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miracle)’은 계몽 철학에서 기독교 해석에서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주제이다. 계몽주의(啓蒙主義, 영 Enlightenment, 독 Aufklärung, 프 Lumières)는 철학 사조이지만, 이신론(理神論, Deism)으로 신(神)을 새롭게 규정한 종교 운동라고 볼 수 있다. 계몽주의는 이성의 빛으로 (어둠이라는 종교에 닫혀 있는) 눈을 뜨게 한다는 의미이다. 당시 캐논(Cannon)이었던 교회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도구로 ‘이성(ration)’을 제시했다. 이성의 합리성 원리에 부합되지 않는 개념이 ‘기적(miracle)’이었다. 이성에 들어오려면 반복해서 동일한 값이 나와서 측정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기적은 단회적 사건이기 때문에 합리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합리적이지 않는 사안은 과학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배제시켰다. 그런데 현대 과학(물리학)에서는 증명하지 못할 사안들을 쏟아 내면서 ‘과학’이라고 어깃장을 놓고 있다. 중세 로마 교회가 ‘교권’으로 시대를 장악했다면, 근, 현세는 ‘이성의 합리(과학)’로 시대정신을 장악하고 있다.
계몽주의는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으로 시작해서, 흄(David Hume, 1711-1776, 스코틀랜드)에게서 ‘이성’의 한계를 밝힌 회의주의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는 이성과 ‘윤리’로 체계화되었다. 계몽주의에 반대되는 사조가 대륙에서는 낭만주의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상식철학(Scottish School of Common Sense)이 대두되었다. 상식철학은 기독교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를 형성하는 사조이기도 하다. 상식철학은 흄의 진리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거부하며, 자명한 근본 원리(principles of common sense)가 있음을 인정하고 사상과 학문의 기초로 삼았다. 프린스턴의 벤자민 워필드(Benjamin Warfield, 1851-1921)는 <기독교 기적론>(Counterfeit Miracles, 1918)이란 저술에서 ‘기적중지론(Cessationism)’을 제시했다. 기적중지론은 은사중지론과 동일 사상으로 이해한다.
선교지에서 기적이 많이 일어난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적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기적을 보기 위해서 선교지에 방문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기적 신앙은 표적 신앙인데, 기적 신앙으로 바른 믿음을 이룬 사례는 성경에 없다. 모두 주의 말씀으로 바르게 썼고, 복음을 들음으로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기적으로 바른 믿음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표적을 구하는 것을 악한 세대의 표징으로 보았다(막 8:11-13; 눅 12:54-56). 기적의 권위에 눌려 교회에 나온다면 종처럼 굴복한 것이어서 자유자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기적’은 지금도 일어난다. “기적이 중지되었다는 것”은 기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방식이 중지되었다는 것이다. 기적이란 수단으로 교회를 이루려는 의도를 갖지 말라는 것이다. 기적은 예수의 신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방식이다. 그러나 그 기적을 보고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은 이제는 없는 것 같다. 그 기적을 반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사도들은 기적을 일으킬 때 전혀 기적에 주목하지 않았고, 오직 예수의 증인(행 1:8)이 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기적이 있을 때에 사도 바울은 심한 곤경에 빠졌고, 그곳에서 쫓겨났다.
현재 ‘기적’은 기도의 응답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약 5장).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으로 포함시키지 않는다. 은혜의 방편은 말씀과 성례(세례와 성찬)이다. 권징까지 은혜의 방편으로 포함시키려 하는데, 교회의 표지와 은혜의 방편이 동일해야 한다. 기적은 은혜의 방편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은혜의 방편으로만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을 그리스도인은 믿고 유지한다. 다른 방편으로 교회를 세움은 불가능하고 세워졌다는 주장은 거짓(Counterfeit)이다.
계몽철학에서 기적을 합리적인 도구로 판단할 수 없는 특이한 사항이기 때문에 검증 범주에서 제외시켰다. 그래서 성경에 있는 모든 기적을 판단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리고 성경을 재구성하려고 했다. 그런 수준에서 만들어진 예수 초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기적’이 있고 반복되어야 한다는 상반된 주장이 또 기독교를 훼손시킨다.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기적이 있다고 하는 주장이 아니라, 기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인증하려는 태도이다. 기적이 없으면 하나님의 실유(實有)를 의심하는 행태이다. 계몽철학에서 기적을 제외시켜 기적 없는 성경으로 만든 것이나,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기적을 부각시켜 기적뿐인 기독교를 만든 것은 인간에 기초한 동질의 것이다.
기독교는 ‘기적(표적)’을 성경이 충족된 후로는 ‘계시 수단’으로 평가하지 않는다.기적을 일으켜 자기 정당성을 가지려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천주교)는 기적을 계시 수단으로 평가해서 성인숭배, 교황의 교설이 최종계시로 이해한다. 기적이 계속된다는 주장은 중세 암흑기에 있었던 교회우상주의이고, 계몽주의가 완성되고 체계화된 이후에 다시 신비주의(은사주의)로 부활했다. 기적을 배제한 합리적인 계몽주의가 기적 사상을 더 강화시킨 촉매제 역할을 했다.
고경태 목사. 광주 망월동 주님의교회 목사.
크리스찬타임스, 한국성경연구원,
세움선교회, 크리스찬북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