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매일성경, 07-09-24] 사도행전 08:26-40 빌립과 에디오피아의 내시의 만남

형람서원 2007. 10. 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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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07-09-24] 사도행전 08:26-40 빌립과 에디오피아의 내시의 만남


제목: 빌립과 에디오피아의 내시의 만남

내용: 주의 사자(an angel of the Lord)께서 빌립을 광야로 인도하여, 광야에서 에디오피아의 내시와 만남을 통해서,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게 하였습니다.


26-31) 주의 사자가 빌립을 광야로 인도하여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함

    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 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26. And the angel.(주의 사자) 누가는 어떻게 복음이 에디오피아인들에게 들어간 경로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으로 개종하였는데, 하나의 씨앗으로 짧은 기간에 넓은 지역에 복음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주의 천사는 빌립에게 남쪽으로 가라고 명령하지만, 이유와 목적을 밝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백성을 관계하시면서 순종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많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더라도 단순히 그 명령이 하나님의 것임에 만족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도 천사가 우리에게 할 일을 뚜렷하게 명령해야 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충족한 하나님의 말씀(성경)에는 우리의 해야 할 일에 대한 지시 사항이 담겨있으며, 하나님의 경륜에 이탈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통치 아래 있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따르는 일에 문제는 천사의 소식 전함이 없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태만과 기도를 소홀하게(냉랭한 기도) 때문입니다.

   To the way which goeth down to Gaza. ‘가자(Gaza)’는 페르시아 말로는 ‘보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칼빈은 히브리어의 Haza에서 Gaza로 변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광야’라고 나오는 것은 알렉산더가 옛 가자를 황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며, 콘스탄틴은 새로운 가자를 건설했다고 하는 것은 억측이 있습니다. 칼빈은 이미 있는 가자의 도시를 콘스탄틴이 더 아름답게 만들고 확장한 것으로 제시합니다.


  27. Behold, a man, an Ethiopian(보라,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당시의 에디오피아가 얼마나 부유한 나라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빌립은 주의 사자가 이 사람에게로 인도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다게(Candace)”는 여왕의 이름이 아니라, 마치 시저(Caesars, 가이사, 케사르)처럼 황제에게 붙여지는 칭호입니다(as Pliny).

   Came [had come] to worship.(예배하러 왔다가) 에디오피아의 먼 지역에서 예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이름이 멀리 퍼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넓은 지역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이 있음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막힌 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한 것 또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이젠 그 막힌 담이 제거됨으로 모든 열방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으시며, 이방인들의 부르심의 시작이 열린 것입니다.

   내시가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온 것을 미신적 행위로 치부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을 신실하게 견지하면서, 외형적인 고백을 하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합니다. 그는 아직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 계시를 받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율법의 그림자를 지킨 것은 당연합니다. 주께서는 내시에게 한 교사를 보내시기 전에 그를 예루살렘까지 오게 하신 이유는 율법의 초보적인 단계를 통해서 준비를 갖추는 것이 그에게 유익했기 때문이며, 그 결과 복음의 교리를 더욱 받아드리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예루살렘의 성전이 아닌, 광야에서 그리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전도자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음으로 그림자가 걷어지며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28. He read Esaias  그는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책의 내용을 알지 못하면서 그저 읽고 있기만 하였습니다. 그는 교사가 없이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배우겠다는 열망으로 이 선지서를 읽으면서 어떤 열매를 소망하는 것이다.” 특히 이사야서에는 이해되지 못할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마치 내시가 이사야를 읽는 것과 같은 심정입니다. 그는 이사야 독서에서 자기의 무지와 공부의 필요성만을 인식할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성경 읽은 법도 내시의 방법이 유용합니다. 즉 성경을 읽으면서 비록 이해하지 못한다할지라도 중단하지 않고, 더 선명한 빛이 올때까지 계속해서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을 지겨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성경을 읽는다면 결국 성경에 익숙하게 될 것입니다.


  31. How should I?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내시는 평범하게 보이는 빌립의 말에(30절) 자기의 무지를 솔직히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내시의 겸손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지식의 열망의 큼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경 읽기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열매를 맺는 것은 기꺼이 배우려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자기의 무지에서 수치를 느끼며, 제자가 되는 것보다 자기의 무지를 그대로 간직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시는 성경이 모든 지능을 능가하는 지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성경의 제자로서 바른 자세이다. 이해되지 않음으로 성경을 싫어하거나 멀리하지 않고, 부지런히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의 계시에 의존하며 해설자 혹은 교사를 주실 것을 소망하는 것은 매우 좋은 자세입니다.

   He prayed Philip that he would come up. (빌립을 청하여) 그는 한 나라의 권위자로서 평민인 빌립을 거부할 수 있지만 겸손하게 청하여 자기 수레로 인도합니다. 빌립의 지적 “당신은 그것을 이해합니까?”를 그대로 인정하고 어쩌면 무례한 빌립을 자기의 교사로 영접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겸손하고 말 없는 자에게 임하십니다(사 66:2).

   지금도 우리가 자기의 결점을 알고 배우려하기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헛되이 고생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고, 천사를 보내서라도 우리를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시를 가르치는 방법으로 전도자(사람)을 보내시어 교육하는 것으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광신자들은 하늘로부터 직접 계시를 구하면서, 사람인 하나님의 종의 교육을 무시합니다. 그들은 책도 읽으려 하지 않고 보주 수단 또한 경멸합니다. 칼빈은 성경 뿐만 아니라, 돕는 교사와 해설자들이 허용됨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시기 본다는 빌립을 보내신 것입니다. 천사들은 복음 전함에 침묵합니다. 하나님의 음성(the voice of God)은 사람들의 입에서만 울려퍼짐으로 전도자들은 더욱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32-35절) 내시에게 성경을 해설하는 빌립 

   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2. The sentence of Scripture.(읽는 성경 구절은) 내시가 읽은 성경구절은 그리스도에 관한 유명한 구절입니다(사 53장). 이사야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고난과 죽임을 당하심이 요구되었다는 것과 자기 의지에 따라서 죽음에 이르게 됨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칼빈은 여기에서 믿음의 교리(the doctrine of faith)에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제시합니다.1)


   33. In his humility his judgment.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그리스도께서 낮추심으로 정당한 판결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낮추심에 대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에 매를 맞는다고 조롱했습니다(사 53: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의 심연에서 승리자로 등장하셔, 지옥,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의 창조자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고난, 굴욕의 십자가이지만, 골로새서 2장의 제시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자져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His generation. (그의 세대)는 한 세대에 끝이 났습니다. 교부들이 Arius를 대적하여 “영원한 세대”로 입증하려 했지만 선지자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대를 후손으로 보려는 것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세대는 an age로 인간의 생명의 기간으로 보아야 합니다.

   Because his life is taken from the earth.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천상천하를 지배한다는 것은 가장 모순되어 보입니다. 파멸을 당한 것이 생명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구원의 기쁜 빛이 십자가의 소름과 어둠에서 비쳐옴으로 복된 영생(불사(不死))가 사망의 심연에서부터 흘러 넘치게 된 이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34. The eunuch said to Philip.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내시는 진지하며 겸손하면서도 예리한 통찰력을 갖고서 빌립에게 질문을 합니다. 무지를 벗어버리는 배우려는 자세를 보일 경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교사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일단 씨앗이 뿌려지면 땅 밑에 숨겨져서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아무런 성과 없은 독서에서 밝은 이해의 광명을 만나게 됩니다.


  35. Philip, opening his mouth 빌립이 입을 열어.... 입을 연다는 성경의 표현은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에 대한 긴 답변의 시작을 말합니다. 누가의 의도는 빌립이 이제부터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만큼 그리스도를 예리하게 묘사하는 구절을 없을 것입니다. 빌립은 그리스도의 오심이 어떠한가? 그리고 왜 오셨으며, 어떻게 그 일을 성취하셨는지에 대해서 성경의 예언한데로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하는 식으로 번역하지만, 누가는 ‘복음을 전파했다’로 말합니다.2) 그 의미는 그가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치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복음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후대 전하도록 명령하신 내용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경우 전체 복음이 우리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6-40절) 내시에게 세례를 주는 빌립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36. What letteth me? 무슨 거리낌이 있느요... 내시에게 세례를 줍니다. 내시는 복음을 영접하고 적극적이며 간절히 세례를 요청합니다. 내시가 세례를 주장함을 보면서 우리는 세례가 새 생명에 대한 상징이며, 그것이 말씀에 덧붙혀진 것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으로 소홀히 다루는 것이 있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교리를 받아드렸다면, 자신의 믿음을 외적으로 고백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의 신앙을 속에만 감춰두고 있는 사람은 태만으로 부끄러운 생활이 됩니다.

  If thou believest with all thy heart. 네가 마음을 온전히 믿으면.....(한글 개역성경에는 난외주) 내시가 받는 세례의 방식은 교회에서 행해지는 일반적인 세례방식과는 다릅니다. 믿음 후에 세례가 오게 됩니다. 성령의 인침이 없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불신앙이 됩니다. 광신자들은 이런 이유로 유아세례를 공격하는데 그릇된 것입니다.

  빌립은 전에 사마리아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나 그는 그들이 목표에 미달이라는 사실을 숙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온 마음을 다하여 믿음이란 마음에 산 뿌리를 두고 있지만 매매일 믿음의 진보를 위해서 노력합니다.

  I believe that Jesus Christ. 세례란 그리스도에게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세례의 능력과 진실성이 그에게 있는 만큼 내시는 그리스도만을 자신 앞에 내 세우고 있습니다.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속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시인합니다. 성인이 된 사람이 이 고백 없이 유아세례를 자랑하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지체는 나이와 능력에 도달하자마자 그리스도의 제자로 스스로 굴복하며,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신앙의 분별력을 통해서 세례 속에 대표되고 있는 그의 능력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38. They went down into the water. 둘 다 물에 내려가..... 초기 세례 의식은 온 몸을 물 속에 담갔습니다. 오늘날(칼빈) 세례는 목사가 몸이나 머리에 물을 뿌리는 정도일 뿐입니다. 세례 의식 자체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임으로 꼭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물은 우리의 씻음의 상징이며, 물을 그의 피로 거울의 역할로 보여주는 것임으로 그리스도인은 성결을 구하게 하시며,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게하려는 뜻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39. When they were come up. 둘이 물에서 올라 갈 새.... 내시와 빌립은 세례 후에 헤어졌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빌립을 통해서 들은 복음으로 세례를 받고, 아무런 대가 없이 헤어짐으로 내시의 믿음의 확신시키는데 유익한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인간들에게 무보수로 봉사함으로 하늘의 보상을 소망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의 일군들에게 가르치는 자들에게서 삯을 받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그들이 돈만 바라고 이득을 위해 일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사역자의 목표는 인간들을 하나님 편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Rejoicing. 흔연히, 기쁘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지식은 열매를 동반합니다. 내시에게 주어진 열매는 기쁨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두고 이야기할 때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환희에 넘치며 승리에 찬송을 부를 것을 당부합니다. 세상의 헛된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은 영적인 기쁨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40. He was found at Azotus.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난.... 아소도는(수 11장) 아낙 자손들을 내 쫓을 수 없었던 성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빌립이 여러성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믿음의 명확성을 전파하는 것은 매우 비상하고 놀라운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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