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기독교강요

기독교강요(7) 교만과 욕심으로 신(神)을 왜곡

형람서원 2015. 2. 1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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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7) 교만과 욕심으로 신(神)을 왜곡
기사입력 2015-02-15 오전 10:10:00 | 최종수정 2015-02-15 10:10   

기독교강요 I권 4장의 제목은 “이 지식은 부분적 무지와 부분적 악의에 의해서 질식 혹은 부패된다”는 것이다. 죄인인 인간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죄인인 인간이 인식하는 지식은 항상 부분적인데, 혹 진리를 발견했다가도 바로 질식되어 소멸되거나 혹은 부패되어 진리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것은 인류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다. 인간에 의해서 완전한 선(善)이 나온 적이 없다.

칼빈은 “경험”에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종교의 씨앗”을 심었다고 제시하였다(Inst., I, 4, 1). 그런데 자연인이 이 씨앗을 간직하거나 성장시키는 경우가 하나도 없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미신(迷信,superstition)에 빠져, 고의나 악의로 하나님을 비방하여 참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이탈하기 때문이다. 육적인 어리석음은 건전한 탐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교만, 허영, 호기심에서 헛된 사색(empty speculation)으로 방황한다. 하나님께서 보여준 계시대로 이해하지 않고 인간이 상상에서 만들어 낸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마음은 허구나 망상을 만들어 예배하며(롬 1:22) 두루 찾아다닌다.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교만, 헛된 호기심, 무지 등이 결합하여 터무니없는 욕망을 추구한다.

죄된 인간은 선천적으로 어리석어 무례히 하나님과 그의 정의와 섭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게으름을 피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하나님까지 싫어하고 거부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알면서도 고의로 부정하고 은폐한다. 그들이 극구 하나님을 부인하는 행동도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16세기 칼빈은 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하지 않은 하나님에 대해서 조건으로 설명하였는데, 17세기 유럽의 지성은 이신론(Deism)을 등장시켜 공의가 없는 하나님을 조작하였다.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죽은 신” 혹은 “벙어리 우상”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극악한 인간은 자신의 의식에서 하나님을 제거하려고 몸부림하는 맹목적 충동에

사로잡혀 자주적 인간을 선언하였다. 그것이 오히려 짐승보다 못한 삶이 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악하고 비참하고 추한 모습이 된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미신을 그럴듯하게 꾸며 자기중심과 고집으로 자기주장을 유지한다. 그러나 거짓된 종교적 열심만으로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다. 참된 종교는 하나님의 보편적 규칙을 진리로 알고 그것에 자신을 맞춘다. 하나님의 무한하고 불변한 지식을 개인이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지식은 망령이고 환상이다. 그래서 미신은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는 행동이다.

16세기 칼빈은 락탄티우스(Lactantius)의 글로 진리의 불변성과 참된 종교가 있다고 하였다. “진리와 연결되지 않는 어떤 것도 참된 종교가 아니다”. 20세기 카알 발트는 “하나님의 자유” 그리고 “준용(準用, muntatis mutandis)”을 주장하며 진리가 시대에 따라 변화가 가능한 상태로 제시하였다. 가변적인 진리 체계나 모호한 지식의 불가지론은 절대자 하나님께 부당한 것이다. 한 분 하나님은 변함없는 유일하고 확실한 하나님이시다.

칼빈은 또 하나의 부당한 인간의 죄악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은 스타티우스(Statius)가 주장한 “공포가 신(神)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Inst., I, 4, 4).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은 두려움의 산물이지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인격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위엄을 무시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위엄이 있는 유사한 종교의 형태를 구성하기까지 한다. 아무리 비슷한 형태와 내용이라 할지라도 육적인 구성에서 성령의 사역은 없다.

그들의 종교의 그림자, 종교의 씨앗으로 참된 종교를 이룰 수 없다. 거짓 종교를 만들어 많은 제물을 바쳐서 하나님을 마음을 사려고 한다. 그들이 신(神)의 마음을 사려는 것도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행동이다. 인간이 거짓과 욕심에 스스로 사려 잡혀 그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께 버림받음에 하나님을 부정하고 거역한다. 그럼에도 두려움에 쌓여 형식적인 기도, 예배를 한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으면 참된 예배를 해야 하는데 교만과 욕심으로 할 수 없다. 그래서 교만과 탐욕의 인간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겸손한 백성, 믿는 자는 힘써 참 하나님의 사랑에서 온유한 심정으로 참 지식을 구하고 찾는다.

고경태 목사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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