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설교

창세기 32 장 야곱의 삶(4) = 마하나임과 브니엘

형람서원 2009. 6. 2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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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32 장 2009년 6월 21일(주일 오전)

제목: 야곱의 삶(4) = 마하나임과 브니엘

 

    어쩔 수 없는 야곱. 우리의 고백이 아닌가?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매우 비관적인 말이지만,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그렇게 행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도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인간입니다. 그 인간의 특징을 야곱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그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첫째,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고,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을 보았습니다(1-2절)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본 하갈은 바로 순종해서 아브람의 집으로 돌아가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권능의 상징입니다. 마하나임은 하나님의 군대로서 많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호위하는 모습입니다. 엘리사와 그의 종 게하시가 아람 군대에게 포위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군대가 호위하는 모습을 본 게하시가 수 많은 아람 군대의 포진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여호와의 사자와 마하나임임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갖고 있는 에서에 대한 두려움은 떨치지 못합니다. 야곱에게는 에서의 400명의 군대의 위력이 여호와의 사자와 마하나임보다 더 큽니다.

 

     우리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백성입니다. 임마누엘을 믿는 백성입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임재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모습에서 야곱처럼 두려워하고 혼이 빠져 당황하는 일이 무수합니다. 우리는 임마누엘을 믿는 것인가요? 성경의 답은 ‘야곱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야곱의 후손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둘째, 야곱은 위기에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함이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은 이 위기를 돌파하면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이것도 야곱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벧엘에서... 길르앗에서.. 또 32장을 넘어서도 야곱은 항상 위기만 넘어가면 자기의 길을 가버립니다. 이것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이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야곱에게서 한 가지 배울 점은 야곱은 위기의 최고점에서는 꼭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아쉽지만, 우리는 인생의 결정에서 꼭 기도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궁지에 몰릴 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도저히 되지 않을 때에는 시늉이라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응답하여 인도하십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는 것은 점화플러그 없는 엔진과 같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긴박할 때에는 하나님께서도 비상조치를 발휘하십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은 약간의 비상조치와 같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어도 여전히 벧엘로 돌아가지 않고 세겜으로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십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 것은 32장에서 무리를 떠나 혼자 경야(經夜)하는 것 외에 없습니다. 단독자(單獨者)로 있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야곱은 벧엘에서처럼 단독으로 얍복에서 밤을 지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단독자로 만나는 훈련을 종종해야 합니다.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에서는 능력과 기사가 많이 나타나지만 깊은 기도의 세계는 부족합니다.

 

    야곱에게 닥친 어떤 사람과의 씨름은 기도의 모습이 아닌 처절한 생존의 사투처럼 보입니다(24-25절). 우리는 이 모습을 야곱이 기도하는 모습으로 이해하는데, 그것은 생존을 걸고 하는 필사적인 기도의 모습입니다. 어떤 분들은 기도의 모습을 규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모습이나 내용 등은 환경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야곱의 기도는 씨름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승리에서 야곱은 이스라엘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그것은 야곱이 얍복을 건너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는 구속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첫 발을 밟은 땅은 이제 야곱의 땅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땅은 야곱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입니다.

 

    [결 론]

 

     너무나도 부족한 야곱을 하룻밤에 이스라엘로 바꾸신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를 부르셔서 교회를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좌충우돌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의 공통, 기도와 간구함으로 옛사람의 모습을 떨쳐버리고 성령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족한 종을 들어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경륜과 인내와 자비를 바라보게 됩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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