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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성경이고, 어떻게 성경인가?
“신학은 ‘성경’으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하기 전에 “신학은 성경으로 했는가?”가가 탐구에 좀 더 명료한 질문이다. “성경으로 신학함(Sola Scripitura)”은 오직 믿음(Sola fide)와 함께 종교개혁에서 세워진 새로운 좌표이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성경으로 신학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신학은 어떻게 발생했는가? 신학은 본래 없었고, 신학의 원형은 복음 전파와 교회 설립 그리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체계적인 인식 체계를 가 요구될 때 형성된 것이다. 교회는 생명이 촌각에 달린 백척간두의 기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체계적인 학문을 이룬다는 것은 배부른 상상일 것이다. 로마 황제에 의해서 금지된 종교는 기독교였다. 유대교나 다른 이교, 밀의종교 등은 금지 종교가 아니었다(참고, 메이천의 <바울 복음의 기원>). 그런 기독교가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종교 관용령)에 의해서 재사권 등을 소유할 수 있는 제도적 종교로 변화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313년을 교회 부패(거짓 교회)의 원년으로 보려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300년 동안 박해에서 인내와 믿음의 정진으로 로마를 기독교로 만든 복음의 위력을 보아야 한다. 313년 이전에 교회 안에 많은 이단들이 있었지만 파편적이고 음성적으로 대항했다. 그러나 로마 정부에 합법성을 가질 때부터는 합법적인 절차로 변호를 해야 했다. 합법적인 변호는 황제와 함께 논의했고 ‘교리’가 형성되었다. 교리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 때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믿는 수준에 대한 논의였다. 그래서 필자는 고대 교리 논쟁에서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제시한다.
320년경 기독교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인기 있는 사역자 아리우스에 의해서 문제가 촉발되었다. 아리우스는 예배에 유일한 대상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주장했고, 예수는 영원에서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알렉산드리아 감독인 알렉산더는 지금까지 예수께 예배한 교회에 대한 공격으로, 300년 교회가 우상을 섬긴 집단으로 전락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리우스의 주장은 매력적이었고 인기가 많았고, 교회가 혼란해지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보편 교회 회의를 소집했다. 아리우스의 견해는 배격되고,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본체(homoousion)인 것을 공교회 문서로 확증했다. 이렇듯 고대 교리 논쟁에서 성경 본문 해석에서 시작했지만(아리우스는 골 1장에서 예수의 피조성을 주장함), 성경 본문의 대화가 아닌, 실재로 담지한 구원에 대한 묵상과 효력에 대한 것으로 변증을 했다. 교부들의 권위는 사도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바른 해석을 한 교회의 권위이다.
고대 교리 논쟁은 종식되지 않았다. 5세기 유스티아누스가 칼케돈 신경으로 교리 논쟁을 종식시키려고 했을 때, 단성론자들은 황제의 결정에 불복하고 항거했다. 아르메니아 정교회, 콥틱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들이 대표적인 단성론 기독교이다. 8세기 이슬람이 아프리키와 아시아 지역을 점령해서 기독교는 구조적으로 교리 논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기독교 제국 비잔티움은 황제의 권위로 기독교를 유지했다. 그런데 서로마는 멸망되었고, 프랑크 제국이 통치를 했고, 문화는 기독교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유럽은 황제와 교황의 알력이 발생했다. 유럽 사회의 문화와 사회를 교회가 장악했다. 진리의 판결자가 공교회의 회의가 로마 교황의 교서로 결정되었다. 공교회라는 것도 교황의 교서가 최종 권위를 갖았다. 중세 1,000년을 교황, 교회가 세속 질서를 장악했다. 동방교회는 이슬람에 장악해서 기독교는 사회에서 소수로 전락했다. 마지막 비잔티움이 함락된 후 중동 지역은 이슬람으로 사회가 재편되었다. 비록 십자군 전쟁으로 잠시 예루살렘을 기독교 세력이 유지하기는 했지만 실패했고 더욱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벌어졌다.
16세기 유럽의 지성은 무식한 교회의 횡포를 견디지 못했다. 그 시작은 마틴 루터가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마틴 루터는 오직 믿음과 오직 성경이라는 좌표로 교황주의 좌표를 개혁했다. 이것을 프랑스 사람, 제네바 베드로 교회 사역자, 칼빈이 체계화시켰다. 루터는 독일에서 신교를 형성했고, 제네바는 새로운 질서 유지를 위해서 칼빈을 청빙했다. 루터의 사상은 유럽 전역에 퍼졌고, 뒤를 이는 칼빈의 가르침도 유럽 전역에 퍼졌다. 그래서 유럽은 구교(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루터파(독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칼빈파(제네바, 스코틀랜드(장로교), 네덜란드)로 형성했다. 종교개혁파는 성경으로 고대 교리를 검증하고 고대 교회 가르침, 사도의 가르침을 회복했다. 칼빈이 가장 체계적인 성경 주해와 교리 해석을 했다. 종교 개혁 후 기독교의 좌표는 두 갈래로 섰다. 교회의 권위에 의한 좌표(구교)와 성경으로 사도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좌표(개혁파), 성경 본문으로 복음을 세움(재세례파)로 나뉘었다. 재세례파는 교육에 철저하게 몰두했고(참고. 코메니우스, 1592-1670),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으로 예수와 기독교를 재구성하려는 것을 시도했다. 그래서 오직 성경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오직 성경으로 사도의 가르침을 회복하는 것과 오직 성경으로 성경 본문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등장한 새관점학파는 성경에 주전 2세기부터 주후 1세기 문서에서 기독교의 기원을 탐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오직 성경’이 주는 맹점이 있다. 성경은 누구나 읽은 수 있고, 누구나 감동과 영향력을 준다. 힌두교 신자 간디는 산상수훈을 극찬했고, 도올 김용옥은 성경 주석서를 집필하기까지 했다. 21세기에 성경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텍스트로 해석되었다. 각종 이단들은 성경을 맹목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오직 성경, 성경 본문으로 자기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증명하려는 태도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 해석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도에서 발생한다. 성경 본문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은 발생하고, 그리스도인은 성경으로 훈련을 받아 그리스도인인 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양육을 받는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할 때, 성경으로 훈련 받은 사람인지, 그리스도인으로 성경으로 훈련받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성경으로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성경으로 바른 그리스도인이 된다. 성경 본문을 잘 해석하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포기해야 한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지, 비-그리스도인에게 아무리 좋은 성경 해석을 제공해도,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어떤 믿음의 진보가 발생하지 않는다.
성경은 불신자를 신자로 만들기 위한 믿음의 교본이 아니다. 간혹 성경을 읽다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람도 에디오피아 간다게처럼 그리스도인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말해야 하고, 그리스도인의 복음과 도움으로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교회를 사모하고, 복음을 사모한다. 그 교회를 이룸과 복음의 교본이 교리와 성경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사모한다. 주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주의 지체를 사랑하고, 영생을 사모하기 때문에, 그 양식의 원천인 성경을 사랑한다. 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성경을 사랑한다. 성경을 잘 읽혔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사랑한 것이 아니다. 지식의 순환 고리에 들어오기 첫 단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구원을 이루는 기독교 학문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복음전함의 긴박성을 인식해야 한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서 교회에서 교육하면 바른 그리스도인이 양성될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바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역자는 성도들의 회심에 대한 확증, 믿음의 진보를 잘 점검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성품이라 할지라도 회심하지 않은 탁월한 윤리와 예의를 소유한 사람일 수 있다. 교회 사역자는 탁월한 윤리의 사람이나 헌신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사모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성경이란 종교개혁의 표어가 자유주의 그리고 새관점학파에서 해체된 것을 보았다. 리츌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명시적인 문장이 성경에 없다고 주장하며, 불신과 지옥을 연관시키는 것이 비성경적이라고 했다. ‘오직 성경’으로 기독교를 해체한 자유주의가 있기 때문에, ‘오직 성경’이란 구호가 완전한 믿음 체계를 주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뒤에서 ‘오직 성경’도 다양한 범위가 있음을 제시할 것이다. 그 자유로운 오직 성경에 다양한 고대 문서를 추가한 새관점학파는 현재 기독교를 점령한 유력한 사상 체계이다. 그리스도인은 기독교를 정의하고 예수 믿음의 바른 도리, 사도의 가르침과 오직 성경으로 그것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출처 : 한국개혁신학 연구원
글쓴이 : 고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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