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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리를 오해했다(1) 성경의 명료성과 자증성

형람서원 2025. 3. 2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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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리를 오해했다(1) 성경의 명료성과 자증성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성경에 대한 교리 체계는 단순한 것 같지만 쉽지 않습니다. 최종적인 규범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66권이다"라는 명제도 단순하지만 그 명제를 산출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역사 과정이 필요합니다. 모든 기독교(정통과 이단)는 성경으로 신앙과 신학 활동을 합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여러 오해가 있습니다. 오해는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데에 장애를 일으키게 됩니다. 특히 교리(신학)에 대해서 오해하면 그렇게 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성경의 명료성과 자증성에 대한 진실과 오해에 대해서 제시하려고 합니다.

성경의 명료성과 자증성

성경의 명료성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합니다. 중세 로마 교회는 가르치는 자의 권위, 교도권(敎導權, potestas magisterii, 영. power of magisterium)으로 가르침의 유효성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성경과 전통의 권위가 동등하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루터와 칼빈은 성경과 전통에서 성경의 절대 권위를 세운, Sola Scriptura로 권위를 변경했습니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위한 방편 중 하나가 성경의 명료성과 자증성입니다. 독자 제위들은 교회에서 권위가 성경뿐인가요? 전통이 동등 혹은 전통의 권위가 더 큰 가요? 아니면 성령의 권위가 더 큰가요? 현재 교회에서 권위에 대한 이해는 크게 세 가지의 사례가 있고, 오직 성경이라고 말할 때에 전통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에서 "norma normans와 norma normata(제1권위와 제2권위)"의 체계를 유지하는 체계가 있습니다. 다음에 말할 성경의 충족성(계시의 종료성)에 관한 부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명료성(明瞭性, the clarity(perspicuity) of Scripture, perspicuitas Scripturae)은 "누구나 성경을 읽으면 누구나 성경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저는 이 때 '누구나'에 좀 의미를 집중시켰습니다. 신학에서 '누구나'는 '누구나'가 아니며, '선택된 누구나'도 자의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주의를 제언하는 것입니다. 개혁된 교회는 중세 교회의 성경 독서 금지를 폐지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하여 장려했습니다. 그것은 라틴어 성경(벌케이트 역본)에서 헬라어, 히브리어 성경 본문이 유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합니다. 라틴어 성경 본문 이전의 성경 본문이 더 권위가 있다는 것은 상식적이기 때문입니다(ad fontes). 모두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번역을 시도해서, 영어 번역, 독일어 번역, 프랑스어 번역 등으로 성경이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명료성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성경을 적극적으로 읽어서 경건 생활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개혁파는 "성도들에게 성경 읽기를 권장하는 것"보다, "순수한 복음 선포에 집중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읽기는 스스로 성경을 읽어서 가르침을 파악하는 것보다 먼저 선포된 복음을 검토하고 바른 가르침을 취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참고. 행 17장 베뢰아 교회). 그런데 선포된 복음과 관계 없는 성경 읽기는 교회 안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심각한 것은 선포된 복음의 권위가 약화되는 것입니다. 선포된 복음의 권위의 약화는 곧 교회의 약화이며, 교회의 약화는 복음의 약화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약화되는데 복음이 강성해질 수 없습니다. 교회당과 교회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명시합니다.

성경의 명료성을 누구나 성경을 읽어서 구원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취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설교를 듣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판단의 기준이 성경입니다. 목사의 설교를 바르게 판단할 것인가? 중립적으로 판단할 것인가? 부정적으로 판단할 것인가? 부정에서는 인내할만한가? 1초도 인내할 수 없는가? 등 수 많은 판단 조건이 있습니다. 1초도 판단할 수 없는 조건에서 2초를 인내하는 것은 주 하나님 앞에 게으른 행동입니다. 그러나 3초를 인내해야 조건에서 2초에 행동하는 것은 성급한 행동이 됩니다. 성도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개인과 교회에 매우 중요하며 유익합니다. 주의 자녀는 교회 세움에 대해서 긴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주의 자녀는 자기 희생으로 교회의 유익(건덕 建德, edification)을 위해서 정진합니다. 섬김과 희생없이 믿음의 정진이나 교회의 건덕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 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성경 그 자체가 그 해석자이다)는 누구나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선포자도 성경 본문에 제약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본문에 위배된 내용을 선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설교자가 성경 본문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가 모든 것에 권리를 부여한 것은 아닙니다. 설교자(목사)는 성경과 교리에 제약을 받습니다.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설교를 하는 목사에게 언제든지 이의신청과 청구권(請求權)을 갖고 있습니다. 장로교회는 그 청구권을 목사에게 직접하는 구도가 아닌 (치리)장로에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장로교헌법 첫째가 "양심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자유는 모든 것에서 자유가 아니라, 자기 영혼에 위해를 받을 때에 표현해서 보호받을 권리입니다. 부당한 설교는 성도의 영혼에 혼란과 심각한 위해를 가져옵니다. 부당하거나 미흡한 설교에 대해서 성도의 방어권이 양심의 자유입니다. 장로교에서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장로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 될 것입니다.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답변(honest answers to honest questions)"을 제언했습니다.

성경의 명료성은 성경의 자증성(自證性, autopiston)과 함께 묶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자증(the self-authentification of the Scripture)은 칼빈이 성경의 권위를 제시하기 위해서 사용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성경이 해석한다"는 문장을 농축시켜 개념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루터는 성경의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에 방점이 있지만, 칼빈은 성경 본문에 근거한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연결성을 좀 더 세밀하게 접근했습니다.

칼빈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한 진리이며 그 자체 안에 독자적 권위가 있습니다(The word of God, then, is a sure truth, and in itself authoritative). 여기서 "독자적 권위"로 번역된 헬라어는 "αὐτόπιστος(아우토피스토스)"입니다(칼빈 히브리서 주석. 6:18; Inst. 1.7.2). "아우토피스톤, autopiston"을 "성경의 자증"이라고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지금 하늘로부터 신탁(神託)이 매일같이 내려오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진리가 변경되지 않도록 진리를 오직 성경 안에 두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참조, 요 5:39, Inst. 1.7.1).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매일 같이 신탁,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많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선포된 말씀을 중심으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선포된 말씀이 무너지고 신자의 개인 경건이 발흥되어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포된 말씀이 무너지면 교회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 바른 교리(sound doctrine)가 명확하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바른 교리는 교리 자체가 아니라 성경 본문에 근거해서 바른 교리가 선포되어야 합당한 권위를 갖습니다. 교회는 주일오전 설교에는 성경본문에 중점하고, 주일오후 설교에는 교리내용에 중점해서 말씀 체계를 구성시켰습니다.

칼빈은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성경의 자증(the self-authentification of the Scripture)외에 성령의 증거(the witness of the Holy Spirit)를 강조했습니다(1).

성경에서 의미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구원에 필요한 내용을 산출하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 은혜를 입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중생자 신학"이라는 표현도 했는데, "비중생자가 하는 신학"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메이천 박사는 "합리적 기독교"라고 정의하면서, 기독교는 합리가 아닌 "구속의 은혜"에 착념하도록 했습니다. 성경 해석에서 중요한 것이 성령의 내적 교사(interior magister, inward teacher, Holy Spirit, Inner Witness of Holy Spirit)의 역할입니다(기독교강요 1권). 그리고 교회(외적 교사, outward teacher, the Church)에 대해서 기독교강요 4권에서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를 떠난 성경 해석은 적지 않은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교회에 유익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에서는 교회에 유익이 되도록 되도록 해석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인데도 교회의 유익에 대한 배려나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성경의 명료성과 자증성도 교회에 유익해야 합니다. 성경의 명료성과 자증성으로 교회의 권위를 벗어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좋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은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이며, 바르고 풍성한 말씀이 선포되는 선언입니다. 교회 강단에서 바른 복음이 선포될 수 있도록,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사모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참고문헌]

(1) Inst. 1. 7. 5; 김은수, 『칼빈과 개혁신앙』(서울: SFC 출판부, 2011), 81.

[참고]

김형익, <오해에서 확신으로>, 2013-08-12 (벧살롬교회 홈페이지에서)

김형익 목사는 "성경이 그 기본적 메시지에 있어서 즉, 구원에 필수적인 것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충분히 명백/명료하여 유무식에 관계없이 이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라고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중세 교회 시대에 성도들이 성경을 부당하게 읽어 무질서하게 된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례가 정확한 현상이라는 것은 주지시키지 않았습니다. 즉 성경을 부당하게 읽으면 교회가 무질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롭게 성경 읽음에서 발생된 문제 상황에 대해서 중세 교회의 처방은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현상은 정확하며 그 문제된 현상이 발생 이유 그리고 그에 대한 처방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나 세계 교회도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 무질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무질서를 절제하고 통제할 방법은 성도에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목사(장로)에게 부여되는 것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와 목사의 권위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4세기의 교부 크리소스톰의 말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행한 것은 선명하고 명백했다. 그들은 각 사람이 단지 성경을 읽음으로써 그것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했기 때문이다”" 성경의 명료성은 정확합니다. 그러나 명료한 성경을 읽으면서 중세 시대에 교회에 심각한 무질서를 양산했고, 교회는 처방은 부당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읽기를 강조한 개신교회 안에서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정당한 처방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도에게 더 큰 권한과 자유를 부여하고 있습니까? 포스트모던이기 때문에 성도에게 권한과 자유를 부여하는 것인데, 시대의 조류에 함몰된 것입니다.

1장 성경에 대하여

1. 본성의 빛, 그리고 창조와 섭리의 사역은 사람들이 핑계치 못할 만큼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을 명백하게 나타내지만,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구원에 이르는 데 필요한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한 지식을 주기에는 부족하다.2) 그러므로 주께서 여러 시대에 여러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여 자기 교회를 향한 뜻을 선포하셨는데,3) 그 후에는 진리를 보다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하여, 그리고 육체의 부패, 사탄과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교회를 보다 더 확실하게 세우고 위로하기 위하여 전적으로 동일한 계시를 기록에 맡기시기를 기뻐하셨다.4) 이런 이유로 성경이 지극히 필요하게 되었다.5)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그분의 뜻을 계시하시던 예전의 방법들은 이제 중지되었다.6)

1. Although the light of nature, and the works of creation and providence do so far manifest the goodness, wisdom, and power of God, as to leave men unexcusable;[1] yet are they not sufficient to give that knowledge of God, and of His will, which is necessary unto salvation.[2] Therefore it pleased the Lord, at sundry times, and in divers manners, to reveal Himself, and to declare that His will unto His Church;[3] and afterwards for the better preserving and propagating of the truth, and for the more sure establishment and comfort of the Church against the corruption of the flesh, and the malice of Satan and of the world, to commit the same wholly unto writing;[4] which makes the Holy Scripture to be most necessary;[5] those former ways of God's revealing His will unto His people being now ceased.[6]

1) 롬2:14-15; 1:19-21; 시19:1-3; 롬1:32; 2:1

2) 고전1:21; 2:13-14

3) 히1:1

4) 잠22:19-21; 눅1:3-4; 롬15:4; 마4:4,7,10; 사8:19-20

5) 딤후3:15; 벧후1:19

6) 히1:1-2

2. 성경 또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구약과 신약의 모든 책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책들은 다음과 같다:

구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 :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이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서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된다.7)

2. Under the name of Holy Scripture, or the Word of God written, are now contained all the book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 which are these: Of the Old Testament: Genesis, Exodus, Leviticus, Numbers, Deuteronomy, Joshua, Judges, Ruth, I Samuel, II Samuel, I Kings, II Kings, I Chronicles, II Chronicles, Ezra, Nehemiah, Esther, Job, Psalms, Proverbs, Ecclesiastes, The Song of Songs, Isaiah, Jeremiah, Lamentations, Ezekiel, Daniel, Hosea, Joel, Amos, Obadiah, Jonah,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Haggai, Zechariah, Malachi. Of the New Testament: The Gospels according to Matthew, Mark, Luke, John, The Acts of the Apostles, Paul's Epistles to the Romans, Corinthians I, Corinthians II, Galatians, Ephesians, Philippians, Colossians, Thessalonians I , Thessalonians II , To Timothy I , To Timothy II, To Titus, To Philemon, The Epistle to the Hebrews, The Epistle of James, The first and second Epistles of Peter, The first, second, and third Epistles of John, The Epistle of Jude, The Revelation of John. All which are given by inspiration of God to be the rule of faith and life.[7]

7) 눅16:29,31; 엡2:20; 계22:18-19; 딤후3:16

3. 일반적으로 외경(外經)이라고 하는 책들은 신적 영감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경(正經)의 일부가 아니고,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아무런 권위가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의 다른 저작물과 다르게 인정되거나 사용될 수 없다.8)

3. The books commonly called Apocrypha, not being of divine inspiration, are no part of the canon of the Scripture, and therefore are of no authority in the Church of God, nor to be any otherwise approved, or made use of, than other human writings.[8]

8) 눅24:27,44; 롬3:2; 벧후1:21

4. 마땅히 믿고 순종해야 하는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저자이신 하나님(그분은 진리 자체이시다)께 의존한다. 따라서 성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9)

4. The authority of the Holy Scripture, for which it ought to be believed, and obeyed, depends not upon the testimony of any man, or Church; but wholly upon God (who is truth itself) the author thereof: and therefore it is to be received, because it is the Word of God.[9]

9) 벧후1:19,21; 딤후3:16; 요일5:9; 살전2:13

5. 우리는 성경을 높고 경건하게 존경하도록 교회의 증언에 의하여 감동받고 권유받을 수 있다.10) 그리고 내용의 거룩함, 가르침의 효력, 문체의 위엄, 모든 부분의 조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리기 위한) 전체의 범위, 인간 구원의 유일한 방법에 대한 충분한 발견, 다른 많은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들, 그리고 그 전적인 완전성은 성경이 어째서 하나님의 말씀인지 스스로 풍부하게 증명하고 있는 논거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오한 진리와 신적인 권위에 대한 우리의 충만한 신념과 확신은 우리 마음 속에서 말씀에 의해 그리고 말씀으로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으로부터 나온다.11)

5. We may be moved and induced by the testimony of the Church to an high and reverent esteem of the Holy Scripture.[10] And the heavenliness of the matter, the efficacy of the doctrine, the majesty of the style, the consent of all the parts, the scope of the whole (which is, to give all glory to God), the full discovery it makes of the only way of man's salvation, the many other incomparable excellencies, and the entire perfection thereof, are arguments whereby it does abundantly evidence itself to be the Word of God: yet notwithstanding, our full persuasion and assurance of the infallible truth and divine authority thereof, is from the inward work of the Holy Spirit bearing witness by and with the Word in our hearts.[11]

10) 딤전3:15

11) 요일2:20,27; 요16:13-14; 고전2:10-12; 사59:21

6. 하나님 자신의 영광, 인간의 구원, 신앙, 생명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한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거나, 또는 선하고 필연적인 결론에 의해 성경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새로운 계시로든지 혹은 인간의 전통에 의해서든지 아무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성경에 추가될 수 없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씀 안에 계시된 그런 것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성령의 내적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13) 그리고 인간적인 활동과 생활 양식에 공통된 하나님의 예배, 교회의 정치에 관하여서는 항상 준수되어야 하는 말씀의 일반적인 규범들에 따라 본성의 빛, 기독교적 분별력에 의해 규정될만한 여러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14)

6. The whole counsel of God concerning all things necessary for His own glory, man's salvation, faith and life, is either expressly set down in Scripture, or by good and necessary consequence may be deduced from Scripture: unto which nothing at any time is to be added, whether by new revelations of the Spirit, or traditions of men.[12] Nevertheless, we acknowledge the inward illumination of the Spirit of God to be necessary for the saving understanding of such things as are revealed in the Word:[13] and that there are some circumstances concerning the worship of God, and government of the Church, common to human actions and societies, which are to be ordered by the light of nature, and Christian prudence, according to the general rules of the Word, which are always to be observed.[14]

12) 딤후3:15-17; 갈1:8-9; 살후2:2

13) 요6:45; 고전2:9-12

14) 고전11:13-14; 14:26,40

7. 성경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동일하게 평범한 것도 아니며,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명확한 것도 아니다.15) 그러나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하고, 준수해야 하는 것들은 성경의 어떤 부분에 아주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고 공개되어 있다. 따라서 유식한 사람뿐만 아니라 무식한 사람이라도 통상적인 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그것들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다.16)

7. All things in Scripture are not alike plain in themselves, nor alike clear unto all:[15] yet those things which are necessary to be known, believed, and observed for salvation are so clearly propounded, and opened in some place of Scripture or other, that not only the learned, but the unlearned, in a due use of the ordinary means, may attain unto a sufficient understanding of them.[16]

15) 벧후3:16

16) 시119:105,130

8. (고대 하나님의 백성의 모국어였던)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과 (기록당시 전세계에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던)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은 하나님의 영감을 직접 받았고, 그분의 특별한 보호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으므로 믿을만 하다.17) 그러므로 모든 종교적 논쟁에 있어서 교회는 최종적으로 그것들에 호소해야 한다.18) 그러나 성경에 대한 권리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것을 읽고 살피도록 명령받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이러한 원어들을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19) 따라서 성경은 그들이 살고있는 각 나라의 대중적인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20)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백성 안에 충만히 거하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방식으로 예배할 수 있고,21) 그리고 성경의 인내와 위로를 통하여 소망을 가질 수 있다.22)

8. The Old Testament in Hebrew (which was the native language of the people of God of old), and the New Testament in Greek (which, at the time of the writing of it, was most generally known to the nations), being immediately inspired by God, and, by His singular care and providence, kept pure in all ages, are therefore authentical;[17] so as, in all controversies of religion, the Church is finally to appeal unto them.[18] But, because these original tongues are not known to all the people of God, who have right unto, and interest in the Scriptures, and are commanded, in the fear of God, to read and search them,[19] therefore they are to be translated in to the vulgar language of every nation unto which they come,[20] that, the Word of God dwelling plentifully in all, they may worship Him in an acceptable manner;[21] and, through patience and comfort of the Scriptures, may have hope.[22]

17) 마5:18

18) 사8:20; 행15:15; 요5:39,46

19) 요5:39

20) 고전14:6,9,11-12,24,27-28

21) 골3:16

22) 롬15:4

9. 성경 해석의 무오한 원칙은 성경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어떤 성경의 참되고 완전한 의미에 대한 의문이 있을 때(그 의미는 다양하지 않고 유일하다), 그 의미는 반드시 더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는 다른 부분에 의해 발견되고 분별되어야 한다.23)

9. The infallible rule of interpretation of Scripture is the Scripture itself: and therefore, when there is a question about the true and full sense of any Scripture (which is not manifold, but one), it must be searched and known by other places that speak more clearly.[23]

23) 벧후1:20-21; 행15:15-16

10. 모든 종교적 논쟁을 판결하시고, 모든 종교회의의 결의, 고대 저자들의 소견, 사람들의 교의,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을 감찰하시며, 우리가 의지할 만한 판결을 내시는 최고의 재판장은 어떤 누구도 될 수 없고 오직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시다.24)

10. The supreme judge by which all controversies of religion are to be determined, and all decrees of councils, opinions of ancient writers, doctrines of men, and private spirits, are to be examined, and in whose sentence we are to rest, can be no other but the Holy Spirit speaking in the Scripture.[24]

24) 마22:29,31; 엡2:20; 행28:25

(나쥬니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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