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설교

창세기 22 장 제목: 부활의 동산

형람서원 2009. 4. 12.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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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22 장                        2009년 4월 12일(주일 오전)

제목: 부활의 동산

 

    본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창세기를 순서대로 말씀을 보고 있는데 오늘 말씀이 부활 신앙과 매치되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21장은 이삭의 출생으로 성탄절에 맞고, 창세기 22장은 모리아의 제사로 부활절과 맞습니다. 이삭의 탄생과 이삭이 제물이 되는 것은 구속사의 큰 예표적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서 아주 믿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이 부활이 믿어지면 모든 것이 믿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의 정점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음을 믿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오는 새생명의 누림은 신앙의 정점입니다. 즉 십자가의 과거로 간다면 우리는 믿음의 퇴보가 될 것이며,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부활 신앙으로 항상 부활의 능력이 가득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부활의 믿음의 근저를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부름에 즉각적으로 대답을 합니다. 이것은 죄악된 아담의 모습과 반대되는 모습입니다(창세기 3장). 아담은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나뭇잎 뒤로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숨어서 대답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부르시자마자 바로 “내가 여기있나이다.”라고 답을 합니다. 여호와께 응답한다는 것은 바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준비된 신앙의 자세입니다.

 

     아브라함의 영적 세계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영특한 사라도, 이삭도, 수 십 년 동안 함께 한 종들도 아브라함의 영적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25년, 그리고 또 약 15년 정도(총 약 40년)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깊은 영적 세계를 구성하였습니다. 이 세계는 주의 말씀이면 무엇이든지 순종해야 되며, 주의 말씀은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많은 훈련을 받았지만,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신다는 말씀에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민수기 11장 21-22절).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후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긴 영적 훈련 끝에 결국에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는 준비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만 하신다면 바로 응답하며, 바로 실행해 옮길 수 있습니다. 이 신앙이 부활 신앙의 기초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죽음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도 더욱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시기 때문에 살리시는 것과 영원토록 함께 하심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 영적 훈련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인 “이삭을 모리아 땅에서 번제로 드리라”(2절)는 명령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여호와의 말씀을 실행에 옮깁니다. 이 여호와의 말씀을 실행할 때에는 아내, 종들에게 의뢰하지 않고 결행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혈과 육에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사람으로는 사도가 세워질 수 없습니다. 사도는 오직 주님으로만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들에게 배우지 않고, 광야에서 3년 동안 묵상하였지만, 사도들과 믿음의 내용이 동일함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순수한 자기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고독합니다. 그러나 가장 결단력이 있는 일이 됩니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결단력입니다. 인생에서는 수없이 많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회에서 한 가지 혹은 두 가지의 기회만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는 기회가 세 번 있다고 하는가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기회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하루에도 수 천 번 왔다갔다 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백성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결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거룩한 결단은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단독자로 있을 때에 가장 합당한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있을 때에 가장 평화로운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의심 없이 받아드려지는 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인가? 100세에 주셨는데 왜 다시 죽이라는가? 그런 의심과 불평은 아브라함에게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둘째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행동에 옮겼습니다.

 

     이삭도 아버지의 행동에 의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화목은 있는데 제물이 없는 것이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제물이 어디있느냐고(7절) 그 때에 아브라함은 아들에게 자기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답이 여호와께서 친히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8절). 아브라함의 궁여지책의 답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답대로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긍정적이고 믿음이 있는 말을 해야되는 것이 이러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해하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믿고 살든지 포기하고 살든지 둘 중에 하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포기할 때에는 나도 몰라... 그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믿음대로 된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동일하지만 답은 전혀 다릅니다. 믿는 자의 심령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지만 그 말이 진리이며, 그 말대로 이루어질 때에 그 때에 한 말을 다시 생각할 때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죽이려 했습니다. 이 때에 이삭은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서 순종적으로 순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죽이려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고, 아들 또한 아버지에게 죽음에 있어서 전혀 두려움이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믿음의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처럼 영광스러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급해졌습니다. 그래서 11절에 아브라함을 두 번 부르며 정지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자신의 후사가 이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롯도, 엘리에셀, 이스마엘도 아니고 오직 이삭이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자신의 집에서 나갔습니다. (엘리에셀만 제외) 그 이삭이 죽는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이삭의 아들이 아브라함의 손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식언하지 않으심으로 말씀대로 이삭은 죽지만, 아들을 낳아 아브라함의 가문을 일으킬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세계를 다시 정확히 봄으로 “여호와 이레”라고 외칩니다.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께서 제물을 준비하심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구속의 준비가 완료되셨음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메시아의 구속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제단과 아들이 부활하여 아버지의 자녀들을 이루어 영의 나라를 세우는 경륜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부활을 믿도록 하시기 위해서 2000년 전에 아브라함의 눈에서 미리 보도록 예비하셨습니다. 그 뒤로 2000년이 더 지났어도 무지한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땅에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으로 보내심을 받은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보내지 않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도 마지막 때까지는 오시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우리에게 전적으로 위탁된 절대적 사명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전하는 복음으로 사망의 권세, 막힌 담이 헐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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