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7 장 2009년 5월 10일(주일 오전)
제목: 야곱의 삶의 방식 = 믿음
이삭의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었다면, 야곱은 전적으로 믿음에 의지해서 사는 삶입니다. 이삭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모든 시험을 묵묵히 당하면서 족장의 직분을 유지하였는데, 야곱은 그렇게 하였을 때에는 족장의 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야곱은 원래 종용한 사람(창 25:27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야곱에 꾀돌이 변해버렸습니다. 종용한 사람(從容―, a quiet man)이라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 즉 묵상하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삭이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이삭과 야곱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경륜을 묵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때를 묵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행보는 전혀 다릅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놓아 준 길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놓아 놓은 길, 우물, 재산 모든 것을 이어 받아 순종하면서 여호와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버지의 길, 우물, 재산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오직 하나,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권리만 받습니다. 야곱은 이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권리가 그렇게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장자의 명분과 권리를 소홀히 여겼습니다(25:34). 그리고 자기의 마음대로 결혼함으로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게 하였습니다(26:35). 에서는 자기에게 보장된 장자의 권리를 받을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였습니다. 분명히 야곱은 형에게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하여, 의도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에서는 전혀 장자의 명분과 권리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장자의 명분이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에 대해서 도저히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장자의 명분에 대해서 야곱은 긴밀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마음 속에서는 항상 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첫째, 장자의 명분은 혈통이 아닌, 언약에 의해서 계승됩니다.] 아버지 이삭에게 받은 장자의 명분은 사람이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에게 주시는 중요한 직분입니다. 곧 메시야의 탄생의 허리가 되는 중요한 역할이 됩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형과 아버지인 혈통이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인 리브가는 야곱에게 주어진 예언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25:23). 리브가는 자기의 기억, 우르에서 즉각적인 결정으로 고향을 떠난 용기 있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여호와의 언약은 혈육이 아니라, 오직 은혜이며, 언약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마음대로 결혼함으로 언약적 자격을 상실한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26:35절). 리브가는 복중에서 주신 여호와의 말씀과 에서의 언약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로 마음이 돌아섰고, 마지막 결정적인 때에 장자의 권리를 흠모하는 야곱에게 모든 도움을 제공합니다. 즉 자기가 저주를 감당할 정도로 책임감을 갖고서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격려를 합니다(27:12).
언약 백성들은 혈통과 육정에 얽매이는 것은 신실함을 행동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은 학연, 지연까지 얽혀서 매우 부조리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체면 문화까지 얽혀서 더욱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신실한 언약적 행동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신실한 언약적 구조를 갖아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상황을 초월하는 언약은 장자가 될 수 없는 야곱이 장가가 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언약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둘째, 야곱은 끝까지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팥죽으로 샀습니다(25:34). 그러나 장자의 권리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리 명분을 샀다할지라도 권리를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無用之物)입니다. 에서는 명분만 팔았고, 또 진실이 아닌 장난으로 판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장난에서 자기의 희망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에게로 장자의 권리는 돌아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늙어 눈이 먼 아버지 이삭은 장자의 권리는 장자인 에서에게 주려고 결심하고 결행합니다(27:1-4).
이러한 소식은 야곱이 들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인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꿈을 안 어머니는 야곱에게 장자의 권리를 받도록 모의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두시기 전에는 포기되지 않는 전적인 하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더욱 포기가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부산물은 어떠한 일을 만날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고 참을성을 가지고 일을 진행해 나아갑니다.
믿음이 주는 큰 복이 바로 ‘인내’입니다. 야곱은 꾀의 사람이기 전에 인내의 사람입니다. 종요한 사람으로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인내를 보입니다. 마지막 결정의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에서에게 말을 했을 때에 끝이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갖고 있습니다. 이 인내의 뒤에 야곱은 결국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셋째, 한발 늦은 에서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에게 기회는 항상 있지만, 한 발 늦으면 기회는 없습니다. 30절 말씀은 ‘야곱이 나가자 곧’이라고 말씀하여 간발의 차이로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만약 축복이 완료되지 않는 상황에서 에서가 들이닥치면 축복은 무효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이 끝나고 야곱이 나가자 마자 에서가 음식을 갖고서 들어왔습니다.
인생에서 기회를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가 기회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기회를 듣고서 망설일 때에 이미 기회는 떠나가고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은 1초 이내에 해야 될 때가 발생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서슴지 않고 결정을 해야 하는데,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소홀히 하면 자기 손에 있는 것 까지 놓치고 말게 됩니다.
초등학교 우화에 입에 고기를 물고 가는 개가 등장합니다. 그 개의 임무는 고기를 안전하게 자기 집까지 운반해서 맛있게 먹는 일입니다. 그런데 강가에 비친 개를 보고선 짖어버리자 자기의 고기가 떨어져버립니다. 자기의 임무, 자기의 분깃을 소홀히 하거나 잊어버릴 때에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 까지 상실하게 되는 비극이 발생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천국의 기업,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명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상황의 다른 것에 부딪혀서 어리석은 개처럼 짖어댄다면 우리의 임무는 상실되고 맙니다. 내 달려갈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 달려갈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복,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을 잘 개발하게 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야곱은 항상 여호와의 말씀과 섭리를 묵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묵상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활동은 인간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혈육인 아버지와 형의 벽을 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가 한 행동이 거짓말로 평가하는 것은 믿음의 열망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거짓말쟁이들은 의사 윤봉길, 의사 안중근, 왼손잡이 에훗 등등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거짓이 아닌 위대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은 그들의 열망이 순수하고 헌신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하는 것이 우선합니다. 믿음의 백성인 선교사님들이 활동할 때에 거의 거짓으로 보고해야 비자가 발급받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신천지처럼 거짓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전진하는 야곱은 결국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축복을 모두 받았습니다. 반면 믿음이 아닌 혈육의 안전을 추구하는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며,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의 지체들은 야곱이 믿음으로 받은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속 경륜의 그 심오한 복음에 심장이 야곱처럼 불타오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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