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절대 의존 감정(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 feeling (Gefühl) and affectus

형람서원 2024. 9. 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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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rding to Friedrich Schleiermacher, religiosity is rooted in feeling (Gefühl).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1768-1834)는 절대 의존 감정(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을 행동의 기초로 세웠습니다. a sense of dependence and of freedom

Christian Faith (1830)

해겔의 절대정신(Der Absolute Geist)과 슐라이어마허와 Gefühl der schlechthinnigen Abhängigkeit(의존)'(절대의존감정)

칸트가 긍정하는 moralisches Gefühl(도덕 감정)

헤겔의 절대정신(Der Absolute Geist)

슐라이어마허의 절대의존감정 Gefühl der schlechthinnigen Abhängigkeit

 

The Significance of Gefühl for the development of Karl Barth’s Theological Anthropology 1909–1938

Name: J Templeton

파일 첨부J Templeton FINAL THESIS.pdf

 

Abstract(초록)

This dissertation employs the work of late twentieth century and early twenty-first century affect theorists as a heuristic approach to Karl Barth’s theological anthropology. 이 논문은 칼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론에서 교육학적 접근방법에서 후기 20세기와 초기 21세기 정서적 이론들의 연구를 수용한다.

In Barth’s theology, Gefühl, usually translated as ‘feeling’, is the concept most like affect. 바르트의 신학에서 게필(Gefühl)은 일반적으로 '감정'으로 번역되는데, 정서(affect)와 유사한 개념이다.

From 1909 Barth’s earliest published theological writing and his early sermons show evidence of considerable alignment with Friedrich Schleiermacher’s approach in allocating a central place to experience and affection in the reception of divine revelation. 1909년부터 바르트가 가장 먼저 발표한 신학 저술과 그의 초기 설교는 신적 계시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경험과 정서를 가질 수 있는 중심 장소를 할당하는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의 접근 방식과 상당한 일치를 보인다.

However, Barth becomes aware of the conceptual weaknesses of the modernist appeal to experience. 그러나 바르트는 경험에 호소하는 모더니즘의 개념적 약점을 파악했다.

Then, the outbreak of war and the misguided fervor with which some of his theological teachers support Germany’s military aggression contributes to Barth’s gradual loss of confidence in the entire modernist theological approach. 그런데 1차 세계 전쟁의 발발에서 일부 신학교 교사들이 독일의 군사적 침략을 지지하는 잘못된 열정에 대해서 바르트는 전체 모더니즘 신학적 접근 방식에 대한 신뢰를 점진적으로 잃는 데 기점이 되었다.

The critical view that Barth takes of Schleiermacher’s concept of Gefühl and its relationship to revelation is pivotal to the theological anthropology that Barth begins to develop in deliberate contradistinction to that of Schleiermacher. 바르트는 슐라이어마허의 Gefühl 개념과 계시와 관계에 대해 취하는 비판적 견해는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의 그것과 의도적으로 모순되어 발전하기 시작하는 신학적 인류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Barth constructs a theology of faith as the dialectical witness to the objective revelation of the Word of God.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의 객관적 계시에 대한 변증법적 증인으로서 믿음 신학을 구성한다.

Barth proposes that the missions of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can reorientate alienated subjectivity. 바르트는 아버지, 아들, 성령의 사명이 소외된 주체성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제안한다.

However, at a deeper level Barth’s description of the missions of the Trinitarian persons do not penetrate the affective centre of the human being. 그러나 삼위일체적 인격의 사명에 대한 바르트의 설명은 더 깊은 수준에서 인간의 정서적 중심을 관통하지 않는다.

What Barth needs is a pneumatological description of the way in which divine activity works with the human being’s receptivity and spontaneity. 바르트에게 필요한 것은 신적 활동이 인간의 수용성과 자발성과 함께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영적 설명(a pneumatological description)이다.

In Church Dogmatics I/1 and I/2 he rehabilitates Gefühl by de-coupling it from Schleiermacher’s ‘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 교회교의학의 I/1 과 I/2에서, 바르트는 슐라이어마허의 "절대의존감정"의 Gefühl만을 분리해서 재활시켰다.

He formally reconceptualises Gefühl as an affective self-determination in response to God’s sovereign determination.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 결단에 대한 응답으로 Gefühl을 "정서적 자기 결정체"로 공식적으로 재개념화했다.

The addition of the concept of ‘analogy’ enables Barth to affirm that human self-determination participates in Christ’s self-determination through the Spirit’s outpouring. '비유'라는 개념이 추가되면서 바르트는 인간의 자기결정이 영의 부어짐을 통해 그리스도의 자기결정에 참여한다는 것을 확언했다.

As a result, Barth can affirm that thinking, willing, and Gefühl are in no sense diminished in the person who in faith corresponds analogically to grace. 따라서 바르트는 믿음에서 은혜와 유사하게 일치하는 사람에게서 사고, 의지, Gefühl이 전혀 감소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In addition, reconceiving human spontaneity as a response to and participation in God’s sovereign activity makes it possible to affirm that divine activity and human spontaneity belong together and are consistent with one another.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응답과 참여로서 인간의 자발성을 재고함으로써 신적 활동과 인간의 자발성이 함께 속하며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확정했다.

However, Barth’s recognition of Gefühl remains at the formal level with little material development. Nonetheless, at the formal level the concept of analogical participation has enabled Gefühl to be rehabilitated. Therefore, I conclude that Gefühl is significant in the development of Barth’s theological anthropology. 그러나 바르트의 Gefühl 인정은 물질적 발전이 거의 없는 공식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수준에서 비유적 참여의 개념은 Gefühl을 재활시킬 수 있게 했다. 따라서 저는 Gefühl이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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