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8:1-38. 창조주 여호와께서 창조의 일부 지식을 욥에게 질문하심
엘리후의 말이 끝나자 욥의 변론이 없이 여호와의 말씀이 있다. 욥은 엘리후의 말에 대해서 어떻게 변론했을까? 엘리후에 말에 기가막혀 말을 하지 못했을까? 여호와의 등장은 모든 대화의 종결을 의미한다.
1. (1-3)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심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서 등장하셔서 욥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대장부처럼 굳세라고 당부하고 질문을 시작하신다.
[대장부, niv like a man, kjv.nasb lion like a mam; 왕상 2:2 so be strong] 여호와의 현현의 종류는 시내산에서 우뢰, 번개, 빽빽한 구름, 연기, 불 가운데서(출 19:16-18),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이사야를 부르실 때,.. 엘리야에게 임하신 여호와는 엘리야의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새로운 사역으로 인도하셨다. 욥에게 임하신 여호와는 무지한 질문 공세에 정신이 없는 상태에 대장부처럼 굳세게하여 진리의 말씀으로 강하게 하신다. 시내산에 강림하신 여호와의 모습에 백성들은 모세의 뒤로 서서 여호와를 대면하지 못했다. 여호와의 임재는 엘리야처럼 갈멜산의 대전투 뒤에, 욥처럼 4명의 무지한 말로 고문을 당한 뒤에 위로와 새힘으로 오신다. 지금은 구속의 완성으로 임마누엘이 성취되어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2. (4-18) 여호와께서 창조(땅과 바다)에 대해서 말씀하심
여호와께서 땅의 기초를 놓았다. 땅은 여호와의 도량법(deimensions, measuring(niv), foundation, cornerstone(kjv), base, cornerstone(nasb), 도량과 준승(기울기와 먹줄), 주추와 모퉁잇돌, 토대와 모퉁잇돌(개역개정))으로 세워졌다. 땅과 하늘의 질서에 한계를 정했다. 필자는 바다와 땅의 한계를 정하심의 신비를 해변을 여행할 때 본다. 바닷물에 가까이 있는 나무들도 짠물이 아닌 민물을 먹고 자랄 것이다. 조각섬에도 나무들과 풀이 자란다. 바다의 침범을 막으시고 땅을 이루시고, 어둠을 물리치고 아침을 일으킨다. 이러한 창조의 질서에 대해서 욥뿐만 아니라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3. (18-39) 여호와께서 하늘과 별들에 대해서 말씀하심
흑암과 광명이 나뉘는 선을 여호와께서 결정하신다. 우주에서 지구의 낮과 밤의 선을 볼 수 있지만 지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선을 볼 수 없다. 매시간마다 그선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우박창고, 동풍을, 홍수의 물을, 후레와 번개 그리고 비, 이슬, 서리, 얼음(우박, 눈)이 있다. 물이 돌같이 굳어지는 신비는 정말로 묘하다. 물은 액체, 기체, 고체로 일상에서 변하는 물질이다. 비가 오지 않는 중동에서 이슬로 수분이 공급되는 체계는 신비롭다. 이슬이 서리가 되는, 서리의 결정체도 신비롭다. 물은 0C에서 어는데 비중점은 4C이다(30절). 그래서 깊은 바다의 물의 표면이 얼게 된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Pleiades(묘성, 성단), 오리온(삼성의 띠)을 묶으며, 별자리(곰자리)를 움직일 수 있는지, 별의 하늘의 궤도를 아는지에 대해서 묻는다. (천제의 두길 황도와 천구 그리고 백도)..
5. (34-39) 여호와께서 자연에서 신비를 제시한다.
구름에서 비의 양을 측량하는 것,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구름의 숫자, 흙덩이 이룸 등을 알 수 없다. 사자를 위해서 사냥하는 것,
욥기 39:1-30 창조주의 신비와 창조의 신비
1. 창조의 신비: 산염소와 암사자의 산달, 새끼의 성장, 들나귀의 성장, 들소의 목적, 날지 못하는 타조 그리고 그 큰알이 보존되는 하나님의 지혜, 말의 힘-훈련되면 칼과 불 속으로도 들어감, 매와 독수리의 방향과 뾰쪽한 바위 끝에 거주함.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다(30절)
-> 비교 누가복음 17장, 마태 24: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고, 인자의 날, 재림의 때와 비교된 말씀.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둘러선 로마 병사들을 독수리로 예루살렘 거민을 시체로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자기를 먹으려고 둘러선 독수리를 보고 죽을 장소인지를 구분해야 하다. 주의 말씀의 믿고 기다리던 많은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은 70년 예루살렘 포위 시작에 급히 피난하여 생명을 보존했다.
욥기 40:1-24. 욥의 대답과 두번째 하나님의 질문(베헤못)
1. (1-7)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욥의 대답.
여호와는 욥에게 "트집 잡는 자" 그리고 "하나님을 탓하는 자"라고 하신다(2절). 하나님께 거친 신원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친구들의 심한 비방과 괴로운 처지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해야하나? 여호와께서 욥을 지적하시지만, 신실하게 응답하심으로 욥을 회복시킨다. 인간은 자기 한계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죄인이다. 그 한계에서 생각하고 힘써 부르짖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견책과 선한 인도를 하실 것이다. 믿음이 없는 자는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힘써 구하면 된다(약 1:5).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서 욥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베드로와 제자들은 횡설수설을 하면서 주님께 그곳에서 살자고 제안했다. 욥은 그렇게 원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항상 두려움과 엄위로 나타났다. 그 임재에 평안을 주는 것은 중보자 예수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되었다.>
2. (6-24)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신 여호와
두번째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신다. 첫번째는 창조의 신비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두번째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베헤못(Behemoth)을 기르신다(15-24). 육상에는 초식동물 베헤못을 해상에는(41장) 리워야단(Leviathan, 레비야탄, 리바이어던)이 있다. 초식동물인데 육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동물이다. 번역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공룡"을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개역에서는 "하마"로 번역했고, 개역개정에서 원어로 "베헤못"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behemoth.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베헤못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창조주께 힐문을 할 수 있겠는가?
욥기 41:1-34. 리워야단
고대인들은 지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4절기 천지의 구분은 인공위성이 없던 때에 이미 규정되었고, 인공위성으로는 그것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인공위성도 없이 천지의 운행체계를 알 수 있었던 고대인들의 지혜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혼천의(渾天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대인의 지혜는 현대인들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탁월한 수준이다. 현대인들은 기계를 의존해서 판단하지만, 고대인들은 순수한 두뇌와 자연현상을 보고서도 지금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했다.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신화적인 동물로 평가한다면 욥기도 신화적인 이야기로 전락할 수 있다.
베헤못과 리워야단은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없다. 그런데 베헤못과 리워야단이 인간을 공격하지도 않는다. 베헤못과 리워야단은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창조에서 볼 수 있는 계시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운영하시고, 인간들을 엄습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신다. 인간은 그러한 무시무시한 위협을 보면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 죽음의 위협이 인간을 엄습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막으시고 생명을 유지시키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인간은 모든 교만을 꺽고 겸손히 하나님과 사람을 섬겨야 한다. 욥은 세 친구들의 공격에 대해서 억울함에 세 친구들을 미워하며 하나님께 신원한 것이다. 겸손은 모든 것을 용납하며 견디며 믿고 지지하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허물많은 인간을 보호하시며 기다리는 모습을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통해서 밝히 보여주시는 것이다.
최근 한 뉴스에서는 독일에서 젖소들이 농부를 공격하는 모습에 대해서 보도했다. 순진한 젖소들의 난폭한 행동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욥기 42:1-17. 욥의 둘째 대답과 회복
1. (1-8) 욥은 하나님께 오히려 회개로 대답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자 욥은 스스로 회개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도대체 깨달을 수도 없다. 그러나 자신의 신원에 대해서 응답하시는 여호와, 그 말씀을 듣자 눈으로 주를 뵈옵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경험에서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하였지만 스스로 회개하며 모든 소원(상소)을 철회해버린다. 하나님을 향한 불만은 곧 하나님을 뵙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한 불만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세월호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신 않은 독생자의 죽음에도 그렇게 충격을 하거든, 하물며 자신이 죽음으로 내모는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알리요. 오직 십자가만을 붙들 뿐이다.
2. (7-9) 세친구에 대한 판결
여호와께서 세 친구에 대해서 판결하신다. 그들의 회개는 욥을 통해서 드리는 번제로 화목이 이루어진다. 곧 백성의 화목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화목이 이루어진다.
특징적인 것은 엘리후에 대한 언급이 없다.
3. (10-17) 욥의 회복
욥은 세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풀어주셔 이전보다 갑절로 주셨다. 욥은 10자녀를 다시 회복하고 140년을 살았다.
욥의 회복의 시작은 용서에 있다. 마음에 얽매이는 모든 것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10자녀를 회복해주셨지만 잃음의 상처는 여전할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 아픔과 기쁨이 함께 있으며, 그러한 상태에서 확신을 갖고서 여호와를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회복은 상처의 흔척을 보면서도 슬픔과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고경태 목사, 한국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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