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설교

창세기 35 장 위기에서 만난 하나님

형람서원 2009. 7. 1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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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35 장 2009년 7월 12일(주일 오전)

제목: 야곱의 삶(8) = 위기에서 만난 하나님

 

    한국과 세계에는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고 함께 섬기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꼭 교회를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예배와 경배를 드리지 않으면 심령에 괴로움이 말로 형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안식일이 되었을 때에 안식일을 준수할 수 없게되자, 도시를 배회하였고, 자신과 같은 사람이 도시에 모여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강가를 헤메다가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첫 성이지만, 복음이 들어갈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빌립보 교회는 항상 기쁨이 넘쳐 났는데, 그것은 서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를 보는 즐거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5장은 얍복에서 만난 하나님을 잊고, 세겜에서 방황하는 야곱에게 다시 여호와께서 나타나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디나가 세겜의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의 생명의 위태할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위기에서 야곱은 명확하게 여호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세겜은 당대의 최고의 우상의 도시입니다. 축복과 저주(그리심산과 에발산)가 분명히 드러나는 지역이기 때문에 많은 무당들이 기복을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우리 지역에도 영험한 지역이라고 해서 특별히 많은 굿이 행해지는 장소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계룡산, 광양의 백암산 등이 유명합니다. 그러한 강력한 우상 지역이 세겜입니다.

 

첫째, 야곱은 여호와의 택한 기업이었지만, 라반의 드라빔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라헬이 몰래 가져온 우상은 여전히 야곱의 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의 습성과 세겜의 습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함께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장자의 꿈을 이삭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생존의 꿈을 꾸었는데, 야곱은 험한 인생의 역경에서 라반의 우상과 세겜의 방식으로 삶을 유지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이 마치 야곱과 같음을 창세기를 묵상하면서 계속해서 느낍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35장)에서 야곱과 같다면, 구원 전에 행하던 옛 습관과 옛 모습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은 죽어져가는 옛 모습을 버리고, 오직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서도 옛 모습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의 정체성을 스스로가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자기와 하나님뿐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옛 사람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 모습을 갖고 있습니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야곱과 같은 위기를 주실 것입니다. 야곱은 이 환난에서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합니다(2, 4절). 우리에게 주어진 환난은 우리를 정금같이 만드는 용광로(풀무)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장소에서 예배를 받으십니다.

 

 야곱은 세겜에 도착하자마자 단을 쌓았습니다(33: 18-20절)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에 어디서나 예배를 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어디에서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야곱에 세겜에서 여호와께 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El-Elohe-Israel,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33:20절)’이라고 하였습니다. 숙곳을 거쳐서 세겜에서 정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상의 도시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거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야곱이 거기에서 거창한 이름으로 하나님을 불렀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야곱을 인도하시는 분을 만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1절). 우리의 삶에서 자신의 인도자를 아는 것은 인생의 최고의 숙제입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의 피로 구속을 받은 예수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구주는 아는데, 우리의 인도자는 누구인지 혼동이 옵니다. 야곱은 에서에게서 구원은 받았는데, 여전히 자기의 삶의 인도자는 자신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서 어디든지 갈 수 있으며, 어떠한 행동도 가능할 것입니다. 어쩌면 다윗처럼 간음까지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이 유익된 것은 아닙니다. 할 수 있다고 해서 유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유익한 행동을 하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인도를 따르는 백성을 보호하십니다(5절).

 

   야곱은 이제껏 함께해 왔던 우상을 버렸습니다(4절). 그리고 사력을 다해 세겜에서 벧엘로 도망합니다. 추격자가 쫗아 오는 날에는 일가족이 몰살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고을들에게 공포를 주셔서 야곱과 아들들을 보호하십니다(5절).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싶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하나님께 찬양할 때(아사 왕), 하나님께 회개할 때(미스바의 기도),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늘 함께 있었습니다.

 

    [결 론] 옛 사람을 버리고 목자이신 예수를 따르는 양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자의 보호를 받는 양들에게는 늘 쉴만한 물가와 푸른 꼴이 함께 있습니다.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고 자기 목자를 따라 갑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습니까? 목자이신 예수께 더욱 가까이 가서 목자의 심장 소리와 막대기 소리로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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