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리를 오해했다(2) 은사중지론과 은사지속론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은사중지론과 은사지속론(cessationism vs continuationism)은 우리가 많이 오해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은사중지론이라고 하면, 훅 들어오는 질문은 "그럼 목사님은 은사를 믿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번역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cessationism vs continuationism을 "은사중지론과 은사지속론"으로 번역하면서 발생한 해프닝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중지론과 지속론(계속론)"이 됩니다. 그런데 처음 이 용어를 소개한 번역자가 "은사중지론과 은사지속론"으로 번역하면서 오해가 발생한 것입니다.
김영한은 은사지속론(continuationism) 학자에 어거스틴(Augustine),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존 웨슬리(John Wesley),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찰스 피니(Charles Finney), D. L. 무디(Moody),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Johann Christoph Blumhart), 마틴 로이드존스(Martin LLoyd-Jones), G. C. 버르카워(Berkouwer), 존 스토트(John Stott),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번 포이드레스(Vern S. Poythress), 존 파이퍼(John Piper), 박윤선, 차영배, 박봉배, 조종남, 김명혁 등으로 김영한은 분류했습니다. 저는 포이쓰레스, 존 파이퍼, 박윤선 등은 은사지속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거스틴의 신학은 경솔하게 단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한은 은사중지론의 학자를 찰스 핫지(Charles Hodge), 워필드(B.B. Warfield), 제임스 패커(J. I. Packer), 존 맥아더(John MacArthur),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안토니 후크마(Anthony Hoekema), 존 월부어(J. F. Wolvoord),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노만 가이슬러(Norman Geisler), 리처드 개핀(Richard Gaffin), 로버트 레이몬드(Robert Reymond), 박형룡, 신복윤, 정성구, 이종윤, 서철원 등으로 제시했습니다.
김영한은 한국교회의 초기 부흥운동을 은사지속론적 성향으로 분석했습니다. 그것은 남경신학교와 북지나신학교 교수 가옥명(賈玉銘)의 성령론에 근거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엇지 방언(方言)만 증거된다고 고집하리오. 반다시 영세(靈洗)가 방언만으로 증거될 것이 아니오. 참으로 영덕(靈德), 영능(靈能), 영력(靈力), 영과(靈果)가 표징이 되나니 누가 영세(靈洗)는 밧으나 이런 영세(靈洗)의 표징(表徵)이 얻다 하나노. 만일 이 표징(表徵)이 업다하면 자기(自欺)하며 기인(欺人)누함이니라.”[(賈玉銘, 『組織神學) 第五冊: 聖靈論), 104.)]. - 김영한이 인용한 가옥명의 번역된 글 -
가옥명은 챨스 핫지의 견해를 반박하면서 지속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성향이 자연스럽게 한국 교회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성경의 절대성, 성경의 무오성, 성경의 충족성을 매우 견실하게 유지하는 교회입니다. 이 체계와 은사지속론 체계가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의 충족성과 은사지속론"은 함께 설 수 없는 가르침입니다.
은사중지론은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은사중지론은 "계시적 은사의 중지"입니다. 은사중지론, cessationism은 "계시적 은사의 중지"를 가진 신학 개념입니다. 은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된 성령의 선물이며, 계발하여 증진해야 할 선물입니다. 그러나 계시적 은사는 다릅니다. 계시적 은사는 성경 권위와 동일한 문서나 표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사지속론에서는 방언(方言, speaking in tongues, glossolalia)에 이어 방서(方書, 영서)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cessationism를 "은사중지론"이 아닌 "계시중지론"이나 "계시적 은사 중지론"으로 번역하는 것은 더 합당할 것이라 제언합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1에서 "중지되었다"(those former ways of God's revealing His will unto His people being now ceased)는 고백과 부합됩니다. 이 문장은 성경해석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기적이 지금은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현상의 중단이 아니라, 계시적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워필드 박사는 "가짜 기적(counterfeit miracles)"이라는 저술을 통해서 기적으로 복음을 전도하거나, 가르침의 정당성을 가지려는 행동을 거부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리처드 개핀의 <성령의 은사론>에서 중지론이 등장합니다. 은사론에서 중지론이 등장하기 때문에 은사중지론으로 오해했다고 봅니다. 중지론은 계시중지론, 기적중지론, 은사중지론입니다.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것은 "사도적 은사", "계시적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기적(miracle)이 있습니다. 병자가 치유될 수 있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이 "사도적 은사"나 "계시적 은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은사"입니다. 그냥 은사라는 것은 은사에 목적인 교회를 섬김과 지체를 섬김의 목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적 은사도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은사이지만, 절대적 권위와 가치가 부여됩니다. 그러나 일반 은사에는 절대적 권위와 가치가 없습니다. 미래를 보는 은사가 있다할지라도 그 은사에 따를 당위성이 없습니다.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아가보 선지자와 빌립의 네 딸의 예언을 거부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간 사도 바울이 예언의 은사에 불순종한 것이 아닙니다(행 21:1-16).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고초를 당한 것이 예언에 불순종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계시 시대 신약의 선지자의 예언 활동에서도 그러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계시가 종료된 이후에는 더욱 어떤 행위와 현상에서 절대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cessationism vs continuationism을 은사중지론과 은사지속론으로 번역할 것이 아니라, 계시중지론과 계시지속론으로 주장할 것을 제언합니다. 장로교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는 명시적으로 계시중지지론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선진들이 200여년 전에 이미 교리로 확정했는데, 교리를 무시하고 계시지속론이 장로교 안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는 공개적으로 계시지속론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계시지속론을 주장하면서 장로교 신학과 신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참고자료]
김영한, "[영성신학 칼럼 3] 은사지속론에 대한 신학적 성찰", <크리스찬투데이>, 2014.03.31.
B. B. Warfield, Counterfeit Miracles, 1918: <기독교기적론>, 나침반, 2013년. Miracles: Yesterday and Today. Real and Counterfeit, Grand Rapids, Mich.: Eerdmans,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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