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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리를 오해했다(2). 삼위일체와 삼위일체론은 같지 않다

형람서원 2025. 4. 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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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리를 오해했다(2). 삼위일체와 삼위일체론은 같지 않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삼위일체(Trinity) 교리만큼 기본적인 교리도 없고, 해석하기에 어려운 교리도 없다(손재호). 서철원 박사는 기독교 교리 문장은 단순하지만 이해할 수 없고, 철학 문장은 어렵지만 이해하면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고 술회했다. 대표이고 첫 교리 개념이 삼위일체이다. 기독교의 교리는 삼위일체와 그리스도 양성교리 그리고 이신칭의이다. 어거스틴(354-430)은 약 20년(400-419) 동안 「삼위일체」(De Trinitate)를 저술했다. 참고로 「신국론」은 412년에 시작해서 427년에 마무리했다. 381년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 이해를 공식화했다. 어거스틴의 「삼위일체」에서는 공교회 교리 과정에 대한 교리사적 진술은 없고, 성경에서 삼위일체를 유추하며 내용을 전개했다. * 어거스틴은 384년 밀라노에서 교수로 활동했고,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으면서 386년에 회심했고, 387년에 세례를 받았고, 391년 히포에서 사제가 되었고, 395년에 히포의 감독이 되었다.

삼위일체론은 삼위일체 교리가 아니다(The Trinitarianism is not The Trinity). 삼위일체와 삼위일체론은 같지 않다.

삼위일체론은 신론의 관점에서 전개하는 방법이고, 삼위일체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교회의 고백에 대한 믿음 문장이다. 삼위일체론은 교회에서 논의된 다양한 신 이해를 제시하며 변화를 과정을 구성한다. 그런데 삼위일체는 교리 문장으로 확정된 고백을 제시한다. 삼위일체론은 다양한 이해를 구성한 것이고, 삼위일체는 신경(信經)에 근거한 것이다. 필자는 공교회는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고백한 적이 없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그것은 325년부터 767년까지 7번의 공의회에서 한 번도 교회가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하는 문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방교회 전통은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저술에 많이 의지하기 때문에, 삼위일체에 대해서 비교적 친숙하다. 어거스틴은 공교회에서 사용하던 용어인 ousia, substantia(실체) 대신에 essentia(본질)를 사용했다.

삼위일체론에 대한 논의는 터툴리안(Tertullian,약 155~약 230)의 trinity(trinitas) 어휘에서 시작한다. 2세기 터툴리안은 하나님을 언급할 때 '한 본체(substantia)와 세 인격(persona)'으로 표현을 했다. '이단에 대한 처방(Prescription Against Heretics)'을 저술했지만, 후일에 몬타니안으로 들어갔다. 터툴리안을 라틴 신학의 아버지(the first of the Latin fathers)라고 개념화하는 것은 좋지 않다. 터툴리안은 몬타누스주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처음은 좋고 나중은 좋지 않는 신학 체계는 주의해야 한다.

삼위일체 교리에 갑바도기아 교부들이 있다. 바실(Basil of Caesarea, 330-379),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329-390),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335-395)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동일실체를 재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는 삼위일체를 "성부는 원천이며,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생하시고,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한다"고 구체화했다.

서방교회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589년 톨레도(Toledo) 회의에서 필리오케(Filioque)를 추가했다. 이 논쟁을 포티 논쟁(Photian Schism)이라고 한다. 9세기의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였던 포티오스(Photios)의 글에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포티우스 총대주교(Photius)는 867년부터 일련의 저술을 통해서 라틴교회의 필리오케를 단죄하고, 성령은 오직 성부에게서만 발출한다는 가르침을 공식화했다. 897-870 회의에서 포티오스를 정죄했고, 879-880 회의(8차 공의회)에서 포티오스를 복권했다. 결국 필리오케, 삼위일체 구성에 대한 논쟁에서 1054년에 최종적으로 분열했다(the Great Schism or the Schism of 1054).

서방교회에서는 어거스틴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가 삼위일체론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도입하여 삼위일체를 설명하며, 신 안에서 관계적 실재(relationes subsistentes) 개념을 강조했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은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관계적으로 구별된다고 보았다.

마틴 루터는 숨어계시는 하나님(Deus absconditus)과 계시된 하나님(Deus Absconditus)으로 구성했다. 존 칼빈은 공교회의 결정을 체계적으로 확립하며 구성했다(기독교강요 1권 13장). 종교개혁신학은 서방교회의 전통에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를 교리를 반복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단순한 이론적 개념이 아니라 신앙 고백의 핵심이다. 삼위일체는 신자의 삶과 예배 속에서 드러나며, 기독교 신앙의 기초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계몽철학에 근거한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합리적으로 기독교 역사 이해를 재구성하려고 했다. 그래서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그런데 현대 신학에서는 삼위일체론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려는 시도들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신학자는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이다. 칼 바르트의 신학 공적 중 하나가 자유주의가 침묵했던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를 다시 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전통적인 삼위일체(trinitas)를 새롭게 구성한 삼중일신(Gottes Dreieinigkeit)으로 제언했다. 바르트는 경세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와 내재적 삼위일체(immanent Trinity)의 구분에 따라 삼위의 존재양식의 특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18세기의 울스페르거(Johann August Urlsperger, 1728-1806)가 trinitas oeconomica und trinitas essentialis를 제언하면서 본격적으로 신학에 유입되었다.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2024) 등의 신학자들은 삼위일체론을 공동체성과 관계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신학적 토론을 확장해 나갔다.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은 사회적 삼위일체론(Soziale Trinitätslehre)이라고 한다. 판넨베르크(Wolfhard Pannenberg, 1928-2014)는 아래에서 위로의 삼위일체론으로 창조에서 삼위일체론을 구성하려고 시도했다. 판넨베르크는 신의 자기계시로서의 예수에게서 나타나는 삼위들 ‘상호간의 자기구분’(wechselseitige Selbstunterscheidung)과‘ 상호의존’(wechselseitige Abhängigkeit)에 주목하면서, 예수를 통해서 아버지의 신성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했다. 신론, 신존재 이해에서 추구하는 삼위일체론은 신중심 신학으로 귀결되었다.

삼위일체에 대한 다메섹 요한(670-750)의 사색은 '페리코레시스'이다. perichoresis. 하나님이 상호 내주the mutual indewelling  상호 침투inter-penetration라는 내용이다. 18세기 울스페르거(Johann August Urlsperger, 1728-1806)가 trinitas oeconomica und trinitas essentialis의 사색적 제안과 함께 삼위일체론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개념이다. 이러한 사색은 신존재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현대신학에서는 신존재가 확정적이지 않고 불가지 영역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 영역으로 삼위일체론이 구성된다.

전통 교리에서 삼위일체는 없다. 정통 교리에서 결정은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실체(homoousion)이라는 고백이다. '동일실체(homoousion)'가 성경에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고백이 구원론적이고 기독론적이 되는 것은, 죄사함의 구주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확정적으로 고백하기 때문이다. 죄사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마 9:1-8, 막 2:1-12, 눅 5:12-26, 요 20:21-23). 죄사함의 주님은 그리스도 예수님이 확실하다. 죄사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신다. 확실한 죄사함의 효력을 위해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실체여야 한다.

즉 삼위일체 교리에서는 다양한 사색이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의 은혜가 시여되는 생명의 고백이 있으면 된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에 대한 사색이 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은밀한 곳에 숨어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힘써 계시된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를 고백하면서 증거한다. 그리고 죄사함의 주님을 힘있게 전파한다. 다양한 사색이 꾸준하게 올라오지만, 끊임없는 자기부정으로 믿음의 주이신 예수를 고백하며 증거하며 전파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구주의 이름을 전파하도록 독려하지만, 삼위일체론은 신에 대해서 깊이 착념하도록 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기독론이고, 죄사함의 구주에 대한 구원론이다. 삼위일체론은 신에 대한 묵상이고, 철학적이고 합리적 사색이다.

교회는 복음을 전도하는 지체들이 이룬 주님의 몸된 기관이다. 주께 받은 죄사함의 은혜를 성령의 권능으로 땅끝까지 전파한다. 그 이름을 영접하는 자는 삼위일체를 믿는 것이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삼위일체 교리가 아니라 구주 예수를 힘써 전파한다. 그러면 교회는 세워지고 삼위일체도 세워질 것이다. 복음을 전도하지 않으면 교회는 무너질 것이고 삼위일체 교리도 무너질 것이다. 복음전도와 교리세움은 한 묶음이고 순환이고 동시가 되어야 한다.

삼위일체론은 더 다양한 이론들을 양산하며 사색에서 사색으로 풍성한 사색을 창출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오직 한 믿음으로 굳건하게 교회를 세우며 믿음에서 믿음으로 확실한 믿음을 창출한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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