우리가 쉬지않고 기도해야만 하는 이유를 소극적 동기(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위험들로부터 보호받으려는 동기)와 적극적 동기(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한 열망에서 나오는 동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또한 롬10:14-17절을 통해서는 신앙과 기도와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그는 참된 믿음은 기도하는 것이며, 기도를 발생케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기도할 수 없으며, 기도의 중보자되시는 예수께 대한 믿음외에 그 어떤 것도 기도의 기초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마6:5-7절에서는 공중기도의 위험성을 논하며, 이방인의 중언부언의 기도와 바리새인의 외식적인 기도에 대한 경계의 교훈을 하고 있다.
칼빈은 그의 기도론에서 성경에 나타난 기도본문들을 사용함에 있어, 자신이 설명하고 있는 주제에 잘 맞는 성경구절들을 적절하게 잘 사용하고 있으며, 그 구절들을 주해함에 있어서도 자신의 주장에 본문들을 짜 맞추기보다는 그 본문의 의미와 뜻을 그대로 나타내도록 하려 하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미 앞에서 밝혔듯이, 롬8:26절을 해석함에 있어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주체를 성도로 보기 보다는 성령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해석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참 고 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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