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성경

고린도전서 15:20~34 부활장=부활의 첫열매

형람서원 2008. 7. 3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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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31일 목요일

고린도전서 15:20~34

제목: 부활의 첫열매

 

    아담은 죽음을 그리스도를 생명을 가져왔다. 아담이 죽음의 첫 열매가 되었듯이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부활의 열매를 맺은 나무에 연결된 가지인 지체들 또한 부활의 열매를 맺게 된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0-24절 아담과 그리스도: 부활의 첫 열매(the firstfruits)이신 그리스도

                  비교 로마서 5장. 첫 열매(20, 23절, ἀπαρχὴ)는 단수형으로 쓰였다. 로마서 6장에서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제시하듯이 29-34절에서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실제를 말씀합니다.

                 1) 아담적 실존; 죽음에 이르는 실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실존. 으로 아담을 따른다면 죽음의 귀결에 이르게 된다. 혹자는 아담적 실존이 결핍된 상황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아담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였다. 결핍이 없는 상태였다. 단 그의 실존은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하와의 도전에 패하여 선악을 알게하는 과일을 먹게 된 것이다. 우리들도 항상 범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웃 그리스도인의 범죄를 따라하면서 하와에게 핑게를 하는 아담처럼 행동한다.

                 2)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 아담이 가져온 죽음의 시작에서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시작을 가져오셨다.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은 인류에게 부활의 복음을 주셨다. 누구든지 부활의 복음을 믿으면 부활의 생명을 갖게 된다(22절,so in Christ all will be made alive).

               3) 24절 말씀을 네델란드의 판 룰러(Van Ruler)는 구속의 완성이 될 때에 모든 통치권을 아버지께 이양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구속주께 돌려지는 찬양은 영원함으로 바른 이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본문은 그렇게 이해될 수 있음으로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구속주의 중보는 영원한 중보로서 구속이 완성된 후에도 언약이 유지되어 영원히 찬양받으실 주님이시다. 그러나 본 절의 말씀으로 중보의 방식의 전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속 이전의 중보에서 불완전한 통치와 영광에서 구속의 완성 이후에 중보의 방식의 전환되어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와 충만한 영광이 실현된다.

                  ※ A. 하지는 본 구절에서 난해성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의 나라의 영원성을 성경이 가르친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삼중적 나라'의 개념으로 제시하였다. 1. 한 신성한 인격으로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그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에게 속한 나라. 2. 그 자신의 백성을 다르리는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성자로서 그에게 속한 나라, 이 나라도 영원하다. 3.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의 손에 위임되었던 그의 부활이후에 그가 승귀되었던 통치, 그가 신인으로서 행사하시고 모든 정사들과 권세들을 주관하시는 이 나라를 그는 구속 사역이 완성될  때 드리게 될 것이다. 구속 사역의 완성을 향한 그의 사역을 실행하기 위하여 그는 그의 중보적인 속성 속에이 통치를 부여받았다. 그 일이 성취될 때, 즉 그가 모든 그의 원수들을 굴복시켰을 때 그는 우주를 중보자로서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으로만 통치하실 것이다. 반면에 그의 백성에 대한 그의 통치권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5-28절 만물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

                 25-26절 만물을 통치하시지만 완전한 통치가 아닌 현재. 그것은 아직도 원수들이 사망이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조리와 사망이 있는 세상에서 만물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27절. (시 110편, 8편)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두실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의 날을 믿어 죄악과의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를 향해서 전진해야 한다. 그래서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전투를 계속해야 한다. (2) 만물에 포함되지 않는 그리스도.  it is clear that this does not include God himself, who put everything under Christ., it is manifest that he is excepted NIV는 원문의 대명사를 God himself로 번역하였는데 바르지 못한 번역이다. 그(he)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 대명사로 보아야 한다. 즉 예수는 만물에 포함되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28절. 구속이 완성될 때에 아들 자신도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신다. 매우 깊은 신학적 성찰이 필요한 구절이다. 24절과 연결되어 묵상해야 한다. 만물을 굴북시킨 그리스도께서 만유를 드릴 때에는 아들로 드린다. 만유의 왕이시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아들이 되신다. 주께서는 아버지께 기꺼이 아들로서 만유를 드려 구속을 완성시키신다.

                  그 구속의 완성이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거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와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죄가 있기 때문에 구속이 필요하며, 이 구속 사역의 완성으로 드려지 만유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그러므로 완전한 영광과 찬양이 하나님께 돌려지게 되며, 완전한 임재가 만유에 실현되어 하나님의 영광만이 충만하게 된다. 이 땅에서는 독생자의 영광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돌려지지만, 구속의 완성에서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다.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29-34절 한 번이어야 되는 세례

    

                   29-30절. 재세례는 불가하다. 재세례에 대한 칼빈의 협오는 매우 심하였다. 로마교회에서는 견진성사의 재세례를 오순절에서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리하여 재세례를 은사운동에서는 추가적인 은사의 부여를 강조함으로 제세례의 형식이 주장된다. 부가된 은사를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깨는 그들을 위한 세례(why are people baptized for them?)가 된다. KJV에서는 죽은자로 번역했다(why are they then baptized for the dead?). 고린도교회는 죽은자를 위해서 다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주와 연합되는 세례는 오직 한 번이어야 한다. 재세례를 행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혹자들은 진정한 신앙고백이 없었다고 주장하여 재세례를 요구하기도하지만 재세례는 불가하다. 혹자들은 군에서 세례의 헛되게 생각하여 본 교회에서 재세례를 요구하기도하는데 세례는 오직 한 번 뿐이어야 한다.

                  31-32절.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 사도 바울은 부활의 확증으로 자신의 날마다 죽음을 고백한다. 날마다 죽음은 실제적인 죽음을 각오한 생활을 의미한다. 당시의 여행 또한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둘째 바울은 날마다 죽음의 고백이 빌립보서에서 잘 드러난다. 대적자들의 시기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의 확장을 인하여 기뻐한다.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께서 존귀께 된다면..... 셋째, 바울은 핍박하는 위정자에까지 순복하여 선을 이루라고 가르친다. 날마다 죽음은 위정자에게 순응하여 그들이 원하는 선을 행해야 한다. 그것은 저항이 아닌 자기를 쳐 복종시킴으로 가능하다. 성도는 결국 승리한다.

                                  32절. 바울은 이러한 방법을 사람의 방법이 아닌 영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자들에게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본문은 부활신앙에 착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33-34절. 악한 동료에 대한 경계 = 악한 동무를 자칭 하나님을 아는 자나 하나님을 모르는 자이다. 교회 안에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있다. 부활을 말하지만 부활이 없는 자들이 있다. 그러한 자들이 악한 동무이다. 이러한 악한 동무를 따르지 않고(33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34절). '죄를 짓지 않는 것'은 부활을 실제적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 신앙으로 현세의 어려움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헛된 가르침을 교회에 유입하는 무리들은 발본색원되어야 하지만 항상 쓴뿌리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한 동무를 피하며, 그들의 가르침을 분별하여 선한 행실을 계속해야 한다. 선한 행실은 율법적인 행동이 아니라 복음에 착념된 행동이다.

 

[기도] 부활하신 주님, 우리를 다스리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부조리와 나의 무능력으로 이 세대의 풍파에 서 있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 그러나 주의 나라가 임하기까지 주의 교회를 견실히 하셔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오며, 주의 임재가 충만하게 하여 주의 백성이 위로와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하시옵소서. 이 세대의 교묘한 교설을 파하고 주의 생명의 교리가 전파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종을 주의 교회의 사역자로 세우셨사오니 주의 교회를 이루어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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