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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와 포용이 있는 교회?

형람서원 2024. 10. 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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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와 포용이 있는 교회?

  1. 교회는 배타적이다.
  2. 교회는 포용적이다.

두 명제가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호 공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상호 공존하면서 상보적 관계 혹은 대립적 관계를 유지합니다. 배타적으로만, 포용적으로만... 되는 기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변증법적 발전 과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성국 교수(아신대)가 한국 교회가 1세기 교회를 원형으로 삼아 회복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논문을 발표한 것 같습니다(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회장 김현광) 제7차 국내 학술대회, 10월 5일).

정 교수는 1세기 교회의 성격을 "포용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가 배타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분석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동성애에 대해서 배타적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빗대어 한 제언은 아닐 것입니다. 배타적은 스스로 게토가 되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1세기 교회는 케토를 이루려 하지 않았지만, 배타성이 있었습니다. 메이천 박사는 복음의 배타성을 분명하게 제시했고, 타 종교들의 포용성을 대조적으로 제시했습니다. 배타적 복음과 포용적 포교의 경쟁에서 배타적 성격의 복음으로 300년 박해를 받으며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용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Dialektik der Aufklärung, 1944년) 체계에 의해서 고대 그리스 체계의 변화가 정당하게 되었고, 313년 이전으로 회귀가 시대 정신이 되었습니다. 계몽시대, 이성 시대의 몰락이 선언되는 것인데, 유럽의 시대정신은 계몽시대 이전 교회시대로 회귀가 아니라 그리스 시대로 회귀한 것입니다. 정통교회는 계몽철학에 근거한 자유주의 신학 체계의 물결에 서서 편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세기 복음, 배타성이 있는 복음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습니다.

관용과 포용의 시대에 모든 것을 포용하고 관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타성을 가진 기독교에 대해서는 배타성을 갖고 있는 것이 현대철학의 맹점입니다. 계몽철학의 맹점은 이성만능주의이고, 현대철학의 다원성의 맹점은 배타적 복음의 기독교에 대해서 배타성을 갖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기본 소양이며, 그 직임과 복음의 배타성은 다른 분야입니다. 그것을 포괄적으로 묶어서 분석하는 것은 분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범주화의 오류).

이 땅에서 완전한 기관이나 존재는 없습니다. 완전한 존재는 예수님이셨는데, 가장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교회도 하늘의 기관으로 이 땅에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할 수 없습니다. 불완전을 비판할 때에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불완전은 필연인데 그 필연적 불완전을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필연적 불완전이 핑계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비판을 피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이끄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형람서원 고경태

정 교수는 로마의 그리스도 그룹들이 유대인의 회당이나 그리스식 민회, 학교와는 달리 “그리스도가 우리를 받아주셨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소속감을 부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울이 로마서 1~11장에서 설명하듯, 그리스도 그룹의 소속감을 결정짓는 기준은 헬라인과 야만인,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죄 아래 있으며, 오직 예수라는 시은소를 통해서만 의로움이 회복될 수 있었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따랐다”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가족에 소속될 자격을 부여받았다“고 설명했다. 시은소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히브리어로는 카포렛(כַּפֹּרֶת)이라고 하며 ‘속죄의 자리’를 뜻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는 장소로 이해된다.

이러한 포용 정신은 코로나19 이후 교회에서 멀어지는 성도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팬데믹 이후 많은 성도들이 교회와의 소속감을 잃어가는 현실에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경계선을 허문 공동체 정신은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다. 2022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전국 만 19세 이상 비개신교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포용성의 회복이 한국 교회의 시급한 과제임이 드러났다. 응답자의 63%는 한국 교회를 ‘배타적’이라고 평가했으며 ‘포용적’이라는 응답은 11%에 그쳤다.

정 교수는 “코로나 이후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에 대한 소속감을 스스로 포기하고, 더는 교회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는 1세기 로마의 그리스도 공동체가 보여준 포용적 정신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당시 그들은 인종, 지위, 학벌과 무관하게 모두를 포용했으며, 이러한 경계선 허물기는 오늘날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중요한 교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1세기 그리스도 안에서 경계선이 무너졌던 충격을 오늘날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학벌 재산 지위 외모 등 사회적 상징 자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러한 경계선들이 교회 안에서도 소속감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경우 우리는 초기 교회의 포용적 정체성에서 더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갈수록 증가하는 탈공동체화와 탈가족화 현상이 오히려 교회에는 선교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정 교수는 “한국인들에게는 여전히 소속감과 수용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남아 있다”며 “교회가 새로운 가족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회가 삼위일체에 뿌리를 둔 공동체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요청했다.

정 교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대형 예배당 없이도 일상적인 공간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1세기 로마의 그리스도 그룹들은 가정집, 상업 공간, 공중목욕탕 위층 등에서 예배를 드렸다. 대형 예배당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 한국 교회도 초기 교회의 모습을 본받아 일상 공간을 예배 장소로 전환할 수 있는 상상력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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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적 교회, 다시 포용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묻다

학벌 재산 지위 인종과 무관하게 오직 ‘그리스도와의 관계’만을 소속감의 기준으로 삼았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상이 새롭게 조명됐다.한국복음주의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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