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기독교강요

기독교강요(21) 칼빈의 삼위일체 제시(13-2)

형람서원 2015. 6. 8.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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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21) 칼빈의 삼위일체 제시(13-2)
기사입력 2015-06-08 오전 1:26:00 | 최종수정 2015-06-08 01:26

기독교강요1, 13, 2. “하나님은 한 실체에 세 인격이신 삼위일체이시다. 삼위일체는 동방과 서방 교회의 동일한 믿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다른 특별한 표시(speciali nota)로서 우상(偶像)으로부터 세밀하게 자신을 구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선언하시며(revelatio ipsius Dei), 자신을 삼위(三位) 안에서 간단하고 명료하게 묵상하도록 하셨다(in tribus persons cosiderandum proponat).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선언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두뇌(nostro volitat)는 참된 하나님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정확히 하나님의 이름이 헛된 생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어떤 이는 삼중으로 된 하나님(triplicem Deum)을 공상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한 실체(實體)에 삼위로 분열되었다고(putet tribus personis nacerari simplicem Dei essentiam)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간단하고 명료한 정의(brevis et facilis definitio)를 찾아 모든 오류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해야 한다. “una substantia in tribus personis, tres personae in una substantia”는 발트의 문장인데 칼빈이 거부한 문장이었다. 발트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사랑으로 보는데, 칼빈은 독생자, 성자로 본다. 칼빈은 예수를 성부와 동일본체, 발트는 계시자로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위(Persona)라는 낱말을 인간이 발명해낸 것처럼 혹독하게 비난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것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 제시한다.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Filium Dei)을 그 본체의 형상(hypostaseos Patris nominans)이라고 부름으로써, 명백하게 성부의 실재(aliquam Patri subsistentia)에서 성자(a Filio)를 구분하였다. 어떤 해석자들처럼 마치 초 위에 도장을 찍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성부의 실체의 표시(혹은 대표, Patris in se substantiam repraesentaret)라고 구별하며 동일한 본질(essentia accipere)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고 괴상한 생각이다. 하나님의 본체를 단순하여 분할될 수 없으며, 분할이나 분열이 없이 통합적으로 완전하기에 그 형상(eius character, stamp, image)이라고 하는 것은 부절적하며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성부께서는 자신의 고유한 특성에 의하여 구분되시며, 자신을 성자 안에서 완전히 표현하시기(se totum in Filio expressit) 때문에, 적절한 이유로 자신의 위격을(suam hypostasin) 아들 안에서 일치하도록 나타내 보이신다(in eo conspicuam). 그래서 이것이 다음에 제시되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1:3,esse splendorem gloriae, the brightness of his glory, the splendor of his glory)”라는 말과 일치한다. 분명하게 우리는 사도의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 안에 있는 고유한 위격(hypostasis)이 성자 안에서 빛난다는 것으로 간주한다(esse Patre hypostasin quae in Filio refulgeat). 그래서 우리는 또한 아들의 위격이 아버지의 위격과 구분됨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본체는 불가분리한데 아버지와 아들의 위격이 구분된다.

이것은 성령에게도 논리적으로(ratio) 적용된다. 그래서 성령 또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인데, 그가 성부와 구별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quia et Deum esse statim probabimus, et tamen alium a Patre censeri necesse est). 즉 성령은 본질의 구별이 아니다(Hace porro distinctio non est essentiae). 본질을 복수형으로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도의 증언을 믿는다면, 한 하나님 안에 삼위가 있다고 믿어야 한다(tres in Deo esse hypostases, three persons(hypostases) in God, in God three hypostases).

라틴 교부들은 인격(Persona)’으로, 동방 교부들은 위격(hypostasis)’을 사용하였는데 동일한 개념이었다. 이 명백한 뜻을 갖고서 싸우는 것은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이며 강퍅한 것이다. 만약 이 말에 대한 다르게 번역한다면 실재(實在, subsistantia, subsistance)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체(實體, substantiam, substance)을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위격"(Personae, subsistantia)라는 말은 라틴 교부들만이 아니라 희랍의 교부들도 사용하였는데, 아마 이 주장에 동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그들은 한 하나님 안에 세 인격prosopa(tria πρόσωπα in Deo esse)을 가르쳤다. 동방교회(희랍)든지 서방교회(라틴)든지 비록 단어를 다르게 사용했다할지라도 본질에서는 완전히 일치하였다.

고경태 목사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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