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장로교의 이해(2)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John Knox, 1514년?~1572년)에 의해서 형성된 것으로 이해한다. 낙스는 제네바에서 칼빈의 배려로 목회를 하며 바른 교회에 대해서 익혔다. 그리고 스코틀랜드로 귀환하여 칼빈과 제네바를 모범으로 스코틀랜드 교회를 체계화시켰다. 제1치리서(The First Book of Discipline·1560), 이것이 장로교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장로교는 칼빈의 신학과 스코틀랜드의 독특성이 가미된 기독교 형태이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본래 두 개의 국가였다. 잉글랜드는 1534년 헨리 8세의 수장령으로 국교회(성공회)로 정치적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챨스1세가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면서 스코틀랜드에도 국민계약(1638년)을 강요하며 감독제도와 공동기도서 사용을 강요했다. 이에 스코틀랜드는 무력으로 항쟁했고, 1640년 국왕은 전쟁을 위한 의회를 소집했다. 이때 크롬웰은 장기의회로 의회기간을 연장하면서 최고통치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스코틀랜드와 동맹하여 의회파로 왕당파와 전쟁이 진행하여 1646년 승리했다. 1649년 크롬웰은 챨스 1세를 처형하며 공화정을 수립했고, 1653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연방국을 이루었다. 스코틀랜드에는 장로제도의 자유를 획득했다(엄숙동맹, The Solemn League and Covenant, 1644년). 그런데 잉글랜드에서 1660년 챨스2세로 왕정을 복고했다. 챨스2세와 후임 제임스2세의 독재 정치에(로마 교회 복귀정책) 항거해서, 네델란드의 윌리엄3세가 군대를 이끌고 와 제임스2세를 몰아내고 제임스3세 왕이 된 것이 1688년의 명예혁명이다. 1689년 권리장전을 제정한 영국은 의회의 기능이 강화된 입헌군주국가의 근대적 기틀이 마련되었다.
낙스의 뒤를 이은 스코틀랜드의 지도자는 앤드류 멜빌(Andrew Melvill, 1545-1622) 이었다. 멜빌은 천재적인 지성을 갖고 있었고 제네바에서 베자와 함께 공부했다. 멜빌에게서 “제 2 치리서(The Second Book of Discipline, 1578년)”가 작성되어 스코틀랜드의 교회정치원리가 체계화되었다. 여기서부터 세속정치와 교회정치의 명확한 구분이 되었고(두 왕국 이론), 로마 교회와 감독 교회와 명백한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교회질서에서 4직분에서 3직분(목사, 장로, 집사)으로 체계화시켰고, 당회, 노회, 대회, 총회의 4개의 치리회로 구성했다. 멜빌은 칼빈과 베자와 함께 주교 제도에 대해서 개혁하려는 의지가 분명했다. 멜빌의 2치리서가 승인되어 1592년 스코틀랜드 국교회가 되었고,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3-1648)를 이루는데 스코틀랜드 교회가 많은 역할을 했고, 스코틀랜드의 신앙고백서(1647년)가 되었다. 잉글랜드 중심에서 채택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장로교의 표준문서이다. 이러한 기틀엔 멜빌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 현재 장로교의 형태는 멜빌이 제시한 2치리서이고, 완성된 형태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 소요리문답이다.
고경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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