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기독교강요

기독교강요 3.2.35. 주 예수께서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은 믿음의 신비

형람서원 2023. 10. 2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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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주 예수께서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은 믿음의 신비

 

35. 5. By the excellent qualities of faith. 6. By a celebrated passage from Augustine(Beveridge, 믿음의 탁월성과 어거스틴의 본문에서 나타난믿음 진술). Battles, Without the Spirit man is incapable of faith(성령의 사람은 믿음의 무능력이 없다, 성령의 사람은 믿음의 능력으로 된다). 문병호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따라 부여되는 믿음의 은사”

 

우리는 다른 곳에서 본성의 부패에 대해서 말할 때에, 사람이 믿음을 가지기에 부당하다는 것을 자세히 밝혔다. 따라서 여기서 같은 말을 반복하여 독자들이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 않게 하려 한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말씀은 되새기려 한다. 그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 우리에게는 원래 없는 믿음 그 자체를 바울은 “믿음의 마음”(고후 4:13)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 안에서 “하나님이…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기를 기도했다(살후 1:11). 여기서 바울은 믿음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불렀다. 그것을 어떤 수식어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기뻐함”으로 연결하여 말씀했다. 바울은 사람이 스스로 믿음을 일으킨다는 것을 부인했다. 이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라고 첨가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믿음은 사람의 지혜를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근거로 삼는다고 말씀했다(고전 2:4-5).

 

아래 문장은 쉬운 문장이 아닙니다. loquitur quidem de externis miraculis. 문병호는 “그는 실상 외적인 기적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나”로 번역한 부분입니다. Battles는 “He is speaking, indeed of outward miracles”로 번역했습니다. Beveridge는 “he is no doubt speaking of external miracles”로 번역했습니다. “외부의 기적”이라는 문구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이 “외적인 기적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 이 기적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다른 곳에서 말한 (성령의) 내적 인치심을 포함시켰다(엡 1:13, 4:30). 그리고 하나님께서 최고로 영광스러운 은사로 그의 관대하심을(liberality)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 선물을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시지 않고 원하시는 사람들에게만 특별한 권리로 주신다. 우리는 이에 대한 성경 증거들을 위에서 인용했다.

 

liberality와 liberty, liberality(후하심)은 자유(liberty)가 충만한 상태입니다.

 

이 증거의 충실한 해석자인 어거스틴은 감탄하여 “우리 구주께서는 믿음이 (자기) 공로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 아니고 선물로서 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려고,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라고 하셨고,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내게 올 수 없다”(요 6:65)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함께 말씀을 들었는데 한 사람은 멸시받고 한 사람은 세움을 받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멸시받는 사람은 그 멸시를 자기 자신에게 돌릴 줄 알고, 세움받는 사람은 그 세움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아 자랑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른 본문에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이유로 (선물을) 한 사람에게만 주시고 다른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았는가? 나는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이것이 십자가의 깊은 것(profundum crucis)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판단의 어떤 깊은 곳에서…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나온다…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안다. 어째서 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는 그 어째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무슨 이유로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다른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밑 없는 구덩이(심연)며, 십자가의 깊이다(abyssus est, profundum crucis). 나는 경이로움 속에서 외치고 있으며 논쟁한다면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다음처럼 요약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영의 능력으로 우리를 조명하셔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될 때에 동시에, 자기 몸에 우리를 접붙이시므로 우리에게 (그의) 모든 좋은 것에 참여하게 하신다(Huc redit summa, Christum, ubi nos in fidem illuminat spiritus sui virtute, simul inserere in corpus suum, ut fiamus bonorum omnium participes).

 

칼빈이 말하는 “십자가의 깊이(the deep things of the cross)”는 어거스틴에서 루터(십자가의 신학) 그리고 칼빈에 이어지는 고백입니다. 구원의 신비를 인간 언어로 명확하게 구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구원 과정(황금사슬)을 명확하게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시도한 그룹이 개혁파 후기 스콜라주의(청교도 신학)에 있습니다.

 

 

 

[Inst 3.2.35.] Alibi quum de naturae corruptione tractandum fuit, plenius ostendimus quam non sint idonei homines ad credendum. Itaque non fatigabo lectores eadem repetendo. Sufficiat spiritum fidei vocari a Paulo (2 Cor. 4, 13) fidem ipsam, qua donamur a spiritu, non autem quam naturaliter habeamus. Ideo precatur ut in Thessalonicensibus impleat Deus omne beneplacitum suum et opus fidei in virtute (2 Thess. 1, ll). Ubi fidem vocans opus Dei, et loco epitheti insigniens, appositive vocans beneplacitum, negat esse ex proprio hominis motu; neque eo contentus adiungit, specimen esse virtutis divinae. Ad Corinthios (1 Cor. 2 , 4 ) , ubi fidem non pendere ex sapientia hominum dicit, sed fundatam esse in potentia spiritus, loquitur quidem de externis miraculis; sed quia ad eorum aspectum caecutiunt reprobi, comprehendit etiam interius illud sigillum, cuius alibi meminit.

 

Ac quo magis in tam praeclaro dono suam liberalitatem illustret Deus, non omnes eo promiscue dignatur, sed singulari privilegio impertit quibus vult Cuius rei ante citavimus testimonia.

 

Quorum fidus interpres Augustinus l) exclamat, ut servator doceret ipsum quoque credere doni esse, non meriti. Nemo, inquit, venit ad me nisi pater meus traxerit eum, et cui datum fuerit a patre meo (Ioann. 6, 44). Mirum est quod duo audiunt: unus contemnit, alter ascendit. Qui contemnit, imputet sibi; qui ascendit, non arroget sibi. Alio loco: quare uni datum est, non alteri? Non me piget dicere, hoc est profundum crucis. De profundo nescio quo iudiciorum Dei, quae perscrutari non possumus, procedit omne quod possumus. Quod possum, video: unde possum, non video, nisi quia hactenus video, a Deo esse. Quare autem illum, et non Ulum? multum est ad me; abyssus est, profundum crucis. Admiratione exclamare possum, non disputatione monstrare. Huc redit summa, Christum, ubi nos in fidem illuminat spiritus sui virtute, simul inserere in corpus suum, ut fiamus bonorum omnium participes. 1) Aug. de verbis apost. libr. 2.

 

35. Having elsewhere shown more fully, when treating of the corruption of our nature, how little able men are to believe (Book 2, c. 2, 3), I will not fatigue the reader by again repeating it. Let it suffice to observe, that the spirit of faith is used by Paul as synonymous with the very faith which we receive from the Spirit, but which we have not naturally (2 Cor. 4:13). Accordingly, he prays for the Thessalonians, “that our God would count you worthy of this calling, and fulfill all the good pleasure of his goodness, and the work of faith with power,” (2 Thess. 1:2). Here, by designating faith the work of God, and distinguishing it by way of epithet, appropriately calling it his good pleasure, he declares that it is not of man’s own nature; and not contented with this, he adds, that it is an illustration of divine power. In addressing the Corinthians, when he tells them that faith stands not “in the wisdom of man, but in the power of God,” (1 Cor. 2:4), he is no doubt speaking of external miracles; but as the reprobate are blinded when they behold them, he also includes that internal seal of which he elsewhere makes mention. And the better to display his liberality in this most excellent gift, God does not bestow it upon all promiscuously, but, by special privilege, imparts it to whom he will. To this effect we have already quoted passages of Scripture, as to which Augustine, their faithful expos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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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laims (De Verbo Apost. Serm. 2) “Our Savior, to teach that faith in him is a gift, not a merit, says, ‘No man can come to me, except the Father, which has sent me, draw him,’ (John 6:44). It is strange when two persons hear, the one despises, the other ascends. Let him who despises impute it to himself; let him who ascends not arrogate it to himself” In another passage he asks, “Wherefore is it given to the one, and not to the other? I am not ashamed to say, This is one of the deep things of the cross. From some unknown depth of the judgments of God, which we cannot scrutinize, all our ability proceeds. I see that I am able; but how I am able I see not:—this far only I see, that it is of God. But why the one, and not the other? This is too great for me: it is an abyss a depth of the cross. I can cry out with wonder; not discuss and demonstrate.” The whole comes to this, that Christ, when he produces faith in us by the agency of his Spirit, at the same time ingrafts us into his body, that we may become partakers of all bless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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