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26일 토요일
고린도전서 14:1~12
제목: 덕을 세우라
은사를 주신 목적은 교회와 성도의 유익이다. 즉 은사를 활용하여서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은사 활용을 중지해야 한다.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1-4절 방언과 예언 = 방언은 자기의 덕,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움
성경에서 방언은 비밀로 말함, 자기의 덕을 세우는 항목이라고 제시한다. 자기의 덕이라는 것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언과 예언 중에서 사람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덕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3절).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덕을 세울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방언을 자기의 덕을 세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예언은 미래를 일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다. 예언은 설교의 한 부분이다. 당시의 설교는 지금처럼 정해진 본문으로 하는 강해가 아닌 계시에 의한 설교도 가능했다. 그러므로 예언은 곧 설교다. 이 예언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다. 현재 점치는 것과 예언을 혼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예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5-11절 방언 사용과 주의
모두가 예언을 해야하지만 불가피하게 방언을 할 때에는 통역을 세우기를 권면한다(5절). 분별없는 소리는 아무런 교육이나 유익을 주지 못한다. 현재 방언은 방언하는 사람도 알지 못하는 방언이다. 그것은 자기에게도 어떤 유익이 없을 것이다. 알아듣지 못하는데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7, 8, 11절).
음의 분별이 없는 소리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나팔 소리가 분명하지 못하면 전투에 임할 수 없다. 우리의 혀로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하면 아무런 효과나 유익이 없다.
12 그러면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2절. 영적인 공동체를 세우라.
교회는 영적 공동체이다. 12장에서 영적인 은사를 분별하라고 제시한다. 14장에서 영적인 것을 사모하라고 말씀한다. 교회는 신령한 공동체임으로 영을 사모해야 한다. 그런데 방언이 영적인 사모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문맥상 볼 수 있다. 신령한 것은 예언으로 선포되는 말씀이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을 사모하라. 신비한 현상이 영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합리적인 것,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영이다. 예수의 비유가 영이다. 예수의 비유는 들을 수 귀를 가진 자가 들을 수 있다. 예수의 비유는 들어도 알지 못한다. 교회의 영은 이해될 수 있는 비유와 같은 말씀이지만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이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에는 핑계가 있을 수 없다.
교회는 덕을 세우는 공동체이다. 교회에 수여된 은사를 통해서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 자기의 덕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회는 주의 몸된 공동체로서 주의 영광이 나타나야 한다. 자기의 신비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에스라는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여호와께 예배할 때에는 슬퍼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슬퍼할 때와 웃을 때를 구별해야 한다. 신비적 현상이 나타날 때와 나타나지 않을 때가 구별되어야 한다. 분별없이 아무 곳에서나 나타나는 것은 교회의 덕을 해칠 수 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통해서 교회가 덕스럽게 하시옵소서. 교회에 있는 부패가 개혁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결하고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주시옵소서. 그래서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나팔이 되게 하시옵소서. 만백성이 구원을 얻을만한 복음의 능력을 주셔서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우리는 영적인 것을 사모하되 교회의 덕과 유익을 생각할줄 알아야 한다. 나혼자만의 신앙을 생각하거나 당장의 신기함이 아닌 진정 공동체의 유익과 덕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은사는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은사를 통해 공동체를 세워나가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내가 아무리 좋은 은사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 은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
'형람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전서 14:26~40 규모와 질서대로.. (0) | 2008.07.29 |
---|---|
고린도전서 14:12-25 방언의 사용 방법 (0) | 2008.07.29 |
고린도전서 11:2~16 제목: 덕을 세우기 위한 질서 (0) | 2008.07.22 |
고린도전서 10:14~22 (0) | 2008.07.19 |
고린도전서 10:1~13 (0) | 2008.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