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정서’(Religious Affections)란 무엇인가?
에드워즈의 글을 대할 때, 먼저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가 정서(affections)라고 말할 때 그것은 감정(emotions)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정서’란 우리의 모든 행위와 인생 전체에 동기를 부여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그는 ‘정서’와 ‘열정’(passions)을 이렇게 구분한다.
흔히 정서와 열정은 같은 뜻으로 이야기되지만, 실제 언어사용에 있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정서’라는 말은, ‘열정’이라는 말보다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바, 의지(will)나 성향(inclination)의 활발한 활동과 연관하여 사용된다. 반면에, ‘열정’은 보다 더 즉흥적이며, 동물적 본능에 호소하면서 지성을 압도하는 감정상태라고 하겠다.
따라서, 참된 ‘신앙정서’란 즉흥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감정과는 다르다. ‘정서’는 의지가 선택한 욕구(desires)에 의해 이끌림 받고 삶을 형성한다. “삶은 둘 중 어느 하나의 성향에 의해 인도받게 되어있다”는 것이 정서의 본질이다. 즉, 정서의 활동은 두 종류라는 것이다. 하나는 정서가 어떤 것을 향함으로써 실행하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서가 어떤 것을 싫어하여 거절함으로써 실행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정서’가 감정과는 분명 다른 것이지만, 그렇다고 ‘비감정적’인 것도 아니다. 존 오웬의 표현을 빌자면, 신앙정서는 하나님과 복음에 ‘흥미’(relish)를 느끼면서 하나님과 복음을 반대하는 그 누구나, 그 무엇에 대해서는 혐오감(distaste)을 갖는 것이다. 올바르고 참된 신앙정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의 탁월한 아름다움을 ‘맛보아’ 알아서(시편 34:8),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삶을 형성하려고 애쓰게 한다.
에드워즈 자신이 영적 정서(spiritual affections)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언급했듯이, 그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이 경건한 신앙정서의 표지가 아닌지”와 또 “무엇이 참된 신앙정서의 표지인지”를 밝히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는 먼저 강력한 회심과 마음(heart)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사역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12 가지 현상(표징)에 주목한다.
참된 신앙정서의 표지라고 확신할 수 없거나 올바른 신앙정서가 아닌 것들.
1. 정서 현상이 매우 크고 강렬하다는 것이 참된 신앙정서의 증거는 아니다.
2. 신체상에 큰 영향력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신앙정서의 근거는 될 수 없다.
3. 유창하고 강렬하게 종교적 언사(言事)를 많이 말하게 되는 것이 은혜를 받은 증거이거나 올바른 신앙정서를 갖게 된 표지는 아니다.
4. 어떤 신비적 현상들이 스스로 노력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참된 신앙정서라는 표지는 아니다.
5. 와중에 성경 말씀이 강렬한 방식으로 마음속에 떠올랐다고 해서 그것이 경건하고 영적인 신앙정서의 표지라고 할 수는 없다.
6. 그 정서 속에 사랑의 모습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참된 신앙정서의 증거는 아니다.
7. 일종의 신앙정서들을 소유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많이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이 참된 신앙정서라고 결정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8. 기쁨이나 위로가 뒤이어 동반된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신앙정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9. 사람들이 종교생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고 외형적인 예배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는 표지는 아니다.
10. 사람들이 입으로 찬양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신앙정서의 발로라고 할 수 있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11. 사람들이 과도한 자신감을 드러낸다는 것이 그들이 가진 신앙정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근거는 될 수 없다.
12. 이런 신비적 체험에 함께 동참한 사람들 사이에 매우 우호적이고 친밀함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신앙정서(구원의 은혜가 있는 부흥)의 명백한 표지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이상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참된 신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에드워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경험 자체가 성령 하나님의 참된 임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의 12개 항목이 "Banner of Truth"판에서 17페이지에 걸쳐 논의되고 있는데(Ibid, I.245-260), 결국 에드워즈의 주요 관심은 참되고 올바른 복음적 신앙정서가 무엇인지를 분석하면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역사하시는 ‘부흥’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훨씬 방대한 74페이지에 걸쳐 성령께서 참되게 역사하신 신앙정서의 표지를 12개 항목으로 나누어 진정한 신앙정서의 본질적인 특성을 개진하고 있다 (실제로는 14개 항목이지만, 12-14항목은 동일한 “신앙적 실천”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에드워즈는 그가 경험한 몇몇 부흥 사건들을 살펴보면서 참된 부흥의 올바른 표지들을 밝혀내고자 하는데, 그는 이러한 부흥의 표지로서의 ‘신앙정서’가 부흥의 때에만 발견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성령이 역사하시는 신자의 중생과 신앙적 체험이 부흥의 때에 더 고조되고 확연히 나타난다고 보았다. - 진리의 깃발 150호
근대(近代)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까지만 하더라도 affection이란 어휘가 유지되는데, 근대 후반부터는 감정(emotion)으로 전환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루터, 칼빈 등이 사용하는 affection,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가 사용한 affection에 대해서 현대에 사는 우리는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affection을 감정(에드워즈의 (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 1746년)『신앙감정론』, 정성욱 역, 부흥과개혁사, 2005)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서문강은 에드워즈의 저술을『신앙과 정서』(지평서원, 2009)로 번역했습니다. affection, passion, emotion은 잘 구분되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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