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설교

창세기 47 장 바로를 축복하는 이스라엘

형람서원 2009. 10. 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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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47 장                       2009년 10월 4일(주일 오전)

 

바로를 축복하는 이스라엘

 

      야곱과 그의 자녀들은 요셉의 집이 있는 애굽의 수도로 올라가지 않고 고센에 살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결정은 요셉과 바로의 뜻과 일치됨으로 국경선의 목초지에 이방인의 공동체가 거주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거주지의 결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음을 알 수 있으며, 야곱의 신앙고백적 행동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게도 좋은 땅을 싫어할까요? 왜 미국의 호화롭고 풍성한 도시를 내려놓고 불모의 땅 몽고로 갈까요?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고백의 행동은 세상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이해시키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적 결정이 당시에는 무모하게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아름다운 열매를 갖게 합니다.

 

1. 바로를 축복하는 야곱

 

    고센에 도착한 야곱은 자기와 가족을 허락한 바로에게 아들들을 보내어 감사인사와 거주지를 확정합니다. 요셉의 간청대로 야곱과 그의 형제들은 고센 땅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짐승들을 관할하는 국가의 일을 수행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야곱은 바로의 궁궐에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이 끝난 후에 요셉은 야곱을 바로의 궁궐로 인도하였습니다.

 

          바로를 축복하는 야곱: 천지대주재의 하나님의 통치를 선언함

 

    아브라함과 이삭은 족장으로서 축복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기의 아들에게 축복함으로 족장을 계승시켰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다르게 바로에게 축복하였고, 12 아들 모두에게 축복하는 족장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축복은 그래서 대단한 모습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 나라의 대통령, 세계 각국의 대통령들에게 축복할 수 있는 영적 권위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애굽까지 통치하고 계심을 선언하는 모습입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을 때에 하나님을 믿는 요셉이 꿈을 해석하여 바로의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보다 더 탁월한 영적 거장일 것입니다. 그 모습은 애굽의 어떠한 호화롭고 거대함이 시골의 촌부인 야곱을 누르지 못했으며, 오히려 고센에 거주하는 독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촌부에게 바로는 축복받기를 원했습니다. 어떠한 사안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갖는 자에게는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둘째, 야곱이 바로를 축복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조상을 높여 자신을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9절).

 

     바로가 묻는 나이에 대해서 자신의 나이가 130세이지만 아브라함과 이삭보다 못한 미약한 세월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130세의 세월을 “험악한 세월”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40. 50, 60, 70년을 살았는데도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술회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을 것입니다. 야곱의 답은 자신의 겸손과 인내에 대한 제시입니다. 바로는 야곱을 말을 듣고서 축복을 받았습니다(10절).

 

    주님의 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 또한 대통령을 축복할 수 있는 영적 탁월성을 갖기를 원합니다. 오랜 세월 갈고 닦는 경건 훈련은 전혀 무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될 수 없어도 대통령을 축복하는 탁월한 영적 권위자는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려는 권모술수가 필요하지만, 영적 거장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는 삶이면 충분합니다. 언제든지 왕보다 더 높은 자는 바로 종교인이었습니다. 참된 진리로 선 영적 권위자들은 국가의 영을 새롭게 하고, 투명하게 함으로 죄악이 사라지게 됩니다. 영적 권위자가 되시기 위해서 인생의 길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요셉의 통치: 애굽의 토지법 = 1/5의 상납(13-26절)

 

    요셉의 통치 방식에 대해서는 분분한 해석이 있습니다. 민중신학적 해석은 정치권력에 대한 투쟁적 해석방식입니다. 그러한 이해에서는 요셉이 바로의 정권에 붙어서 민중들에게 부당한 폭리를 취한 것으로 해석하여 민중의 계급이 몰락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혹자는 요셉이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도움을 주었더라면... 아쉬움을 보이기도 합니다.

본 성경본문을 읽으면서 먼저 느낀 것은 군사력으로만 영토를 확장시키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창과 칼, 전쟁에서 승리해야 영토가 확장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요셉은 온유하지만 영토를 많이 확장시킨 정복자입니다. 영토의 확장자는 알렉산더, 나폴레옹 등인데..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면서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그들에게는 영웅의 칭호를 무폭력으로 영토를 확장시킨 요셉에게는 민중의 폭정자로 분류한다면.....

 

     둘째, 요셉은 땅을 정당한 가격에 구입하였고, 생존권이 사라진 민중들에게 살 길을 주었습니다. 그것인 1/5의 소작료를 애굽의 토지법으로 세웠습니다. 1/5이 적당한가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20%의 할당은 전무한 상태에서 주어진 것은 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방식은 액수에 따라서 할당비율이 차이가 있습니다. 전혀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20%의 상납구조는 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결 론 ]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순례자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 길(9절)이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와 믿음의 순례자의 다른 점은 정처가 없는 나그네와 본향으로 가는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본향으로 가는 나그네는 선택은 안식처에 가까운 곳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본향인 가나안 땅에 거하기 위해서 애굽의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야곱이 애굽의 바로에게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땅의 영화를 버린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을 축복할 수 있는 영적 권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인생의 길에서 본향으로 더 나아가는 나그네 길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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