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이야기

[칼빈 신학] 제 1 강의

형람서원 2010. 3. 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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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 신학] 제 1 강의: 교과 오리엔테이션

 

    칼빈 신학은 신학의 범주에서 가장 광범위한 제목이다. 칼빈의 한 가지는 한 신학자의 평생의 연구과제이고, 한 과제에 대단한 연구 산물들이 도서관에 즐비하다. 이러한 칼빈의 신학을 다루는 교과의 목적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칼빈은 기독교의 학도로서는 꼭 한 번은 거쳐야 될 필수적인 인물이다.

 

   칼빈은 종교개혁의 완성자로 평가되어, 종교개혁의 이전의 신학을 집대성하였다. 칼빈 이전의 대신학자로 어거스틴과 토마스 아퀴나스를 들수 있다. 어거스틴은 고대신학을 집대성하여 고대교회와 중세교회의 연결점이 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교회의 신학을 집대성하여 중세교회의 신학에 종지부를 찍은 대신학자이다. 그러나 칼빈은 두 신학자와 다르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신학을 집대성한 신학자이다.

   반면 칼 발트는 정통주의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집대성한 신학자로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사상을 집대성하면서 자기의 주장을 펼친 신학자를 대 신학자로 평하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업적은 깊이 고찰되어 연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이전의 신학을 그들의 관점을 보는 것이 중요한 신학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은 대신학자이면서도, 많은 대적자들이 있다. 칼빈의 당대에도 그러했고, 사후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그러하다. 대적자가 있다는 것은 먼저 오염된 자료가 있다는 것이다. 칼빈의 대적자들은 칼빈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가리지 정보를 다량으로 유보시켰다. 이러한 가라지 정보에 현혹된다면 칼빈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도 대적자들이 있었고, 사도 바울에게도 대적자들이 있었다. 칼빈에게도 대적자들이 있었고, 또한 현재 선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대적자들이 있다. 대적자들은 의로운 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먼저 학도는 오염된 정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자기의 대적자들을 지혜롭게 극복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칼빈은 목사이다. 칼빈은 성경주석가이다. 칼빈은 신학자이다. 칼빈은 정치가이다. 그런데 칼빈은 육체에는 다양한 질병(종합병원으로 불릴 정도로..)을 가졌고, 가정은 아이와 아내가 먼저 죽음을 맞이한 아픔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칼빈의 신학적 작업이 전개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인간적 측면에서 칼빈을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주께서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않는다고 하셨다. 칼빈은 상한 갈대보다 더 상한 육체와 심령을 갖고 있었다. 조국인 프랑스에서 망명하여, 파렐의 권유로 제네바에 머물렀지만 제네바에서 퇴출되는 아픔을 갖았다. 칼빈은 평안한 삶을 살기 원했지만 주의 성령은 그를 원하지 않는 제네바로 보내셨다. 그것도 아픈 육체를 갖고 있는 칼빈에게 주어진 사역이었다. 칼빈은 죽음에 이르는 그날까지 목회와 성경연구 그리고 신학의 정진을 계속하였다.

 

   칼빈의 신학에는 크게 세부류로 나눌 수 있다. 칼빈을 적극적 옹호파, 중도파, 반대파이다. 현재에는 중도파가 학계와 교계에 많이 포진되어 있다. 중도파는 중간자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죄된 본성은 육신을 자극하는 정보에 쏠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중간자들은 칼빈의 오염된 에피소드나 왜곡된 정보에 현혹되어 부정적인 견해에 귀를 기우리고 있다. 반면 긍정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외면하게 된다. 칼빈이 제네바 교회에서 추방당하는 것이나, 육신의 질병의 상태에서도 목회, 성경연구, 신학작업, 서신작업, 교회정치, 시정치 등 다양한 활동에 대한 놀라운 인간의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축소시킨다.

 

   칼빈에 대해서는 적극적은 옹호파, 사랑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물론 선택은 당사자가 해야한다) 그러나 칼빈의 열매가 인류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악한 사람이 아닌 칼빈을 악의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악의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또한 선한 사람을 중간자적 입장에서 판단하려는 것은 칼빈을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놓으려는 인간적 교만이다.

 

   칼빈이 없었다면 개신교는 불완전한 종교개혁(루터파)에 머물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기독교의 세계를 회복시켜주고 개혁주시켜준 믿음의 선배에 대해서 정당한 가치를 평가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개혁파의 후예로서 칼빈의 뒤를 쫓아서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경건의 삶, 믿음의 정진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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