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07-09-26] 사도행전 09:10-22 다메섹의 사울
제목: 다메섹의 사울
내용: 사울은 성령의 인도로 다메섹으로 들어가 주의 제자 아나니아로부터 세례를 받고, 복음을 전합니다. 사울의 회심으로 많은 유대인이 돌아올 기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유대인들은 오히려 사울을 핍박하게 됩니다. 현재 한 사람의 회심이 많은 사람을 구원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명은 복음 전도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10-12절) 다메섹에서 제자 아나니아를 사울로 인도하는 성령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1)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사울은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자기에게로 와서 세례를 주리라는 것을 계시를 통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과 유사합니다. 이방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경륜은 문호의 개방은 예수님의 수사도에 의해서, 선교의 진행은 핍박자 사울로서 진행하십니다. 사울을 부를 때 사울의 반응은 “주여 뉘시니까?”이고, 아나니아를 부를 때에는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로 대답이 전혀 다릅니다.
10. 성령께서는 아나니아가 비록 주의 제자이지만 다메섹에 있는 미말의 사람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최고의 사도를 교육하게 하셔서 겸손을 훈련시킵니다. 그리고 박해자 사울에게 가도록하기 위해서 아나니아에게도 특별한 환상(vision)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나니아에게 환상을 통해 나타나심으로 생기와 확신을 주셔서 사울을 만날 수 있도록 채비시킵니다. 사울은 아나니아가 주의 예비하신 하늘의 천사(사자)로서 청종하게 하였습니다.”
In a vision. This word vision signifieth some light which was set before the eyes to testify God’s presence. 환상의 용도는 말씀이 위엄을 확증함으로써 그것이 사람에게 신뢰를 지니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환상이나 꿈으로 말씀하셔서 백성의 마음을 친히 조명하십니다. 이 부르심에 대해서 아나니아는 “주여 내가 여기있나이다.”로 순종적 대답을 합니다.
11. For, behold, he prayeth. 누가는 사흘 동안 사울이 기도하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사울은 금식하는 중에 기도하였고, 그 기도는 자신에게 완전한 평정한 마음이 허용되기 까지 계속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사울의 금식(기도)이 사흘 동안 진행되도록 기다리셔서 기도에 대한 열정에 더욱 강력한 불을 붙였습니다.
12. He saw a man, named Ananias. 여기서 누가가 아직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보고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말을 덧붙이고 있는가하는 문제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섬세하게 설명함과 설명하지 않았음의 두 가지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전자를 취한다면 바울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 두 번째 계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13-16절) 아나니아의 질문에서 사울의 소명이 등장함 = 주의 택한 그릇(도구)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 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5절) 사울은 이방인, 왕,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택한 그릇입니다. 이방인에게는 구원의 좋은 소식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참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후기(에베소)에서 회당 전도를 포기하고,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 강론을 하여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리가 바울에 의해서 진행됩니다. 즉 바울의 최종 사역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리를 종결짓는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13. Lord, I have heard. 칼빈은 아나니아의 반문에 대해서 그를 믿음의 연약하다고 평가합니다. 즉 주의 명령을 사망의 공포 때문에 주저하게 되는 점, 불안에 빠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신속하게 그리스도께서 부르시는 곳을 나아가는 경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나니아에게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것과 사울에 대한 공포가 섞여 있습니다. 아나니아의 공포는 우리의 게으름에서 오는 반문과 비슷합니다. 공포이든지 게으름이든지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주께서 부르시는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4. He hath power to bind. 박해자 사울의 회심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회심은 사울에 의한 공포를 받은 사람에게는 놀라운 구원의 소식이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능력의 탁월성, 신성이 입증되며, 회심은 복음(그리스도)께서 전파된 다음에 그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15. Go; because he is an elect instrument. 명령의 반복과 성공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아나니아에게 모든 의심을 제거하게 됩니다. 칼빈은 오늘날 이러한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시지 않지만, 성경의 권위가 충분히 우리에게 확립된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A vessel of election,(vas electionis) or, as Erasmus translateth it, an elect instrument(organum electum), is taken for an excellent minister. 도구라는 말은 자체로는 의미가 없고, 주인의 뜻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도구가 되면 하나님께서 유일한 작동자가 되어 사역과 능력이 하나님의 손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든 수고를 하였다할지라도 자화자찬(自畵自讚)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릇(vas)’라는 단어를 두고 유식한 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히브리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일반적인 일군이 아니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은사를 받은 일군으로 묘사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이 위대한 탁월한 일을 위해 선택받았다는 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To bear my name amongst the Gentiles. 그리스도의 이름을 파괴하려고 했던 살ka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할 책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일군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리는 것입니다. “세상이 복음 전파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서 모두 함께 모이게 될 때 그리스도는 어떤 의미에서 그의 왕좌에 앉게 되는 것이다.”
16. And because. 사울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온순한 사단이나 고분고분한 세상이 아니었으므로, 누가는 사울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을 동시에 배워야할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침착하고 유순한 마음을 주시기 전에는 우리는 십자가를 질 수 없게 됩니다. 사울에게 들려준 고난에 대한 숙지를 인정한 그는 고난 받음의 각오에 의해서 적대적인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능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군임을 입증하려면 우리는 그에게 지식과 지혜의 영을 구할 뿐 아니라 인내와 용기의 영을 구하는 가운데 경건한 자들의 몫인 절망적인 고난 때문에 자멸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17-19a)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은 사울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바울은 안수를 먼저 받고, 세례를 받습니다. 바울의 독특성이 사도들과 유사합니다. 사도들은 중생한 후에 성령을 받아 사역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안수를 받고, 성령이 충만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즉 안수를 받을 때에는 눈에 비늘이 있는 상태로서 겸손한 상태,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한 상태에서 안수(직임)을 받습니다.
17. Having laid his hands upon. 안수는 정규 직임을 주는 의식입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눈에 보이는 은사를 베풀거나 어떤 사람을 교회의 일군으로 임명할 때 제사의식에서 따온 이 습관을 사용했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자기 손을 얹은 것은 하나님께 성별하려는 뜻과 성령의 은사를 획득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가 가르침 없이 바로 안수를 주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칼빈은 로마교회의 주교만이 안수할 수 있음을 비판하고2),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음으로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안수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부분별한 안수는 교회의 질서를 흩어버리는 문제가 야기됩니다.
18.There fell from his eyes as it had been scales. 바울의 눈먼 상태는 공포나 당황 때문과 자기의 자만심을 완전히 벗어버리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지(보지 못함)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울이 비늘로 제약을 받았지만 자기의 모든 통찰력을 무지로 돌리고 새로운 빛만을 의지하도록 했습니다. 이 빛은 그리스도 이외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19b-25절) 세례 받은 후에 전도하다가 다메섹에서 탈출함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20. 바울이 회심함과 동시에 다메섹의 제자들과 함께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됨을 증거하게 됩니다. “그가 아나니아라는 대리인을 통해 그처럼 쉽사리 개조된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기초적인 것을 받아 먹을 때 하나님을 통해 더 고차원적인 것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바울의 전도의 요점은 he saith that Christ was the Son of God입니다. 즉 사울 자신이 열심하던 율법과 선지자로부터 메시야의 참된 직무가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나사렛 예수가 구속주로서 유대인의 그릇된 메시야 왕국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메시야 왕국은 지상 왕국이 아니라, 하늘 왕국이라는 것입니다.
21. They were all amazed. 사울의 회심은 인간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교회를 잔해하는 도구가 복음을 전하는 그릇이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22. And Saul waxed stronger. 사울은 다메섹의 지체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누가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사울의 열정을 칭찬할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을 반박하여 당혹케하게 하였습니다. Saul waxed stronger. 사울이 힘을 더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성경의 확실한 제시(증언)와 성령의 다양한 도움으로 대적자들을 능가했으며, 논쟁에서 승리하여 자신이 고백이 정당함을 위력적으로 보여줌을 말씀합니다. 누가가 사용한 “당혹케함(tread all his adversaries under his feet)”은 사울의 전파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유대인의 상태를 묘사합니다. 핍박의 앞잡이였던 사울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함으로 유대인들은 대항하지만, 사울에게 성경과 성령의 권세를 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칼빈은 사울의 승리의 원천으로 첫째, 성경이 검(劍)의 역할을 하여 거짓 교리에 대항해서 참된 교리를 세웠으며, 불경건한 자들에게 믿음의 담력으로 싸워 승리하였고, 원수들의 공격해서도 이 원천인 성경으로 싸웠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무기가 되지 못하는 교황주의자들에게는 이단의 논쟁에서 이길 수 없으며, 오히려 이단의 도피성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성경으로 확립되지 못한 교회에서 성경을 무기로 오히려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오직 성경으로 기치를 올린 개혁교회가 거짓 성경 해석으로 무장된 이단에게 맹공격을 당하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신앙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다면 성경을 홀대하는 이단과 성경을 왜곡하는 이단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23. When many days were fulfilled. ‘여러 날이 지나매=때가 차매(4137)’3)은 사울이 복음을 전하는 초기 상태의 공백 기간으로 가장 좋은 기간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사울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끝까지 저항을 합니다. 사단은 굴복하기 직전까지 모든 잔인과 포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합니다.
칼빈은 이러한 유대교와 사단의 특징을 로마교회에 그대로 적용합니다. “교황주의자들도 그들이 복음의 가르침을 말살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온다.” 칼빈은 이러한 악한 음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쁜 명분에 가담하지 말고, 의의 명분에는 행동해야 한다고 제시합니다.
25. The disciples having taken him by night. 사울의 도주 방식에 대한 법적인 논란이 있다는 제기에 대해서 칼빈은 그의 정당성을 논증하여 줍니다. 즉 보호하는 성벽을 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인데, 사울은 오히려 도시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성벽을 넘었기 때문에 합법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성벽으로 탈출하는 것은 여리고 성벽을 탈출하는 모습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제자들이란 사울의 제자들을 의미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23-25절은 사도행전과 갈리디아서의 간격, 아라비아에서의 3년의 공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즉 사도행전에서는 다메섹에서 회심과 동시에 복음 사역을 하는 것으로 되지만, 갈라디아서에서는 아라비아에서 3년 활동에서 예루살렘으로 교제하러 온 것(26절)으로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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