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를 알면 교회를 알 수 있다

우리가 교리를 오해한다(00) 예수님을 믿으면 기독교이다?

형람서원 2025. 4. 1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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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리를 오해한다(00) 예수님을 믿으면 기독교이다?

교리는 삼위일체(325년, 381년 공의회)와 그리스도 양성교리(431년 451년 공의회)이다. 우리는 개혁된 교회로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게됨)를 교리로 받는다. 이 교리는 마틴 루터가 확립한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 "믿음으로 구원얻음"의 반복으로 제언한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행 15:11)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주의 이름의 증거를 들은 자에게 성령으로 믿음으로 주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모두 주 예수 안에서 한 믿음으로 한 교회를 이룬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지역색을 따른 차별이 있다. 참고로 지역 차별은 해방 전에는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합당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에 차이가 발생한 것이 이단과 정통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기독교는 본래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한 교회나 신학자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기독교를 운영하고 있다. 첫째는 신중심 신학(Theocentrism, God-Centered Theology)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학 전개에서 소외시키거나 제외시킨다. 신중심신학은 인간중심 신학(Man-Centered Theology)과 같은 부류이다. 둘째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닌 따르는 형태도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구도자 신학"이라고도 한다. 구도자(seeker, 求道者)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여정에 있는 상태이다. "구도자 예배"가 성립되지 않은 이유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에서 이단과 정통이 나뉜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 이단과 정통을 분별한 시점이 된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할 때, 이단과 정통, 기독교 이단과 기독교 정통이 된다. "자연종교로 예수님이 없는 삶의 여정", "자연종교로서 예수를 탐구나 따르기"하거나, "기독교 이단으로 예수님을 믿음", "기독교 정통으로 예수님을 믿음"의 네 형태가 존재한다. 교묘하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교부를 믿는 형태는 사이비로 3번(이단)에 1번(교주맹신)이 복합된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정통)과 1번(교주맹신)은 착각은 가능하지만 성립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을 믿음" 때문에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그런데 새관점학파는 예수님 믿음이 초대교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제임스 던,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박규택 역, 좋은씨앗(2016)과 래리 허타도, <아들을 경배함>송동민 역, 이레서원(2019)이 대조를 이뤘다. 새관점학파인 제임스 던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예배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런 부류는 "예수님을 믿음"의 범주에 있지 않다. 기독교 범주에 넣기 어렵다. 새관점학파는 예수님을 유대교, 아브라함의 언약에 충실(신실)한 한 사람으로 분류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

슐라이어마허는 유일신 범주의 종교를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로 했다. 새관점학파는 유일신종교는 될 수 있지만, 기독교는 될 수 없다. 칼 바르트는 삼위일체(Trinity) 교리를 부정하고 유일신- 삼중일신(Gottes Dreieinigkeit, God Triunity) 으로 전환시켰다. 20세기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융합시키는 크리스람(Chrislam)이 있고, 기독교와 불교를 융합시킨 부디스트(buddhist)가 발생했다. 모두 유일신 범주에 있다. 기독교는 유일신이지만(신 6:5) 유일신이 아닌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고후 13:13)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어야 기독교 범주에 있다.

예수님을 참 하나님을 믿으면 기독교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유사한 하나님, 아버지보다 낮은 수준의 하나님으로 믿으면 이단이다. 또 예수님을 가장 탁월한 유일한 하나님으로 믿는 것도 이단이다.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믿음 표현은 참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하신 한 실체이신 하나님이다.

이단 신앙에는 구원이 없다. 325년 니케야 신경에 아나떼마(Anathema)가 확실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325년 니케야 신경을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으로 바꿔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381년 콘스탄티느폴 신경에는 아나떼마 선언이 없다. 공의회 문서에서 아나떼마가 있는 유일한 문서가 니케야 신경이다. 니케야 신경에서 예수님을 공의회가 결정한 데로 믿지 않으면 정죄한다, 저주한다고 명확하게 선언했다. 교회는 열쇠이다. 교회가 닫으면 구원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325년 니케야 공의회의 효력을 부정하는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단 교회도 325년 니케야 공의회 효력을 인정할지도 모른다. 니케야 신경에 선언된 아나떼마는 유효한 교회의 선언이고 가르침이고 지향점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참 하나님으로 믿어야 교회의 백성이고 구원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정죄한 다른 믿음은 구원이 없다. 이단 교회에 구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좋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을 정죄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에게 정죄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를 정죄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정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훼방하고 복음을 왜곡하며 질식시키는 자를 정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훼방하거나 폄훼할 수 없다. 복음을 소홀히하거나 외면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을 살린 것이 복음이고, 살리는 것이 복음이고, 영원한 생명도 복음이다. 그러나 다른 복음은 사도 바울이 정죄한 것으로 구원이 없다(갈 1:6-9). 교회는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을 정죄(Anathema)한 것을 따라, 다른 믿음 예수님을 부당하게 믿음에 정죄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다른 믿음도 아닌 기독교가 아닌 예수에 대한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모든 인간은 양심과 결의에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양심과 행동에는 책임이 수반된다. 자기가 주장하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 아니다. 정당성은 그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기관에서 인준을 받아야 한다.

교회는 믿음을 인준하는 유일한 기관인데, 다른 믿음을 인준하면 다른 믿음의 교회가 되어 교회가 아니다. 교회의 창립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가 아닌 교회를 자기 피로 세우셨다.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가졌다. 그 열쇠로 인준해서 세례를 베풀고, 장례식에서 천국입성에 대한 확신을 선언할 수 있다. 그것이 실재냐?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사람이나 세상은 항상 빛과 어둠이 있다. 그렇다고 빛과 어둠을 혼합시킬 수는 없다. 빛이 있는 곳은 빛이고, 어둠이 있는 곳은 어둠이다. 예수님은 빛이고 생명이신 참 하나님이시다. 그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이 있다.

다른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 없다. 교회 안에서 다른 예수, 다른 믿음,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지상 교회는 한 믿음,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거룩한 지체들이 사도의 가르침으로 한 교회(카톨릭)를 이루면서 전투하고 있다(ecclesia militans). 천상 교회는 한 믿음,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섬기며 24장로와 함께 한다(ecclesia triumphans). 일반적으로 교회는 지상교회를 지칭한다. 이 땅의 백성들은 거룩과 믿음에서 진보해야 하며, 복음을 전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수고가 끝나고 주님 앞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거룩과 믿음의 진보 그리고 복음전도가 없는 하늘의 영광이 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거룩이고 믿음의 진보이다. 예수님을 믿고, 믿는 주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전도이다.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복음을 전도할 것이다. 주 예수 외에 다른 이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롬 1:16-17).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여!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고 전파하자.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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