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를 알아야 교회를 알 수 있다
형람서원 고경태 박사
우리 한국 교회는 '신조'라는 어휘가 개념이 불분명하게 사용되고 있다. Creed, Symbol, Canon, Articles 모두 신조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12 Articles는 12신조로, Canon of Dort는 도르트 신조로, Creed of Apostles는 사도신조로 번역하고 있다. 그래서 정작 신조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신조를 잘 알지 못하면 교회와 교회사(역사적 신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게 된다. 부흥과개혁사에서 Know the Creed and Councils를 이심주가 번역했는데, <신조를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라고 번역했다. 이 책의 저자는 Justin S. Holcomb(저스틴 홀콤)인데, 성공회 사제이다. 성공회 사제와 부흥과 개혁사의 신학적 성향이 유사하거나 일치한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성공회(영국 국교회)와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는 동일한 교파가 아니다. 다른 교파는 다른 신학 성향을 갖고 있다. Know the Creed and Councils를 직역하면 "신조와 공의회 알기"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신조(Creed)는 심볼(Symbol)과 동의어인데, 우리는 사도신조와 사도신경을 교차로 사용한다. 니케야 신조와 니케야 신경을 교차로 사용한다. 그러나 12신조와 12신경을 교차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도르트 신조와 도르트 신경은 교차로 사용한다. 그런데 신조에 대해서 말하려면 어휘 개념을 정확하게 세우고 진행해야 교회와 교회사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시대에 교회사를 이해할 때에 밀러 테제와 멀러 테제가 있다. 한국 교회에는 멀러 테제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역사를 동일하게 연속적으로 보는 것이다. "칼빈과 청교도"를 연속성으로 보려는 것이 멀러 테제이지만, 멀러 테제에는 모든 역사를 연속성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역사 위에 서지 않은 역사는 없다. 그러나 역사와 단절을 선언한 역사 의식이 있다. 그것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교회사를 정립할 수 있다. 그 훈련을 위해서는 어휘 개념을 정확하게 세워야 한다.
홀콤도 서론을 시작하면서 신조, 신앙고백서, 교리문답(요리문답), 공의회에 대해서 개념을 정의하면서 시작했다. 그런데 홀콤은 고대교회 신조, 서방교회 결정, 트렌트 공의회,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39개조 신앙고백(Articles),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2차 바티칸 공의회, 로잔 언약(1974년), 시카고 선언(1979년)까지 나열했다. 이 나열은 전형적인 영국 국교회적 교회사 진술로 볼 수 있다. 다만 루터파의 신앙고백서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의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굵직한 역사적 문서를 현대 교회까지 제시했다. 장로교회의 연구자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진술해야 할까? 필자는 "변호적 교회사관"을 제시한다. 단순한 나열은 교회사의 사상의 쟁투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잡탕이 될 수 있다. 홀콤은 치열한 교회사의 흔적이 있는 흐름을 전혀 갈등이 없는 역사의 흐름처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교회는 지금도 치열한 대치를 이루고 있다. 그것이 비록 한국 교회에서 국한된 일일지는 모르겠다. 그것이 한국 교회가 갖는 세계 교회의 사명일지도 모른다. 2025년 WEA 총회를 앞두고서 WEA 총재가 성경무오를 취한다고 자기 규정문서(statement)와 다르게 표현한 것은 한국 교회가 성경무오사상을 견지한 교회가 강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구 교회에서 성경무오 사상은 이미 철지난 사상이 아니라 불이 완전히 꺼저버린 사상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 성경무오는 아직도 뜨겁고 밝게 비취고 있다.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이다. 세계 교회의 큰 흐름을 한국 교회가 막아 서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더욱 더 힘을 내서 세계 교회의 신학이 세속화의 파도를 견디며 구원의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수 있도록 견디며 헌신하며 기여해야 한다.
먼저 신조(Creed)는 에큐메니칼 공의회(Council)에서 결정한 문서로 개념화해야 한다. 공의회는 에규메니칼 회의이다. 애큐메니칼 회의가 아니면 Creed를 창출할 수 없다. 트렌트 공의회(Council)이라고 하지만, 트렌트 공의회에서 Creed가 아닌 Decree를 작성했다. 트렌트 공의회의 주요 문장은 『항상 쇄신되어야 할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라고 한다.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Decree(교령)와 Canon(교회법)를 작성했다. 우리는 Canon은 '배격문장'의 의미가 도출되도록 번역을 제언한다. 도르트 신조(Canon)은 도르트 공의회(Council)이 아닌 총회(Synod)에서 알미니안을 배격한 문서(Canon)이다. 트렌트 공의회에서 Canon은 Anathema(정죄, 저주)가 있는 문서이다. 트렌트 공의회처럼 아나떼마(Anathema)가 많이 공표된 문서는 없을 것이다. 1962년에 공표된 바티칸 공의회에서 아나떼마가 없는 공의회였다고 한다. 그러나 트렌트 공의회를 연속하고 있는 한에서는 그 많은 아나떼마를 연속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신조는 에큐메니칼 공의회에 해당하는 것에만 규정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사에서 "신조를 작성할 수 있는 시대"와 "신조를 작성할 수 없는 시대"를 구분해야 교회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신조를 작성할 수 없는 시대에는 신조를 수정할 수 있는 권위체가 없다. 그러나 교황주의(로마 가톨릭)는 교황무류설을 채택하면서 신조와 동일한 수준의 권위를 발생시킬 수 있도록 세웠다. 신조에 대한 권위를 정확하게 세운다면 로마 가톨릭이 신조에 대해서 부당한 자세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신조에 대한 바른 자세가 없으면 로마 가톨릭의 부당한 자세에 대해서 인지하지 않고 단순한 진영 논리에 의해서 상호논박을 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에서 진리는 언제나 정중하고 명료하며 절차를 지켜야 한다. 진리는 숫자에 있지 않고, 강압적이지 않고 오직 진리 문장으로만 정진한다. 진리는 비둘기처럼 순전하고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 진리는 정치 쟁투가 아니라 명료한 이해에 근거한 자기 제시의 쟁투이다.
1054년 이후, 공의회를 개최할 수 없기 때문에 신조(Creed)를 작성한 사례는 교회사에서 찾을 수 없다. 스코틀랜드의 악더라더 노회에서 악더라더 신조(The Auchterarder Creed, 1717: Auchterader Presbytery)를 작성했는데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악더라더 신조는 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위해 반드시 죄를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바르고 정통적인 것이 아니다."
It is not sound and orthodox to teach that we must forsake sin in order to our coming to Christ. 율법주의적 가르침에 대한 변호적 문장이다. 로마 가톨릭에서도 공의회(Council)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신조(Creed)는 작성하지 않았다.
형람서원 고경태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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