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28일
고린도전서 14:12-25
제목: 방언의 사용 방법
방언의 사용 방법에 대해서 고전 14:12-25까지 자세하게 제시한다. 먼저 방언하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매를 맺히지 못하므로(14절) 실제적인 효과에 대해서 부정한다. 그러므로 방언을 하는 자나 방언을 듣는 자가 모두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언은 믿지 않는 이방인에게 복음이 선포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표적이다. 방언의 유익은 신비한 영의 현상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은 실제적인 효과를 낼 수 없다. 마치 어린아이가 옹알리를 하는 것과 같다.
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2-17절 은사는 덕을 세우는 것인데, 방언은 덕을 세우지 못함
교회는 건덕(建德, build up, excel)을 해야 한다. 교회는 덕을 세우기 위해서 신령한 은사들이 많이 있도록 구해야(try, seek)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 있는 방언도 없음을 목표로하는 것이 아니라 통역을 찾아야 한다(13절). 즉 부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을 구해야 한다. 세움을 구해야 하며 파괴를 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방언이 많은 문제를 갖고 있지만 방언을 극복할 통역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14-15절, 나의 영과 나의 마음(my spirit prays, but my mind is unfruitful, my spirit prayeth, but my understanding is unfruitful) 나의 영과 나의 마음이 분리되어 있다. 영이 기도하지만 마음에는 유익이 없는 분리현상에서 바울은 열매맺지 못하는 방언 기도를 주지시킨다. 영과 마음이 일치되어야 한다. 영과 마음이 일치되도록 통역을 세워야 한다(13절). 마음이란 것을 KJV는 understanding으로 번역했다. 즉 '오성'으로 번역한 것이다. 영과 마음이 일치되지 않는 방언을 공적 장소, 기도를 듣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열매맺지 못하는 성령의 은사는 무익하다.
16-17절, 방언으로 아무리 감사를 하였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감사를 모름으로 덕을 세우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감사한지 축복한지를 알 수 없다. 알지못하는 말이 감사인지 저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에는 통역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에 통역이 매우 불확실하다. 그것은 통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적 혼미 시대에 방언의 은사를 추구하는 것은 영적인 혼미를 더욱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성경대로 통역의 은사를 구하는데, 정확한 통역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18-25절 방언이 아닌 예언으로 전하라
18-19절, 사도 바울은 자신도 방언이 있음을 말한다. 사도 바울의 방언은 통역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언으로 말하지 않고 예언으로 말하였다(19절). 그것은 남을 가르치기 위함(to instruct others than)이었다. 방언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은 교회의 건덕, 즉 주의 복음이 효과적으로 선포되기 위함이었다.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였고, 겸손한 바울은 자신이 깨달은 바의 다섯마디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이 다섯마디말만을 깨달았는가?)
20절. 지혜에는 어른이 되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Brothers, stop thinking like children. In regard to evil be infants, but in you thinking be adults
Brethren, be not children in understanding : howbeit in malice be ye children, but in understanding be men.
어른이 되어야 한다. 힘써 대장부가 되라. 약간의 드러남(방언)을 위해서 영원한 상급과 교회의 건덕을 위한 은사를 소멸해서는 되지 않는다. 소탐대실(小貪大失)
21-25절 방언이 아닌 예언으로.... 사도바울은 자신이 방언이 아닌 예언으로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은혜 생활을 함으로 모든 성도들 또한 벙언이 아닌 예언으로 설교하기를 원하였다.
방언은 말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는다고 하셨다(21절, 사28:11,12). 방언으로 기도하면 잘 된다는 것은 속설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방언으로 말한다할지라도 듣지 않으실 수 있다.
방언은 믿지 않는 자를 위한 표적이다(22절).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 있는 교회 안에서 방언을 하는 것은 은사활용을 잘못 사용한 것이다. 믿는 자를 위해서는 예언이 필요하다. 작금에 교회 안에서 풍류하는 방언은 성경적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다. 지금도 방언을 사용한다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해야 한다.
▷ 방언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23절)에는 배우지 못한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성경대로 현재에도 발생하고 있다. 부분별한 방언의 사용은 교회와 사회를 분리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 예언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 말함(24-25절)으로 성령의 사역으로 책망으로 받거나 판단을 받아 하나님께 복음에 굴복하게 된다(24절). 그리고 말씀의 권능에 복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말씀 가운데 거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교회는 신앙고백이 이루어질 때 형성되어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주인이되시며 영광과 찬양을 받으신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어진 은사를 따라 겸손하게 사용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며 형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은사의 한계를 잘 알아 규모와 질서를 갖도록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케하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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