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0 장 2009년 10월 25일(주일 오전)
야곱의 장례와 형제의 화해
창세기는 50장으로 마감합니다. 창세기는 모세가 쓴 성경의 첫 번째 위치로서 야곱의 장례와 요셉의 죽음으로 한 단원을 마감합니다. 야곱의 70명이 가나안에서 애굽의 고센에서 머물게한 야곱과 요셉이 죽음으로 창세기가 마갑합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아무리 훌륭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끝이 있습니다. 인간은 시작하면서부터 죽음을 대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직면한 죽음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죽을 때에 할말은 무엇인가? 나의 할 말을 다하고 죽어 영생에 들어가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둘째, 이 땅에서 모든 인생의 과업을 완수하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은 사는 모습은 달랐고, 영화도 달랐지만 공통점은 영생의 백성입니다.
1. 야곱의 장례 = 애굽의 국장으로 진행됨
야곱은 12아들 모두에게 예언하였습니다(49장). 야곱은 아들들에게 예언을 끝낸 후에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49장 33절). 요셉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여의고 슬픔에 겨웠지만, 산 자의 의무로서 아버지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아버지에게 애굽의 장례법대로 장례를 진행하였습니다.
야곱의 장례는 애굽의 왕을 염(殮)하은 애굽식이었습니다. 애굽식으로 진행된 장례는 미이라는 만드는 장례법이었습니다. 미이라를 만드는 데 40일이 걸고, 애굽의 습관대로 70일을 울었습니다. 바로의 장례에는 72일 동안 울었는데 요셉의 아버지 야곱을 위해서는 70일을 울었습니다. 거의 바로에 준하는 장례 의식인 것입니다. 야곱의 장례는 바로 애굽의 국장이 된 것입니다. 즉 야곱의 장례는 범세계적인 장례의 진행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범세계적인 재판정의 일이 됩니다. 모든 법의 원천인 로마의 재판관에서 일어난 무법의 소치는 세계의 무법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 요셉의 무덤에 장사됩니다. 그 요셉의 무덤은 우리가 들어가야 할 무덤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무덤에 들어가기를 힘썼지만, 우리는 예수께서 들어가신 요셉의 무덤에 들어가려고 힘써야 합니다.
애굽에서 미이라는 만드는 것은 신이 왔을 때에 맞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행하는 특별한 종교적 의식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40일 동안 시체를 처리하면서 염을 하여 오랫동안 부패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야곱의 장례에서 부활 후에 그리스도를 영접할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화장(火葬)을 선호하지 않는데, 우리나라 현실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화장으로 갑니다. 화장을 할 때에 우리는 다시 만난다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장례식에서 우리의 결과와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갖아야 할 것입니다.
2. 형들과 요셉 = 용서와 화해
아버지가 죽자 형들은 순식간에 자기들에게 임한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즉 자기들의 보호자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 자신들을 보호해줄 대상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눈치를 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형들에게 요셉은 신앙을 고백하면서 형들을 기꺼이 용서하게 됩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한 형들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요셉에게 행한 죄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기 때문에 감히 요셉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적극적인 화해의 선언으로 형제들은 아버지가 없어도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교우들이여!
우리의 실제적인 형제의 관계도 부모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에는 서로가 남남이 될 수가 있습니다. 형제와 가족은 하나님께서 주신 천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하신 뜻을 순종하며 가족을 돌보시길 원합니다.
형들은 요셉이 이전에 용서함을 말했지만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죄의 용서의 선언을 기대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의인들입니다. 보혈의 능력을 능가할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죄사함을 받은 백성들은 자신의 죄사함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증진해야 할 것입니다. 항상 죄사함에 대해서 궁금해한다면 불신앙이되며, 거룩의 증진이 없는 삶은 죄사함이 없는 삶입니다. 한 번 죄사함으로 거룩한 삶이 계속해서 증진되길 원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두려움에 대해서 완전한 해소를 제공합니다. 요셉은 명확하게 형들에게 용서와 보호를 선언합니다. 요셉의 이러한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승자입니까? 패자입니까? 승자일 때에는 모든 아량을 베풀어야 합니다. 승자에게는 관용과 겸손이 필요합니다. 패자입니까? 활력과 도전이 필요합니다. 승자도 패자도 아닌 중간상태(횡보상태)입니까? 자기의 갈 길을 점검하고 오직 주와 동행하여 주의 때를 위해서 움츠리고 때를 살펴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요셉에게 어떠한 것도 수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들이여!!
믿음의 승자가 되어 너그러움으로 형제를 아우를 수 있는 권위자가 되시길 원합니다.
[ 결 론 ]
험악한 세월을 지낸 야곱도 결국은 죽음에 이르러 장례를 맞게 됩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달리 애굽의 바로의 장례의식에 의해서 장례가 진행됩니다. 야곱은 바로가 부활의 소망을 갖고 있었듯이, 부활의 소망을 갖고서 가나안 땅에 장사됩니다. 아버지가 떠난 뒤의 형제들은 도저히 하나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요셉의 너그러움으로 하나가 되어, 이스라엘을 완성시킵니다. 영적 권위자가 되어 교회를 확장시킬 수 있는 교우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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