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를 알면 교회를 알 수 있다

우리가 교리를 오해했다(0) '교리'가 무엇일까?

형람서원 2025. 3. 22.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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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리를 오해했다(0) '교리'가 무엇일까?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교리(敎理)는 무엇일까요? 교리는 영어로 dogma와 doctrine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 이론(theological theory)도 '교리'라고 하기도 합니다.

먼저 신학이론은 교리가 아닙니다. 벌코프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등은 교리 서적으로 분류하지만, 교리가 아닌 개인의 신학 이론입니다.

모든 종교에는 '교리'가 있습니다. 불교는 <팔만대장경>이 교리일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와 불교 교리의 차이점은 규범성에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는 법적 규범을 갖고 있습니다. 본래 기독교 교리는 국가법으로 제정된 문장입니다. 기독교 교리(7대 공의회)는 로마 황제가 소집해서 개최한 국가 규범적 성격입니다. 그리고 루터와 칼빈 시대의 교리도 국가와 사회 규범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리에 해당되는 영어를 dogma와 doctrine이 있다고 제시했습니다. dogma와 doctrine를 "교의와 교리", 혹은 "교리와 교의"로 번역합니다. 사용자가 어떤 의미로 문맥에서 말하고 있는지 잘 파악해야 합니다. dogma는 7대 공의회의 결정, 즉 보편교회의 결정입니다. doctrine은 종파적 결정을 의미합니다. 7대 공의회는 제1차 니케아(325), 제1차 콘스탄티노플(381), 에페소(431), 칼케돈(451), 제2차 콘스탄티노플(553), 제3차 콘스탄티노플(680), 제2차 니케아(787)입니다. 칼빈파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까지는 합당한 성격의 공의회로 인정합니다. 787년 7차 공의회에서는 성상 숭배를 결정했습니다. dogma를 결정하는 것은 곧 기독교에 대한 근본 이해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dogma(교의)에 대한 이해를 일치하지 않습니다. dogma(교의)를 다른 말로 하면 정통신학(Orthodoxy theology)입니다. 1054년에 한 교회는 서방과 동방, 두 교회로 분열했습니다(East–West Schism, Great Schism). 두 교회로 나뉘었지만 7대 공의회에 대한 가치는 동일했습니다.

325년 니케아에서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정된 교의는 무엇일까요? 결정적인 내용은 두 개 뿐입니다. 4번의 회의에서 두 사안을 결정했습니다. 첫째는 삼위일체 교리(325, 381)이고, 둘째는 그리스도 양성교리, 한 위격에 두 본성(431, 451)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의를 둘, 삼위일체와 그리스도 양성 교의라고 합니다. 일상적으로 두 교리라고 사용합니다. 787년에 결정된 성상숭배 교의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1517년에 형성되었다는 이신칭의 교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1517년에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교리는 공적 회의에서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신칭의는 공적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는 이신칭의는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결정한 사안을 반복, 상기시킨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이신칭의 교리의 공적 결의성을 확보합니다. 그리고 루터가 선언했다는 이신칭의 교리는 칼빈도 인정하고 있어, 개혁파의 기본 교리입니다. 개신교 내부에서 이신칭의를 견지하면서 믿음의 확실성을 인정하는 부류와 믿음의 확실성을 거부하거나 의심하는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우리는 이신칭의를 교의의 성격으로 보지만, 그럼에도 이신칭의를 견지하지 않는 로마 카톨릭과 정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지 못합니다. 또한 1999년 이후 루터파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신칭의 분야(Jointed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약어 JDDJ)에서 상호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서방교회 진영에서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종파가 형성되었는데, 그 종파들은 자기 믿음을 고백하는 문장이나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그 믿음 문장이 신앙고백서(confession)이고, 그 믿음을 훈련하는 구성이 케터키즘(catechism 요리문답要理問答)입니다. 그 교파들의 신앙고백서가 교리(doctrine)입니다. 그런데 신앙고백서를 만들지 않은 교파도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 종파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종파가 형성될 때에는 먼저 신앙고백서가 작성되고 그 문서에 서명하면서 종파가 형성되었습니다. 장로교를 스코틀랜드로 보는 것은 1560년에 작성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를 시작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개혁파는 세일치신조(1561년 벨직신앙고백서, 1563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19년 도르트 교령)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루터파, 영국 국교회(성공회), 감리교 등은 모두 자기 믿음의 정체성을 기록한 문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 문서는 자기 종파에서 강제성을 가진 규범 문서입니다. 이러한 문서를 교리(doctrine)라고 합니다.

개신교의 특징인 이신칭의에서 로마 카톨릭과 협약이 체결되면서 교의 이해는 상당히 급변했습니다. 1948년에 형성된 WCC의 교회일치 운동은 교의(dogma)를 잠재시키고 신앙과 직제 일치 운동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교리를 무시(잠재)한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규정합니다. WCC에는 칼케돈 이단인 단성론자 교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교리 일치로 에큐메니칼"을 제언합니다. 교리가 같다면 교회는 일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리가 같다고 하는데 일치되지 않는 것은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신학자의 조직신학 저술은 '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리는 개인이 만들 수 있지만 공적 인준을 받아야 효력이 있으며, 인준이 되면 법적 강제력을 발휘합니다. 개인 신학 저술을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입니다.

교리에서 norma normans(규정하는 규범, 원규범)와 norma normata(규정된 규범, 2차규범)가 있습니다. 먼저 성경을 원규범이라 하고, 교의를 2차규범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의를 다시 원규범(공교회의 결정)로 보고, 2차규범(교파적 규범)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공교회의 결정, 교파적 규범이 일치되도록 훈련하며 개혁을 정진합니다. 그래서 공교회의 결정이지만 성경의 가르침(우상숭배 금지)에 위배된 것으로 판단해서, 7차 공의회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즉 원규범을 벗어난 결정을 2차 규범이나 교파적 규범에서 실시한다면 성경에 의해서 수정되거나 거부되어야 합니다.

교의로 이단을 판정합니다. 교의의 규범을 벗어나면 이단입니다. 교파적 차이점으로 이단을 규정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한국교회의 거대 규범으로 이단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교회 환경에서 제한된 규범입니다. 이단은 범교회에서 배격된 이단입니다. 즉 삼위일체를 부정하거나, 그리스도의 양성교리를 왜곡하는 가르침입니다.

어떤 사람, 볼테르(Voltaire:1694~1778)는 "교리를 깨부수자(에클라세 랑팜, Ecrasez L'infame!, Crush the monster, 괴물을 깨부수자)"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볼테르는 프랑스 사람이고 프랑스는 퐁텐플로 칙령에 의해서 강력한 로마 카톨릭주의가 실현되던 때였습니다. 볼테르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기초한 대표적 사상가입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에서 로마 카톨릭 국교는 폐지되어 국교가 없는 종교자유국가가 되었습니다. 18세기 계몽철학에서 "교리"를 "얽매는 것"으로 개념화시켰습니다. 교조주의(敎條主義, Dogmatism)는 자기 개념에 꽉 막힌 사람을 의미합니다. dogma를 '독단'으로 번역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는 계몽철학이나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교리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그들의 개념을 신학으로 도입시킨 성향이 자유주의입니다. 자유주의는 교리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와 합리성으로 기독교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형태입니다.

dogma나 doctrine은 인간의 사상이 아닙니다. dogma나 doctrine은 믿음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dogma나 doctrine 없이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루터는 이신칭의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으로 규정했는데, 그것은 곧 교리(dogma)의 성격을 주장한 것입니다. 교리가 없으면 교회는 무너집니다. 교리를 독단으로 규정하면서 자유주의가 성행했던 유럽이 그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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