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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리를 오해했다(00) "하나님의 절대주권(the absolute sovereignty of God)"은 하나님의 '전능성'이 아니라 '불변성'이다.

형람서원 2025. 5. 1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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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리를 오해했다(00) "하나님의 절대주권(the absolute sovereignty of God)"은 하나님의 '전능성'이 아니라 '불변성'이다. 

우리는 모든 사상의 기원에 대해서 좀 더 명료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너무나 평이하게 사용되는 사상도 그 시발자가 있다. 그 사상을 처음 제언한 신학자를 파악하는 것은 사상화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너무나 평이한 명제일수록 그 기원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등장한 AI로 인해서 그 찾는 작업이 너무나 용이해졌다. 그래서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풀고 있다. AI가 정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네 곳의 AI에게 질문하면 공통분모는 쉽게 보인다. "칼빈의 사상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말한 신학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AI들이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 1851–1921) 박사를 지목했다. 한 AI는 헨리 미터(Henry Meeter, 1886-1963)를 지목했다. 그리고 로레인 뵈트너(Loraine Boettner, 1901-1990), 아브라함 카이퍼 (Abraham Kuyper), 헤르만 바빙크 (Herman Bavinck), 존 머레이 (John Murray), 코넬리우스 반틸 (Cornelius Van Til) 등을 제시했다. 어떤 AI는 칼빈 자신이라고 답변도 했다. AI의 다수 답변이 벤자민 워필드 박사가 칼빈의 사상을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제언했다고 기준해 보자. 

In Calvinism, then, objectively speaking, theism comes to its rights; subjectively speaking, the religious relation attains its purity; soteriologically speaking, evangelical religion finds at length its full expression and its secure stability. Theism comes to its rights only in a teleological conception of the universe, which perceives in the entire course of events the orderly outworking of the plan of God, who is the author, preserver, and governor of all things, whose will is consequently the ultimate cause of all. The religious relation attains its purity only when an attitude of absolute dependence on God is not merely temporarily assumed in the act, say, of prayer, but is sustained through all the activities of life, intellectual, emotional, executive. And evangelical religion reaches stability only when the sinful soul rests in humble, self-emptying trust purely on the God of grace as the immediate and sole source of all the efficiency which enters into its salvation. And these things are the formative principles of Calvinism. - 벤자민 워필드, "Calvinism: The Meaning and Uses of the Term", Monergism 사이트.

워필드는 칼빈주의는 자유주의와 대조되는 신존재(theism)에 근거한 그의 의지와 경륜의 불변성을 제언하며 의존할 것으로 제언했다. 하나님께 절대 의존하는 태도(an attitude of absolute dependence on God)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의지(의지의 불변성)에 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높이는 집회에서 강사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내용이 하나님의 전능성, 절대성, 능력에 초점이 된 것으로 느꼈다. 

그런데 루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강조했다(참고 노예의지론). 칼빈은 이중예정, 하나님의 의지에 대해서 제시했다. 그런데 워필드는 루터와 칼빈과 다르게 하나님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절대성을 강조했을까? 그런데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하나님의 절대성이 아닌 주권(His will and counsel), 그의 의지와 경륜에 있다. 즉 워필드도 루터와 칼빈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의지 불변성에 착념되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 것이다. 

루터와 칼빈의 차이점은 루터는 불변성에서 십자가를 강조했고, 칼빈은 하나님의 의지의 영역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후기 개혁파는 칼빈보다 더 하나님의 의지 영역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구원협약(pactum salutis) 라는 구원경륜의 도식을 세웠다. 개혁파는 하나님의 의지의 불변성은 동일하게 견지하며 진행한다. 어쩌면 칼 바르트도 신의지의 불변성을 견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개혁파 신학에서 칼 바르트를 제외하는 것은 그가 주장하는 불변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죄사함의 구도를 제외시키기 때문이다. 성령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영이 아니라 구속주라고 한다. 칼 바르트의 신학은 개혁파 신학과 정면으로 대치한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외치면서, 그 기원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먼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칼빈이 가르친 사상이 아니라, 워필드가 칼빈의 사상이라고 집약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칼빈의 가르침을 일목요연하게 정립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어떤 신학자도 동일하다. 그것은 신학자의 사유 체계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진들은 신학자의 한 가닥을 잡고 전체 몸통을 흔들려고 하기도 한다. 후진들은 어떤 한 가닥을 잡고 겨우 한 길을 세우면 유력한 업적이 될 것이다. 루터나 칼빈은 2,000년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위인들이다. 워필드는 두 거장의 한 가닥을 잡고 있는 탁월자이다. 우리는 그 거장의 꼬리를 잡고 있는 미말의 종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는 의미는 좀 더 명확히 알고 외치며 주장하는 것이 좋겠다. 

필자도 신학을 공부하는 학도로서 수없이 들었고 또 말했지만 큰 충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금번에 참석한 강연에서 강사들이 동일하게 외친 "하나님의 절대성과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교차되면서 들릴 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하나님의 절대성으로 연결하면, 루터와 칼빈과 다른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AI와 함께 글을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하나님의 절대성이 아닌 하나님의 의지의 절대성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불변성, 즉 루터와 칼빈의 가르침을 연속하는 다른 표현이었다.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하나님의 전능성(불가능이 없는 하나님)으로 다르게 이해하며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필자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강연에서 그렇게 들려서 이런 정리를 해 본다. 필자가 잘못 이해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절대성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특징이나 가치, 진리"이고, 불변성은 "시간이나 상황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특성, 속성, 혹은 형태 등"이라고 한다. 그런데 절대성을 전능성으로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의지의 불변성과 하나님의 전능성의 두 명제는 하나님의 속성이지만, 같은 결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하나님의 의지의 불변성은 루터와 칼빈에게서 시작된 개혁파의 핵심 신학 사유 가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성은 신비주의가 말하는 것과 유사하며 분별할 수 없는 사상이다. 즉 신비주의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게획하신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불변성"과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전능성"은 신학 현장에서 전혀 다른 방향의 명제가 된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 의지의 불변성에 대한 워필드의 가르침이다.

둘째, 개혁파 신앙은 하나님의 불변성에 기초한다. 그래서 구원의 확실성 체계(성도의 견인)로 신학 체계가 구축된다. 

셋째, 하나님의 전능성은 기능적인 전능성이 아닌 죄사함의 전능하심과 창조의 전능하심이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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