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설교

창세기 23 장 제목: 우리의 본향

형람서원 2009. 4. 1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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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3 장 2009년 4월 19일(주일 오전)

제목: 우리의 본향

아브라함은 우리 믿음의 조상입니다. 조상은 우리의 본향입니다. 조상의 묘지가 있는 곳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조상의 묘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래 내역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합당한 묘실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막벨라 굴이 사라를 시작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묻히게 되는 족장의 묘실이 되며, 가나안 백성이 돌아올 수 있는 근거지가 됩니다.

 

사라는 127세 (아브라함의 나이 137세, 이삭의 나이 37세)에 헤브론, 기럇아르바에서 죽었습니다(1-2절). 통상 여자의 나이가 언급되지 않지만, 사라에 대해서만큼은 나이가 제시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라가 갖고 있는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라의 믿음의 여인이지만 또한 지혜의 여인이며 헌신의 여인이었습니다. 사라와 같은 여인을 현숙한 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활달한 여인이었고, 레아는 인내의 여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족장의 세 아내들에게서 여인의 아름다운 품성들을 볼 수 있고, 또한 세 족장에게서 남편의 유익한 품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라의 죽음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슬픔에 잠겨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라의 매장지를 아브라함이 준비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슬프기 때문에 슬픔에 잠겨만 있다면 사라는 누가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요? 사라를 잃은 슬픔보다도 사라의 시체를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더 큽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슬픔을 걷어내고 헷 족속에게로 나아가게 됩니다(3절).

우리는 먼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두 일을 동시에 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에는 한 가지 일을 분명히 포기해야 합니다. 사라의 옆에서 슬픔을 걷고 헷 족속으로간 아브라함이 슬픔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그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일에서 우선순위를 재검토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지만 우선순위가 다르게 되면 열심히 일한 것이 오히려 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가서 아내의 매장지인 막벨라 굴을 매입했습니다(16절). 아브라함은 헷 족속의 에브론의 땅인 막벨라 굴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땅에서 명망을 갖는 사람이어기에 에브론은 많은 예의를 차립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강력하게 땅의 준가(準價)를 주장하여 400 세겔을 주고 땅을 구매하였습니다. 이 구매된 막벨라 굴에 사라를 장례하게 되었습니다(19절).

 

1) 에브론의 허세. 아브라함과 에브론의 땅에 대한 거래가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매우 섬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기록된 이름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합니다. 에브론은 땅을 팔지 않고 거져 주겠노라고 허세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에브론에게 간청하여 땅 값, 준가인 은 400세겔(4.56 Kg)을 주고 땅을 매입하였습니다. 에브론이 땅을 무상으로 제공하려 했다면 은 400세겔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며, 400세겔을 준다하여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브론은 처음에는 거져 줄 것처럼 말하다가 결국은 한 푼도 깍지 않고 400세겔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즉 처음부터 공짜로 줄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잘해야 좋은 사람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런 일에 속지 않아야 좋은 사람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허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2) 합법적인 땅의 취득.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 갑니다. 그것은 헷 족속인 에브론이 땅을 무상으로 공급했다면 땅의 권리는 항상 헷 족속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증인들 앞에서 400세겔에 거래를 하였음으로 땅에 대한 권리가 아브라함에게로 전가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땅에 사라의 시체를 매장함으로 더욱 완고한 아브라함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매장지에 대한 예우는 어디를 막론하고 매우 각별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온지 50년이 지나서 첫 땅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땅이 바로 씨앗이 되어 아브라함의 후손 200만 명이 들어올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본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매우 구차스럽게 소소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땅 문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땅의 권리. 이 땅에 대해서는 야곱이 죽을 때에 애굽에서 죽었지만 자신의 매장지를 막벨라로 정해줌으로 모든 사람이 그 땅이 아브라함의 땅, 야곱의 땅임을 주민들이 알도록 하였습니다. 즉 애굽 사람들이 그 땅의 주인임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알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손들에게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 땅에 묻어달라고 요청하여 약속의 땅이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제시하였습니다.

 

4) 우리의 본향. 사라가 묻힌 땅이 우리의 본향입니다. 우리는 가나안으로 가야되는 백성입니다. 그 땅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후손을 위해서 땅을 예비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신 예수께서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몸에 처소를 정하시고 주의 영으로 함께하시지만, 주께서 지으신 처소가 끝이 나면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본향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애굽에 있었던 야곱의 후손들이 힘들고 괴로울 때에 이 본향 땅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 본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힘이 들 때도 기쁠 때에도 우리의 본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힘들 때에 본향을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기쁠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좋은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행복할 때에는 약속의 땅을 생각하지 않다가, 고난 받을 때에 기억했고, 광야에서 40년간의 훈련 끝에 억지로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향을 항상 사모해야 합니다.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길을 만든 본향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시는 처소에 거할 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본향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가 계신 본향에 함께 주를 찬양할 때까지 전진하는 권속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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