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기독교강요

[Inst 3.2.31.] 은혜로 형성된 믿음과 믿음으로 행동한 삶, 구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의 불변성으로 흔들림이 없다

형람서원 2023. 9. 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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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은혜로 형성된 믿음과 믿음으로 행동한 삶, 구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의 불변성으로 흔들림이 없다

 

31. The word of God the prop and root of faith. The word attests the divine goodness and mercy. In what sense faith has respect to the power of God. Various passages of Isaiah, inviting the godly to behold the power of God, explained. Other passages from David. We must beware of going beyond the limits prescribed by the word, lest false zeal lead us astray, as it did Sarah, Rebekah, and Isaac. In this way faith is obscured, though not extinguished. We must not depart one iota from the word of God. Beverdige는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밝히며, 이사야, 창세기 등 다양한 부분에서 증거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Battles는 “The significance of the Word for faith”로 “말씀의 중요성”에 대해서 제시했다.

문병호는 “성도의 불완전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는 믿음”으로 정리했다.

 

우리는 앞에서 제시했던 것을 다시 상기하도록 한다. 나무의 열매를 위해서는 산 뿌리가 필요한 것과 같이, 믿음을 위해서도 말씀이 필요하다(non minus verbo opus habere fidem quam fructum viva radice arboris)고 설명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없다(시 9:10)고 증거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의 상상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선하심을 증거하실 때(sed quatenus Deus ipse suae bonitatis testis est)에 생긴다. 이 점에 대해서 선지자는 “주의 말씀대로…주의 구원”(시 119:41)에서 확증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주의 말씀을 의뢰”하오니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했다(시 119:42, 40, 94). 여기서 우리는 먼저 “믿음과 말씀의 관계(fidei ad verbum relatio)”를 그리고 다음에 “그 결과인 구원(salutis consequentia)”에 대해서 집중해서 설명하겠다.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potentiam Dei)을 제외하지 않음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서 확고한 믿음이 서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 합당한 영예(honorem)를 돌릴 수 없다.

 

바울은 아브라함에 대해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로 전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된 아들을 약속하실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다고 말했다(롬 4:21). 마찬가지로 다른 곳에서 자신에 관해서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한다고 했다(딤후 1:12).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의심이 얼마나 자주 마음 속에 침투하는가를 반성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능력에 당연한 찬양을 드리는 사람들은 그 믿음 고백이 적지 않게 진보했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일을 무엇이든지 하실 능력이 있다”고 우리는 모두 고백할 것이다. 그러나 사소한 시험을 당하여도 무서워 쓰러지며 혼비백산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절감시키고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에 반대하여 우리를 위협하는 사탄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하다.

선지자 이사야는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깊이 심어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을 장엄하게 말씀했다(사 40:25이하, 40-45장에서도 빈번히). 이사야는 죄사함의 소망과 화해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ubi sermonem exorsus est de spe veniae et reconciliationis), 먼저 다른 이야기하며 불필요한 긴 미로를 헤매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때가 많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 모든 자연 법칙으로 하늘과 땅의 창조체를 얼마나 놀랍게 주관하시는가를 상고해야 한다. 현재 형편에 유익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눈으로 보지 않으면 우리의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그 가치도 측량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유효한 능력을 선언한다. 이전 어디에서 제시되었듯이, 경건은 항상 하나님의 권능을 율법과 사역에 맞게끔 적용시키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아버지라고 증언하시는 사역들을 특별하게 앞세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구속에 관한 기억들이 자주 언급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단 번 자기들을 구해주신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 구원을 지켜주시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또 다윗의 예를 보면,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베푸시는 선하심(beneficia)은 그들이 앞으로도 하나님을 굳게 믿도록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시 버림을 받은 듯이 보여질 때에, 시야를 넓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전의 선하심을 회상함으로써 원기를 회복해야 한다. 시편에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시 143:5)라고 한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시 77:11)라고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행하신 일들에 대한 생각은 말씀이 없으면 곧 사라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gratia)의 증거로 조명해 주시지 않는다면 어떤 믿음도 있을 수 없다고 우리는 단정한다. 이 단정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라와 리브가를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다. 이 두 사람은 열렬한 신앙이 불타는 듯했으며, 말씀의 한계를 넘어선 듯 보이기 때문이다. 사래는 약속받은 후손을 얻으려는 열망으로 여종을 남편에게 주었다(창 16:2, 5). 사래가 여러 가지로 죄를 지은 것을 우리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가 열성으로 흥분하여 자기가 규정한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내에 머물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열정적인 행동은 믿음에서 나왔다는 것은 확실하다.

 

Sarai(사래) and Sarah(사라)의 분깃점은 창세기 17장입니다. 우리는 사라와 사래를 좀 더 정확하게 제시했습니다. 창세기 17장 이전은 ‘사래’로 제시했습니다.

 

리브가는 “둘째 아들(작은자) 야곱을 택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얄팍한 속임수로 남편을 속이며 아들이 축복받도록 주도했다(창 27: 9). 그녀는 남편 곧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며 전달하는 사람을 속이고 아들에게 억지로 거짓말을 시켰다. 여러 간계와 기만으로 하나님의 진실을 더럽힌 것처럼 보인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우롱함으로써 행동해서 그 약속을 깨뜨린 것처럼 보인다(창 27장). 그러나 거짓으로 한 행동이 실패로 돌아갔고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었지만, 그 행동은 믿음이 없는 행위가 아니었다. 리브가가 지상적인 유익을 얻을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큰 곤란과 위험이 넘치는 일을 성취하려고 분투 노력하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소한 장애물을 극복할 필요가 있었다.

 

※ 저는 리브가와 야곱이 지상적인 유익을 얻으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탐욕을 이용해서 결국은 지상적인 유익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기대하며 바랄 수 있도록 인도하셨고, 결국 야곱은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는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칼빈은 이삭이 장자 에서에게 축복을 주려했던 것을 미숙한 믿음의 지식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법대로 행동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법)이 충돌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에게 속아 조약을 체결했을 때에, 속임수의 약속은 원인 무효가 일반적 법원리입니다. 그런데 속아서 한 약속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일반법적 사례와 구원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사례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1643년 엄숙한 동맹과 언약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등장합니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런던에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표준문서로 가져오는데, 박해자의 나라에서 만든 문서를 채택한 것은 언약 유지 원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족장 이삭도 비록 둘째 아들에게 장자권이 옮겨진 것에 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맏아들 에서에게 장자권을 주려고 기울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믿음이 전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예들을 보면 믿음에는 확실히 과오가 섞이는 일이 많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진정한 믿음은 항상 이기는 법이다. 리브가의 특별한 과오가 축복을 무효로 만들지 않은 것과 같이 그녀의 믿음도 말살되지 않았다. 이 믿음은 대체로 그녀의 마음을 지배했고 문제의 행동도 믿음이 발단과 원인이 있던 것이다. 그러나 리브가는 이 점에서 인간적인 심리를 드러내 보이는데 사람의 마음은 조금이라도 단속을 완화하면, 아주 재빨리 곁길로 들어서 버린다.

 

또한 사람의 태만과 무력이 믿음을 흐리게 할지라도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예를들은 우리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가를 경고하며 우리가 이미 가르친 것을 확인한다. 곧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지를 얻지 않으면 소멸한다는 것이다. 사래와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비밀히 속박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에 꾸준히 순종하도록 만들지 않으셨다면, 정도를 벗어난 술책을 쓰다가 제정신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Inst 3.2.31.] Hinc vero rursum colligimus quod ante expositum fuit, non minus verbo opus habere fidem quam fructum viva radice arboris: quia non alii, teste Davide (Psal. 9, 11), sperare in Deo possunt, nisi qui noverunt nomen eius. Haec autem cognitio ex cuiusque imaginatione non est, sed quatenus Deus ipse suae bonitatis testis est. Quod idem propheta alibi confirmat (ibid. 119, 41): salus tua secundum eloquium tuum. Item: speravi in verbo tuo, salvum me fac. Ubi 27*

 

2:423 [CO 2.423] INSTITUTIO REL. CHRIST. 1559. notanda est fidei ad verbum relatio, deinde salutis consequentia. Neque tamen interea potentiam Dei excludimus, cuius intuitu nisi se fides sustentet, nunquam Deo tribuet suum honorem. Videtur Paulus (Rom. 4, 21) frigidum quiddam aut vulgare referre de Abraham: quod crediderit Deum, qui benedictum semen ei promiserat, potentem esse. Item alibi (2 Tim. 1, 12) de se ipso: scio cui crediderim, et certus sum quod potens sit depositum meum servare in diem Ulum. Verum si quisque secum expendat quot identidem dubitationes de virtute Dei obrepant, satis agnoscet, qui eam magnifaciunt ut digna est, non parvos fecisse progressus in fide. Fatebimur omnes Deum posse quidquid vult: sed dum nos metu consternat et horrore attonitos reddit minima quaeque tentatio, hinc palam est nos derogare potentiae Dei cui praeferimus quae contra eius promissiones minatur satan. Haec ratio est cur Iesaias, dum salutis certitudinem vult imprimere cordibus populi, tam magnifice de immensa Dei virtute disserat. Videtur saepe, ubi sermonem exorsus est de spe veniae et reconciliationis, alio digredi, et vagari per longas et supervacuas ambages, commemorans quam mirabiliter Deus coeli et terrae machinam cum toto naturae ordine gubernet Nihil tamen est quod non circumstantiae praesenti serviat: quia nisi virtus Dei, qua potest omnia, oculis nostris occurrat, verbum aures maligne admittent, vel non aestimabunt iusto pretio. Adde quod effectualis potentia hic notatur: quia pietas, ut alibi visum fuit, Dei potentiam semper ad usum et opus accommodat; praesertim opera Dei sibi proponit, quibus se patrem esse testatus est. Hinc illa tam crebra in scripturis redemptionis memoria , ex qua discere poterant Israelitae, Deum, qui semel autor fuerat salutis, aeternum fore eius custodem. Suo etiam exemplo nos admonet David, quae privatim singulis beneficia contulit Deus, ad confirmationem fidei eius in posterum valere; imo ubi deseruisse nos videtur, sensus nostros longius extendere convenit, ut vetusta eius beneficia nos erigant, sicuti alio Psalmo (143, 5) dicitur: memor fui dierum antiquorum; meditatus sum in cunctis operibus tuis, ete. Item (ibid. 77, l l ) :

recordabor operum Domini, et mirabilium eius ab initio. Sed quia sine verbo evanidum est quidquid concipimus de potentia Dei et 'operibus, non temere asserimus nullam esse fidem donec gratiae suae testimonio praeluceat Deus. Posset hic tamen moveri quaestio, quid de Sara et Rebecca sentiendum sit, quarum utraque fidei zelo, ut videtur, impulsa, extra verbi fines egressa est. Sara quvm arderet desiderio promissae sobolis, andUam suam marito supposuit. Quin multis medis peccaverit negandum non est; sed hoc vitium nunc attingo, quod zelo suo abrepta se intra verbi Dei metas non continuit. Certum tamen est, desiderium illud a fide profectum esse. Rebecca oraculo certior facta de electione filii sui Iacob, eius benedictionem malo artificio procurat, maritum suum

 

2:424 [CO 2.424] gratiae Dei testem ac ministrum decipit, filium suum cogit mentiri, variis fraudibus et imposturis corrumpit Dei veritatem. Denique ludibrio exponens illius promissionem, quantum in se est eam abolet. Neque tamen hoc opus, quamlibet vitiosum et reprehensione dignum, fide vacuum fuit: quia superare multa offendicula necesse fuit ut tantopere appeteret, quod sine spe terrenae utilitatis ingentibus molestiis et periculis refertum erat. Sicuti sanctum patriarcham Isaac non omnino fide privabimus, eo quod admonitus eodem oraculo de honore ad minorem filium translato, non desinit tamen propensus esse in primogenitum suum Esau. Docent certe haec exempla, errores saepe fidei esse permixtos; sic tamen ut primatum semper teneat Uia, ubi vera est. Sicuti enim Rebeccae particularis error non irritum benedictionis effectum reddidit, sic neque fidem quae generaliter dominata est in eius animo, principiumque et causa fuit illius actionis. In eo nihilominus prodidit Rebecca quam lubricus sit humanae mentis flexus simul ac vel tantillum sibi permittit. Etsi autem defectus et imbecillitas fidem obscurat, non tamen exstinguit; interim nos admonet quam sollicite pendere oporteat ex ore Dei, et simul confirmat quod docuimus, fidem nisi verbo suffultam effluere; sicuti et Sarae et Isaac et Rebeccae evanuissent animi in obliquis suis deflexionibus, nisi arcano Dei fraeno in verbi obedientia retenti essent.

31. Hence again we infer, as has already been explained, that faith has no less need of the word than the fruit of a tree has of a living root; because, as David testifies, none can hope in God but those who know his name (Ps. 9:10). This knowledge, however, is not left to every man’s imagination, but depends on the testimony which God himself gives to his goodness. This the same Psalmist confirms in another passage, “Thy salvation according to thy word,” (Ps. 119:41). Again, “Save me,” “I hoped in thy word,” (Ps. 119:146, 147). Here we must attend to the relation of faith to the word, and to salvation as its consequence. Still, however, we exclude not the power of God. If faith cannot support itself in the view of this power, it never will give Him the honor which is due. Paul seems to relate a trivial or very ordinary circumstance with regard to Abraham, when he says, that he believed that God, who had given him the promise of a blessed seed, was able also to perform it (Rom. 4:21). And in like manner, in another passage, he says of himself,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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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 whom I have believed, and am persuaded that he is able to keep that which I have committed unto him against that day,” (2 Tim. 1:12). But let any one consider with himself, how he is ever and anon assailed with doubts in regard to the power of God, and he will readily perceive, that those who duly magnify it have made no small progress in faith. We all acknowledge that God can do whatsoever he pleases; but while every temptation, even the most trivial, fills us with fear and dread, it is plain that we derogate from the power of God, by attaching less importance to his promises than to Satan’s threatenings against them.296

This is the reason why Isaiah, when he would impress on the hearts of the people the certainty of faith, discourses so magnificently of the boundless power of God. He often seems, after beginning to speak of the hope of pardon and reconciliation, to digress, and unnecessarily take a long circuitous course, describing how wonderfully God rules the fabric of heaven and earth, with the whole course of nature; and yet he introduces nothing which is not appropriate to the occasion; because unless the power of God, to which all things are possible is presented to our eye, our ears malignantly refuse admission to the word, or set no just value upon it. We may add, that an effectual power is here meant; for piety, as it has elsewhere been seen, always makes a practical application of the power of God; in particular, keeps those works in view in which he has declared himself to be a Father. Hence the frequent mention in Scripture of redemption; from which the Israelites might learn, that he who had once been the author of salvation would be its perpetual guardian. By his own example, also, David reminds us, that the benefits which God has bestowed privately on any individual, tend to confirm his faith for the time to come; nay, that when God seems to have forsaken us, we ought to extend our view farther, and take courage from his former favors, as is said in another psalm, “I remember the days of old: I meditate on all thy works,” (Ps. 143:5). Again “I will remember the works of the Lord; surely I will remember thy wonders of old” (Ps. 77:11). But because all our conceptions of the power and works of God are evanescent without the word, we are not rash in maintaining, that there is no faith until God present us with clear evidence of his grace.

Here, however, a question might be raised as to the view to be taken of Sarah and Rebekah, both of whom, impelled as it would seem by zeal for the faith, went beyond the limits of the word. Sarah, in her eager desire for the promised seed, gave her maid to her husband. That she sinned in many respects is not to be denied; but the only fault to which I now refer is her being carried away by zeal, and not confining herself within the limits prescribed by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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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 It is certain, however, that her desire proceeded from faith. Rebekah, again, divinely informed of the election of her son Jacob, procures the blessing for him by a wicked stratagem; deceives her husband, who was a witness and minister of divine grace; forces her son to lie; by various frauds and impostures corrupts divine truth; in fine, by exposing his promise to scorn, does what in her lies to make it of no effect. And yet this conduct, however vicious and reprehensible, was not devoid of faith. She must have overcome many obstacles before she obtained so strong a desire of that which, without any hope of earthly advantage, was full of difficulty and danger. In the same way, we cannot say that the holy patriarch Isaac was altogether void of faith, in that, after he had been similarly informed of the honor transferred to the younger son, he still continues his predilection in favor of his first-born, Esau. These examples certainly show that error is often mingled with faith; and yet that when faith is real, it always obtains the preeminence. For as the particular error of Rebekah did not render the blessing of no effect, neither did it nullify the faith which generally ruled in her mind, and was the principle and cause of that action. In this, nevertheless, Rebekah showed how prone the human mind is to turn aside whenever it gives itself the least indulgence. But though defect and infirmity obscure faith, they do not extinguish it. Still they admonish us how carefully we ought to cling to the word of God, and at the same time confirm what we have taught—viz. that faith gives way when not supported by the word, just as the minds of Sarah, Isaac, and Rebekah, would have lost themselves in devious paths, had not the secret restraint of Providence kept them obedient to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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