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6 장 2009년 9월 27일(주일 오전)
애굽으로 내려가는 이스라엘
요셉과 바로의 초청으로 야곱의 아들들과 가족은 애굽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먼저 성경 해석의 난점을 있습니다. 창 46:26-27절에서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자녀는 66명이고, 애굽에 내려간 총 야곱의 자녀는 요셉을 포함해서 총 70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7:14에서 애굽으로 내려간 숫자를 75명이라고 한 것입니다.
먼저 유다의 먼저 죽은 엘과 오난이 숫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46:12). 엘과 오난이 포함된 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애굽에 내려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아내들과 12명의 자부의 숫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아내인 아스낫은 말씀하고 있습니다(46:20). 총 70명의 숫자에 자부의 숫자 12와 야곱의 아내 3(레아, 실바, 빌하)가 내려갔다면 85명의 숫자가 됩니다. 그래서 애굽에 내려간 숫자를 세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75명이라고 제시한 것은 요셉의 아들(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아들들의 숫자를 포함한 숫자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일치하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해석이란 이러한 불합리는 일치시키는 작업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부분도 상당히 있습니다.
이 때에 중요한 것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찰자의 자세에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배우는 자의 위치에서 겸손하게 성경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하게 선포하는 것은 숫자의 정확도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인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인도하심의 섭리가 매우 어렵습니다. 한 가족 전체가 이동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1. 먼저 희생(예배)을 드리는 이스라엘
야곱의 인생은 파란만장합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볼 때에는 제사를 드림은 항상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일 요셉을 보러가는 길에서는 먼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립니다.
야곱이 희생을 드리는 대상은 ‘이삭의 하나님’입니다(1절).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대상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스라엘은 이삭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사모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는 예배의 대상을 정확히 고백해야 합니다. 예배에서 성도의 교제는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같다는 일치감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흥분된 일입니다. 우리가 동일하신 하나님, 우리를 죄의 사망의 굴레에서 구원하신 주께 예배를 드리는 하나된 주님의 교회가 되어지길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첫째가 하나님께 희생제사입니다. 야곱은 중간에 희생제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삭은 오직 하나님의 신앙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고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반면 야곱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자기의 꾀와 수단을 동원하였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셔서 이스라엘까지 훈련시키셨습니다. 변화된 야곱인 이스라엘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들을 만나는 흥분도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2. 야곱: 고센 땅에 도착하여 요셉을 부름
야곱은 바로 요셉이 사는 애굽의 수도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야곱은 고센에 이르러 요셉을 불러서 고센에서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에 야곱은 유다를 통해서 요셉을 불렀다는 것을 먼저 묵상해보아야 합니다.
고센이라는 땅은 모두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땅입니다.
야곱이 바라본 고센: 야곱이 고센을 볼 때에 고센은 애굽의 국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브엘세바로 돌아갈 수 있는 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으로 가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애굽이 아무리 번성한 도시라고할지라도 언약의 땅으로 돌아가려는 의지에서 야곱은 고센에서 더 이상 애굽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화적으로) 우리는 세상에서 살 수 밖에 없지만 우리는 세상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경계선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나의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합니다. 야곱은 번성한 애굽의 도시보다도 광양의 언약의 땅을 사모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있는 공통된 특징입니다.
요셉이 바라본 고센: 요셉도 아버지와 형제들이 고센 땅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애굽의 사람들이 고센 땅을 싫어하는데, 형제들에게는 적합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이 바라본 고센: 애굽 사람들은 고센 땅을 쓸모없는 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농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목초지가 없는 유다 광야에서 고센은 너무나 비옥한 땅일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비옥한 나일의 삼각지를 갖고 있는 애굽에게 고센은 형편없는 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고센을 야곱에게 주시기 위한 모든 조건이 합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의 때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에는 모든 것이 일치가 되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 결 론 ]
요셉을 인도했던 하나님께서 야곱을 애굽으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경륜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배하는 삶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좋은 아들에게로 뛰어가기 전 희생제사를 드리고, 애굽의 수도로 내려가 도시 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센에 머물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삶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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