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매일성경, 07-09-28] 사도행전 09:32-43 베드로의 사역

형람서원 2007. 10. 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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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07-09-28] 사도행전 09:32-43 베드로의 사역


제목: 베드로의 사역

내용: 베드로는 룻다의 애니아의 중풍병을 고치고, 욥바의 죽은 다비다(도르가)를 소생시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세를 교회와 세상에 선포하여 많은 숫자가 그리스도를 믿게 합니다.


32-35절) 룻다의 애니아의 중풍 병을 고치는 베드로

     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 지 팔년이라 34.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32. 이 본문에서 누가는 두 가지 기적(애니아, 도르가)을 제시하여 교회가 받은 은택에 대해서 기술합니다.

  먼저 베드로는 모든 곳을(as Peter walked throughout all, NIV=about the country) 순회하였습니다. “모든 곳은 교회들이 아니라, 성도들을 심방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헬라어 남성이 사용됨.” 그러나 사도들이 일정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부분적으로 분할하여 순회하면서 성도를 심방하는 것을 직무로 행하였습니다. 로마교회는 어리석게도 베드로에게만 순방(심방)의 권한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다른 11사도는 예루살렘에서 놀고 있었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베드로가 중요한 사도이기는 하지만 세상의 머리(the head of world)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없습니다.

   Which dwelt at Lydda. ‘룻다’에 대한 지명과 위치에 대해서 칼빈은 제시하면서, 제롬(Jerome)이 ‘샤론 평지;로 이해한 것을 과도한 의미의 도약으로 생각하고, 성경의 제시대로 룻다로만 이해하는 것을 주장합니다.1)


  34. Jesus Christ maketh thee whole. 사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있기 전에는 결코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없는 기적을 행할 수 없었고, 그리스도께 덕이 되지 않는 기적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칼빈은 베드로가 사전에 개인적인 기도로 확신을 받음을 전제하고, 모든 기적의 창시자인 성령께서 베드로의 혀를 통해서 말씀을 선포함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제시합니다(The Spirit who was the author of all miracles, and which wrought by the hand of Peter, did even then direct his tongue, and did move his heart by a secret inspiration). 베드로는 이 기적을 행할 때에 단순한 대리인에 불과할 뿐 그리스도의 능력이라는 것을 분명히 명시하였고 입증함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립니다.

  Make thy bed.  침대라는 것은 완전히 거동이 불편한 상태를 단편적으로 제시하며, 8년은 오랜 기간 동안 불치 상태에 있는 것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회복의 능력, 말씀의 효력(the efficacy of the words)이 그를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35. And all those. 성경에서 사용된 “모두”는 전체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 다수의 사람, 어떤 군중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룻다의 전체 시민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교회로 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손에서 베풀어진 기적에서 그리스도의 능력과 은혜를 알아야 하며, 그분에게만 매임이 되어야 하는 목표를 인식하지 못할 때에는 기적은 잘못 사용되는 것이 됩니다. 즉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의 역할은 자신에게로 돌이키는 전환점이 되는 시작이며, 회심의 준비와 시작이 됩니다. 


36-38) 욥바의 다비다의 죽음에서 베드로를 청하는 성도들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36. 병든 자를 회복시키는 것 보다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더욱 어려운 기적이므로, 도르가를 살려 그리스도의 능력의 탁월성을 보여줍니다. 이 기적의 수혜자는 다비다는 그리스도의 제자였으며, 선한 사업과 구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남자에게만 해당되었던 ‘제자’가 여자 그리스도인에게 불려 집니다.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교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유일한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 남자와 여자에게 공히 가르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참된 삶의 방법과 규정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만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거룩한 삶의 근본이며, 모든 덕의 뿌리입니다. 그 믿음으로부터 선행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선행을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사랑의 자발적인 행위를 뜻”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선행과 함께 구제를 제시하여, 선행의 한 분과이지만 특별히 가난한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일에 힘썼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다비다는 히브리어이기 보다는 수리아어이지만 누가는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하였는데, 그것은 그 이름이 거룩한 여자의 덕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도르가’는 염소(a goat)라는 뜻이지만 그녀의 거룩한 생활은 이 흉측한 이름의 낙인을 쉽게 지워버리고 말았다.”2)


  37. It happened that she was sick. 성도들은 그녀의 죽음에서 당황하지 않고 다시 살아날 소망을 갖고서 준비하였습니다. 비록 그들이 전통에 의해서 정해진 정결예식3)을 따른데, 칼빈은 구습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정결예식이 그리스도를 다시 흑암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즉 몸을 정결케하시는 주께서 오셨음으로 더 이상의 정결 의식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38. The disciples, which had heard, 몸을 씻는 것은 매장을 준비하는 행동이며, 다락방에 안치하고 베드로를 부르러 간 것은 소마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성통곡을 하면서 원망하지 않고, 겸손히 주님의 도움을 바라며 기도하였으며, 다비다가 살아나 더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도록 잠시 더 생명이 연장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39-43절) 다비다를 살린 베드로

       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a tanner)에서 유하니라

   39. And Peter arose. 베드로에게 두 사람이(38절) 와서 간청함으로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베드로의 상태에 대해서 칼빈은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곧 그는 주님의 의도를 직접 알지는 못하였지만 그가 형제들의 도움을 들어준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가 가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경건한 권면을 통해서 그들을 북돋아 줌으로써 그들이 한 여자의 죽음 때문에 상심하지 않도록 하며 아직 연약한, 어린 아이와 같은 교회를 든든하게 붙잡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기 형제들이 그의 거절을 자기들에 대한 무시로 보지 않을까 하는 한 가지 생각만으로도 그가 거기에 가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명심할 점은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기적에 자신의 능력을 제시할 때마다 성령의 은밀한 영향력을 이용하신다는 것이다(as the Lord determined to work some miracle by his apostles, he did always direct them by the secret motion of the Spirit). 설령 베드로가 다비다가 살아날 것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않았다할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여행의 안내자와 지도자이시라는 점을 틀림없이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비록 그는 그 성과에 대해서 초조해하고 불안해했더라도, 그가 떠나기로 작정한 것은 무분별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All the widows. 하나님께서는 왜 다비다가 다시 살았는지, 하나님께서 누구의 기도를 들으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다비다의 생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다비다의 다시 살아남으로 그리스도의 권능이 탁월하게 나타났습니다. 다비다의 두 번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주인임을 선언하셨습니다.



  40. When they were all put forth. 베드로는 기도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 애니아와는 대조적으로 모든 사람을 밖으로 보냅니다. 베드로는 기도하기 위하여 혼자 남아 있는 쪽을 택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구경꾼들과 목격자들을 내보내고 초조하게 기도하는 가운데 이 문제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과 하나님의 주권에 의뢰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겸손의 상징입니다(Kneeling in time of prayer is a token of humility). 우리의 몸이 하나님을 예배한 방향으로 자리함과 외형적인 단련으로 마음의 연약성을 돕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릎을 꿇을 때마다 속 마음의 굴복이 이 자세와 일치하도록 하는 가운데 가식적이요 효과없는 기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Turning towards the corpse. 베드로가 아무런 개념 없이 시체를 향하여 말을 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선포는 하나님의 성령이 그의 몸을 일으키는 강력한 능력이 됩니다(겔 37:4, 요 5:25). 그러므로 다비다의 몸에 영혼을 회복시켜 준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요한복음 11장 43절에서 나사로에게 선포한 것과-“나사로야 나오라”와 달리다굼(막 5:41) - 유사합니다.


    41. 누가는 다비다가 제자들 앞에 나타나 보여줌으로 그녀가 다시 살아난 것은 남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도의 유익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다비다의 가장 큰 복은 그녀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이 역할이 뚜렷하게 계시된 것입니다.


   42. And many believed. 기적의 열매로 가난한 자에게 위로(다비다의 부활)를 교회에는 선한 봉사자이 회복을 시킴으로 믿는 자들이 많이 소명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이 위대한 사역에서 자신안에 얽매려는 것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43. 베드로는 무두장이(피장이)에 머물면서 욥바에 교회를 형성하였습니다. 베드로를 도시의 유력한 사람이 공궤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소시민에게서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피장'이라는 직업은 동물의 가죽을 가공하는 직업으로서 오늘날의 피혁 제조업입니다. 유대인들 그리고 조선에서도 피혁 제조업자를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기피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람과 교제를 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이 사실은 또한 초기 기독교에서 신분과 직업에 대한 계급적 의식을 극복하고 있음을 제시합니다. 천한 신분인 시몬의 집에 머물렀음은 다음에 나오는 이방인 고넬료의 개종과 깊은 연관이 됩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개방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여제자를 인정하며 그를 소생시키며, 사회적 소외 계층과 함께 거주하며, 결국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여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하도록 복음에 헌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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