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읽는 기독교강요(3), 지혜(智慧, wisdom)와 지식(知識, knowledge)
칼빈의 『기독교강요』 첫 단어는 sapientia(지혜)이다. Sapientia'는 라틴어 동사 'sapere'에서 유래한, 맛을 보다(to taste)'라는 뜻이었다. 이후 '분별하다(to discern)', '이해하다(to understand)', '현명하다(to be wise)'와 같은 비유적인 의미로 확장되었다. 칼빈은 sapientia와 discernere(분별)을 사용했다. 지혜는 두 지식 체계(duplex cognitio)를 파악해서 정립하는 것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것”(philo – love + sophy – wisdom)은 ‘철학’인데 ‘지식훈련’으로 볼 수 있다. 철학의 기원자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답은 “알지 못하는 너 자신을 알라”(無知의 知, Socratic ignorance)는 것이다.
칼빈은 지혜의 두 부분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람을 아는 지식으로 제언했다(Dei cognitione et nostri). 우리는 칼빈이 『기독교강요』 1권 1장에서 cognitio와 notitia를 함께 사용하는 것을 제시했다. notitia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이고, cognitio는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이다. 그런데 칼빈은 cognitio와 notitia가 아닌 하나님과 우리(Deus et nos)를 아닌 지식(cognitio)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인식’에 대해서 먼저 제시했다. 12세기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변경이 시작되었다(13세기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형성된 지식 체계에 대한 변호적 구성이며 상호적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본래 신학은 신론에서 시작했다. 고대 교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의 참 신성에 대한 고백으로 구성했는데, 중세 시대에 서방교회에서는 신존재 증명으로 구성했다(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1부에서 하나님과 창조에 대해서 다뤘다. 중세 시대 동방교회에서는 신화(神化, Theosis/Deification) 사상으로 진행했고, 부정신학(Via Negativa), 예전을 통한 신비체험 등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칼빈 이후에 신학의 구조는 인식론에서 시작되었고,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6년)도 처음 1장을 ‘성경론’으로 구성했다. 참고로 철학은 기원(아르케, archē)을 탐구했는데, 신학에서 시녀로 철학을 사용해서 ‘존재론’을 탐구했는데, 결국 그 시녀가 주인이 되었고 신학은 인정받지 못하는 시녀가 되었다. 인정받기 위해서 열심히 주인인 철학을 맹종하지만 처절하게 냉대를 받고 있다. 철학은 신존재가 아닌 인간존재까지 탐구하고 있지만 어떤 합의된 규정을 구성하지 못했다. 기원 탐구는 시도하지 않으며, 언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학은 철학의 길을 답습하며 존재론이나 실천에 관한 부분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다. 신학은 본래 없었다. ‘신학’이란 어휘도 철학에서 사용했다. 교회는 종교(Christian Religion)가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믿는 신(神)이 있는데, 그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서, 칼빈은 두 영역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두 영역을 명료하게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non facile est discernere). 마틴 루터의 율법과 복음을 명료하게 구분한 학자가 없다. 그것은 마틴 루터가 율법과 복음을 명료하게 둘로 구분해서 구도화하지 않았기? 혹은 못했기? 때문이다.
신학은 다른 학문처럼 명료한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다. 신학을 명료하게 규정하는 것은 일반 학문으로 세속적 가치에 불과하다. 신학은 하나님, 영에 대해서 논하기 때문에 인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 자체도 인간 언어로 정립해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칼빈은 이러한 지혜(sapientiae), 지식(cognitione)의 움직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제시했다(행 17:28).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세계와 인간을 운영(섭리)하신다.
형람서원 고경태
'칼빈-기독교강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미있게 읽는 기독교강요(2), 지식(知識) (1) | 2025.05.19 |
---|---|
재미있게 읽는 기독교강요(1), 그리스도인의 병기 (1) | 2025.05.10 |
칼빈의 '기독교강요' 4권 5장, 간략한 요약 (0) | 2025.03.05 |
신자에게 남은 죄는 선행으로 대체할 수 없다 (0) | 2024.04.14 |
iNST 2. 12. 4.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성경에 계시된 것이며, 우리를 위하여 죄의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한 것이다 (2) | 2024.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