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읽는 기독교강요(2), 지식(知識)
우리는 책을 읽을 때에 단어(單語)의 의미를 잘 인지해야 한다. 단어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어휘(語彙) 활용 능력이 증가할 수 있다. 사용하는 단어에 개념화가 되지 않으면 어휘를 구사할 때 단어가 우왕좌왕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 다른 개념화로 단어를 사용하면 소통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학문할 때에는 단어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신학에서는 단어 사용에 더 신중할 것이 요구된다. 그것은 전능자, 계시자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십계명 중 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이다. 세속 언어에는 주의 이름을 망령되게 활용되는 사례가 있다. Oh my God, Jesus Christ라는 문구는 믿음과 전혀 관계없이 사용되는 비속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멘 할렐루야'를 희화화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知識)'이란 단어를 정리해야 한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I권 1장에서 '지식'으로 번역된 라틴어 단어가 Notitia와 Cognitio로 나오기 때문이다. 배틀즈 번역의 각주에서 칼빈이 1541년 『기독교강요』를 프랑스어로 번역할 때에, 라틴어 cognitio Dei ac nostri를 프랑스어로 "la congnoissance de Dieu et de nousmesmes"로 번역했고, notitia도 동일하게 번역했기 때문에, 영어 번역에서 두 단어를 한 단어, knowledge(지식)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즉 Notitia와 Cognitio, 두 어휘를 knowledge 한 단어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모든 『기독교강요』번역에서 등장한다. 우리말에서는 '지식'으로 번역했고, 중국어는 '认识神'(rènshi shén.인식신)으로, 일본어에서는 '認識神'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기독교강요』 1권 1장에서는 또 다른 '지식' 단어가 있는데, sapientia이다. 일반적으로 지혜(wisdom)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sapientia는 학문으로 번역하는 사례가 있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지혜와 과학(sapientia와 scientia)을 비교하면서 지식 체계를 구성했다. 칼 바르트는 “학문적 자기 검증(die wissen- schaftliche Selbstprüfung)” 즉 scientia(과학, 학문)을 신학 구조로 제언했다. 칼빈은 sapientia를 이중 구조를 이해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기독교강요』 1권 1장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Nearly all the wisdom we possess, that is to say, true and sound wisdom(sapientia, 지혜), consists of two parts: the knowledge of God and of ourselves(Dei cognitione et nostri).
1권의 제목은 INSTITUTIONIS CHRISTIANAE REL- IGIONIS LIBER PRIMUS. DE COGNITIONE DEI CREATORIS이고, 1장의 문장은 CAPUT I. Dei not- itiam et nostri res esse coniunctas, et qu- omodo inter se cohaereant이다. 『기독교강요』 1권의 제목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COGNITIONE)이고, 1장의 제목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Dei notitia- m)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 서로 상호관계되어 있음과 연결된 구도"이다.
칼빈이 지식, Notitia와 Cognitio를 교차로 사용했을까? 아니면 다른 의미로 진행했을까? 결코 쉽게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런데 배틀즈 번역에서는 임의 교차로 사용했다고 간주해서 한 어휘로 번역을 진행했다. 그러나 우리는 두 단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후기 개혁파들은 믿음의 요소를 셋으로 보았다. notitia(지식, 객관적 지식) → assensus(찬동, 내적동의) → fiducia(신뢰, 전인격적)로 구성했다. notitia에 “찬동과 신뢰”로 구도화시켰는데, 찬동과 신뢰는 Cognitio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Cognitio는 경험 과정을 통해서 획득된 주관적 인식, 지식이다. notitia는 객관적 지식이다. 진리는 Notitia와 Cognitio가 융화되어야 한다.
인쇄술의 발달로 지식은 더욱 고도화되었다. 인간의 사유 세계는 매우 고도화되었다. 칼빈이 말하는 지식, Notitia와 Cognitio는 객관적 지식과 주관적 지식으로 구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을 때 ‘지식’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는 라틴어 원문을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이인혁 목사가 제공한 칼빈 저작 라틴어 원문 사이트가 있다.
http://calviniopera.dothome.co.kr/codb_one_simple.php?vols=2&dic=LaEnDic&page=34 이다. 다른 몇 단어도 라틴어 원문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지식’이라는 단어는 좀 더 면밀하게 파악해야 할 단어이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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