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믿음은 복음을 들음과 함께 성령을 통해서(per verbum et cum verbo) 시작되고 결과를 낸다
The Word becomes efficacious for our faith through the Holy Spirit(Battles).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 믿음에 효과를 낸다.
33. Faith revealed to our minds, and sealed on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1. The mind is purified so as to have a relish for divine truth. 2. The mind is thus established in the truth by the agency of the Holy Spirit(Beveridge). 문병호는 “말씀이 성령의 역사로 믿음 가운데 조명됨”으로 요약했습니다.
우리가 맹인이 아니었거나 고집이 세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말씀의 외적 증거만으로도 우리의 믿음을 형성되는 것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헛된 것에 치우친 경향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에 결코 부착될 수 없으며, 우둔하여 항상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한다. 따라서 성령의 조명(illuminatio)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것에서 보면 믿음은 인간의 이해력(humana intelligentia)을 더 높은 영역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단련되고 공급받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성령이 조명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illuminatio는 illumination, 조명(照明)으로 번역합니다. 신학적으로 영감(靈感), inspiration과 엄격하게 구분된 어휘입니다. 성령의 영감과 조명은 전혀 다릅니다.
Nec satis fuerit mentem esse Dei spiritu illuminatam, nisi eteius virtute cor obfii metur ac fulciatur. 이 문장은 쉬운 문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조명의 불완전성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Nor were it sufficient for the mind to be illumined by the Spirit of God unless the heart also were strengthened and supported by his power(Beveridge) 문병호는 “마음 역시 성령으로 강화되고 지탱되지 않은 한 정신이 성령으로 조명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스콜라주의자들은 완전히 벗어났다. 그들은 믿음을 단순하게 지식(notitia)에 동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심장(cor)에 있는 확신과 안전성(fiducia et securitate)을 무시해 버린다.
ex notitia assensum arripiunt, praeterita cordis fiducia et securitate.칼빈 저술에서 cognitio, notitia, scientia 등를 명료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제안을 시도해봅니다. cognitio는 체험적이고 인격적인 지식, notitia는 개념적인 지식, scientia는 지성적이고 분석적인 지식으로 분류를 제언해 봅니다. notita에 대해 영어 번역자들도 knowledge와 understanding으로 다르게 번역했습니다. 우리말에는 지식(智識)과 지식(知識)이 있는 두 의미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합니다. 언어의 세부적 개념을 알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개념에 대해서 확인하면서 사유를 진행해야 합니다. 후기 개혁파들은 이 문장처럼 믿음을 지성적 요소(notitia, 지식), 감정적 요소(assensus, 찬동), 의도적 요소(fiducia, 신뢰)로 제시했는데, 칼빈의 글로 칼빈의 견해를 제시하지 못한 사례일 것입니다. 서철원은 “믿음의 대상 지식”으로 제시했습니다. 즉 “자기가 구주로 믿는 대상에 대한 지식”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믿음의 출처”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습니다. “confidence and security(Bev)” or “confidence and assurance”(Bat) of heart로 securitas의 번역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문병호는 ‘평정’으로 번역했습니다. Bat의 번역이면 이중중복으로 강조형이 될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독특한 선물인데, 두 현상이 나타난다. 사람의 마음이 정결케되어 하나님의 진리를 맛볼 수 있게 되며, 그 진리가 우리의 영혼(animus)에 세워질 수 있게 된다. 성령은 믿음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점진적으로 성장하게 하며, 결국에 우리를 이끌어 천국에 도달하게 하신다.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 1:14)고 말씀했다.
우리는 성령은 믿음의 들음으로부터 받는다고(spiritum ex auditu fidei donari, 갈 3:2) 한 사도 바울의 말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성령의 선물(spiritus donum, 은사)이 하나뿐이었다면, 바울이 믿음의 저자이시고 원인이신 성령을 “믿음의 효과(effectum fidei)”라고 한 것은 불합리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여러 가지 은사(선물)를 주셔서 그것으로 교회를 아름답게 하시며 끊임없이 믿음을 더하심으로써 교회를 완전하게 만드신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은사를 열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런 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일들을 바울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믿음을 받지 못하면 아무도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고(요 6:65) 하는 것은 대단히 모순된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사람들이 하늘의 지혜(coelestis sapientia)가 얼마나 은밀하고 고상한가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또는 사람이 얼마나 우둔하여 하나님의 신비(Dei mysteriis)을 지각하지 못하는가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부분적으로는 사람들이 믿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심장의 확실한 항속성(stabilemque cordis constantiam)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Inst 3.2.33.] Atque haec quidem nuda(증거) externaque verbi Dei(external manifestation of the word of God 하나님의 말씀의 외적 증거.) demonstratio abunde ad fidem faciendam sufficere debebat, nisi caecitas pervicaciaque nostra impediret. Verum(truth/fact/reality) (quae mentis nostrae(우리의 마음) ad vanitatem(vanity) est proprnbio) Dei veritati(하나님의 진리, the truth of God) nunquam adhaerere(부착되다) potest; quae hebetudo est, ad eius lucem (하나님의 진리의 빛) semper caecutit. Pioinde, sine spiritus sancti illuminatione, verbo nihil agitur.
Unde etiam liquet fidem humana intelligentia multo supeiiorem esse. Nec satis fuerit mentem esse Dei spiritu illuminatam, nisi eteius virtute cor obfii metur ac fulciatur. In quo tota terra {Scholastici aberrant, qui in fidei consideratione nudum ac simplicem ex notitia assensum
2:426 [CO 2.426] arripiunt, praeterita cordis fiducia et securitate. Ergo singulare Dei donum utroque modo est fides, et quod mens hominis ad degustandam Dei veritatem purgatur, et quod animus in ea stabilitur. Neque enim fidei tantum inchoator est spiritus, sed per gradus eam auget, donec ea nos in regnum coeleste perducat. Egregium, inquit Paulus (2 Tim. 1, 14), depositum servato, per spiritum sanctum qui habitat in nobis. Quomodo autem spiritum ex auditu fidei donari tradat Paulus (Gal. 3, 2), nullo negotio expedire licet. Si unum duntaxat esset spiritus donum, absurde spiritum effectum fidei dixisset, qui autor est et causa; sed quum dona praedicet quibus ornat Deus ecclesiam suam, et per fidei incrementa ad perfectionem deducit, non mirum est si ea fidei ascribat, quae ad ea recipienda nos comparat Habetur id quidem paradoxotaton, quum dicitur neminem, nisi cui donatum sit, posse in Christum credere; sed ideo partim quod non animadvertunt vel quam recondita sit ac sublimis coelestis sapientia, vel quanta sit in percipiendis Dei mysteriis humana hebetudo, partim quod ad firmam illam stabilemque cordis constantiam, hoc est, praecipuam fidei partem, non respiciunt.
33. A simple external manifestation of the word ought to be amply sufficient to produce faith, did not our blindness and perverseness prevent. But such is the proneness of our mind to vanity, that it
can never adhere(부착하다) to the truth of God, and such its dullness, that it is always blind even in his light. Hence without the illumination of the Spirit the word has no effect; and hence also it is obvious that faith is something higher than human understanding. Nor were it sufficient for the mind to be illumined by the Spirit of God unless the heart also were strengthened and supported by his power.
Here the Schoolmen go completely astray, dwelling entirely in their consideration of faith, on the bare simple assent of the understanding, and altogether overlooking confidence and security of heart. Faith is the special gift of God in both ways, — in purifying the mind so as to give it a relish for divine truth, and afterwards in establishing it therein. For the Spirit does not merely originate faith, but gradually increases it, until by its means he conducts us into the heavenly kingdom. “That good thing which was committed unto thee,” says Paul, “keep by the Holy Ghost which dwelleth in us,” (2 Tim. 1:14). In what sense Paul says (Gal. 3:2), that the Spirit is given by the hearing of faith, may be easily explained. If there were only a single gift of the Spirit, he who is the author and cause of faith could not without absurdity be said to be its effect; but after celebrating the gifts with which God adorns his church, and by successive additions of faith leads it to perfection, there is nothing strange in his ascribing to faith the very gifts which faith prepares us for receiving. It seems to some paradoxical, when it is said that none can believe Christ save those to whom it is given; but this is partly because they do not observe how recondite and sublime heavenly wisdom is, or how dull the mind of man in discerning divine mysteries, and partly because they pay no regard to that firm and stable constancy of heart which is the chief part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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