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년 종교개혁일, 1517년 10월 31일
1555년 9월 25일에 아우크스부르크 화의(Peace of Augsburg)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알 5세는 루터파 교회를 신성 로마 제국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독일에서 모든 지역에서 루터의 주장을 수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배자의 종교가 그 영내의 종교가 된다'(Cuius regio, eius religio)는 원칙으로 두 종교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648년 5월 15일과 10월 24일, 신성로마제국 베스트팔렌(독일 북서부)의 두 도시 뮌스터와 오스나뷔르크에서 30년 전쟁을 종식시키는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됩니다. 이로서 유럽에서 루터파와 칼빈파가 안정적 종교로 인정되었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유럽과 조금은 다른 양상으로 종교개혁이 진행되었고, 청교도 혁명으로 왕 찰스 1세를 처형했지만(1949년), 결국 찰스 2세로 왕정이 복고(1662년)되었습니다. 그리고 명예혁명으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습니다.
프랑스는 30년 위그노 전쟁을 종결시키는 낭트 칙령(1598년)으로 위그노(칼빈파)의 신앙의 자유를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루이 14세가 퐁텐블로 칙령(1685년)으로 낭트 칙령을 무효화했고, 위그노들은 유럽 각처로 망명했습니다. 가장 먼저 종교의 자유를 획득했던 칼빈파, 위그노는 칙령이 전복되면서 순간 망명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으로 종교가 없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의 분화선을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날을 기점으로 삼습니다. 우리는 루터파가 아니지만 그 날을 기념하는 것은 종교개혁의 동일한 진영, 이신칭의를 합당한 교리 체계로 받기 때문입니다. 이신칭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 믿음으로 구원받음의 교리입니다.
형람서원 고경태
교회에 수 많은 십자가 조형물이 있지만 영광의 신학이 가득하며, 십자가 신학은 없는 교회... 종교개혁은 광범위한 운동이 아니라 제한적으로 세워진 운동입니다. 진리의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좁은 지역에 계몽철학으로 그 나마도 상실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교회가 이신칭의 교리를 가장 근본적으로 잘 붙들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의 신비....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교회보다 더 이신칭의 교리를 잘 붙들고 있는 교회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대한민국 교회가 쇄락하고 있습니다. 주여! 옮겨질 촛대 나라를 주시든지, 이 나라의 교회가 구원의 빛을 강하게 비취게하시든지... 주의 뜻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나이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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