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신약성경 권위의 표현 - 주 예수 그리스도

형람서원 2007. 10. 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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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권위의 표현 - 주 예수 그리스도

신약성경에 대하여 규범성을 결정하는 것은 학자들의 판단도 교회의 결정도 사도들의 권위도 아니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간단히 말해서, 신약성경이 정경인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정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르만 리델보스(Herman Ridderbos)가 신약 정경의 문제는 교회론적이 아닌 기독론적으로 결정된다고 강력하게 단언한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 그리스도는 신약성경의 정경성(canonicity)의 기원이다(principium canonitatis). - 뛰어날 뿐 아니라 독점적이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의 최종적인 말씀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셨다. 성경의 유일한 지위를 조금도 손상함이 없이, 우리는 신약 정경의 경우, 책이 아니라 한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맨 먼저 관련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단언해야 한다. 마틴 켈러(Martin Kahl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신약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때문에 신약성경을 믿는다. 우리는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다.” 이 진술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성경을 부당하게 서로 대립시켰다는 점에서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결정적인 지위를 강조한 것은 비난의 여지가 없다. 같은 전후 관계 속에서 막센(Marxsen)은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비록 내가 소유한 예수는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바로 그분이라는 점을 즉각 첨언하여야 하지만, 기독교 교회의 정경(canon)은 신약성경이 아니라 예수이다.” 이 공식화 역시 지나치게 날카로운 감이 있으나, 한 인격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높은 자리를 내어 드렸다는 점에서 옳다.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정경성(canonicity)의 핵심이며 본질이라는 이 명제를 신약성경 자체로부터 증명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을 하려면,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신념을 담고 있는 자료들을 기초로 해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고 권위적이며 규범적인 하나님의 계시이셨다는 것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이 일은 어렵지 않다. 우리는 먼저 다음의 두 신약 구절들을 살펴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진정한 계시라는 신앙의 고전적인 공식화는 요한복음의 서문에 나타난다(요 1:1-18). 그리스도를 말씀(Logos)으로 묘사하는 것은 그분이 인격과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진정한 계시였다는 사실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말씀(logos)의 기본적인 기능은 전달하고 말하고 계시하는 것이다. 말씀이신 예수 안에서 우리는 유일하고 비교할 바 없는 계시를 소유하는 것이다. 이는 18절이 명백하게 진술하는 바이다. “어느 때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계시는 유일하게 난 아들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실재로부터 기인하는 유일무이한 계시에 연결되는 것이다.

우리는 비슷한 사고의 방향을 히브리서에서 발견한다(히 1:1 이하). 비록 히브리서는 우선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유일한 실재를 강조했지만, 구약성경의 계시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계시 사이의 연속성이 힘주어 진술되어 있다.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에 의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에 의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에 의하여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이 계시적 말씀은 권위있는(강권적인) 말씀이고, 존재와 말과 행동을 통한 말씀이며, 그 권위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부터 끌어내는 것이다. 복음서 안에는 하나님의 권위 있는 계시자로서 그리스도의 위치가 크게 강조되어 있다(마 11:2)(막 1:22)(눅 10:21)(요 1:1이하)(요 4:26)(요 7:29)(요 8:12).

그러나 신약성경이 예수님의 비교할 수 없는 지위와 권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더 잘 사용하는 기독론적 선언은 주(主) 고백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요 20:18)(빌 2:11)(계 19:16). 구약성경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여호와와 같이 그의 권위는 난공불락이다. 주님의 뜻과 말씀은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이 반박할 수 없는 궁극적 권위임을 명백히 언급하는 한 두 개의 실례만 언급하고자 한다. 바울 사도 자신과 고린도 성도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만찬에 관한 전통은 주님이 그 뒤에 서 계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권위를 가지며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해 준 것은 또한 주께 받은 것이니...”(고전 11:23). 바울은 사도의 권위에 대한 그의 입장을 주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이끌어 내면서, 최소한 이것이 모세의 율법만큼 중요성을 지니는 것으로 확신했다(고전 9:14). 그는 데살로니카 교회의 고통당하고 근심하는 성도들을 ‘주의 말씀’으로 위로한다(살전 4:15-17). 이혼의 문제에 관해서는 주님의 명령이 최종적이다(고전 7:10). 한편 바울이 고린도 성도 중 젊은 사람들에게 충고해야 했을 때, 그는 일부 사람들이 자신의 권위를 의심할 뿐 아니라, 이 문제에 관한 “주께 받은 명령” 조차 없었기 때문에 약간 당황하는 가운데 충고하고 있다(고전 7:26). 주님은 높아지시고 영광 받으신 역사적 예수 외에 그 무엇도 아니시므로, 역사적 예수의 단 한 마디 진술이 있었더라면 모든 불확실성을 일소하는데 충분했을 것이다. 바울이 사도행전 20장에서 인용한 주님의 말씀은 그 권고 문맥에서 반박할 수 없는 견고한 증거로 작용한다(35절). 마지막으로 디모데전서 5:18의 예를 보자. 아직도 이 구절의 정확한 해석에 관해 어느 정도 불확실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주석가들은 이 구절이 구약성경의 인용과 더불어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다는 취지의 예수님의 말씀을 포함하는 것에 동의한다(눅 10:7 비교).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 문제없이 구약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갖는다.

이러한 실례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그분의 인격과 사역에서 하나님의 유일하고 권위있고 규범적인 말씀, 달리 표현하면 단 하나의 반복될 수 없는 절대적인 정경으로 존중되었다. 다른 모든 신약의 규범적 형태들은 단지 파생된 권위만을 소유한다. 다른 모든 신약의 증언과 문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직 그분으로부터만 적법성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만일 어떠한 증언이나 문서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단절을 나타낸다면, 그 증언이나 문서는 자격이 박탈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저술과 교부들의 저술에 따라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규범적 계시자로서 중시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그 선포의 내용을 간략히 조사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의 주체뿐만 아니라 객체 역시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에 나타나는 현저한 특징을 여러 방법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공관복음의 저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왔고 또한 올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막 4:14)(마 4:17)(마 12:28)(눅 11:20)(마 6:10)(마 22:2). 요한복음의 ‘내가...이다(I am...)'로 시작하는 표현법에서 예수님은 자신 안에서 하나님께서 종말론적 구원을 세상에 가져 오셨고 또한 가져오고 계시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요 6:48)(요 8:12)(요 10:7)(요 11:25). 이 종말론적 구원이 신약성경의 문서들 속에서 얼마나 서로 다르게 구체화될 수 있느냐는 문제와 상관없이, 그것이 선포하는 바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 결정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활동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편에 서느냐 아니면 그분을 반대하느냐를 결정하는데 따라서 인류와 세상에 대한 구원이냐 아니면 심판이냐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복음에 관련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좋은 소식으로서의 복음인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구원의 직설법만을 다루지 않고 그 직설법으로부터 유래하는 명령법도 포함한다(마 5:13). 이 구절의 선포에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의 생명을 압류해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가 지금껏 말해 온 모든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포하는 자로서 또한 선포되는 자로서 정경이다. 그분은 주체적으로(행위의 주체로서) 규범적이며, 객체적으로(행위가 관련하는 인물로서) 규범적이다. 이 두 요점은 신약성경에 대하여 정경적인 모든 것의 본질을 결정하므로 극히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규범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지위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구원사적 측면에서 고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의 역사에 독특하게 간섭하셨다는 것을 확신한다. 즉 나사렛 예수의 말씀과 행위, 죽음과 부활과 승천 안에 그 독자적인 역사가 제정되었기에 구원사의 독특한 시대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되는 구원사의 국면은 교회사의 모든 국면들을 규범적으로 결정짓는다. 반면에 교회사의 특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유일성에 의해 규정된다.

왜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인격을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으로, 즉 정경으로 승인했는가 하는 이유를 더 깊이 조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독특한 자의식과 거기서 연유되는 예수님의 자기 선포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의 신비와 예수님께서 말씀과 행위의 선을 통해 자신을 선포하신 - 일면 숨겨져 있으며 일면 나타나 있는 - 그 방법을 다루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저작과 토론이 행해졌으나 우리가 신약성경의 증거를 올바로 다루기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자의식과 자기 계시에 대한 초대 교회의 견해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autopistia (=자증)’를 말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예수님의 신빙성은 자신에 의거하지 교회의 신학이 예수님을 평가하는 바에 의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논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지위에 관한 신약성경 문서들, 특히 복음서의 주장과 역사적 예수 자신의 주장 사이에 견고한 상호 관계가 있다는 것을 당연시 하였다. 그러나 복음서와 역사적 예수와의 관계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

한편, 모든 규범적 특성은 거기에 상응하는 반응을 요구한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자기 계시와 예수님의 규범성 주장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는 두 방면이 있다. 긍정적으로는 믿음 순종이며, 부정적으로는 불신앙이다. 과학적으로, 예수님의 자기 현시의 진리는 자연 과학적 현상과 같은 방식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 승인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것은 진리의 행위이며 성령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고전 2:7 이하 비교). 그것은 생명의 선택과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수납을 요구하며, 그 선택 위에 믿음 가운데 우리의 실존 자체를 완전히 내거는 것이며, 그 의탁은 믿음과 순종의 공언 속에서 표출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이고 자기 규정적인 표현으로 신약성경의 규범적 계시를 하셨음을 논의함에 있어서 우리는 또한 성령님이 이 문제에서 점유하는 중요한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그분의 계시 사역을 성령 충만한 자로서 수행하셨음을 매우 분명히 하고 있다. 모든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님의 공적 사역의 시작으로 보는 그분의 침례시에 예수님은 특별히 성령으로 무장하셨다(마 3:16)(요 1:33). 나사렛 회당에서의 말씀 선포에서 - 그것은 누가복음의 구성에서 특별히 중요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전 사역의 프로그램으로 명백히 서술되어 있다. - 성령 충만한 예수님에 대해서 이사야의 대언과 조화시키면서(사 61:1)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눅 4:18). 예수님이 그분의 설교와 다른 활동들을 성령을 통하여 수행하셨다는 이 확신은 다른 구절들 속에도 표현되어 있다(마 12:18,28,31)(행 1:2; 10:38).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규범적이고 계시적인 사역을 결코 성령으로부터 분리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과연 신약성경이 규범적인 예수 그리스도와 나란히 규범적인 성령의 인식을 확고하게 해주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신약성경 저자들이 성령의 계시적 사역을 얼마나 강조하였는가를 실감한다면 더욱 절박한 질문이 된다. 성령은 신약 계시의 중계자로서 긍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방금 예수님이 계시의 사역을 성령을 통하여 수행하셨음을 보았다. 계시록 저자는 계시를 받았을 때 ‘성령에 감동하여’ 있었다(계 1:10; 2:7,11,17; 4:2; 17:3; 21:10). 우리는 성경에서 성령에 감동하여 사람들이 대언하고(행 1:16; 2:17; 11:28; 19:6; 21:11)(고전 12:10)(살전 5:19)(벧후 1:21), 계시를 주시며(눅 2:26)(엡 1:17)(엡 3:5)(딤전 4:1), 지혜와 지식을 나누어 주시고(고전 12:8)(엡 1:17), 지시하시기까지 하심을 본다(행 8:29; 10:19; 11:12; 13:2). 요한복음의 고별 강화에서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위로자로서의 성령, 곧 모든 것을 가르치고 그분의 말을 생각나게 하실 성령을 약속하신다(요 14:26). 제자들은 예수님이 계속해서 말씀하실 많은 것을 감당치 못하지만, 성령님께서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장래 일을 알리실 것이다(요 16:12-15). 성령님은 특별히 “진리의 영” 으로 불려진다(요 14:17)(요 15:26)(요 16:13)(요일 4:6). 사실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성령님은 단순히 진리로 묘사된다(요일 5:7).

이 증거들은 신약성경이 성령의 계시적 기능을 강조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와 나란하게 완전한 규범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결론내려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러한 결론이 아무리 자명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이 성령의 계시적 활동을 그리스도의 계시와 병행되는 그 무엇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가 그분의 영을 통하여 회중 속에서 사역 하시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성령의 계시적 사역을 크게 강조하는 사도행전에서 그분의 영을 통하여 계속 사역하는 분은 분명히 높아지신 주님이다(1:2이하). 계시록에서도 성경의 계시가 강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라는 명백한 진술이 있다(계 1:1,10). 신약성경은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적 사역을 제거한 채 성령의 계시적 사역을 절대화시키는 그 어느 것에도 강하게 반대한다. 더구나 우리가 이 성령의 계시적 사역의 객체를 찬찬히 살펴보면, 역시 그리스도와 관련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듣는다면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행위들에 집중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행 2:1)(행 4:8).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은 고별 강화에서 성령께서 주님의 것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알릴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요 16:14). 결과적으로, 우리가 성령의 계시적 사역을 예수 그리스도와 병행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세워지는 수단으로서 강조하고 존중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신약성경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우리는 규범적인 것 - 정경성을 포함하여 - 에 대한 신약성경의 개념은 가장 깊은 차원에서 삼위일체적 기초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예를 들자면, 이 삼위일체적 기초는 계시록의 첫 구절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분의 종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그분에게 계시를 주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계 1:2). 그러나 이 계시는 또한 사도 요한이 ‘성령 안에’ 있는 동안 일어난다(계 1: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에서는 계시하시고 계시되시는 분으로서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진다. 따라서 우리가 신약의 정경성을 전권적으로 결정하시는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다고 해도 전혀 성부와 성령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신약성경 자체의 초점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때까지 논의한 것들을 요약하여 보자. 신약성경과 사도적 교부들의 일치된 증거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성경의 결정적 규범이다. 즉 주체적으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자이기 때문이며, 객체적으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이 세상을 위한 그분의 행위들에 대한 유일한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진리가 반복될 수 없는 방법으로 실현되었다. 그분의 출현은 구원사의 독특한 시대로 접어들게 하였으며, 그것이 장래의 모든 역사를 질적으로 규범적으로 결정한 것이었다. 역사적 예수로서, 그분은 하나님을 권위 있게 계시하셨으며, 높임 받으신 주님으로서, 그분은 그분의 계시 사역을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하신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경성은 그분의 독특한 자의식과 자기 계시에 의거한다. 그분의 선포는 호소를 포함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 있는 계시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순종하고 믿음으로써, 그리고 그분의 명령에 따라 그 계시를 전파함으로써 그분의 자기 계시에 반응한 사람이다. 우리는 성령님을 예수 그리스도와 병행되는 규범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이 자신의 계시적 사역을 수행하셨고 계속하신다 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가장 깊은 의미에서 신약성경의 성경은 삼위일체적 기초에 근거한다. 즉 그것은 성부 하나님에게 근거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성취되었으며, 항상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 나타난다.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라는 이 기적이 많은 신비를 남긴다는 사실을 용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믿음으로 스스로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모든 사람은 비록 그 기적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승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계시된 것이 인간과 세계 - 그가 차지하는 역사의 극히 적은 부분까지도 포함하여 - 의 존재를 의미있게 하는데 충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확신 속에서 평안히 살고 죽을 수 있는 것이다.

- A. B. 듀 토잇 지음 / 권 성수 옮 [신약정경론](도서출판 엠마오)에서 발췌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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