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욥기 20-23장...

형람서원 2014. 8. 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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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20:1-29. 소발의 신학. 하나님은 악인의 죄를 감추지 않고 가시적으로 심판한다.

 

1. (1-3) 조급한 소발. 욥이 자신들의 생각에 반격을 하자 조급함을 숨기지도 못하는 소발.

 

2. (4-29) 소발은 욥이 망한 것이 악인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행동으로 주장했다. 단세포같은 생각으로 늘어놓은 장황한 말로 피곤을 더하게 한다.

 

 

 

 

욥기 21:1-34. 악인은 형통 그런데 의인의 고난의 난제 - 그러나 죽음 그리고 그뒤(히 9:27).

 

1. (1-6) 욥은 친구들의 마음에 위로를 구하며 자신의 말을 용납하도록 제안했다. "너희의 위로" 욥은 친구들이 바른 지식을 갖는 것이 참된 위로라고 제안하지만, 친구들은 욥의 어떤 가르침도 수용할 의사가 없다. 인과율(심는데로 거둔다. 까닭없는 고난이 있겠느냐?)과 보응신학으로 현세를 설명할 수 없다.

 

2. (7-26) 악인의 형통함과 의인의 고난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 진노하신다(20절). 그런데 죽은 뒤에 오는 고통이라면 어떻게하겠느냐?(21절). 악인이나 의인이나 무덤에서 썩는 것은 같다(26절). -> 죽은 뒤에 받은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악인이다. 무덤에서 주의 음성을 듣는 자는 의인이다.

 

3. (27-34) 남은 악인. 형통한 악인에게로 몰려드는 악인들(눅 17:20-37). 시체가 있는 곳으로 모여드는 독수리가 모여든다. 독수리는 인육을 먹기 위해서 모이는데, 형통한 악인에게 몰려든 인간들은 돈을 먹기 위해서 모인다. 그러한 행동을 누가 보응겠느냐? 악인은 형통하며, 그를 지지하는 하수인들이 많다. 그런데 너희는 나(욥)를 악인어서 하나님게 징계받으니 회개하라고 하는 것은 헛된 가르침이고 헛된 위로다.

 

 

 

욥 22:1-30. 엘리바스(데만)의 신학.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니 너의 죄악을 심판하여 너의 죄를 정결하게 하려는 것이다.

 

1. (6-11) 엘리바스가 제시하는 욥의 죄의 목록은 현상에서 추론한 상상의 산물이다. 이러한 추측은 자기경험과 행동에 근거한다(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대화 -> 이성계: 대사님은 돼지같네요... 무학대사: 주군은 성인군자같네요... 이성계: 어찌.. 농담을 하자는데.. 무학대사: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요..). 거짓 선지자는 교회에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자기 이익으로 삼지만, 바보여서 자기에게 속았다고 생각한다. 거짓 선지자에게 속은 바보도 있겠지만, 신실하고 참으며 주를 섬기는 주의 백성들이 있다.

 

2. (12-20) 하나님은 악인에게 벌로, 의인에게는 복으로 주신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은밀한 경륜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은밀한 경륜은 모든 일에 대해서 주의 때를 기다리도록 한다.

 

3. (21-30) 엘리바스는 자기사고구조에서 욥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고 겸손하라고 촉구한다. 엘리바스의 충고가 맞는 말이지만, 자기한계에 갇힌 답답한 충고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담는 그릇이 좋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그릇들 중에서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겠다고 하셨다. 좋은 말보다는 깨끗한 마음이 더 상대에게 위로와 격려가 된다.

 

 

 

욥 23:1-17. 하나님께 더 간절하게 신원하는 욥.

 

1. (1-7) 욥은 친구들의 변론에 대해서 오직 하나님께 호소한다.

-> 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은 대화의 종결을 의미한다.

-> 그러나 하나님께 신원하는 것은 욥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욥의 답답한 심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욥보다 더 여유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하소연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조물의 하소연을 듣는 창조주는 아니시다.

 

2. (8-17) 욥은 자기의 환난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해 답답하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인식하며 따르려하지만 도저히 감당히 되지 않는다. 그래서 과격하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능자에 대한 두려움(15절)을 감추지 않는다.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인생에서 몇번씩 겪는 일상이다. 욥의 고난과는 비교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의 백성은 잠잠히 주의 뜻을 이룸을 인내로 기다려보자. 경솔하게 입술의 저주나 패역의 행동을 금해야 한다. 성령의 백성의 인내와 절제에는 감사와 감동이 넘친다. 육체의 백성에게 인내와 절제는 억제와 분노가 쌓여, 어느 한계에서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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