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이야기

[칼빈] 빌립보서 1:22-26

형람서원 2008. 11. 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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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ians 1:22-26

Philippians 1:22-26

22. But if I live in the flesh, this is the fruit of my labour: yet what I shall choose I wot not.

22. Quodsi vivere in carne operae pretium mihi est, etiam quid eligam ignoro. [“Or encore que viure en chair me fust proufitable, ie ne scay lequel ie doy eslire, ou, Or si viure en chair me est proufitable, et que c’est qu’ie doy eslire, ie ne scay rien;” — “But although to live in the flesh would not be profitable to me, I know not what I ought to choose; or, But if to live in the flesh is profitable to me, and that it is what I ought to choose, I know not.”]

23. For I am in a strait betwixt two, having a desire to depart, and to be with Christ; which is far better:

23. Coarctor enim ex duobus cupiens dissolvi et esse cum Christo: multo enim hoc melius.

24. Nevertheless to abide in the flesh is more needful for you.

24. Manere vero in carne, magis necessarium propter vos.

25. And having this confidence, I know that I shall abide and continue with you all for your furtherance and joy of faith;

25. Atque hoc confisus novi, quod manebo et permanebo cum omnibus vobis, in vestrum profectum et gaudium fidei,

26. That your rejoicing may be more abundant in Jesus Christ for me by my coming to you again.

26. Ut gloriatio vestra exsuperet in Christo Iesu de me, per meum rursus adventum ad vos.

[개역개정] 1:22-26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본문내용]

 

22절.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신자는 죽는 것과 사는 모든 것이 유익되기 때문에 어느 것을 택해야 될지 망설이게 된다. To live in the flesh, is an expression which he has made use of in contempt, from comparing it with a better life.

        내 일의 열매인진대. 죽는 것도 유익하지만 삶에는 ‘열매’ 즉 복음을 전도할 수 있는 유익이 있다.

 

23절. 내가.... 끼었으니. 바울은 감옥에서 처형됨을 원하고 있고, 삶의 곤고함 사람의 짐이 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사람들은 살기에 지쳐서 죽기를 바란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것은 죄의 매임에 놓여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죽음 뒤에 오는 생명을 바라봄, 하나님께 주신 위로로 죽음을 쉽게 정복한다. 오 선한 양심! 우리를 얼마나 강하고 담대하게 해주는가! 믿음은 선한 양심의 기초이며, 그 자체이다(O the worth and value of a good conscience! Now faith is the foundation of a good conscience; nay more, it is itself goodness of conscience).

      떠나서 바울은 죽음 후의 상태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으로 제시한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데 그것은 바라봄이며(현시점에서는 실제적으로 떨어져 있다. 고후 5:6), 사후에는 그리스도 앞에서 즐거워하게 된다.

 

25절.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확실한 표를 가질 때는 언제나 분명한 믿음으로 답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26절. 너희 자랑이....(서철원)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돌아오면 큰 영광이고 자랑거리가 된다. 악의를 품은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움에 선한 믿음의 동역자들에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랑이 넘쳐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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