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1권
11장의
제목은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경건이고, 우상을
세우는 사람은 누구든지 참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다. 16세기에
서방 기독교는 종교개혁으로 신교와 구교로 나뉜다. 루터와
칼빈은 중세 로마 교회의 행태를 미신적인 행태로 판단하고 개혁하였다. 그런데
로마 교회(교황주의)는
구습을 더욱 체계화한 반종교개혁을 하였다(트렌트
회의, 1545-1563). 그런데
20세기
제 2 바티칸
회의(1962-1965)에서는
신교의 카알 발트 신학을 채용한 카알 라아너의 신학 전개를 확립하였다. 현대
로마 교회(천주교)는
전통적인 예수 믿음과 성육신 이해 방식을 완전히 현대화하였다. 라아너는
신의 자기 통보를 성육신으로 이해하였다(Foundations of Christian Faith, 189). 정통의
성육신 교리를 신화로 취급하였다(FCF, 226).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인정하며 열린 신학을 추구하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이라고 한다. 로마
교회는 중세 미신적인 행동을 더욱 강하게 확립하였고, 결국
모든 미신 종교까지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공식 교리로 채택하였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우상’을
성경대로 철저하게 배격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은(Verum ut Scriptura) 인간의
우둔한 이해력을 감안(勘案)하여(accommodation), 참
하나님과 거짓 신들을 구별하려고 할 때 하나님과 우상을 대조시켰다. 이러한
방법은 철학자들의 재치와 교묘한 가르침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행동이 공허하며 헛된 것에 집착하며 광적인 것을 폭로하게 된다. 교회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 진 신성 개념을 거부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유일한 출처가 ‘하나님’이시다(고전
2:11).
인간의
조급한 갈망으로 가시적인 형상을 만드는 것은 야만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인데도, 전
세계에 만연하다. 성경은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라도 표현하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선언하였다(출
20:4). 페르시아는
일월성신을, 애굽은
동물의 형상을, 헬라인들은
인간 형체로 신상(神像)을
만들었다. 신들의
형상을 만들어 다른 민족보다 지혜로옴을 뽐내지만, 미신적인
우상 그림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미신숭배자들이 자신에게 가까지 오는 것을 절대 거부하셨다. Inst., I, 11, 1.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외치는 귀신들에게 침묵을 명령하셨고 배격하셨다.
모세는
모압에서(신
4:15) 시내산을
기억하면서 소리만 듣고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니 형상을 만들지 못하게 하였다. 만약
형상을 만들면 스스로 부패해져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행동을 하게 된다. 가시적인
형상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반역하며 벗어나려는 사람이다. 이사야서에서는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하도록 수 없이 반복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에 무형(無形)이다.
사람들은
신(神)을
만드는 우상에 천박한 물질을 사용해서 만든다. 자기들의
신을 만들면서 천한 재료를 활용하는 속셈은 무엇인가? 어떤
형태로든지 우상숭배는 옹호하거나 장려할 수 없다. 우상숭배
금지는 인류 기독인에게 주는 보편 명령이고 항속적이다. Inst., I, 11, 2.
하나님은
때때로 자신의 임재를 보여주셨다. 임재(臨齋)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구름과
연기’에
나타나 이해할 수 없는 본성에 대해서 확실한 표적을 주셨다. 가장
친밀하였던 모세도 얼굴이 아닌 지나가는 옷자락만 보았다. 이것은
오실 구주 예수에 대한 서곡이었는데(in Christo revelationis), 유대인들은
거기에 매여 성육신(하나님의
신격의 성육신)을
철저하게 거부하였다(deitatis symbolum erigerent sub humana figura). 속죄소에
하나님께서 임재를 백성에게 약속하셔서 묵상(黙想)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속죄소는 그룹의 날개가 덮고 다시 휘장으로 덮어 가장 깊은 곳에 숨겼다. 하나님께서
감추신 형상을 드러내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우상으로
하나님의 신비를 나타내는 것은 전혀 적합하지 않다. 하나님을
육체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교
저술가들은 교황주의자들보다 더 탁월하게 이해하였다. 이교도인
유베날(Juvernal, 58-140)은
형상이 사악하다고 정죄하였다. 오히려
이교도가 교황주의자들보다 더 진실하다. 우리는
교황주의자들의 우상숭배를 보면서 우리 본성에도 우상숭배 성향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죽음의 잠이 든 유대인들과 교황주의자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Inst., I,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