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스크랩] [목회칼럼] 장로교의 이해(3)

형람서원 2014. 5. 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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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장로교의 이해(3)

 

장로교 신학은 영국의 신학은 아니다. 17세기 영국은 기독교 박람회처럼 많은 사상이 등장했다. 많은 기독교 지류들이(국교회(성공회), 회중교회, 침례교, 감리교, 구세군 등) 영국에서 기원했다. 그래서 영국의 신학자들에 대해서 장로교와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른 판단이 되기 어렵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앤드류 멜빌(Andrew Melville, 1542-1622), 사무엘 러더퍼드(Samuel Rutherford, 1600-1661)로 연결된다. 러더포드는 1643년부터 1647년까지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스코틀랜드 대표로 참석하여 활동했다. 그런데 1661년 그의 책 [법과 군주]라는 곳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내용으로 인해 교수형을 당했다.

스코틀랜드 중심 대학은 세인트 앤드류 대학(St. Andrews, 1411), 글래스고 대학(Glasgow, 1451), 에버딘 대학(Aberdeen, 1494)이 설립되어, 잉글랜드의 옥스퍼드(1096?), 캠브리지(1209)와 쌍벽을 이루었다.

 

청교도의 황태자 존 오웬(John Owen, 1616-1683)은 회중교회 옹호자였고,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존 스토트(John Stott, 1921-2011)는 국교회 사제였고, 아더 핑크 (Arthur W. Pink), 챨스 스펄전(C. H. Spurgeon, 1834-1892)은 침례교도였다. 칼빈적인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나 알미니안 경향의 웨슬리 (John Wesley, 1703-1791)는 국교회의 사제였고, 웨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장로교회에서 회중교회 사역을 옮겨 이룬 청교도 신학자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Abbey, 웨스트민스터 로마교회당Cathedral(1903)과, 웨스트민스터 Chapel(1840)과 구분된다.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는 캠멜 몰간에서 로이드 존즈, RT 켄달로 이어지는 유명한 교회이지만, 런던에 있는 복음주의 교회이다. 로이드 존즈는 자신의 신학을 “칼빈주의-메소디즘”라고 했다. 이것을 한국에서는 “열정 칼빈주의”로 사용한 신학자도 있다. 로이드 존즈는 존 낙스를 “청교도의 창시자”로 제시하며, 장로교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았다. 청교도가 장로교는 아니며, 장로교도는 회중교회적 성격에 대해서 긍정적이지도 않았다. 청교도 운동이 영국과 미국을 부흥의 물결로 이끌었을 수는 있지만 장로교를 세우지는 않았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미국의 남, 북장로교와 캐나다, 호주 장로교로, 그곳에서 한국을 선교했다. 한국 장로교에 다양한 색깔을 가지게 된 이유이고, 부흥운동의 열정의 선교에서 복음이 한국까지 오게 된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나 정통장로교회의 형태나 가르침이 한국에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 장로교회는 선교사들의 신학을 넘어서지 못하고 유아기적 상태에 있으며, 유럽과 미국의 신학지류에 따라서 한국교회도 신학이 심각한 분화를 이루고 있다. 중생의 신비를 이룸이 장로교 신학이다.

 

고경태 목사

출처 : 한국개혁신학 연구원
글쓴이 : 고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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